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7시반 볼리비아항공으로 라파스를 떠났다. 산타크루스를 경유하여 마나우스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에코노믹 항공권을 구할 수 없어서 비즈니스에 탑승하게 되었다. 조금은 부끄럽게 과분한 서비스에 돈의 편익을 느낀다.
산타크루스에 당도하자 공항 안에서 경찰들이 열을 세워 몸 수색을 한다.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일이 사람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든다. 마약에 대한 범법 사례가 이 루트에서 자행되었던 모양이다.
17일 동안 함께 동행했던 부부가 아마존 여행을 갑자기 포기하고 리오데자네이로로 간다는 바람에 우리 부부만 떠났다. 탐색 여행은 홀로 하거나 부부가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아내를 위로했다. 관점이 다른 사람들과의 여행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깨닫게 된다. 동조하고 이해하려다 보면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상대방과의 친교를 명목으로 한 대화에 애를 쓰는 일조차 괴로운 일일 것이다.
어쩌면 여행에 대한 계획은 내 주관 대로 내 삶을 꾸려나아가는 방식에 따라 일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누가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을 조금 이해한다 해서 무엇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인가? 진정으로 꼭 말을 하고 행동을 보여야 알려지는 것은 차원이 낮은 만남의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남은 생애 여행에 대해서만은 더 이상 상대방에게 나를 드러내거나 시비를 가리며 힘겨워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나는 나일 뿐이다. 살아온 곳과 가까운 사람들을 떠나 고독한 여행을 한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비장한 결단이 요구된다.
내 삶을 값지게 가꾸어갈 길이 아내에게 달려 있다는 일은 여행길에선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출발을 기다리며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는 일이 허망하게 끝날지라도 남미 대륙을 이해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었다. 강한 의지력으로 나를 행복하게 이끌고 내 여행이 내 인생의 장식으로 찬연하게 꾸미려면 어려운 코스도 소중한 것이다. 마나우스에 도착하면 밸렘까지 선상여행을 하고 싶었다. 오륙일이나 걸리는 아마존 여행이 자잘한 사건이나 자연현상조차 값지게 보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육체적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여행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새벽에 공항에서 마나우스 항구에 도착했다. 웃통을 벗고 사람만한 크기의 물고기를 나르는 짐꾼들이 아내의 눈에 먼저 들어왔다. 아내는 기겁을 하고 우리가 타게 될 거대한 선박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곳을 벗어나자 했다. 그들이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도 않았고 모기떼의 공격을 당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아마존의 물결조차 보지 않은 상태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오지까지 가는 투어 안내자의 험악한 인상에 겁을 먹고 아마존 2박3일 투어를 포기했다. 아마존 강을 따라 떠나는 5박6일 선상여행도 가능하지만 한갓지게 내 계획만을 주장할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아내의 고집 때문에 원하던 아마존 여행은 1일 투어로 끝내고 말았다. 다음날 서둘러 아침을 굶고 약속 장소로 택시를 이용하여 당도했다. 비가 내리고 있다. 여행사 근처에서 아침식사용 음식을 사가지고 약속 5분 전에 사무실로 갔다. 신청한 내용을 확인 후 일행과 더불어 항구로 가서 배를 탔다. 포르투갈어로 설명하는 바람에 내용을 명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행 안내서를 참조하여 현장을 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네그로강과 본류가 합하는 곳의 색깔이 확연히 다른 양 줄기 물을 보면서 바다에 떠 있는 광활함에 잠겨보았다. 누구의 말처럼 아마존강이 바다처럼 너무 넓어 모기가 날다가 다 빠져죽었는지 그곳에 있는 동안 모기를 볼 수 없었다. 상류와 지류에선 모기가 극성을 부려 힘들었다는 말을 들어왔던 우리로선 신기하기만 했다. 롯지에 마련된 점심을 만족스럽게 들었다. 정글여행이라 하지만 제대로 이루어진 울창한 밀림을 보기는 어려웠다. 관광객에게 보여주려고 배를 타고 나타난 원주민 어린이와 동물을 보며 사진을 찍을 땐 팁을 주었다.
