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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 - 반고의 천지창조와 복희씨, 신농씨, 여와씨의 3황과 황제등 5제!
인류 최초의 문명은 기원전 4천년경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일어났으며
그후 천년이 지나서 기원전 3천년경이 되면 인더스와 중국에서도 문명이
발생하는데.... 우리나라 단군 신화는 소박해서 천지창조가 나오지 않지만
메소포타미아와 구약성경, 그리스, 일본과 중국은 “천지창조” 에서 시작합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태초에는 하늘도, 땅도 이름이 지어지지 않고 두 신만이 있었으니
민물의 신 아프수와 바닷물의 신 티아마트 둘뿐이었는데 이 둘로 부터 라흐무와
라하무, 다시 안샤르와 키샤르 그리고 하늘신 아누가 생겼으며, 아누에게 에아가
태어났고 에아는 마르두크를 낳았는데....... 마두르크가 티아마트를 물리치고 그의
주검을 둘로 나누어 몸 반쪽을 하늘의 지붕으로 삼고 나머지 반쪽은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헤시오도스의 천지 창조와 신의 계보에 따르면 최초로 무한한 공간인 카오스
가 생기고 이어 가슴이 넓은 땅 가이아와 영혼을 부드럽게하 는 사랑 에로스가 나타났으며,
가이아는 산맥의 신 오레(Ore)를 만들고 바다의 신 폰토스(Pontus) 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
를 낳았으며 또 가이아는 우라노스와 관계하여 크로노스를 포함한 12명의 티탄을 낳았습니다.
가이아는 외눈 거인 키클로페스 3형제와 손이 백개인 거인 헤카톤케이르 3형제를 낳았는데,
가이아가 크로노스를 시켜서 우라노스의 물건을 자르게 한후, 절대자가 된 크로노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가이아는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를 도와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
를 열었으며 가이아는 이 밖에도 폰토스와의 사이에서 해신 네레우스를 낳는등
모든 신과 인간의 원초가 되는 신으로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숭배하던 모신(母神) 이었습니다.
1. 중국 창조신화 : 혼돈 상태에서 알이 생겨났고 안에 잉태되어 자라던 반고가 잠
에서 깨어 답답하니 도끼를 휘둘러 하늘과 땅을 가른 후에, 하늘을 손으로 받치고
땅을 발로 누르면서 반고는 세상을 넓혔고 그런채로 1만 8천년 동안 지탱했습니다.
그 동안 하늘과 땅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며 반고의 몸도 점점 커지면서... 하루에
키가 한길씩 커졌고, 결국 9만리나 벌어졌으니 늙어 죽을 때 숨은 바람과 구름
으로 눈은 태양과 달로 몸뚱이는 산맥으로 피는 강으로 털은 풀과 나무로 변합니다.
2. 황제(黃帝) 신화 : 인간은 삼황오제에 등장하는 황제와 상변 (上騈), 쌍림(雙林), 여와 (女媧)
라는 네 신이 흙에서 창조했으니 상변은 눈, 코, 입, 귀를, 쌍림은 손발을 만들고, 황제는
가장 중요한 남녀의 물건을 만들었으며 여와는 마무리하는 역할이라 정성껏 빚어 완성했으나
싫증을 느껴, 대충 진흙 속에 새끼줄을 휘저었다가 끝에서 떨어진 것으로 인간을 완성시킵니다.
