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전 의료윤리연구회 회장은 20일 한국의학교육평가원과 고려의대 의인문학교실이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개최한 ‘2016년 의료정책연구 심포지엄’에서 ‘의료규제(Medical regulation)의 당위성 – 악행금지 원칙과 악행방지’를 주제로 한 강연을 진행했다.
이 전 회장은 발제문을 통해 진료행위별로 적용되는 ‘악행’의 종류를 소개했다.
이 전 회장은 진료행위별 악행에 △무익한(futile) 치료 △통상적인 치료와 비통상적인 치료 △과잉치료(overtreatment)와 과소치료(undertreatment) △태만(negligence)과 주의의무(due care) , △의료과실(malpractice) 등이 있다고 했다.
‘무익한 치료’는 성과 없고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며 수용할 수 없는 혜택과 부담을 가진 치료를 말한다. 한 진료 기관이 2015년 11월 정상인에게 혈액투석환자에게 하는 시술을 혈액정화 명목으로 400만원을 받고 진행한 시술이 대표적이다. 진료 기관 관계자는 혈액정화요법으로 혈액 속 콜레스테롤, 노화물질 등의 해로운 노폐물을 걸러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 전 회장은 “이런 황당한 시술은 자신의 자녀나 가족에게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의사가 하는 모든 행위가 의료행위가 될 수 없으며 그 행위가 치료적용대상과 범위을 벗어났다면 비윤리적”이라고 말했다.
‘통상적인 치료와 비통상적인 치료’는 “치료가 단순한가 또는 복잡한가, 자연적인가 또는 인위적인가. 비침습적인가 또는 침습적 인가. 저렴한가 또는 비싼가, 의례적인가 (routine) 또는 모험적인가를 포함”한다면서도 “보다 심오한 도덕적 고려 등이 이러한 기준들을 타당하게 하는 경우에만 적절”하다고 했다. 관련 사례는 ‘무익한 치료’와 같다.
‘과잉치료와 과소치료’는 각각 △수술의 적응증( indication)을 넓게 잡거나, 비용대비 효과가 적은 고가의 치료(시술, 약물투여, 치료행위)를 하는 경우와 △진료표준에 미치지 않는 치료행위로 의사가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상태이거나, 태만한 경우, 의도적인 경우를 말한다. 이 전 회장은 “이 같은 과잉치료나 과소치료로 환자가 해를 입게 된다면 의료윤리인 ‘해악금지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형외과가 환자의 척추에 인공 디스크를 2~3개 넣은 뒤 상당량의 진료비를 받아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병원이 포괄수가제 하에서 더 많은 환자를 받기 위해 환자를 조기 퇴원시키는 행태도 여기에 포함된다. 매해 사망률은 10만명당 0.7만명으로 변동이 없지만 방병률은 25%씩 증가하는 갑상선 수술도 마찬가지다.
◇고(故) 신해철 사례는 ‘태만과 주의의무, 의료과실’에 해당
‘태만과 주의의무, 의료과실’은 의료인의 행위가 특정 치료의 직업적 표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이 때의 태만은 의도의 여부와 상관없이 일어난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신해철법은 고(故) 신해철 씨가 지난해 10월 복강경을 이용한 위장관유착박리술과 위축소술을 받은 뒤 고열과 심한 통증, 심막기종 등 복막염 증세를 보이다 끝내 숨진 뒤 발의됐다. 이 전 회장은 “의사협회와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수술의 강모 원장의 태만과 주의의무 위반 부분 등을 지적했다”면서 “의료인이 수술 전에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수술을 동의하게 한 점, 의료인이 수술 후 촬영한 엑스레이 이상 소견을 확인하지 않은 점, 진정성이 결여된 점, 이해상충을 부적절하게 관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의사의 전문적 윤리와 의학 전문 직업성이 훼손된 부분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C형 간염을 환자에게 감염시킨 사례도 여기에 해당된다는 게 이 전 회장의 설명이다. 양천구 신정동 소재 ‘다나의원’원장은 환자 18명에게 C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혐의을 받았다. 이 전 회장은 “3년전 교통사고 휴유증으로 뇌병변 장애 3급 및 수전증이 있는 k원장은 정상적인 진료를 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이를 “면허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진단했다. 또 “본인이 진료를 못 하니 부인이 대신 진료를 한 것은 비의료인의 의한 무면허 진료 행위”이며 “오염과 감염에 대한 의학적 정보나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의료행위를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은 이러한 의료인의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의료인의 면허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의료 규제는 의사가 사회로부터 진료에 대한 독점적 권한과 의학적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장치”라면서 “의사, 법률가, 성직자와 같은 전문직은 자체적으로 규율과 기준을 정해 배타적 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