아내는 항구 시장에서 먹을 만한 음식이 많았는데도 사먹기를 거부했다. 안내서에 나온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 택시로 도착하여 아마존에서 잡은 생선 요리를 시켰지만 입맛에 맞지 않아 떨떠름한 표정이 절로 나왔고 음식 대부분을 남겼다. 그러고 보니 강변 주변의 풍광도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산책을 하며 여행에 흥미를 잃게 될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아마존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컸던 것은 아닐까? 여행을 포기하고 귀국하여 정말 소시민답게 평범한 일상에 매여 답답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옳은 삶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이 아름다운 마나우스에 와서 볼 것도 많고 보이는 것이 다 감동을 일으킬 만한데 낭만에 빠지기보다 침울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내의 기분에 연연하는 내 마음 때문인가? 아내를 배려한다는 의미에서 관광 위주의 여행을 시작해야 했지만 나는 미지의 땅을 밟아보는 게 너무 좋은 걸 어찌 하란 말인가? 보이는 모든 것에 의미를 주기엔 매 순간의 감동이 너무 광대한 탓으로 나의 동맥은 차고 넘치는 듯했다. 그러나 아내의 침묵과 무표정이 나를 시들하게 만들고 있었다. 좀더 견디어 보겠지만 아내에 대한 염려가 내 방식의 여행보다 강렬하다면 언제고 갈 길을 중단하고 돌아갈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보니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귀국할 항공기를 탑승할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50여 만원이면 갈 수 있고 패널티를 내면 빠른 시간 안에 일정을 변경하여 서울로 갈 수 있다는 현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물론 순간마다 집 생각이 났지만 오래도록 준비하여 떠나온 여행을 쉽게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삶이나 여행이나 동반자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항상 참으려고 한 내 입장에서 배려와 동조가 허물어지는 기분을 숱하게 겪으면서 우울한 내 행위에 대해 여유를 갖고 이해하게 된다. 피곤한 일이겠지만 내게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사랑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혼자의 여행을 추진하다가 아내의 동참을 받아들였고 친하게 지내던 다른 두 사람의 요구로 인원이 확대되었다가 그들은 편한 여행 코스를 택했다. 여행비와 취향 그리고 주어진 사정이 다 다르기에 함께 떠나는 여행은 더욱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남미 여행의 어려움 특히 고산병으로 인한 증세로 인해 여행에 흥미를 잃게 만들고 불안감을 주거나 여행코스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단체로 자유배낭여행을 하긴 힘들 것이다. 짧게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거나 여행사의 투어를 선택하든지 자기 뜻에 따라 체력에 맞게 여행을 하는 길이 가장 이상적이다.
혼자라면 여행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우울할지라도 변화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지역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신선한 욕구는 여행 중단을 막아줄 것이다. 내가 선택한 코스를 포기하고 귀국하기엔 내 자신의 무모한 계획이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스스로 부끄러워서도 코스를 단축하기 싫었다. 충분히 견딜 수 있고 답사하기에 내 몸이 견딜 수 있어서 나를 달래어 긴 여행을 끝까지 진행하고 싶었다. 아내 아닌 누군가를 대동하고 설득하며 달래는 일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며 피곤한 짓이다.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 이곳까지 와서 애초에 계획했던 49일간의 여행기간을 줄일 것까진 없는 일이다.
때로 지루하고 집안일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도 나의 여행길을 이해하고 훗날 추억을 곱씹어볼 아내가 옆에 있다면 준비하고 추진한 일을 마쳐야 한다. 물론 여럿이 함께라면 더 나은 여행이 되고 둘만이어선 안된다는 법칙은 없다. 둘이선 참기 힘든 길인가? 그렇다면 이곳에 와서 외롭게 활약할 사람마다 포기하게 된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자신이 싫증난다 하여 서로에게 짜증을 부릴 수는 없는 일이다.
