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들면 어디든 펼쳐지는 식물의 세계. 지구 어느 곳에도 식물이 살지 않는 곳은 없다. 과학자들은 식물이야말로 자연 생태계의 근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식물이라는 먹이 사슬의 하부 없이 자연계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만 하더라도 식물은 먹이나 의복, 약, 건축 재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면에서 생존의 토대가 된다. 더욱이 식물들은 동물들보다 먼저 육지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으며 더 성공적으로 생존해 왔다. 그뿐인가. 식물들은 동물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자라고 오래 산다. 우리가 식물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들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데이비드 아텐보로 작 - <식물의 사생활 The Private Life Of Plants>. '식물 행동의 자연사'라는 버금 제목이 딸려 있는 이 책은 식물들의 놀랍고도 환상적인 세계를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처럼 보여 준다. 영국에서는 책으로 출판되자마자 논픽션 부분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화제를 많이 모았다.
원작은 영국 BBC 방송이 기록 영화로 세계 각국에 방영하여 호평을 받은 자연다큐멘터리. 내력에 걸맞게 이 책은 혼자 서재에 틀어박혀 쓴 책이 아니다. 영국 BBC 방송 제작진들과 과학자, 특수 촬영 전문가들이 합심하여 직접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카메라에 담고 글로 쓴 책이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작업만도 3년을 넘긴 책이며, 책 안팎에 거명되었듯이 수많은 식물학자들의 자문으로 치밀하고 탄탄하게 구성된 내용이 돋보인다.
* 차례
1. 식물이 떠나는 여행
2. 식물의 먹이와 성장 과정
3. 꽃과 사랑의 밀사
4. 식물 사회에서의 투쟁
5. 식물과 공생하는 생물들
6.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 기술
* 데이비드 애튼보로
영국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제작자. 어린 시절 그의 고향인 레스커 부근에서 '새 관찰하기', '화석 모으기'를 했던 때부터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영국 BBC 텔레비전에 들어간 그는 몇 해 지나지 않아 "동물원 탐구"라는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1973년 이후 그는 자연에 관한 저술과 영상 제작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의 저서와 TV 프로그램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 우리가 식물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은 ?
우리가 식물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은 고작 해야 얼마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식물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더 많으며, 알지 못하는 것 역시 더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선 식물은 이 세상 어느 동물보다 덩치가 크다. 가장 몸집이 큰 식물로는 흔히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낮은 산악지대에 사는 자이언트 세쿼이어 나무가 꼽힌다. 대략 2,500여 년의 수령을 갖고 있는데,키가 80미터가 넘으며, 둘레는 32.4미터나 된다, 가장 낮은 가지는 지상에서 38.7미터의 위에 뻗쳐 있다. 그런가하면 식물은 지구상의 어느 동물보다도 오래 사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식물은 역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동부 산악 지대인 화이트 산맥에 사는 브리슬콘 소나무다. 이 소나무는 키가 3 미터 정도로 성장하면 9미터 정도가 되는데, 약 4,600여 년의 수령을 갖고 있다.
겉으로 나타난 규모와 수명 말고 감추어진 능력을 따져 보아도 식물은 동물을 압도한다. 우선 식물들은 어둠 속에서도 정확히 볼 수 있다. 그리고 계산을 하고 서로 의사 소통을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미세한 접촉에도 반응하고 아주 정확하게 시간을 잴 수 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식물의 싹은 틈새로 새어드는 한 줄기 빛을 향해서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식물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울타리꽃은 해질녘에 서쪽을 향하고 있지만 밤 동안에 얼굴을 동쪽으로 돌려 새벽 햇빛을 받는다. 계속해서 며칠 동안 동일한 조명 아래 놓아두어도 그러한 운동을 반복한다. 식물은 시간을 잴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지옥풀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건드려야 닫히는데 이는 수를 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서론에서)
정말 그런가요? 그런 식물은 불과 소수 아닌가요? 여러분들 가운데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식물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식물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식물들의 능력들 가운데 몇몇은 식물학자들 역시 최근에야 발견한 것이며, 앞으로 연구가 계속되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이 이러한 식물들의 극적인 생활과 능력 그리고 예민한 감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주로 식물들이 우리 인간과는 다른 시간 단위에 따라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름과 비디오 촬영 기술이 발달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시간을 시각적으로 조절하여 동작을 가속화시켜 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그냥 눈으로 볼 수 없는 식물들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 우리는 착생 식물이 그것의 희생물에서 생명의 자양분을 짜내는 것이나 겨우살이가 다른 나무의 가지에 매우 단호하게 뿌리를 박는 것은 물론 난초가 복잡한 형태의 꽃송이를 우아하게 피우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서론에서)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식물은 움직이지 않고 심어져 있는(植) 것(物)이고, 동물은 움직이는(動) 것(物)이라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식물은 정지해 있는 수동적인 생물이 결코 아니다. <식물의 사생활>을 읽다 보면 식물이 얼마나 집요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알게 된다. 특히, 식물의 활동은 대를 이어 나가며 계속 다양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구사된다는 점에서 놀랍다.
