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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제사는 수천, 수만의 짐승을 잡아 피 흘려 속량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는 속죄의 효과만 있고 대속의 효력은 없었습니다.(히10:1-6, 12-14)
속량을 받고 싶은 인간의 속성은 처음부터 항상 있어 왔습니다. 몰렉에게 자기 아들을
바치는 사람의 심정을 생각해 보세요. 이글이글 타는 불 속에 자신의 살점과 피인
아들을 던져 넣는 모습을 생각하면 죄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젖먹이를 가진 어미가 악어 밥으로 그 자식을 던지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심청을 인당수에 던지는 선원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이들도 다 자신의
아들과 딸을 사랑하지만 신을 달래려는 절망감과 굴욕감으로 이런 짓을 합니다.
또한 수도승의 모습도 죄에서 속량되어야 한다는 각오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죄의 속량을 간절히 바라는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은 아들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속죄의 제물(속량)과
다시 살아나셔서 화목제물이 되도록 이 낮은 땅에 보내신 겁니다.(갈3:13-14. 사 53:5)
하나님의 속성 중 두 가지 중 사랑의 하나님으로 긍휼, 자비의 하나님이시며
다른 하나는 증오와 진노의 하나님으로 거룩, 공의,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시므로 하나님과 영원한 분리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이시므로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의 관계와 교제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서 속량의 문제가 대두되는데 속량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다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한 방법을 고안하셨는데 이는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난 것입니다. 동정녀에 의한 탄생입니다.(사7:14)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므로 그 죄를 전가 받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 그 죄를
갈보리에 지고 가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시고 죽음의 형벌을 치루셨습니다.
(마1:21, 사53:6. 요1:29. 고후 5:21) 그로 인해 그리스도는 영원한 속죄의
제사장이 되고 다시 살아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중보의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로인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그리스도인들도 화목의 직분을 받았습니다(고후5:18)
이제 인간의 죄의 문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다만 인간들에게 남은 문제는
이 하나님의 해결책을 받아들이던지 거부하든지 선택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만약 복음 곧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인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피가 모자라는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면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롬1:17-18. 요3:18, 36. 히9:27-28)
그리스도는 완전한 대속자이십니다(히9:11-14), 그 피는 생명(레17:11)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기 때문에 죽음을 없애는 길은 생명을 받는 길뿐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피를 흘려 사망의 값을 갚으신 것입니다.(히2:14-16)
그러므로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히 9:22)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 피는 완전해야 되고 썩지 않은 피라야 합니다. 인간의 피는 불완전하고
죄스러운 것입니다. 더군다나 짐승을 잡아 피 흘리는 임시 조치법의 속죄의 제물로는
무용지물입니다. 구약의 제사에 쓰인 동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일 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 완전하고 썩지 않는 영원한 피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피는 보혈이라고 말씀합니다.(히9:14-15. 벧전1:18-1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대속 사건 이전에는 죄를 온전히
제거할 수 없었고 잠정적으로 죄를 가리는 것이었습니다.(히9:25-26. 10:1-5)
대속이란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그 사람의 죽음의 값을 대신 갚으셨다는 뜻이다. 대신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혼자 죽는 순교가 아니라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제한적이어서 선택된 자만 그분의 대속의 은총이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구원에 초청에 응답하여 믿어야 합니다. (요3:16. 행16:31)
그래서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의 주권이며(롬9장) 그 섭리는 말씀이 가까워서
그 말씀을 들으면 믿어지게 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속죄는 제한적입니다.
말씀을 듣고 믿어지면 하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을 받아 누릴 수 있지만
거절하는 자들은 그대로 죽어가는 것입니다. (마16:16. 요일5:16, 요3:18-19)
만일 어떤 사람이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을 구하고자 자신의 전 재산을 다 바쳐서
연구하여 개발한 약을 죽을 환자에게 주었으나 그 환자가 안 받으면 영영 이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대속의 잔치에 죄인들을 초청하시고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눅15장의 집 나간 탕자의 아버지가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멀리서 걸어오는 아들을 향해 한 달음에 달려가서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우리 양심에
말씀을 하시면서 애타게 준비해 둔 그 대속의 천국잔치로 부르고 계십니다.
(사55:1. 계 22:17. 요6:37. 53-57.) 롬3:23-26의 화목제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지성소의 은혜의 보좌 곧 속죄소로 나아가는 것으로 바꾸어 읽어 보세요.
피의 신성함에 대해서 창9:4 피째 먹지 말라 홍수 후의 최초의 명령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는 노아의 때와 같으리라고 하십니다.(눅17:26)
레7:26-27은 무슨 피든지 먹는 것은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죄가 됩니다.
행15:28-29에는 지금도 피를 금하는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생명은 피에 있고
생명은 신성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피를
먹는 것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피는 구속에 대한 유일한 하나님의 값입니다.
그래서 속죄일은 가장 엄숙한 날이었습니다.(레16장 Yom kippur)
유월절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고전5:7)
무교절은 우리 죄를 도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히 9:26)
초실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되십니다. (고전15:20 첫열매)
오순절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후 50일째로 성령강림하신 날입니다 (행 2:1)
나팔절은 주님의 강림(παρὑϭἰα)이십니다.(고전15:52. 살전4:16)
그런데 마지막 나팔이 불기 전에 첫째부터 여섯째 나팔은 불고 있습니다.
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한 완전속죄(히8:12)를 의미합니다.
새 언약이 이루어진 오늘날이 바로 첫째 부활의 때입니다.(요5:24-25, 롬8:1-2)
아담 안에서 죽었던 자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난 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첫째 부활이 있을 뿐 둘째부활은 없고 둘째 사망 곧 불못뿐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므로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그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계20:6) 이 기간이 과연 언제일까요?
그 다음 장막절은 영원한 나라의 예표입니다. 주님은 우리 개개인의
텐트가 되시고 전체의 장막도 되십니다(계7:15) 새 예루살렘입니다.
(요14:21,23, 고후5:1-2. 계 21:1-2)는 참조할 성경입니다.
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혼자 성소안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참 장막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히9:24)
제사장이 자신을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립니다(레16:11)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집 맡은 아들이시므로 자신을 위한 속죄제사 없이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히3:6)
그 외에 수많은 제물들이 있습니다. 자기 권속을 위해 수송아지를 드립니다.
속죄물과 번제물을 위해 수송아지와 수양을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수 염소
한 마리를 잡아 그 피를 속죄소에서 백성들의 죄를 위해 7번 뿌렸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대제사장은 아사셀 염소를 붙잡아 그 머리에 안수하고
백성들의 모든 죄를 거기서 고백하여 전가하고 광야로 끌고 가서 버립니다.
1년 후에 다시 이와 같은 예식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고 좋은 제물이
되셔서 자신을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 없이 단 한 차례의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셨고 또한 그 안에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만족시키고 성취하실 수 있습니다.(히9:12. 롬8:3-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승리의
말씀으로 “다 이루었다”고 외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히9:6-14)
다 이루었다(요19:30)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은 다 마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과 죽은 자 안에 부활로 임하신 일 위에 더 추가하실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길은 갈보리 산상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대속의 사역을 떠나서는 어디서도 다른 길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고전1:18, 24)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거부하는 것은 영원한 저주의 운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요3:14-19. 요5:24-29. 롬1:17-18)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었고 그 길과 진리와 생명의 동선을
따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생명을 끊임없이 공급받을 수 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막이란 모형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실상의 속죄와 화목의 진리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나의 것이 되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몸 성전의 기능과 역할이
발현이 되고 있음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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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