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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구례 산수유 마을,순천 선암사 탐매 기행.
(산수유에 눈멀고 매화향에 취하다)
-언제:2014.3.14-16(2박3일)
-여행동선: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간 고속도로-전주 완산-순천간 고속도로
구례산동면 반곡마을-상위마을-지리산 백무동 자연휴양림(1박)
->순천 선암사->여수 돌산 신기항->금오도 여천 선착장
금오도(1박)->비렁길 2코스,3코스
여행의 매력이 일상을 벗어나 느끼는 '낯섦'에 있다면
구례, 순천 여행은 내게는 여행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수 엑스포 개최로 새롭게 뚫린 완주-순천간 고속도로 구례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지리산 자락의 낯익은 풍경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느끼는 안온함이었습니다.
모난 데 없이 완만하게 곡선을 이루는 산들과
그 아래 드넓게 펼쳐진 들판은 친근하고 평온해 보였습니다.
어릴 적 눈을 뜨면서 보고 자라고 뛰놀던
익숙한 풍경이 눈앞으로 펼쳐졌습니다.
산수유로 유명한 구례 산동 상위마을 위
눈덮인 지리산 바래봉과 만복대 능선에는
춘설이 내려 하얀 겨울 색깔이었지만 따뜻한 봄 햇살은
금방이라도 대지를 연두빛으로 물들일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나고 자란 나를 키워준 땅, 남도는 이미 봄이었습니다.
봄은 꽃향기를 데리고 온다고 하는데
봄꽃 향기 중 으뜸은 매화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고결한 자태로 피어나는 매화중에서도
홍매화로 유명한 곳이 바로 순천 선암사 입니다.
좀 이른 시기에 찾아와 아직 개화를 하지 않고
꽃망울만 맺혀 있었는데도
그 향과 자태에 넑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남도 탐매기행 흐름도
구례 산동면은 산수유로 유명합니다.
산수유마을은 꽃 이름대로 다정하지만
사실은 아픈 역사를 숨기고 있습니다.
1000여년 전 중국 산동(山洞)에서 시집온 처녀가
산수유나무를 가져다 심으면서
마을 이름이 산동으로 바뀐 이곳은 여순사태 당시
지리산 공비잔당 토벌로 숱한 민간학살이 행해진
비극의 역사 현장이기도 합니다.
창밖 햇볕이 수런거리는 소리에
봄날에는 집안에 있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저기 샛노란 봄빛을 담으려 성급한 많은 사진 작가들이
산수유 마을로 출사를 나오셨습니다.
100여 가구 옹기종기 모여 살던 이곳 산수유 마을은
6·25를 겪으면서 마을 남자들이 학살당해 20여 가구로 줄었고,
남은 마을 사람들은 빈집에 노란 산수유를 심기 시작해
온 마을로 퍼져나가면서 지금의 산수유마을이 됐습니다.
아프고 슬픈 역사를 대변하듯 가득한 노란 물결은 그들의 넋인 양
봄만 되면 왕관처럼 피어나 아픔을 승화하고 있습니다.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함민복,<봄꽃>
구례 산수유 마을엔 풀린 봄물이 넘쳐 흐르지만
저 상위마을 위 지리산 바래봉과
만복대 능선에는 춘설이 가득합니다.
산수유는 척박한 땅에서 더 아름답게 피는 꽃입니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정호승,<꽃을 보려면>
지리산 만복대 기슭에 위치한 구례 산동면에 들어서면
온통 샛노란 산수유 꽃 일색입니다.
눈에 띄는 대로
다 가두어 놓으리라
졸졸대는 개울도
종알거리는 멧새도
눈 부비는 토끼도
잠시나마
오붓하게 그러안을 수 있게
마법에서 미처
헤어 나오지 못한 산마루도
아지랑이 속에 으늑히
잡아 가두어
아름찬 봄의 미소를 반기며
단 한 순간도
어름거리지 않고
환호하게 하리라
난망한 이 녘도
가련한 저 녘도
-임영준,<3월의 꿈>
산수유 나무는 흐르는 계곡물에 가지를 드리운 채
봄의 향연을 시작합니다..
