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욕 지하철에서 어느 일요일 아침 작은 패러다임(paradigm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의 전환을 경험한적이 있었다.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생각에 잠겨 있거나 또는 눈을 감고 쉬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체적으로 매우 조용하고 또 평화스러운 장면이었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 한 중년 남자와 그의 애들이 탑승한 순간 아이들은 매우 큰소리로 떠들고 제멋대로 여서 전체 분위기가 금방 바뀌었다. 아이들과 함께 탑승한 그 남자는 바로 내 옆에 앉았는데 두눈을 감고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보였다. 아이들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큰소리로 말하고 물건을 팽개치며 심지어는 어떤 사람이 읽고 있는 신문을 움켜 잡기까지 하였다. 매우 소란스런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 옆에 앉아 있는 이 남자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화를 내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였다. 나는 이 남자가 자기 아이들이 저렇게 날 뛰도록 내버려 두고 자신은 무감각하게 가만히 있으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을 이해할수 없었다. 거의 모든 승객들이 짜증을 내고 있음을 쉽게 알수 있었다, 나는 마침내 더 이상 참을수 없어서 이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아이들이 저렇게 많은 손님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이들을 좀 조용하게 할 수는 없겠습니까?”
그때야 이 남자는 마치 상황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처럼 눈을 약간 뜨면서 다음과 같이 힘없이 말하였다.
“당신 말이 맞군요 저도 뭔가 어떻게 해 봐야겠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막 병원에서 오는 길인데 한 시간 전에 저 아이들의 엄마가 죽었습니다. 저는 앞이 캄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아이들 역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순간에 나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상상할수 있는가? 내 패러다임이 바꾸어졌다. 나는 갑자기 상황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고 상황을 다르게 보았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고 다르게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나의 짜증은 사라졌고 화가 났던 내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어떻게 다스릴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내 마음은 온통 이 사람이 가진 고통으로 가득 채워졌다. 동정심과 측은한 느낌이 자연스럽게 넘쳐 나왔다.
“당신의 부인이 돌아가셨다고요? 저런 안됐습니다. 뭐라고 위로할 말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