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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 시절에 섣달 그믐날이면 '바보 사려' 외치는 습속이 있었다고 한다.
(송(宋) 나라 범성대(范成大)의 “賣癡獃詞”가 유명하다. 《范石湖集 臘月村田樂府 賣癡獃詞》참조)
우리도 고려 말 조선 초 문신들 글을 보면 '바보사려' 이야기가 나오니
(고려말 이색의 아버지 이곡과 조선 중기 문신 장유에게서 賣癡獃 보인다)
민속으로 자리잡지 못했어도 '바보 사시오!' 이야기를 자주 했던 기록이 보인다.
지금 전해오는 습속 중에 '내 더위!' 더위사려' 소리는 아직도 이야기 되는데
'바보 사려!' 이 소리는 쑥 들어간 걸 보면
바보를 팔 사람도 없고 살 사람도 없는 시대가 분명하다.
천하에 누가 자신이 바보라며 '정이 많아 바보 됐소 정 바보 하나 사가시오.
돈 쓰다 바보됐도 돈 바보 하나 사가시오. 이름 났다가 하루 아침에 바보됐소
유명바보 하나 사주시오. 힘 좋다고 나대고 자랑하다 골목에서 뻑치기 한방에 갔소
힘바보 하나 사주시오!' 이런 바보 장사들이 나도 나도 나서 줘야 겠지만,
정작 이 시대에 바보를 살 사람이 없으니, 이런 이야기 늘어 놓는 사람이 진짜
바보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민속으로 전해 온 섣달 그믐날 다른 사람에게 '내 더위 사려!'
이건 뜯어 볼수록 이기적이다. 내가 사는만큼 덥고 뜨겁고 그게 내 몫인데
그걸 남에게 훌러덩 주고 저만 시원하니 병 없이 살겠다는 '내 더위 사려!'
썩 유쾌한 놀이는 아니잖은가? 그렇다고 '바보사려' 외치자는 것도 아니다.
헌데 옛 사람들은 왜? '바보 사시오' 바보 예찬을 했던 것일까?
흔히 이런 땐 노자를 말하는 게 상식 아닌가 싶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배우는 자는 날로 날로 쓸어 담기 바쁘고, 깨치려는 자는 날로 날로 덜어내서
나중엔 덜어낼 것도 말 것도 없이 살면서 하지 못할 것도 없고 못해도 안될 것도 없는
자유로움에 이르른다. 그래서 천하가 따로 없고 하늘 땅이 따로 없이
얽매일 거 없는 사람으로 제 자신이 천하로 사는 것이고, 그저 일 벌리기 좋아하는
사람 내로다 하는 사람치고 천하 따로 자기 따로인지라 그냥 천하 속에 사라질 뿐이다.
이걸 열두가지도 넘게 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구절인데. 맨 앞구절에 나오는
배우는 자는 날로 날로 쓸어 담기 바쁘고 깨치려는 자는 그저 덜어내려고 한다.
요즘 이런 구절 내 세웠다가 얻어 맞고 쫓겨나기 좋을 구절이다.
그래서 생각있는 분들에게 맡겨야지 나 같은 바보가 아는체 했다가 몰매 맞기 딱 좋은
구절이기도 하다.
누구니 누구니 해도 바보팔이, 바보사려, 이걸 노래한 선대 조상님 중에
목은의 부친 이곡이 남긴 글에 핵심이 있고, 계곡 장유가 남긴 '바보가'에
멋들어진 풍자가 있다고 생각해 다만 그 분들 생각 일부분이라도 오늘 같이
똑똑한 사람 많은 세상에 바보 씨알 몇줄이라도 뿌려 볼까 한다.
이걸 쓰는 사람 스스로가 바보인 걸 느끼고 사는 바라. 혹여 공감하는 한두분이라도
있었으면 싶어 우선 고려말 몽고족 치하 원나라 들어가 해동의 천재 소리
들었던 동방이 알아주던 이곡선생이 바보예찬 어찌했는가 딱 한구절만 보자.
생계는 매우 졸렬해서 가난한 꼴이 골골 거리는 병자 같고 / 理生甚拙貧如病
도는 이루지도 가지지도 못하고 늙을수록 바보가 되는구나 / 學道無成老漸癡
이렇게 스스로 그것도 살만큼 산 만년에 바보고백 하는 걸 보면
제 아무리 컴퓨터 머리니 도서관 짊어지고 사네 해 봤자. 저 양반 고백을 넘어 설
또 다른 노래 한 박자라도 찾았는가? 묻고 있는 셈이다.
바보를 사시오! 賣癡獃 (매치애)
외쳤던 멋진 풍류객 중에 계곡 장유가 남긴 노래 몇구절을 아니 돌아볼 수 없다.