산수유는 모든 꽃들이 닮고 싶어 하는 ‘꽃 중의 꽃’으로 불립니다.
신기하게도 3번이나 꽃을 피우기 때문인데요
먼저 꽃망울이 벌어지면 20여개의 샛노란 꽃잎이 돋아나고,
수줍은 듯 4~5mm의 꽃잎이 터지면서
하얀 꽃술이 나와 왕관모양을 만듭니다.
3번이나 앙증맞은 손을 내미는 그 모양은 오묘하기까지 합니다.
산수유 꽃말은 '지속,불변'이라고 합니다.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누구에겐가 말해주긴 해야 했는데
마음 놓고 말해줄 사람 없어
산수유꽃 옆에 와 무심히 중얼거린 소리
노랗게 핀 산수유꽃이 외워두었다가
따사로운 햇빛한테 들려주고
놀러온 산새에게 들려주고
시냇물 소리한테까지 들려주어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차마 이름까진 말해줄 수 없어 이름만 빼고
알려준 나의 말
여름 한 철 시냇물이 줄창 외우며 흘러가더니
이제 가을도 저물어 시냇물 소리도 입을 다물고
다만 산수유꽃 진 자리 산수유 열매들만
내리는 눈발 속에 더욱 예쁘고 붉습니다.
-나태주,<산수유 꽃 진 자리>
하위마을인 반곡마을, 대평마을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2km 남짓해 누군가에게 봄소식을 전하고 싶다면
이 길을 곧장 따라가면 됩니다.
꽃과 어우러진 이끼 낀 돌담길은 누구와 같이 걷지 않아도 설레이게 합니다.
산수유 꽃은 돌담 사이,나지막한 양철 지붕 집 옆이어야 제격입니다.
드라마 '봄의 왈츠'를 촬영 했던 대평교 아래 너럭바위에서
산수유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필자.
반곡마을에 있는 저 뒤로 보이는 대평교는
드라마 '봄의 왈츠'를 촬영했던 곳으로
전국의 수많은 사진작가들을 불러 모으는 매력적인 곳입니다.
너럭바위가 계단처럼 층층이 계곡을 수놓고
노란 산수유는 계곡물의 장단에 맞춰 가지를 흔들어 댑니다.
너럭바위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숨소리마저 박자를 맞추게 되니
자연과 자연스럽게 한 몸이 됩니다.
산수유는 봄 햇살을 닮았습니다.
작은 마을 돌담길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는
산수유 꽃 아래를 걷다보니 길이 더 정겹습니다.
산수유가 있는 집
산수유 피는 산골 마을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아직도 시골의 정취를 간직한 마을길마다 돌담이 이어지고
산수유 가지가 노란 그늘을 드리웁니다.
이런 마을을 그린다면 물감이 아니라 파스텔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봄바람 불고 또 불어도
삭정이 가슴에서 꽃을 꺼낼 수 없는 건
두근거림이 없기 때문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반칠환,<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매화가 있는 집
산수유가 있는 집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 잡고
매화꽃 보러 간 줄 알아라
-김용택,<봄날>
상위마을
산수유는 봄에 노란 얼굴이지만 가을엔 붉은 열매로 화답합니다.
이곳 산동면 일대에서 나는 산수유가
국내 생산량의 60%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니
국내 산수유 주산지로 봐도 무방합니다.
산수유꽃은 이곳 상위마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보는 게 좋습니다.
정자인 이곳 산유정에 올라 보면 노랗게 물든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고,
지리산 만복대 능선에서 내리 뻗은 곳에 터를 잡은
다랑이논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
그 옆으로 나란히 선 대숲 등이 뒤엉켜 멋스런 풍경을 그려냅니다.
산유정에서 바라본 상위 마을
상위마을 산유정에서 올려다본 지리산 만복대 능선엔 춘설이 가득합니다.
