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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6일 청량한 가을 오후,
토요일의 청량리역은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매우 경쾌했다. 역사에 들어서자 반가운 우리시 회원님들이 이미 와 계셨다. 박영원 님, 윤준경 님, 임동윤 님, 김금용 님, 한인철 님, 최종호 님, 권혁수 님과 만나 악수를 하고 차표를 점검하고 못 가는 사람 것은 반납해서 회비로 보충했다.
12시 45분에 출발하는 차인데 행여 늦을까 봐 12시 30분 출발이라고 알려주신 임동윤 시인님 덕분(?)에 시간이 넉넉하였다. 그 시간 동안 권혁수 시인은 티셔츠를 못 챙겼다고 티셔츠를 사고 우린 또 조금이라도 경비를 아끼고자 열차에서 먹을 김밥과 맥주까지 샀다. 가장 늦게 최상호 시인님이 합류했다. 너무 바빠서 핸드폰도 두고 왔다고 하시길레 그게 바로 진짜 여행이라며 한마디씩 건넸다.
12시 45분이 되자 열차가 출발했다. 좌석을 돌려서 마주보고 가면서 김밥도 먹고 맥주도 마시면서 갔다. 열차에서 먹는 김밥과 맥주는 여느 진수성찬보다 더 맛있었다. 이게 어디 음식 맛으로 평가하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하기 때문이지. 열차에는 연인들과 젊은이로 가득 찼다. 이를 보고 최종호 시인은 풋청춘 속에 여문청춘이 끼었다고 해서 그 기발한 표현에 한바탕 웃고 윤준경 시인은 ‘풋청춘과 여문청춘’으로 즉석 시를 지으셨다.
평소에 양평을 매우 좋아하지만 도로가 워낙 막혀서 엄두를 못 내는데 열차는 막힐 염려가 없이 시원스레 덕소를 지나고 양수리 강가를 지나갔다. 한여름을 지내고 한결 짙어진 산이 강물에 비쳐 산과 강이 모두 초록이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강물을 보다가 시선을 분산하며 춘천까지 갔다.
2시 40분경에 춘천에 도착했다. 춘천역을 빠져 나오자 수향시 회원님들이 봉고차와 승용차로 마중 나와 주었다. 나는 처음으로 수향시와의 합동 시낭송에 참여하기에 모두들 낯설지만 고맙고 반가웠다.
춘천 시내를 지나 소양댐까지 갔다. 올해 완공되었다는 수자원공사의 소양댐 물문화관에서 합동시낭송회가 시작되었다. 삼척의 두타시, 성남의 물소리시, 서울의 우리시, 춘천의 수향시의 대표님들이 각 회원들을 소개하고 이어서 두차시 회원부터 시낭송을 하였다.
‘소양호의 가을 그리고 詩’라는 제목의 시낭송집을 받았다. 낭송 초반에 바순과 바이올린 그리고 기타의 합주가 있었다. 바순의 부드러운 음색에 바이올린의 높고 맑은 음색 그리고 기타의 명랑한 음색이 잘 어울렸다.
우리시 낭송만 듣다가 다른 시낭송회원들과 합동 시낭송회를 여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었다. 지방색도 느껴졌고 또 다양한 삶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무려 3시간여에 걸친 긴 시낭송이 끝나고 물문화관을 나왔다. 시원한 소양강 바람이 매우 상쾌했다. 그런데 아뿔싸! 일이 생기고 말았다. 최상호 시인님이 열차에 잠바를 벗어 놓고 내렸고 전화를 해도 열차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분명히 열차의 못에 걸어 놓은 것을 보았는데 그만 모두들 춘천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그대로 내려버린 것이었다. 카드사에 분실 신고를 했다며 애써 편안한 모습을 지으셨고 마치 예수님같은 표정으로 태연해 하셨지만 그 또한 우리를 위한 배려이리라. 모두들 안타까워하고 위로도 건넸지만 다시 찾을 수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소양댐 위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나니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길가에는 다래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었다. 하도 맛있다고 해서 준경 언니가 한 그릇 샀다. 순알칼리성 식품이라고 하는 바람에 모두들 하나씩 더 먹으면서 옛 추억을 되살렸다.
소양댐을 내려와서 신숭겸 장군의 묘로 갔다. 신숭겸은 고려 초기에 대구공산에서 견훤에 맞서 싸우던 왕건이 위기에 처하자 왕의 옷을 입고 나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이를 매우 슬퍼한 왕건이 시호를 장절(壯節)이라고 내리고 그의 복을 빌게 하였다고 한다. 고려 예종은 왕을 위해 죽은 신숭겸과 김락 두 장수를 기리는 8구체의 향가 ‘도이장가’를 지어 그들의 공을 기렸다는 말을 듣고 그 옛날 국어 시간에 배운 향가의 제목이 어슴프레 생각났다. 신숭겸의 묘는 산자락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고 묘 주위에는 소나무가 곧고 장대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마치 기골이 장대했다는 신숭겸의 위용을 보여주는 듯 했다.
