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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저녁.
창 밖으로 내다본 서녘 하늘은 파랑과 회색, 노랑과 빨강의 저녁노을이 파노라마처럼 시시각각 바뀌며 아름다운
여름 밤을 수채화처럼 물 들이고 있었습니다.
방학을 맞아 하루가 낳은 아들 두 명, 달리 말하면 나와 아내의 외손자들이 외가에 왔습니다.^^^
둘째 외손주 한새는 외할아버지에게 인사 뽀뽀 한 번 하고는 방 바닥에 배 깔고 닌텐도 게임에 빠졌고,
장손 한결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다운 받느라 기념사진 한 장 찍을 때 고개 한 번 돌린 이후로는 실종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외손자 둘이 곁께 있다는 기쁨이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나에게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가 봅니다.
한새는 밤이 되자 엄마 따라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만,
초등학교 4학년인 한결이는 장손답게 우리 부부와 이틀밤을 함께 보내기로 작정하고 남았습니다.
첫 날 밤은 나와 안방에서 이불 나란히 덮고 잤고,
둘째 날은 아내 따라 안양에 있는 엘리베이터 만드는 공장에 견학 갔다 와서 침대에서 아내와 잤습니다.
세째 날은 미리 약속한 대로 나와 함께 코엑스에 가서 콜라와 팝콘 큰 봉지 가득 담아 먹으면서 만화영화 <달려라, 스머프>를 한결이만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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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월 8일 낮.
이번에는 하루 부부와, 그들의 아들이자 나의 외손자 둘, 어렵게 말해 처갓집, 친정, 외갓집인 우리집에 왔습니다.^^^
외손자 둘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는 아내의 바램을 들어주려고 아내의 생일에 맞춰 나선 길입니다.
여섯 식구 한 차에 다 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서울을 벗어나자 저만치 떨어져 앉아 있는 산들이 조심스레 붉고 노란 단풍 옷으로 갈아 입은 모습들이 보입니다.
길 가에 핀 코스모스는 가을 바람에 한들거리고, 보랏빛 채소가 신기해 차를 멈추고 다가가면,
때 지난 가지들이 새우 등처럼 꾸부정히 매달려 보기에 재미 있습니다.
미리 예약한 펜션은 앞은 자갈 밭, 홍천강 그리고 단풍이 내려 앉고 있는 산이 절벽처럼 병풍처럼 높게 둘러 서 있어
산수화 한 폭 그대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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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이 형제는 앞 마당 데크에 설치한 고무보트장에 들어가 보트에 올라타 노 젓기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어른들은 아이들 제쳐 놓고 미리 준비해 간 홍어무침과 갈비찜으로 늦은 점심 포식했습니다.
단풍 든 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은 후 수타산으로 향했습니다.
깨끗한 산소를 가슴 가득 들여마실 수 있다는 홍천9경의 <산소길> 1호 수타산 계곡.
시간이 늦어(?) 수타사를 지은 원효대사도 못 만났고, 보물 <월인석보>도 보지 못했지만,
외손자 두 명 앞세우고 고즈넉한 저녁 무렵의 산사[山寺] 길을 걷는 '조용한 행복'이 무척 맛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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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대신 큰 바위를 놓아 만든 징검다리도 건너고,
아내는 모처럼 딸과 나선 소풍길에 사진 한 장 찍어 추억을 간직하고,
한결이 형제는 포토존 큰 사진 구멍에 얼굴 내밀고 어린이답게 만화의 주인공처럼 재미난 사진 찍었고,
유서방과 나도 연꽃지 나무 데크 위에서 추억의 앨범에 붙일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해는 이미 서산에 떨어졌고, 산에서 내려갈 사람 다 내려가고 우리 식구만 남은 수타산 경내는 참 조용했습니다.
1시간 가량 편안한 산길 걸으며 스님들만큼 가라앉은 마음 흐트러질까봐 조심조심 우리도 산을 내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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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사로 가기 전, 펜션주인이 추천해 준 홍천강변 무궁화축제 야시장을 찾아 갔습니다.
" 홍천 = 무궁화꽃 사랑"이라는데, 홍천읍을 가로지르는 강변 야시장은 멀리서도 각설이타령의 흥겨운 곡조가
축제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습니다. 민속장터답게 천원짜리 균일가 잡화를 파는 가게에 손님이 가장 많았는데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물건들이 가득했고, 각설이는 3천원짜리 칫솔 세트를 노래에 담아 팔고
있었고, 막걸리와 안주거리, 한약차, 풀빵 장수도 어김없이 섞여 있었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 푸른 등불 빨간등불이 번쩍이는 공연장에 들어가보니 요즘 '위탄'이나 '남격'으로 한창 줏가를 올리고 있는 <부활>의 "국민할매 김태원" 이 팀원들과 무대 위에서 튜닝을 하고 있어 반가왔는데, 마이크테스팅, 음향 점검 등, 눈치를 보니 공연을 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그냥 발길을 돌렸습니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니 휘영청 보름달 옆에 등을 밝힌 애드벌룬 몇 개 달과 나란히 밤하늘에 아름답게 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법,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홍천군민들이 마음 모아 공중에 달아준 축하 등불이
유난히 밝은 빛으로 밤하늘을 비춰주고 있다고 생각하여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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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소망대로 한결이 형제와 한밤을 같이 잤습니다.
아침 먹기 전 강변 산책에 나섰습니다.
강물에서 피어난 물안개가 강 주변에 퍼지고 생수처럼 깨끗한 산 공기가 가슴에 상큼했습니다.
한결이는 어제 내가 가르쳐 준대로 강물 위에 돌을 던져 물수제비 그럴 듯하게 뜨는 솜씨를 보여 주었습니다.
저멀리 딸네 네 식구 되돌아오는 모습 영화의 한 장면 같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아내와 나도 영화배우처럼 한 장면 잘 찍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