진정 삶이란 혼자서 아니면 부부가 걸어가는 것이다. 누구와 함께 있다 하여 내 마음을 다 보일 수는 없다. 이번 여행처럼 값진 일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여행지를 오게 된 것이며 은퇴 후 장래에 영향을 줄 정보와 할 일을 찾고 있으니 한 순간의 판단도 소홀할 수 없다. 부담스럽게 여행 경비를 마련한 것은 아닐지라도 다음에도 이렇게 부담없이 올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돈을 쓰기보다 아직은 벌어야 하는 내 입장에서 지금 우리 부부의 여행은 호사일 수 밖에 없다. 감사하며 원래의 생각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마나우스에서 거대한 강줄기를 바라보며 자연의 숭엄함을 느끼고 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대지와 강의 엄청난 조화에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제대로 관찰하고 그 소감을 말하라고 한다면 이곳 도시의 마력을 이루기까지 최선을 다 하여 살아온 이주자들과 원주민을 무시하거나 경멸할 수 없는 일이다. 마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아사도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커피 맛과 오페라하우스의 아름다움과 줄기차고 여유롭게 흐르는 아마존만으로도 사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첫댓글 긴 글 감동적으로 잘 봤습니다. 글을 올려주세요.
웬만한 작가가 쓴 여행 후기 보다 훨 재미있네요.
이렇게
후배들이 보고 간접경험과 판단을 할 수 있게요.
감사해요.
저도 40일 계획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갈 때 동행한 사람이 하루만에 한국으로 돌려보내라고 해서 엄청 한 적이 있었습니다.한 마음을 저도 많이 이해할 수가 있죠.
여행이 다 헝클어진거죠.
뭐, 산다는 것이 그렇게 흘러 흘러 오늘 여기까지 온 거지만...
지우남 님의
하물며 어부인께서 저리 힘들어 하시는데... ㅜㅠ
"삶이나 여행이나 동반자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항상 참으려고 한 내 입장에서 배려와 동조가 허물어지는 기분을 숱하게 겪으면서 우울한 내 행위에 대해 여유를 갖고 이해하게 된다.." 는 글이 새삼 저로 하여금 뒤 돌아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긴 글 단숨에 읽었습니다. ^^
남은 여정 무사히, 그리고 두 분 행복한 추억이 되는 여행이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긴 글 단숨에 읽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셔요...
재미있죠
힘내시길......의미있는 여행이 되시길 빌겠습니다...
모린다고
장담 못 하시겠다고라...
우짜노...
부인의 마음도 이해가 되네요 여자가리 여자인가요^^거운 여행을 하셨을거라고 생각을 합니다거운 추억으로 남겠네요^^
일단 집 떠나면 고생인데다 먹을것을 제대로 먹을수 없지요 씻기도 마음때로 안될테구요 눈앞에 보이는건 무섭고 생소하기만 하지요.. 저라도 아마 그랬을꺼예요..
그래서 조금씩 양보해서
지나고나면
한비야 씨를 떠올립니다.
절대 태클 아닙니다요...
약간의 긴장감으로 여행여정을 따라가 봅니다^^ 부부는 삶이란여행의 동반자라는 말을 떠올리며...몸도 마음도 건강한 여정되시길...
브라질에 관계되는 글에만 댓글 다시고...
그래도 편치 않으신 분이 이뽀...
진짜 여행은 마눌이고 애들이고 다 버리고 혼자 가야 제격이죠~,조금 테클입니다~,힘 내시고 편안한 여행으로 바꾸세요. 아내를 위해 이번에는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만 하세요,그것도 동반자에 대한 배려일 겁니다~~
여기도 가끔씩 부부가 오시는 경우가 있는데.. 두분의 의견이 비슷한 경우엔 참으로 즐겁고 행복함이 보여지지만,, 나이드신 분중 여자분들이 마지 못해 동행한 분들도 더러 뵈었는데....옆에서 보는 저두 힘들더라구요^^
여행기를 아주 잘 쓰셨네요,,, 길이 추억에 남으시겠어요. :) 고맙습니다,,, ^^*
아내와 동행하면 좋기도하고 한 편으로는 걸리는게 많아서 불편하고, 그래도 외지를 탐험 정신으로 가시는 용기에 힘을 실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