위에 설명한 반고 신화와 황제 신화, 여와-복희 신화는 선사시대 중국 땅에
살던 여러 민족들의 설화가 결합된 것이니 본래 반고 신화는 남방 계통
의 신화로... 삼국시대에 이르서야 중국 문화권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3. 3황 5제 : 3황은 일반적으로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여와씨(女媧氏)를 말하며 천황(天皇) ·
지황(地皇) ·인황(人皇)으로 기록하는데 여와씨 대신에 수인씨(燧人氏)나 축융씨(祝融氏)
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경우도 있으니, 복희씨는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 주었으며
신농씨는 농사법을 전해주었고 여와씨는 인간을 창조하였다는데 사마천(司馬遷)은 3황의 전설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사기(史記)”의 기술을 오제본기(五帝本紀) 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4. 5제 : 사마 천이 5제로 든 것은 황제 헌원(黃帝軒轅)· 전욱 고양(顓頊高陽)· 제곡 고신(帝嚳高辛) · 제요
방훈(帝堯放勳:陶唐氏) ·제순 중화(帝舜重華:有虞氏)이며 별도로 소호(少昊) 등을 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 전설은 다양한 신화 ·전설이 혼입된 것이며 오행설이 일반화된 전국시대 말 이후 이야기 경향을 띠게
되었으니... 진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의 황제(皇帝) 라는 호칭은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5. 3황 복희씨와 여와씨 : 태호 복희씨(太皞 伏羲氏)로도 부르니 인간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으니 여와
의 오빠(본래 중국 창세신급 여신이었으나 한나라때 복희씨의 여동생으로 격하) 로 둘은 부부가 되었는데,
기원전 2800년경에 살았다고 하며 원래 민간 전설상으로 태호와 복희는 별개의 인물이었는데 전국시대
진나라에서 편찬한 《세본》에서 동일 인물로 서술하자 이후에는 동일인으로 서술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복희씨는 삼황오제중 맨 앞에 위치하는 존재로 처음으로 팔괘를 그었다고 하니... 우리가
아는 팔괘를 복희 팔괘라고도 하는데, 인간에게 목축을 가르친 신이며 팔괘를
창안하여 음양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이치를 짐작하게 한 신이라 하고 동쪽과 봄을
다스리는 신이며 인간들에게 불을 선사했고 여와와 더불어 천지를 창조해내었다고 합니다.
복희는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주관하는 동방의 신으로.... 뇌신이 인간계를 홍수로 멸망
시키려고 했을때 복희의 아버지에게 붙잡혔는데 자신을 풀어준 복희와 여와를 그가
살려줌으로써 둘만 살아남았고, 여와가 사람을 만들고 난 뒤에 사람들에게 농사와 불을
피우는 법과 사용하는 법, 사회 생활 등의 기본기를 가르쳤으며 팔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홍수 후 인류가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인류를 번창시키기 위해서는 남매끼리 관계를 해야 하는데,
여와가 주저하자 산의 두 봉우리에서 각각 피운 연기가 하나로 합쳐지면, 신의 뜻으로 행하였더니
과연 연기가 하나로 합쳐졌다거나, 여와가 자신을 잡으면 혼례하겠다고 하고는 나무 둘레를 계속
돌았고 복희는 잡을수 없는지라 꾀를 내어 뒤로 빙글 돌아 여와를 품에 안아 부부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여와의 중국 발음은 발음은 Nǚwā(뉘와)인데 “회남자”에, 태고의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던 4개
의 기둥이 부러지자 대지는 갈라지고 화재와 홍수가 발생하였으며 맹수와 괴조가 횡행하여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이때 여와가 5색으로 빛나는 돌들을 녹여 하늘의 구멍 뚫린 부분
을 메웠다고 하며 역시 복희처럼 뱀의 몸을 하고 있으니 대홍수 뒤에 인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복희씨는 홍수로써 이루어진 세상의 재탄생과도 관련이 깊어, 곤의 의지를 받들어
치수 작업을 이어나가는 우(禹)와도 만남이 있었다고도 전해지는데.....
우(禹)가 치수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어느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뱀과
사람의 형상을 띠고 있는 신을 만났으니 그가 바로 복희씨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최초 인간으로 인류의 시조격이며 여와와 함께 창세신이라고 하는 신화도 있으니 전한시대 지배층
무덤 마왕퇴의 명정(銘旌)에 그려진 그림에도 복희씨가 나오는데, 하늘 맨 위 가운데에 자리잡고
좌우에 하느님의 말을 전하는 새 라는 란(鸞)이 있으며 오른쪽에 해가 있지만 아홉개 밖에 없고
복희씨를 포함해야 열이 되는데 이 그림의 화가는 복희씨를 해의 신이자 하느님으로 여긴 듯 합니다.
