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천연기념물 제1호
향로봉 산맥 속 작은 기지 ‘독도’를 자꾸 군인들은
금강산 유점사로 가던 스님들이 지도를 보았던 곳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님들이 바랑 속에 지도를 챙겨 넣었다는 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다.
독도법이 연상돼 누가 전설을 만들었을 게 분명하다.
틀림없이 너무 외롭고 쓸쓸해
어느 지휘관이 우리 여기를 독도라고 하자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면 말이 된다.
건봉사에서 4㎞, 거기서 건봉산까지 또 4㎞, 골짜기로 내려가 남강까지 5∼6㎞,
그 한가운데 외딴 그 기지는 정말 산의 바다에 떠 있는 독도다.
오래 전 독도에서 온 병사가 내게 허풍을 쳤다.
산맥을 넘어가면 시퍼런 남강이 흐르는데,
그 강에는 사람 키만한 물고기가 여울을 치닫고
말염소가 뛰어노는 강기슭 서어나무
숲에는 장수하늘소가 우글거린다는 것이다.
나는 그 허풍에 몸살을 앓다가 급기야 그 산맥을 넘어갔다.
20년 전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산맥을 넘나들고 있다.
얼굴은 염소,
궁둥이는 말처럼 생겼다는 신비의 동물,
그 말염소는 나중에 천연기념물 제217호 산양으로 밝혀졌다.
사람만하다는 괴물 물고기도 남강에서 사라진 연어일 것이라고 추측됐다.
그러나 장수하늘소는 완전한 ‘뻥’이다.
경기도 광릉 숲에나 있다고 기록된 그 귀하신 몸,
딱정벌레목의 천연기념물 218호가 거기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연어사랑시민모임이라는 단체에서 일하며
남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고진동 계곡에서
해마다 4월 둘째 주 토요일 어린 연어를 풀고 있다.
연어가 사라진 채 비무장지대(DMZ) 속을 숨어 흐르는
남강을 연어의 강으로 소생시켜 보려는 것이다.
말염소는 이미 산양이 돼 나타났고 남강에 연어가 풀렸으니
사람만한 물고기도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독도 용사의 허풍 중 3분의 2는 진짜가 됐다.
그래도 나는 장수하늘소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어린 연어가 남강으로 가던 어느 해 4월,
산맥을 넘어가는 길은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독도기지 앞에서 안내병을 기다리기로 했다.
운해를 뚫고 병사들이 줄지어 오고 있었다.
어, 그들은 독도의 용사들이 아니었다.
검은 계급장이 무늬 새겨져 왕관처럼 보이는 철모,
원추형으로 늘어뜨려 입은 판초 우의,
그들이 산 위에 내려앉은 검은 구름을 뚫고 오고 있었다.
“아, 장수하늘소 떼다!”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틀림없는 장수하늘소 떼였다.
2004년 4월10일,
산맥 너머 남강으로 흘러가는 골짜기에서는
아홉 번째 ‘연어의 꿈 잔치’가 열렸다.
병사들은
‘국군 장병들도 연어를 사랑합니다’라는 글을 철책선에 써 붙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사들도 어린이·젊은이·아저씨·아주머니들과 섞여 앉아
어린 연어를 풀었다.
나는 이 깊은 전선을 찾아온 도시 사람들에게
독도기지에서 만난 장수하늘소 얘기를 해 줬다.
“맞다, 맞아.
독도 용사가 말했다는 장수하늘소는 바로 저들을 말하는 것이었군.”
사람들이 일제히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저들은 천연기념물이에요.
암, 집에서는 모두 천연기념물 제1호지.
저 천연기념물들이 이 산맥에 우글우글하다 이거지!”
“그냥 하늘소가 아니잖아.
장수 아니오,
우두머리라는 뜻의 그 장수(將帥)!”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유를 병사들은 모르고 있었다.
(장병 여러분,
부모들에게는 당신들이 장수하늘소보다 더 소중한 천연기념물 제1호랍니다.
멋진 군대생활 하세요. -연재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