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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통영길문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파란하늘
아직은 젊다고 말하고 싶으나 몸이 그렇지 않다고 비웃던 아침. 전주 다녀오고 아침 내내 비몽사몽 멍한 상태에서, 날씨가 정말 좋아서 오늘 섬에 가면 좋을 거라는 너무도 쌩쌩한 목소리의 재선 언니 전화에 꾸역꾸역 또 나갑니다. 욕지도. 다녀 온 사람마다 그리 좋다고 입에 침이 마르던 곳인데, 고등어가 잡히고, 짬뽕이 맛있고, 고매가 많이 난다는 욕지도. 거길 가보고자 했으나 늘 여의치 않았던 터라 가자 할 때 가야지, 안 그럼 또 못갈 듯하여 따라 나섭니다.
삼덕항에서 배가 갑니다. 여기서는 한 시간이면 된다고. 서호동 터미널에서는 연화도 들러서 30분을 더 간다지요. 배가 꽤 큽니다. 편도 7천6백원. 자동차 싣고 가면 22,000원 더 내야 합니다. 이 배에는 노래방과 매점이 있습니다. 좌석에 앉아서 갈수도 누워서 갈 수도 있으나 누워 가는 곳은 앉아 가는 곳보다 한없이 좁아서 산행으로 힘든 이들을 다 받아 줄 수는 없어 보입니다.
배가 커서 그런지 조용히 편안히 바다를 지납니다. 승객이 몇 안되는 채로 욕지도에 도착. 우아, 섬 디게 크다.
지금까지 다녔던 섬과 정말 다릅니다. 일단 마을이 큽니다. 건물들도 많습니다. 알록달록 파라솔 펼쳐 든 난전도 있습니다.
해녀 아지매들이 대야마다 돌멍게 해삼 고등어 잡어를 넣어 두고 즉석에서 회를 쳐줍니다. 욕지도 지도를 하나 얻고자 매표소에 들어갔다 나오며 오늘 코스를 어떻게 잡을까 이렇쿵 저렇쿵 하는 사이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네요. 이런. 그 버스는 해안 일주로를 따라 한 시간 조금 안 되게 돈다더군요. 원래 언니 계획은 그 버스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유명하다는 그 짬뽕을 먹는 거였는데,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마을 구경을 좀 하다가 짬뽕을 먹고 들머리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골목 골목 찾아 들어간 중국집. 흔히 방송 탄 집에서 보는 현수막 한 개 없이 말간 얼굴을 드러내놓은 한양식당. 1박2일에 나왔던 집이라지요. 그래서 물어물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시간을 잘 못 맞추면 자리가 없어서 먹을 수도 없다는 집입니다.
6천원짜리 짬뽕입니다. 면이 부담스러워 밥으로 시킵니다. 질긴 쭈꾸미가 많이 들었고 보들보들한 새우도 몇 마리 제 철이 아닌 굴은 아주 조금, 홍합은 먹으면 안 된다는 공지가 돌아서 그런지 안 들었더군요. 채소도 그닥 많지 않아서 맛은 그럭저럭..차라리 요즘 많이 잡히는 오징어를 넣어주지..온통 수입산 해산물이라 별로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
섬이 크고 마을이 크니 교회도 큽니다. 천황봉 B코스인 부두 - 혼곡 - 대기봉 - 천황봉 - 태고암 - 부두를 가보기로합니다. 대신 혼곡을 날머리로 하기로 하고 반대로 걷습니다. 중학교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등산로로 들어가라고 일러주기에 학교 쪽으로 갑니다.
욕지 중학교 교가는 김상옥 님 작사에 윤이상 님 작곡입니다. 해방 되고 나서 김춘수 김상옥 윤이상 등의 예술인들이 하신 일 중에서 학교 교가를 만들어 준 일은 유명합니다. 교가는 학교의 얼이 담긴 노래입니다. 뜻하지 않은 감동을 가슴에 담습니다.
밤낮을 둘러봐도 창망한 바다
돛푹을 찢기이며 찾아온 그날
발걸음 인치던 여기 외딴 섬
님의 뜻 이어받은 우리는 모여
흰 모래 푸른 물에 마음 기르니
이름도 슬기로운 욕지중학교
우러러 하늘아래 험준한 천황
사슴이 뛰어놀던 깊은 골안도
빛나던 괭이 끝에 사래 긴 옥토
님의 뜻 이어받아 우리는 모여
흰 모래 푸른 물에 마음 기르니
이름도 슬기로운 욕지중학교
비탈에 갖가지 색으로 드러난 밭. 욕지 고구마는 찰지고 맛있기로 유명합니다. 맛이 좀 특별하죠.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요즘은 짝퉁 욕지 고매도 많이 나옵니다. 욕지 고구마를 가져다 다른 지역에 심어 욕지 고매라고 팔기도 하지요. 그런데 욕지 고매는 욕지에서 키워야 그 맛이 나지 아무리 종자가 욕지 고매라도 다른 땅에 심으면 그냥 고매 입니다. 탱자처럼...