각저총, 오회분 4호묘, 덕화리 1,2호 고구려 고분벽화에 달 신 여와와 태양 신 복희가 나오는데 복희씨
가 들고 있는 것이 삼족오(三足烏) 이니 고구려인들은 태양 안에 세발 달린 검은새가 있다고 믿은
것인데, 저 오(烏) 자 때문에 흔히 까마귀로 알지만 그냥 검은새라는 뜻으로.... 고대에 우리 민족은
문자를 만들지 못했으니 태양조(太陽鳥) 도 중국에서 한자와 함께 들어온 우주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중국에도 태양조(太陽鳥)는 있으니 한나라벽화에는 발이 3개고 장사 마왕퇴 유적에는 둘인
검은새인데 1977년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우표에 “해뚫음 무늬 금동장식품” 디자인이
있는데 진파리 7호 무덤에서 나온 삼족오를 디자인한 관모이며 삼족오는 인디언이나
마야문명에도 보이는데 전투후 까마귀가 나타나 시체처리를 하니 중국은 흉조로 보았
지만... 일본은 길조로 보았으니 현재 일본 축구협회의 상징인데 일본 건국신화에도 나옵니다.
여강여호에는 기원전 2800년대에 등장한 중국 고대 삼황으로 중국인들에게 그물 낚시, 철제 무기
사용법, 요리, 동물사육, 음악, 글쓰기, 양잠 및 직물로 실을 짜는 법을 가르쳐준 것으로 유명한
문화적 영웅이며 제방, 운하 및 관개 도랑을 파서 황하의 물을 길들인 것은 물론,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는데 고대의 모계사회에서는 복희의 배우자이자 창조신인 여와를 숭배했습니다.
출생지는 황하의 중하류로 외양은 전통적으로 복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데.... 즉
복희는 뱀의 몸을 가졌고 기원전 2962년경에서 최초의 용이 복희의 몸으로 부터
나타났다고 하는데.... 대홍수로 대지가 물로 덮일 당시, 복희와 여와만이 곤륜산
으로 들어가 살아남았다고 하며 그들의 결합을 통해 다시 인류가 번창했다고 합니다.
6. 3황 신농씨 :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남방을 다스리던 신으로 농업, 의약, 약초의 신이며
염제의 '염' 자가 '불꽃 염'(炎)인 것에서 불을 관장하는 신이었으며, 오제의 첫 번째
인 황제 공손헌원과 마찬가지로 태양신이기도 했는데 흔히 신농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 부족사회에서는 열산씨, 여산씨, 연산씨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소의 머리를 한 반인반수로 염제(炎帝)로도 불리며 업적으로는 인간에게 농사를 본격적으로 알리고,
가르쳤으니 이름(神農)이 농사(農)의 신(神)인 듯한데 최초로 호미를 만든 농기구의 발명자 이고
횃불, 우물, 도자기 굽는 법, 야금술, 옷 짜는 법, 물물교환이 가능한 시장의 발명자라고 하며
인간이 아버지를 모르고 오로지 어머니만을 알때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신농(神農) 은 중국 고대 삼황(三皇) 중의 하나로 흔히 '염제 신농씨' (炎帝神農氏) 로 불리는데.....
본명은 강석년(姜石年) 이며, 별칭으로는 열산씨(烈山氏), 염제 주양씨(炎帝朱襄氏) 가 있습니다.
신농씨는 염제 신농국을 세웠고 자손들은 8대 520년간 중국을 통치하였다는데 신농씨는 황제 헌원씨
이전에 한족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백초의 풀을 직접 맛보아 해독을 하였으며 그 때문에
한의학의 창시자로 불리니 한의학 최초의 저서로 유명한 “신농본초경”을 저술했다는데... 기원전
3,300년경 섬서성 기산현을 흐르는 강인 강수(姜水) 유역에서 자라 그 지명을 따서 강씨(姜氏)를 씁니다.