이도 다 만년에 이런 바보사려! 노래를 한다는데 그 참뜻을 철이 들어서 알았다 싶을 때
가셨더란 이야기니 나 같은 범부가 철이 들려면 얼마나 더 모진 고생을 해야할까 싶다.
어린 내게 끈덕지게 붙어 다니는 이 바보를 팔렵니다 / 癡獃苦不差
늙은이가 말하기를 애야 그 바보 내가 사련다 / 翁言儂欲買
값도 당장에 너에게 두둑이 치뤄 주마 / 便可償汝債
인생 살다보니 이딴 지식들 필요치 않더라 / 人生不願智
지식이건 지혜건 그저 근심만 안겨 주더라야 / 智慧自愁殺
온갖 근심 걱정 만들어 내 평온을 박살 내더라 / 百慮散冲和
재주 많은 것들 별의별 재주 책략 꾸며서 말이다 / 多才費機械
그리고 계곡 장유는 마지막 구절 쯤에서 '애야 너한테 있다는 바보 내가 사주마
대신 나한테 쌓인 잔꾀를 가져가 다오.
철없는 아이는 무식한게 못난게 공부 못한게 바보로 생각해 팔려하고
머리 좋다 소문난 천재도 살아 보니 결국 아는 게 병이더라.
알아서 죽어야 하고, 알았으니 쫓겨나고, 알고 있으니 목도 바쳐야 하고.
아는척 정의로운 척 하다 저승사자 불러 들이는 이 알량한 지식 지혜
꼼수 잔꾀 팔고 싶다는 소리다.
그런데, 정작 이 글을 쓰는 자도 바보이다. 뭘 아는 척 해대느라 부지런히
해골도 남아 있지 않는 사람들 전해 준 말을 되새기면서
날이면 날마다 방송에다 대고 아는 척을 해댄다.
이게 더 큰 바보들 행진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국회상을 정립하자고
마련했다는 그 법안을 보니 바보국회로 만들잔건데. 되는 것도 없이 만들어 놓고
떠억하니 우리한테 돈을 내란다. 더 큰 바보 밑에 죽어라 일하는 개털 바보가
우리 아닌가. 그래서 따지고 볼것도 없이 바보세상이더란 말이다.
그래도 난 써 댄다. 먹고 살아야 하는 먹보 바보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꽃잎을 날리는 강풍에 봄비도 아닌 폼으로 줄창 쏟아져 내리면서
아까운 꽃잎 다 지게 하는 바보 같은 날씨에
보는 사람도 없는데 써대는 짓거리 하는 바보서생은
텁텁한 막걸리 시큼 거리고 넘어가는 입안에 지난 풍류당 홍어잔치 끝에 남은
홍어 몇점이 맛있노라며 바보 같은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내일 길바닥에 젖은 바보 같은 꽃들에게 절로 젖어 말할 것이다.
'애시당초 다 바보인 걸 뭐?'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바보사려! 바보장사했던 옛사람들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바보장사꾼’ 이야기 들어 보셨나요?
초란 장사꾼이 바보를 파는 장사를 했다구요. 에이
그냥 꾸며낸 이야기겠죠.
놀보 조선시대 문인들이 남긴 글에 ‘바보를 파는 아이’
‘매치애’란 글을 남긴 사람들이 있거든요.
초란 ‘바보를 파는 아이’ 그냥 상상 속에 일이 아니고
실제 (찹쌀떡) 바보사려어! 이런 게 있었다는건가요?
놀보 예전 오나라 습속에 한해를 마감하는 섣달 그믐날
제야에 ‘바보사려’ 외치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하거든요. 우리쪽에선 ‘바보팔이 소년’이란 노래가
전해오고 있구요.
초란 ‘성냥팔이 소녀’ 소리는 들었지만, ‘바보팔이 소년’
이야기는 첨 듣거든요. 도대체 그 우스꽝 스런
놀이를 왜 했는데요?
놀보 거기에 관련된 흥미로운 ‘매 치애사’란 고사가
전해오거든요. ‘매 치애사’는 ‘바보사려 노래’란
뜻입니다. 한해를 마감하는 날에 아이들이 길에 나서서
바보사려 외치자 노인이 그 소년에게 말합니다.
그 바보를 내게 다 팔거라. 그런데 돈이 없단다.
그러자 소년은 이렇게 답했답니다.
소년 (웃으며) 걱정마세요. 저한테 있는 바보들 평생 쓰세요
백년이고 천년이고 외상으로 드릴게요.
놀보 이 내용을 노래한 것이 ‘매 치애가’ 인데요.
조선 중기 문신 장유는 ‘바보사려’ 노래에
이렇게 화답하고 있습니다.
(낭송) 길거리 아이가 바보사려 외치는구나
끈덕지게 붙어 다니는 바보를 팔겠다네
아히야 그 바보 내게 모두 팔거라
잘난 지식 알고보니 근심거리더라
바보로 사는게 더없는 복이더라.