차를 돌려 강촌으로 왔다. 강촌은 관광지처럼 불이 환했다. 젊은 대학생들이 많이 찾아서인지 매우 활기차 보였다.
우린 스타밸리라는 펜션에 들었다. 숙소에 짐을 놓고 테라스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모두들 배가 고픈 터라 고기를 구워내자마자 상추에 싸서 맛있게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어서 모든 음식이 다 맛있다며 즐거워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서로가 자리를 바꾸어가며 이야기를 했다. 강원도 바다를 극찬하는 삼척의 두타시 회원님들의 이야기는 동해바다만큼이나 시원시원했다. 혹여 불편하거나 부족함이 있을까 봐 행사 내내 살피는 수향시 회원님들의 배려가 느껴져 미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펜션 안으로 들어와서 멋진 펜션 주인으로부터 커피를 얻어 먹기도 했다. 준경 언니는 웃다가 맘 졸이다가 안절부절. 수향시 회장님이신 조성림 시인님과 이름 두 글자가 같아서 족보를 따져보고 그 분은 풍향 趙씨이시고 나는 한양 趙씨라서 조상은 다르지만 한글로 이름이 두 글자나 같으니 이것도 대단한 인연이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학교 교감선생님이시고 수학을 전공하셨다는데 매우 편안하고 부드러우셨다.
상현달이 서쪽으로 지자 별빛이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별과 밤바람과 이야기 속에 초가을 밤은 깊어갔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마당에서는 계속해서 웃음과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여행와서 이렇게 빨리 자도 되느냐는 김금용 시인의 말도 내게는 자장가처럼 아스라했다. 엄청난 잠순이의 실력이 어찌 여기서라고 발휘되지 않겠는가? 자리바꿈에 대한 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대로 꿈나라로 직행했다.
어젯밤 일찍 잤기에 날이 밝자마자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아침 산책에 나섰다. 숙소 주변에 가을 풀꽃이 아주 많이 피어 있었다. 과꽃, 봉숭아, 칸나, 옥잠화, 물봉선, 별꽃, 벌개미취, 마타하리, 누드베키아, 족두리풀들이 깨끗한 자연 속에서 제 빛깔을 찾아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하고 있었다.
도중에 물소리시 회장이신 최명길 시인님을 만났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하시고 물소리시 회원들에게 시를 지도해 주신다는 최시인 님은 풀꽃 이름과 그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게 들려 주셨다.
마을 끝까지 갔다가 내려오면서 길가에 서 있는 대추나무를 발견했다. 김금용 시인은 대추를 따고 윤준경 시인은 받아 내리고. 겨우 서너개 땄으나 그 수고로 맛본 대추는 매우 달콤했다. 내려오다가 붉은 수수밭에서 또 대추나무를 발견했다. 아침 식사 전이라 시장기가 발동하여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윤준경 시인님의 키가 이때만큼 커진 적이 있으랴. 대추나무까지 손이 쭈욱 뻗쳐졌고 대추는 그대로 우리들에게 왔다.
강마을의 물안개가 산과 들과 마을을 포근히 감싸 주어 매우 편안했다. 멋진 무대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윤준경 시인과 김금용 시인은 감춰진 끼를 삭이지 못하고 즉석 무도 공연을 펼쳤다. 관중이 나 밖에 없는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렇게 노느라 아침 식사에 늦어 주인아주머니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잘 삭힌 깻잎 반찬에 구수한 된장국으로 식사를 맛있게 하고 모닝커피까지 곁들일 수 있었으니 눈총 받은 것도 눈 녹듯 사라졌다.
10시에 강원대 교수이신 허문형 시인님의 승용차를 타고 김유정 문학촌으로 갔다. 길에는 차가 거의 없어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볕을 받아 벼들이 풍요로운 수확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 곳도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들판은 사람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계절을 바꾸고 있었다.
김유정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물축제에 맞추어 하려다가 지역민들의 토지보상 건에 대한 시위로 미루어졌다고 했다. 도착한 실레 마을은 매우 조용했고 금병산 아래 들어선 김유정문학촌도 평화롭게 보였다. 몇 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기는 했으나 넉넉한 가을 햇살과 일요일이라는 시간이어서인지 시위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김유정 문학촌의 촌장이신 전상국 님은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 긴 시간을 서서 설명을 해 주셨다. 그 분의 열정적인 설명에서 김유정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김유정(金裕貞)은 1908년 춘천 신남면 증리 ‘실례마을’의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8살에 어머니를, 10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우울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연희전문대에 입학했으나 국악인 박록주를 향한 지독한 짝사랑 병에 걸렸고 가세마저 기울어진데다 병을 얻어 학교를 중퇴했다고 한다.