염제 신농씨는 세계 강씨(姜氏)의 시조이니 황제 헌원씨와 더불어 중화민족의 조상으로 숭배되는데,
제나라 군주 강태공(姜太公)은 염제 신농씨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후손으로는
중국의 천수 강씨(天水姜氏), 한국의 진주 강씨(晋州姜氏), 중국 한족(漢族) 고씨(高), 한국 및
중국의 범양 노씨(盧), 여(呂), 오(吳), 중국 한족(漢族) 허씨(許)등 247여개 성씨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신농씨는 의술과 농업에 관련이 깊은 신이며, 그래서인지 백성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나라에서도 농사와 한의학이 신농씨가 남긴 업적이라 하여
'신농유업' (神農遺業) 이라고 칭했으며, 농촌에서는 신농유업이라는 구절을
쓴 깃발을 만들고...... 한의원에서는 신농유업이라고 글씨를 써서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경제에 관련된 신이기도 하니 신농씨가 시장이라는 것을 두어 서로가 필요한 물건을 교환할
수 있도록 했는데, 태양이 머리 위에 떴을 때 시장이 서도록 하고 얼마쯤 지나면 끝나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인데... 역사적으로 농경체계가 도입된 후로 사유재산과 계급
분화가 생겨났으니 신농씨의 설화는 농경체계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 변화가 반영된 것입니다.
황제 다음으로 중국 한족의 시조로 많이 언급되는 것이 염제인데 한족들은 스스로를 황제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그 외에도 염제와 황제 모두의 자손이라는 뜻에서 염황의 자손
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대만에서 사용하는 중화민국 국기가에서도 염제와 황제의 후손
(炎黃世冑) 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며 달의 계수나무와 얽힌 염제의 일화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시대 이후로 농신(農神)으로서 제사를 지냈음이 기록되어 있으며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는 '선농단' 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봄이 되면 경칩후 해일(亥日)에 임금이 곡식의 신
에게 제사를 지낸후 소를 몰고 밭을 가는 의식을 했는데 친경(親耕)이니, 제사와 친경이
끝나면 임금은 백성들에게 술과 소뼈를 푹 고운 '선농탕' 을 내렸는데 선농탕의 이름이 바뀌어
설렁탕이 되었으니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곡식의 신이 바로 염제 신농씨를 가리킵니다.
신농씨는 판천 전투에서 황제 헌원씨와 싸워 패배했고 그의 후손으로 치우와 공공, 그의 신하인
형천이 있는데 치우가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던 때, 그는 염제의 이름을 빌려 사용하였으며
또한 중국의 역대 왕조들에게 지속적으로 침략당했던 베트남의 설화집인 “영남척괴
열전” 에서도...... 베트남 민족의 시조인 낙룡군을 염제 신농씨의 후손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염제 신농씨의 어머니 여등(女登)은 제후 유교씨(有嬌氏)의 딸이자 소전씨(少典氏)의 비(妃)로 어느날
그녀가 화양(華陽)으로 나들이갔다가 신비스럽게 생긴 용(龍)을 보고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데 그후
임신해 열달이 지나자 머리는 소, 몸은 사람의 형상을 한 반인반신을 낳았으니 이 아이가 신농 입니다.