중학교 뒤 임도는 두 갈래로 나뉩니다. 밭에 있는 어머님께 여쭙니다. 산으로 들어가려면 어디로 가나요? 일로 가라..가는 길에 보이는 해군 관련 건물들, 해군 부대도 있고, 해군 아파트도 있고. 해군이 바닷가에 안 있고 산 중턱에 있습니다. 까꾸막을 분주히 왔다 갔다하는 차량들. 바닷가에 두었으면 그런 일도 없을 것인디...
양지바른 곳에는 빨간 산딸기들이 익어서 빼꼼히 얼굴 내밀고 있고, 지나는 나그네는 야곰야곰 따먹고..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푯말이 있습니다. 용화저수지처럼 물을 가둬 두고 식수로 쓰는 모양입니다. 왜가리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곳. 물고기들도 많이 사는 모양입니다.
왜가리들 앉아 있는 반대편 기슭엔 자그마한 사당 한 개. 그리고 물에 잠긴 나무 한 그루..뭔가 이야기가 있을 듯한 풍경입니다.
암자인가? 저길 내려 갈 수 있을까? 한 발 한 발 눈을 떼지 못하고 다가갑니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적 있는 풍경
임도는 또 갈래길입니다. 위쪽 건물에 있던 사람이 이짝 길은 해군부대 가는 길이라고 저짝 길로 가라고 일러줍니다. 예, 고맙습니다. 그 길에 있는 약수. 물 맛은 그저 그랬습니다.
저수지 암자 가는 길인 듯해 보입니다. 내려가 볼까요? 길은 나무가 우거져 그늘이 집니다. 땡볕에 걸어온다고 흘렸던 땀을 조금 식힙니다.
위패 하나 모셔 둔 산신당이네요. 소재를 누군가 하는 사람이 있는지 안도 바깥도 깨끗하고 정갈합니다.
이미 죽어 버린 나무이지만 아직 썩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아니 죽은 건 아닌가..저 아래 푸르른 잎이 몇 가닥 보입니다. 죽지 말고 잘 살아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번 비진도에서 본 천남성이 이곳에도 많이 보입니다. 천남성 꽃이 꼭 코브라 뱀대가리 같다고..얘도 비슷한 모양인데, 잎은 천남성 잎이 아니네요. 얘를 보고 가면서 불경스런 생각을 해봅니다. 전에 김기자가 꽃의 종류도 헷갈리는 것이 많다고..꽃 모양이 같다고 다 같은 꽃이 아니고 잎을 또 봐야 한다고 그런 말까지 생각나서.. 조물주 하나님이 창의력이 좀 부족하셨나 보다는..그래서 이렇게 비슷비슷한 애들을 많이 만들어 놓으셨나 보다고..땡볕에 비몽사몽 흐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걸어가는 길이 지루하여 그랬을 겁니다. 용서하소서^^
해도 뜨거운데, 그늘 하나 없는 임도를 이렇게 걸어가는 건 정말 고욕입니다. 재선 언니가 없었으면 절대로 걸어가지 못했을 길...
이 길 갈차 준 사람들 미워요. 아까 처음에 해군부대있으니 저짝 길로 가라고 했는데, 이짝 길과 그짝 길이 만나는 겁니다. 우리가 걸은 길은 빙 돌아서 부대로, 우리가 가지 않은 그 길은 직통 코스로 부대로 가는 길이더군요. 이 땡볕에 세 배 되는 길을 돌아돌아 걸었던 겁니다.
부대 사병에게 물어 다시 천황봉 등산로로 접어 듭니다. 태고암을 먼저 가게 되어 있더군요. 다음 주 초파일 행사를 맞아 풀도 베고 차에 걸리는 나뭇가지도 베어내고 있던데...까꾸막을 걸어 올라 만난 쉼터. 나뭇가지로 이정표를 만들어 붙였습니다.
많이 올라왔으니 그 보답으로 보여줄게 하는 듯 나무 사이로 펼쳐진 푸른 바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저기 우리가 갔던 섬인데..연화도, 우도, 구멍섬.
가운데 저 섬은 물 빠지면 이어지는 섬인 모양입니다. 사람이 사나?
물 얻으러 들어간 태고암. 문은 굳게 잠겨 있고 사람 소리는 안 나고. 물은 졸졸졸...
저기 레이다 돌아가는 곳이 천황봉 정상입니다. 저런 데는 올라가고 싶지 않습니다. 군사구역인 듯.
