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없는 아침은 여유롭다.
정해진 출근 시간이 있어서 분주히 아침을 깨울 일도 없고,
그저 늦은 아침식사를 하면서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오늘은 간만에 운동을 했지만, 보통은 TV를 보거나 휴대전화를 통해 뉴스나 관심 분야를 검색한다.
그러다 강의에 필요하거나 특별한 내용이 있으면 저장을 하고 메모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소위, MZ 세대를 흉내내볼 요량으로 유튜브도 종종 보긴 하는데, 아직은 문자가 더 익숙하다.
오늘도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카톡'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뜬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등록이 안된 전화번호라 주의를 하라는 안내 메시지도 함께 뜬다.
사진을 한 장 보낸 것 같은데, 주의 메시지를 보니 열면 안될 것 같아 머뭇거렸다.
이어서 해외에서 발송한 거라 특별히 더 주의하란다.
지인을 사칭하거나 금전적인 피해를 볼 수 있다고도 알린다.
덜컥 피싱이나 해킹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곧바로 나가기를 눌러버렸다.
그런데 곧바로 “누군지 맞춰보세요?”란 메시지가 왔다.
이어서 “못맞추시면 실망할 거에요..ㅠ”란다.
누군지 말해 주면 좋으련만..
단호하게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못하는 내 성격을 탓하며,
혹시 아는 사람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해킹이나 피싱인 줄 알고 처음에 보낸 메시지를 삭제했다'고 답장을 보냈다.
전송을 누르자마자 처음에 보냈다는 사진을 다시 보내왔다.
여자 아이 셋과 아빠로 보이는 성인 남자 한 명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아마도 아이들의 아빠인 것 같아 보인다.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늘려보다가 얼른 답장을 썼다.
“완중이구나..”
“대박, 어떻게 아셨어요?”
“선생님이 제자도 몰라볼까봐~ㅎ”
“선생님, 잘 지내시죠?”
...
대화 중에 옆에서 같이 휴대전화로 톡하는 내용을 보던 와이프가 운다고 한다.
톡으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이내 보이스 톡으로 통화를 했다.
한참을 이야기 했다.
제자와의 사연은 둘만의 이야기로 남겨 둔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소통 문화도 바꾸어 놓았다.
특히, 사연 속 제자처럼 먼 타국에 있는 사람과도 시간, 장소, 요금 고민 없이도 쉽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얼굴을 보면서도 소통할 수 있으니, 거리감 없이 가까이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끼며 소통을 한다.
불과 90년대 초반, 중반만 하더라도 이런 식의 소통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국제전화 001, OO콤, 국가번호 82 등을 떠올리면 비싼 요금도 요금이지만,
새벽이나 늦은 저녁 때 울릴 전화벨 소리를 감당해야 했던 추억도 새록새록하다.
어쨌든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삶에 깊숙이 자리한 현상이다.
휴대전화라는 기계가 인간에게 감정이라는 마음을, 기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선물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부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런 식의 소통에 너무도 익숙해졌다.
당연하게 누리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불감증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sns를 통한 소통이 자연스러운 만큼, sns상의 친구를 타고 넘다 보니 의외의 연결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링크된 사람이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었다.
오랜 제자는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덥석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근황을 이야기하는 대신,
“누군지 맞춰보세요”를 던진 것이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제자의 목소리는 따듯하고 반가움 자체였지만,
어쩌면 먼 타국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실어서 보낸 신호 같기도 했다.
잘 살고는 있겠지만, 그래도 가족과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외롭고 지친 마음에 위안을 바라는 목소리처럼도 들렸다.
반가움과 벅참, 떨림과 위로가 뒤섞인 대화는 단순한 목소리가 아닌 감정과 마음의 교환이었다.
나에게, 그리고 제자에게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말하고,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무인자동차를 논하는 최첨단 기술혁명의 시대에 있다.
그런 만큼 상상으로만 꿈꿔왔던, 어쩌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술의 도움으로 우리의 삶은 편리해지고 편안해졌다.
하지만, 효율만을 추구하는 삶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보다 인간다운 삶, 따듯함과 행복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오늘은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먼 타국의 제자에게도, 나이든 선생님에게도..
그리고 그 행복한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누군지 맞춰보세요.”
“그래, 한눈에 알겠다.”
그렇게 선생님과 제자는 서로에게 작은 행복을 선물했다.
선생님에게 제자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존재입니다.
문제의 사진입니다...ㅎㅎ
첫댓글 뒷모습인데도 한 눈에 알아보시다니 신기하네요ㅎㅎ ,,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예요 ^^
소통~~의 방법이 자연스러워진 세상이네요^-^
저또한 따뜻한 맘 얻고 갑니다😀
멀리 떨어져있어도 반가움과 그리움을 전할 수 있는 시대라니 ... 시간이 지나도 서로를 알아보는 사제지간이 정말 묘하고도 따뜻하네요.^^*
아~대단하세요 정말 완벽한 뒷모습만 그것도 세월이 한참 지난 뒷모습만 있는데도 제자를 단박에 알아맞히시다니..문득 사진속의 제자분이 너무나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양재웅 선생님을 스승님으로 둬서…저도 많은 시간이 흘러도 제가 만났던 아이들 하나하나 기억하며 잊지 않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