“진주강씨대동보(晋州姜氏大同譜)” 에는 기원전 3218년 4월 26일 천수(天水: 감숙성 위천현)에서 태어
났다고 하니 이날은 중국에서‘신농대제탄신(神農大帝誕辰)' 으로 부르며 신농씨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춘추좌씨전” 에는 열산(烈山, 허베이성 수주)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열산씨(烈山氏) 혹은 여산씨(厲山氏)
라고도 하였다는데... 처음에는 진(陳: 허난성 부근)에 도읍을 정했다가 후에 곡부(曲阜: 산둥성)로 옮겨
140여년간 통치했으니 신농이 백성들을 공평하게 다스리니 백성들은 소박하고 성실해서 다투지 않았고,
위세는 강했지만 드러내지 않았고, 형벌을 제정했지만 사용하지 않았으며 법은 번잡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7. 5제 황제 : 황제라는 이름은 오행사상의 토(土)와 연관된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토(土) → 황(黃)
→ 황제(黃帝)로 칭하게 되었으니, 황제의 성은 공손(公孫), 이름은 헌원(軒轅)인데 총명해서
미래를 예지할수 있었으며, 사물의 법칙에도 통달했으니 의학, 복장, 화폐, 도량형,
음율(音律=음악), 문자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중국 의학의 기초를 만들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기” 의 “오제본기(五帝本紀)” 에 따르면 황제가 성인이 되었을 무렵 신농씨의 통치력이 점차
약화되자 각지의 호족(豪族)들이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으니 황제는 간과(干戈 : 방패와 창)
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곰 (羆=큰곰) 과 비 (貔=중간 크기의 표범),
휴 (貅=표범의 일종), 호랑이 등을 데리고 호족들과 싸움을 벌여 그들을 복종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치우(蚩尤) 라는 호족만큼은 황제에게 따르지 않았으니... 80명에 이르는 그의 형제들은 동물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말을 하는 괴물로, 머리는 동(銅), 이마는 철(鐵)이며, 모래와 돌을
주식으로 삼는 흉포한 패거리라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양쪽 군대는 격렬한 전투를 벌였으니 치우는
이매망량(魑魅魍魎) 동원에 마술을 부려 짙은 안개를 만들어내서 황제의 군대가 방향을 잃게 만듭니다.
요괴이자 마물인 치우의 현란한 전술에 곤혹스러워 하던 황제는 어느날 밤 서왕모가 자신을 도와
주러 오는 꿈을 꾸었으니, 부하인 풍후(風后)와 함께 제단을 만들어 사흘동안 잠도 자지않고
계속 기도를 드리자 서왕모가 보낸 구천현녀(九天玄女)가 나타나 호부(護符=부적)와 병법을
전해주니 황제는 치우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마침내 천하를 평정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황제 영토는 동으로 산동성 태산에 이르렀고, 서로 감숙성, 남으로 호남성, 북으로는 흑룡강성과 흉노(匈奴)
의 땅에 까지 이르렀다는데 황제(黃帝)는 중국의 전설상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에서 오제중 첫번째
위치로, 삼황에 비해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 있는 편이어서 사실상 중국 최초의 황제로 대우받으니 중국
의 제왕과 한(漢)민족은 자손이라고 하는데 패한 치우도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전쟁의 신으로 숭앙받습니다.
황제가 제왕이 되라는 천명을 받을때 구름이 서조(瑞兆)를 나타냈다고 하니, 황제는 구름으로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운사(雲師)가 되어 군단과 관료에게 구름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으며 거문고와
종을 비롯한 여러 악기를 만들었고 도덕률도 정했다는데, 황제는 곤륜산에 올라 하늘을 향해 황제가
되었음을 아뢰는 의식인 봉선(封禪)을 행했으니 후세의 황제들도 이때의 의식에 따라 봉선을 행합니다.
그후 황제는 수산(首山, 산서성)에서 발견한 동(銅)을 형산(荊山, 하남성)까지 가지고 가서 정(鼎) 을
만들었으며 정을 사용해서 신단(神丹)을 완성시키자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황제를 천계로
데리고 갔으니... 황제가 용의 등에 오르자 70명에 이르는 그의 부하들도 올라탔다는데 이때 황제가
만들었던 신단의 제조법이『황제구정신단경(黃帝九鼎神丹經)』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8. 5제 전욱과 제곡 : 전욱 고양씨(顓頊高陽氏) 는 고대 중국의 신화상의 제왕인 오제
(五帝)의 한 명으로 소호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는데, 아버지는 창의(昌意),
어머니는 촉산씨(蜀山氏)의 딸인 창박(昌僕)인데 창의는 황제의 손자이니 전욱은
황제의 증손자가 되며 다른 전설상의 천자 처럼 고결한 인간으로서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기』(史記)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인품은 고요하고 그윽하며 항상 심모(深謀)를 갖추고
있다' 고 했으니 전욱은 민간의 사람들이 신과 관련되는 것을 싫어해 증손인 중(重),
려(黎)에 명해 하늘로 통하는 길을 닫아서 신과 사람이 구별을 두도록 했다니
한정된 계급만이 제사권을 장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바로 신권정치의 선구자 입니다.
