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000이 오늘부터 수학을 그만두고 시를 쓰기로 했답니다." 이 얘기를 들은 저명한 수학자 D. 힐버트는 말했다.
"잘됐군. 그 친구는 수학자가 될 만큼의 상상력은 없었으니까." 수학이 얼마나 상상력을 요하는 학문인 지를 말해주는 유명한 일화다.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선호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조사결과가 나올 만큼 수학적 토양이 척박한 우리 현실에서 세계 수학계의 난제 중의 난제인 ‘라자스펠트 예상’(Lazarsfeld Conjecture)을 증명해낸 고등과학원 황준묵(38) 교수는 특히 관심을 끈다.
그 공로로 수학자로는 6년 만에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과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황 교수를 서울 청량리 과학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 후보로까지 점쳐지고 있는 유명한 학자답지 않게 수줍음이 많았다.
"수학 천재였다거나 그렇지는 않았어요. 국제 올림피아드 한 번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의 연구분야는 공간과 도형의 학문인 기하학이다.
학부(서울대 물리학과)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수학적 개념이 좋아서 대학 3학년 때부터는 물리학보다 수학 강의를 더 많이 들었어요."
미국 하버드대 수학과 석ㆍ박사를 마치고 1996년부터 3년간 서울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했지만 곧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고등과학원으로 옮겼다.
"서울대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 때는 캠퍼스를 산책하며 생각에 잠기는 게 가장 행복했었지요."
수학자에게 사색은 곧 연구다. "어떤 문제를 풀 때 전체적인 영감은 한 순간에 느닷없이 떠올라요. 그 때가 가장 행복하지요. 이후 그 영감을 논문으로 내놓기 위해 계산과 수식을 반복하는 과정은 수학자도 수험생들 만큼이나 지겨워 합니다."
15년 묵은 라자스펠트 예상을 푼 '영감'도 그렇게 찾아왔다. "홍콩대의 친한 동료가 97년 초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했을 때는 당장 풀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그런데 좀 더 연구해보니 그 실마리는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정말 순간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즉시 그 동료에게 e메일을 보냈다. 라자스펠트 예상이 속한 복소다양체(복소수를 좌표로 하는 공간)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는 변형이론, 미분방정식 이론, 대수ㆍ기하학에 등장하는 군론을 혼합해 증명을 완성했다.
"사람들은 수학 없이는 컴퓨터도 돌아갈 수 없다는 걸모르는 것 같아요. 숫자 둘을 곱하기는 쉽지만 이를 원상태로 나누기는 힘들죠."
이러한 개념에 바탕해 최근 각광받고 있는 컴퓨터 암호론은 수학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는 인재들이 수학을 멀리하는 데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각 대학 수학과 대학원이 미달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주 뛰어난 학생을 중심으로 아직 수학사랑의 명맥은 유지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수줍음 뒤에 숨어 있는 그의 천재적 상상력은 작곡가(황병기 전 이화여대 교수)와 소설가(한말숙)를 부모로 둔 데도 이유가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