초란 아하. 그 잘나고도 영악스런 지식이란게
결국은 사람 잡더란 소리잖아요. 그런데 철 모르는
소년은 바보를 팔겠다고 하니. 아이야 내게 다 팔아라.
놀보 장유는 한가지 조건을 달면서 소년에게
바보를 사겠다고 합니다.
(대화투) 아히야 그 바보 내게 넘기고,
내게 쌓인 교활한 잔꾀 받아 가거라.
초란 자라는 아이는 세상에 제일 똑똑하고 잘난 사람
되고 싶어서 가진 바보를 다 팔겠노라 하고
놀보 나이든 어르신네는 그 바보 내가 살테니
나한테 있는 교활한 잔꾀 받아 가거라.
역설적으로 말한 대목에 생각할게 많이 있죠.
초란 철 모르는 아이는 바보가 싫고, 나이든 어르신네는
그 잘난 지식 잔꾀 때문에 고생한게 싫더라.
놀보 그리고 한마디 슬쩍 끼어 넣어 아이에게 귀띔을
해줍니다. ‘등잔불을 봐라. 기름이 등불 자랑하다
스스로 태워 사라지는 것을 말이다.’
초란 때로는 자신을 태워 이웃을 밝히고 살리는 등불로
노래하기도 했는데, 여기선 지식과 잔꾀자랑하다
기름 홀라당 태우고 꺼진 걸 말하고 있군요.
놀보 그래서 모두가 다 너무나 지식도 많고 잘난 이런 때
‘바보사려!’ 이 바보처럼 현명하게 사는 거 한번쯤
돌아봤으면 싶은 날이기도 합니다.
초란 오늘 ‘신 명심보감’ ‘바보노래’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다음 카페’ ‘우면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계곡선생집 제25권
오언 고시(五言古詩) 162수
바보를 파는 아이[賣癡獃]
거리에서 소년들 외치고 다니면서 / 街頭小兒呌
팔고 싶은 물건이 하나 있다고 / 有物與汝賣
무엇을 팔려느냐 물어보니까 / 借問賣何物
끈덕지게 붙어 다니는 바보를 팔겠다고 / 癡獃苦不差
늙은이가 말하기를 내가 사련다 / 翁言儂欲買
값도 당장에 너에게 치뤄 주지 / 便可償汝債
인생살이 지혜는 필요치 않아 / 人生不願智
지혜란 원래 근심만 안기는 걸 / 智慧自愁殺
온갖 걱정 만들어 내 평화로움 깨뜨리고 / 百慮散冲和
별의별 재주 부려 책략을 꾸며내지 / 多才費機械
예로부터 꾀주머니 소문난 이들 / 古來智囊人
처세는 어찌 그리 궁박했던가 / 處世苦迫隘
환하게 빛나는 기름 등불 보게나 / 膏火有光明
자신을 태워서 없애지 않나 / 煎熬以自敗
짐승도 그럴 듯한 문채 있으면 / 鳥獸有文章
끝내 덫에 걸려 죽고야 말지 / 罔羅終見罣
그러니 지혜란 없는 게 낫고 / 有智不如無
바보가 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로세 / 得癡彌可快
너에게서 바보를 사 오는 대신 / 買取汝癡獃
나의 교활한 꾀 건네 주리라 / 輸却汝狡獪
눈 밝지 않아도 볼 것은 다 보이고 / 去明目不盲
귀 밝지 않아도 들을 것은 다 듣나니 / 去聰耳不聵
아 새해는 크게 복되겠다 / 新年大吉利
점쳐 보지 않아도 벌써 알겠네 / 不用問蓍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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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월정처사님, 유림의 지도자이신데, 감사라니요. 한쪽으로 쏠리면 채찍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물론 논지가 그러하니 봐 주셨겠지만, 그나마 유림의 인사께서 성원을 해주시니
외롭지 않다는 생각에 분발해야겠지요. 때때로 좋은 질정의 말씀 기다리겠습니다.
"바보 사려!"
이제는 바보를 살 때도 됐으련만 자꾸 바보를 팔고만 있는 중이네요.
그만큼 철이 덜 들어서라기 보다는 제대로 바보를 팔아본 적이 없어서
미련때문에, 너무나 바보짓에 헛배가 불렀던 지난 날 때문에 발악하듯이
아직도 바보를 팔고 있는데 이게 바로 현대인들의 '지식탐 강박증'은 아닐까
생각한답니다. 언제가 바보팔기를 멈출 때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배우려는 자는 날로 담고 깨치려는 자는 날로 덜어낸다, 노자의 말이 콕 박힙니다.
섣달 그믐날 바보사려를 외치던 오나라 습속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