제곡 고신씨(帝嚳高辛氏)은 중국 고대의 신화상의 제왕으로 상나라 시조 탕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욱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으니 아버지는 교극(蟜極)인데, 교극의 아버지는 황제의
아들 현효이므로 제곡은 황제의 증손이 되니 전설상의 천자처럼 고결한 인간으로 묘사되며
사기에는 태어날 때 부터 자신의 이름을 말할수 있는 명석한 사람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9. 5제 요임금과 순임금 : 황제 다음에 유명한 부락연맹의 수령 셋이 나타났는데... 요(堯)임금,
순(舜)임금, 우(禹)임금이니 원래 한 부락 사람들로서 차례대로 부락연맹의 수령으로 추대
되었는데... 맨 처음 제곡의 아들인 요임금이 부락을 지도했는데 경천순천(敬天順天)은 중화
사상으로 발전했고 예절의 문화로 펼쳐졌으며 나이가 들자 직위를 승계할 사람을 물색합니다.
요가 어느날 여러 부락 수령들을 모아놓고 상의하자 모두들 순을 추천하는데 순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으니 계모에게는 상(象)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오만하기 짝이 없었는데도, 아버지
고수는 상을 총애했지만 순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생을 사랑했으니 덕이 높은 사람이라고 칭송하니
요임금은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순에게 시집보내며 식량 창고를 지어주고 소와 양을 줍니다.
그러자 순의 계모와 이복동생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순을 죽이려고 했으니, 고수는 순에게
식량 창고 지붕을 고치라고 하니 순이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자 고수는 창고에 불을
질렀으니 아들 순을 불태워 죽이려 한 것인데 사다리가 치워진지라 순은 햇빛을 가리는데
쓰는 삿갓 두 개를 양 손에 하나씩을 들고는..... 새가 날개를 편 것처럼 지붕에서 뛰어내립니다.
그러자 순에게 우물을 파게 했는데 순이 우물 안으로 들어가자 돌로 우물을 메워버렸으니
순을 우물 안에 파묻으려 한 것 인데, 그러나 순은 우물 밑으로 내려가자 굴을 팠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 왔으니 그 다음 부터 고수와 상은 더 이상 순을 해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지만 순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복동생과 사이좋게 지냅니다.
요임금은 순의 됨됨이를 보고는 덕이 높은 사람이라 임금의 자리를 넘겨주었으니 이렇게 임금의 자리를
세습이 아니라 덕 있는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을 ‘선양(禪讓)’이라는데, 임금이 된 순은 백성들과 함께
부지런히 일하고 검소하게 생활해서 칭송을 받았고 수십년뒤 요임금이 세상을 떠나자, 순은 요의 아들
인 단주(丹朱)에게 넘겨주려고 하였으나 사람들이 모두 반대하니 그제야 부락연맹의 수령으로 나섭니다.
우 임금은 고대 하나라의 건국자로 아버지는 곤이며 곤의 아버지는 오제의 하나인 전욱이니 우는 전욱
의 손자이고 전욱은 황제의 손자이므로 우는 황제의 고손자가 되니, 도산씨(塗山氏)의 딸에게서
계라는 아들을 두었는데 인덕을 가져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탁월한 정치 능력을 가졌으니 요임금
때 우는 아버지를 이어 순에게 천거되어 치수(治水) 사업을 맡아 성공하니 선양을 받아 임금이 됩니다.
첫댓글 중국역사 잘 알았습니다
중국의 천지창조 역사.....
신화이지만 참 웅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