■ 식물, 정교한 시스템의 세계
원시의 숲, 그러니까 지구 최초의 숲은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여 있었을 뿐 꽃은 없었을 것이다. 포자는 수정 없이 땅에 떨어지면 자랄 수 있다. 곤충이 생기면서 꽃가루를 옮겨 주게 되어 꽃이 발달하게 된다. 꽃은 벌, 파리, 나비 같은 곤충들의 힘을 이용해 수정하기 위해서 꽃꿀, 향기, 꽃가루를 동원하여 광고한다. 당연히 꿀은 맛있어야 하고, 향기는 좋아야 하며, 꽃가루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변화한다. 꽃이 아름다운 색채와 모습을 과시하는 것도 알고 보면 생존의 법칙에 따라 생겨난 결과인 것이다.
"남아프리카에 있는 분홍 용담은 털이 많은 목수벌이 꽃가루받이를 해준다. 용담의 꽃들은 꽃잎을 넓게 벌려 휘어진 흰색의 암술대와 3개의 수술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수술의 머리에 붙은 길고 두꺼운 꽃밥은 꽃가루를 먹이로 하는 곤충들의 눈에 잘 띄는 매혹적인 노랑색 꽃가루로 덮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꽃가루는 속이 빈 꽃밥의 안쪽에 들어 있다. 꽃가루가 밖으로 나오려면 꽃밥의 꼭대기에 있는 미세한 구멍을 통하여 나오는 길밖에 없다. 목수벌은 꽃가루를 꺼내는 방법을 안다. 목수벌이 꽃에 도착하면 다른 대부분의 벌들처럼 날개로 높은 진동음을 낸다. 목수벌이 꽃밥 위에서 계속 진동음을 내다가 날개를 움직이는 속도를 낮추어 음계로 보면 대락 중간 도쯤으로 음을 갑자기 낮춘다. 이러한 진동음에 의해서 꽃밥은 꽃가루를 내보내는데 적당한 속도로 계속 진동하면 꽃가루가 노란 샘물이 솟듯이 꽃밥위로 뿜어져 나온다. 그러면 벌은 꽃가루를 부지런히 뭉쳐서 뒷다리에 있는 운반용 바구니 속에 담는다." (100쪽에서)
이와 같이 식물의 세계는 어느 곳에라도 들여다 보면 정말이지 놀라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충분히 완결성을 갖춘 자족적인 시스템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식물은 수정이라는 최대의 목적을 가지고 꽃을 피우고 꽃가루를 만든다. 하지만 꽃가루를 만들지 않는 꽃들도 물론 있다. 꽃가루를 생산할 때 드는 비용의 대부분은 값비싼 유전 인자들이 차지하는 데 비용의 측면에서 유전 인자를 생략하고 꽃가루와 비슷한 분말을 만드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경우에 해당한다. 수정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은 달고 맛있는 액체인 꽃꿀을 곤충에게 보수로 주는 것이다.
■ 모든 역경을 초월하는 놀라운 적응력
식물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동물들보다 더 생존에 성공한 유기체이다. 식물들은 동물들이 잠시도 살 수 없는 지역에서도 번성할 수 있다.
"케냐 산에 사는 식물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서 밀생 군락과는 전혀 다른 특이한 형태를 발전시켰다. 높이가 4800미터인 케냐 산은 적도 바로 위에 있다. 이로 인해서 식물들은 이중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밤에는 영하의 기온을 견뎌야 할 뿐만 아니라 낮엔 희박한 공기 속에서 적도의 불같은 태양의 열기를 이겨내야 한다. 기후가 24시간마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 것이다. 낮에 물에 흠뻑 젖은 땅은 이끼가 자랄 수 있는 최적지이다. 실제로도 이끼가 자리고 있다. 그러나 밤이 되면 흙 속의 수분은 꽁꽁 얼어 붙는다. 얼음의 결정이 급속하게 생기면서 흙이 터져서 이끼는 흙에 정착할 수 없다. 이끼는 흙에 정착하는 대신에 공 모양으로 이루어 바람이 부는 대로 굴러다닌다." (257~260쪽에서)
이와 같이 식물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그에 따라 삶의 방법을 바꾼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식물의 투쟁은 끝이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가령 끔찍한 추위와 더위가 반복되는 곳에서도 식물은 나름대로 삶의 방법을 터득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개별적으로는 죽음이며 집단적으로는 종의 멸망, 즉 멸종이다.
■ 생각할 점들 몇 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몇 가지만 우선 생각해 보자.
1) 아텐보로의 책을 읽다 보면, 지구 곳곳의 식물들은 생존력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능력면에서 놀라우리 만큼 동물을 능가하는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식물들 역시 인간과 같은 고등 동물들이 가진 것과 같은 종류의 의식을 갖고 있는가? 식물이 매우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현대 과학 기술의 발달로 겨우 알았듯이 우리는 식물이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의식은 동물, 특히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의 고유한 능력인가? 만일 그렇다면 의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의식은 동물성의 고급한 발현인가?
2) 현대 과학의 발달은 식물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 속속 밝혀 내고 있는 바, 식물들이 자신의 진화론적인 목표들을 결정할 능력이 있는가? 이를테면 난초가 말벌 암컷의 형태를 모방하여 말벌 수놈이 난초를 암컷으로 오인하여 교미를 시도하도록 유도하는가? 식물은 자연 도태라는 힘 말고는 진화와 관련하여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가?
3)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가 오히려 새로운 생명체들을 출현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현상을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대신 심층적으로 분석해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다각적인 차원에서 심도 있게 따져 보는 자세와 능력이 갖춰지면 한층 더 쉽게 진리에 근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