1931년 김유정은 고향 실례마을로 내려와 금병의숙이라는 야학당을 짓고 학생을 모아 가르치다가 병과 가난으로 생활비가 없어 고생하던 중 안희남(월북작가)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문학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33년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1934년 ‘만부방’을 집필했고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소낙비’가 당선되고 조선중앙일보에 ‘노다지’가 가작으로 당선되어 화려하게 문단에 등단했다고 한다. 그 후 천재적인 재능과 왕성한 창작력으로 단편 ‘금따는 콩밭’, ‘떡’, ‘산골’, ‘봄봄’ 등 실례마을을 배경으로 한 주옥같은 단편들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현대문학의 새로운 획을 긋게 되었다. 1937년에는 ‘따라지’, ‘땡볕’ 등 2편을 발표했는데 지병인 페결핵의 악화와 가난으로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그의 유품마저 월북한 안회남이 모두 챙겨서 가져 갔기에 그가 남긴 것은 소설 밖에 없다고 했다.
김유정의 작품은 비극적이고 비참하고 우울한 삶의 현실을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해학적으로 그리면서도 등장인물을 어리석은 듯 그러나 순박성을 잃지 않은 착한 사람들로 향토적인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다는 설명도 읽을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 등의 작품이 생각났다.
널찍한 터에 다시 지었다는 생가인 한옥 대청에 앉아 있노라니 김유정의 젊음과 병마와 열정이 함께 느겨졌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친구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글은 피 한 방울까지 짜 내어 쓴 듯 절절했다. 그러나 마당가에 우뚝 서서 책을 폎쳐 들고 서 있는 김유정의 동상에서는 가난과 병마를 느낄 수가 없었고 잘 생기고 다감한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스물아홉살로 생을 마감한 그는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그를 찾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살고 있었다.
이번에 못 한 문학행사를 오는 9월 20일에 열게 된다며 그 때 꼭 내려오라는 수향시 회원님들의 권유를 들으며 문학촌을 나섰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사람 이름을 따서 역이름을 지었다는 김유정역 앞에 있는 막국수집으로 갔다. 춘천의 대표 음식하면 막국수가 아니던가? 깔끔한 국물에 시원한 물김치와 막국수는 매우 잘 어울렸다. 수향시 회원님들은 메밀의 효능과 함께 메밀 음식은 웰빙식이라며 이것저것 챙겨 주셔서 다들 맛있게 먹었다.
1시 45분에 있는 열차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수향시 회원님들은 김유정이 기른 감자라며 감자 봉지를 우리시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넣을 곳이 없었지만 그 정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짐보따리 속에 감자를 챙겨 넣었다.
1박 2일 동안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모든 뒷바라지를 해 주신 수향시 회원님들의 마음씀씀이가 너무도 고맙고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문학을 같이 한다는 인연이 이렇게도 따뜻하고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인가? 이 큰 은혜를 갚으려면 그 분들이 서울에 오셨을 때 역시 잘 해 드려야 할 터인데…….
김유정역에서 가을볕을 쬐다가 수향시 회원님들의 전송을 받으며 열차에 탔다. 열차에서 또 자리를 돌리고 앉아서 얘기꽃을 피우다가 경고를 받기도 했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얘기한 철없는 어른이 되었으니 우리가 그만큼 젊어진 것이다며 또 웃었다.
졸린 눈을 비며가며 얘기하다가 보니 어느새 서울에 도착했다. 갈 때는 가벼운 배낭이었는데 정과 사랑으로 잔뜩 무거워진 가방을 메고 청량리역을 빠져 나왔다. 헤어지기 전 악수를 하고 복잡한 서울의 일상으로 되돌아 왔다.
춘천의 물안개와 청명한 하늘과 수향시 회원님들의 자상한 배려는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첫댓글 꼼꼼하게 기록하느라 애쓰셨습니다, 조 시인님! 수향시 카페에도 옮겨 놓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시인님의 섬세한 기록은 인간 기억기랄까 어느새 촘촘히도 요목을 짚었습니다. 참 수고하셨습니다.
짝짝짝 박수! 생생한 기록, 역시 조교감이십니다. 귓속말로 (우리 또 갑시다. 막걸리 실컷 먹게 해준댔어요.)
애쓰셨네요. ^^ 일 박 이틀간의 일들이 안가신 분들도 동감할 정도로 생생하게 잘 쓰셨네요. 저도 박수!!!! 더군다나 우리 세 여인의 새벽데이트까지(대추 따는 거 사닞찍히고, 정말,.그것까지,.애고..,..)ㅎㅎ,..
조시인님! 한 폭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자세하고도 재미가 철철 넘치는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