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색즉시공에서 하지원과 신이의 모습>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라는 논리는
공간적인 무아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앞에서 설명하였으며,
강한 긍정의 논리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즉, 물질적 존재인 색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여지없는 공이라는 것입니다.
이 공간 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공이라는 것입니다.
앞의 논리처럼
시간적으로 미래에는 공일 것이라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이 공간에서의
공이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앞에서
공이란 것은
연기하는 것이며, 무자성(無自性)이고,
무아라는 것을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공은 무아를 의미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색이 곧 무아(無我)라는 말입니다.
즉 시계, 책상, 사람 등의 물질적 존재인 색은,
미래에 인연이 다하여 흩어질 것이기에
공이기도 하지만,
바로 지금 그 모습이
공이라는 논리인 것입니다.
시계라고 했을 때,
이 시계는
시계침, 플라스틱 케이스, 나사, 건전지 등이
인연화합으로 모여 만들어진 물질입니다.
그러나
각각의 부품들 하나 하나를 가지고
시계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시계 케이스만을 가지고 시계라고 할 수도 없고,
시계침만을 가지고 시계라고 할 수고 없는 것이며,
시계라는 것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 모든 부속품들이 모여
인과 연이 맞는 부품들끼리 짜 맞추어 졌을 때,
비로소 시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각기 다른
모든 부품들을 잘 결합시켜
시계라는 색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연기라는 법칙이 필요합니다.
요컨대,
공의 성질, 연기의 성질,
무자성의 성질이 바탕되어야만
비로소 시계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국
시계가 성립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은
바로 공의 바탕 위에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색이 곧 공이며,
공이 곧 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화엄의 사법계(四法界)를
기준으로 본다면
사사무애법계와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공[理法界]과 공이
서로 걸림이 없이 무애한 것처럼,
색[事法界]과 색도
서로 걸림이 없이 무애하다는 논리입니다.
* 사법계(四法界) : 사법계(事法界) · 이법계(理法界) ·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의 4종으로 나눈다.
색이 곧 공이며,
공이 곧 색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대긍정의 논리이며,
‘이 우주가 서로 걸림 없는 무애’라는
법계의 본래 성품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인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가 좀더 발전되어
화엄에서는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
이라는 논리까지로 확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의미
*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 하나의 티끌에 온 세상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색즉시공’의 논리를 말하고 나서
다시 ‘공즉시색’이라고 한 것은,
앞의 그것과 같이,
‘색이 곧 공’이라고
부정한 데서 한 걸음 나아가
‘공은 바로 색’이라는
대긍정을 통해
절대 긍정의 논리를 펴기 위함입니다.
출처: 목탁소리 -법상스님-
일즉일체다즉일 (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혼자일 수는 없습니다.
각자 개별적인 환경에 있으면서도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저는 늘 그것을 의식합니다.
외떨어져 살면서도 다 얽혀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서로 의지해야 사람이 됩니다.
서로 기대고 받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어야 사람이 됩니다.
만족도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는
소비문화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얼마나 비정합니까?
우리들 자신이 그렇습니다.
매우 건조합니다.
아무리 사들여도 끝이 없습니다.
만족이 없고 고마움이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어 문장에
'One for All, All for One' 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의미로 <화엄경> 법성계에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가르침입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진정한 깨달음이고 진리의 세계입니다.
- 법정 스님,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