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짬나면 '혜화역 4번 출구'라는 시를 쓰려고 했다. 의심스러우면 내 핸드폰 메시지를 뒤져보면 그 날짜까지 정확히 열람할 수 있다. 정말이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심히 우습도다. 이 대목에서 웃지 않는 독자는 우울증에 걸릴 확실성이 좀 높다.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영화관이 있다. 거기서 홍상수를 몇 편 본 적이 있다. 그 인상들을 시로 만들고 싶었는데, 시마詩魔는 오지 않고 시도詩盜도 오지 않았다. 하긴 요즘 시마는 자연산이 아니고 민간인들이 양식하거나 사육하기 때문에 약발이 없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시마는 그러니까 중국산이거나 사료 먹여서 양식한 것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혜화역 4번 출구'라고 제목이 붙여진 시를 읽게 된 것이다. 이런! 저런! 목하 이상국 선생의 시가 그것이네요. 나는 이 시를 자동차 시동을 걸어놓고 차 밖에서 선 자세로 읽었다. 시의 독자가 시인일 때 시는 생존 확률이 매우 낮다. 시인들은 시를 쓰는 족속들이지만, 그네들이 말하는 시는 천차와 만별 속에 놓인다. 소설가들이 일정한 객관성을 담보하는 반면에 시인들의 시는 각자의 사정에 맞는 헛소리거나 잠꼬대이다. 헛소리와 잠꼬대는 보편성을 넘어선다. 이해도 넘어선다. 시는 그래서 언제나 시가 된다. 나는 내 시가 시인독자들에게 충격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치 그네들의 시가 나를 충격하지 못하는 막후와 다를 게 없다. '아, 네, 잘 읽었습니다'를 싸고 도는 그 상견례식 독후감은 '시 별 것 없던데요'와 같은 심급의 모멸감의 교환이다.
말이 다른 데로 약간 샜는데, 이상국 선생의 '혜화역 4번 출구'를 읽은 느낌은 컸다. 잘 모르는 이상국 혹은 그렇기 때문에 잘 알 것 같은 이상국의 배후가 시에 잘 배었다. 본디 나는 이런 개인사적 에피소드가 담긴 시들을 신용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고로 이 시도 슬쩍 읽고 지나가면서 '잘, 읽었습니다' 정도였을 것인데, 이 시는 나를 붙잡는 여력이 있다. 내 생각이지만, 이 시야말로 시인 이상국의 여러 배후가 잘 담겨 있다. 아니다. 자신을 잘 담으려고 고심한 시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겠다. 농부의 아들이 시골에서 낳고 기른 귀한 딸을 서울에 유학시키기 위해 원룸을 얻어주고 거기서 하루 자고 나오면서 자발적으로 숙박비를 내는 아버지의 이력이 그것이다. 문장이 길면서 이그러진 듯 한데, 그럼 또 어떤가. 나의 주목은 이 시의 '아버지'다.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속초에 있는 아버지가 만든 눈이 혜화동에 흩날리는 상상은 훈훈하다. 나는 이 반질거리지 않는, 썰렁한 유머가 시를 살리고 있다고 본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에 걸려서 넘어졌다. 내 관점으로 보자면, 아버지는 수컷에 지나지 않는다. 수컷은 촌스럽거나 외롭거나 철없거나,,,,,^*^
'혜화역 4번 출구'라는 제목으로 나도 시 한 편 쓰게 될 것이다.
(이 말은 못 쓰게 될 것 같다는 것을 예고하는 듯 하다)
이상국 시인의 것처럼 훈훈하면서 삶의 마디가 잡히는 시는 못 쓸 것이다.
혜화역 4번 출구/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 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大地)의 소작(小作)이다
내 조상은 수백 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 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 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첫댓글 왜 눈물이 날까 ? 아버지의 그리움이 많은 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