우리는 대기봉으로 갑니다.
이곳과 별 차이 없어 보이는 높이. 길도 좋아라.
길다란 욕지도 너머로 보이는 연화도 우도
욕지도는 선착장이 옴폭 패여 들어가고 그 선착장을 감싸고 양쪽으로 섬이 붙어 있습니다. 일출봉과 망대봉이 있는 쪽 욕지도
대기봉 정상에서 보이는 섬의 모습. 왼쪽부터 일출봉, 그 다음 뾰족한 정상이 망대봉, 그 다음이 옥몽 정상이랍니다. 저 바깥쪽으로는 파도가 들이치는 곳이라서 절벽으로 되어 있더군요. 파도가 있었으면 대매물도에서 본 그 광경을 또 볼 뻔했는데 오늘은 바다가 잠잠합니다.
우와 예쁘다. 처음 들었던 임도와 달리 이 길은 울퉁불퉁 바위가 많아서 사량도처럼 밧줄도 곳곳에 있습니다. 절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 모양도 예쁘기 그지 없습니다. 이 맛에 섬에 드는 것일수도. 바다를 바다에서 볼 수 있으니.
아까 올라 온 마을 위쪽 풍경
혼곡으로 내려가 찾아 간 곳은 무명대(無明對)라고. 무무거사가 계신 곳입니다. 그저 풍경 좋은 집이 있더라는 이야기만 전해 듣고 찾아가 보자 했기에, 자기 이름 팔고 차나 한 잔 얻어 마시라고 강작가가 그러길래 그냥 휴석재 생각하고 찾아 갔는데, 강제윤 시인의 섬을 걷다 욕지 편에 나오는 주인공이 사는 집이더군요. 산비탈을 깍아 집이 들어서 있습니다. 갈 땐 몰랐는데 차츰 정신차려 보니 이곳이 그냥 살림집이 아니라 작은 선방이더군요.
담 너머로는 바다가 보이고, 새 소리가 음악소리처럼 들리고 햇살이 마당을 파고 듭니다. 처마에 매달린 저것은 가스통으로 만든 범종이고 목탁도 보입니다. 바위를 깍아 앉힌 오른쪽 저 집이 법당이고. 우리는 거사님의 거처에 딸린 작은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십니다. 세상사 시름 안고 찾아 드는 중생들을 보듬어 안는 일이 그분의 일상이신 듯 싶습니다. 우리는 그저 풍경 좋은 집으로 알고 찾아갔으나 앉아서 이야기 듣다보니 피곤한 몸도 마음도 개운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우리가 일어설 즈음에 강작가가 손님을 두 분 모시고 찾아 오네요. 섬으로만 다니는 강작가 얼굴이 오랜만에 말개 보입니다. 거사님도 발소리에 강제윤이 오네 하며 반겨 웃음이 번집니다. 영 탁한 우리는 에이, 설마요..했는데 진짜 강작가가 온 겁니다. 영 맑은 거사님은 그렇게 환하게 친구를 맞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단 인사를 나누고 돌아 나오는 길. 인연은 이렇게 또 이어집니다.
선착장에 내려 와 밤나무 군락지에 갔다가 돌아보니 우리가 오늘 걸었던 산의 모양이 보입니다. 선착장을 중심으로 작게 원을 그려 걸었습니다. 이 큰 섬을 돌아보려면 몇 번 더 와야 할 듯합니다. 다음엔 버스를 타고 크게 한 번 돌아보고자 합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 바라보며 장님 코끼리 만진 듯한 오늘 여정을 생각해 봅니다. 무엇보다 무명대에서의 한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하루종일 무거웠던 발이며 머리가 가벼워지는 경험을 해서 그럴 겁니다.
작지만 탑마트가 들어 서 있는 욕지도. 주요소까지 웬만한 것들은 다 갖춘 섬입니다. 면소재지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시원한 맥주 두 캔 사들고 선착장에 앉아서 배를 기다리기로 합니다.
선착장에 앉았는데 줄비한 낚시점들 위로 비탈진 밭을 소와 함께 갈고 있는 분이 보입니다. 찾아드는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한 마을입니다.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주말이면 바글바글하다는. 주말이면 삼덕항 주차장을 가득 메운 관광버스를 보면서 욕지도에 그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있겠구나 싶지요. 그렇게 욕지도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섬은 더 많은 식당과 술집과 편의 시설이 들어찰 겁니다. 그러나 그 안에 사는 섬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되는 땅입니다. 그 분들이 욕지를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언수님! 욕지도 구경 잘 하였습니다. 감사 ^+^ 담엔 또 어딜까요?
ㅎㅎ 언수 덕분에 손 한번에 욕지도 구경하였네. 나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