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순흥향교는 고려 충렬왕 (1340년)에 처음 지었으나, 단종복위운동으로 순흥이라는 고을 전체가 폐쇄되는 와중에 이 향교도 문을 닫는다. 그 후 200년이 지난 숙종9년 (1683)에 부(府)가 회복되면서 다시 세웠다. 이후 여러 차례 위치가 바뀌다가, 정조 14년(1790)에 지금 이 곳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향교는 유교문화 위에서 설립,운영된 교육기관으로, 국가가 유교문화 이념을 수용하기 위하여 中央의 成均館과 연계시키면서 地方에 세운 것이다. 향교의 출발은 유교문화가 소개되는 때부터 비롯되지만, 적극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것은 崇儒抑佛과 儒敎文化 이념을 정치 이념으로 표방한 조선시대부터이다.
조선 왕조는 유교문화 이념을 수용하여, 지방 사회질서를 유교문화 논리에 접목시키며, 과거시험 운영을 유교 교육과 연계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사회문화의 기초 기구로서의 기능을 담당한것이 향교이다.
따라서 국가는 군현제(郡縣制)의 정비와 함께 지방 수령들에게 향교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보호,육성을 촉구하였으며, 이를 위한 재정적 지원도 적극적이었다. 향교는 지방 수령의 책임 하에 그 운영이 활성화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