꼬리가 짧은
2월의 버들강아지들이
연기가 나는 강언덕을 바라보며
멍멍멍
짖고 있습니다
누가 오는가 봅니다
-이창건,<봄소식>
성삼재에서 내려다 본 구례 산수유 마을
사람이든 자연이든 늘 있던 그 자리에 있을 때,
존재감이 희미해 지기 마련인가 봅니다.
춘설이 내린 만복대가 저토록 아름다웠었는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어쩌면 '그리움'이란
결핍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정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머잖아 어김없이 저 바래봉 능선에는
또 붉은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겠지요.!
구례 산수유를 즐기고 함양 백무동 계곡
지리산 자연휴양림에서 하루밤을 묵은 후 눈쌓인
성삼재를 넘어 선암사로 왔습니다.
선암사의 이름난 홍매화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선암사는 순천에 위치한 절입니다.
하지만 구례 산동면에서 가까워 당일 여행할 경우
산수유를 보고 오후 귀갓길에 들르면
봄꽃 여행의 화룡점정을 찍을 수 있습니다.
선암사 입구의 아치형 돌다리 '승선교'입니다.
무지개 다리라는 '홍교'가 계곡 물 위로 또하나의 무지개를 그립니다.
매화를 비롯해 화사한 봄꽃들이 만발하는 봄이 가장 아름답지만
단풍드는 가을에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선암사는 결혼을 하고 가족을 거느리는 대처승들의 태고종 본산으로
저 유명한 소설<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이
어린 시절 이곳 선암사에서 자랐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버지가 선암사 부주지를 지낸 시조시인 조종현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선암사 일주문 가기 전에 세워진 '하마비'
하마비는 조선시대,종묘나 궐문 또는 문묘따위의 앞에 세워놓는 비석입니다.
선암사 일주문은 현재 보수 공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측면샷을 찍었습니다.
선암사 일주문 앞에 서 있는 고목은 마치
곰이 하늘을 향해 앞발을 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선암사는 저 뒤로 보이는 조계산 자락
양지바른 곳에 터잡았습니다.
조계산의 봉우리 세 개가 차례로 내려 온 지점에
절터를 잡았고 앞산의 높이도 낮지도 높지도 않아
지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하며
계곡물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서출동류'의 명당수로
그 옛날 풍수 고단자의 안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명당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봄은 꽃향기를 데리고 옵니다.
봄꽃 향기 중 단연 으뜸은 아마도 매화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년 봄이되면 많은이들이 찾아나서는 '탐매기행'의 1번지는
바로 이곳 순천 선암사입니다.
선암사는 적어도 수령 300~500년이나 되는 매화들이
수십 그루나 있는 이름난 매화 사찰입니다.
선암사는 어느 양반 대갓집 정원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선암사의 명물 홍매화는 아직 피지 않고 꽃망울만 맺혀 있었지만
저 매화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그윽한 매화향을 맡다보니
아무것도 한 일 없이 나이만 먹어버렸다는 허탈감도
잠시 사라졌습니다.
늦은 사랑이 내게로 왔다
가장 늦은 사랑이 첫사랑이다
봄여름가을
꽃시절 다 놓치고
언 땅 위에서
나는 붉어졌다
누구는 나를 가리켜 봄이라 하지만
꽃물을 길어올린 건
겨울이다 인색한 몇 올의
빛을 붙들어 온몸을 태운
한 그리움의
失性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는가
지금 그리워해도 되는가
너는 묻지 않았으니
스스로 터져 봄날이 되는 사랑아
아직 얼어붙은 하늘에 뾰루퉁 입 내민
붉은 키스
가장 이른 사랑이 내게로 왔다
-이상국,<홍매>
돌담 너머 홍매가 살포시 피어나는 이른 봄,
조용한 절에 봄 햇살이 느리게 머뭅니다.
선종에서는 불교의 요체를 매화로 상징하면서
"한 점 매화의 수술은 삼천세계의 향이요,
한 마음의 매화는 삼천대천세계의 향"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겨울과 봄 사이 미리 피는 꽃은
자신의 존재를 벌과 새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기 때문에
기실 추울 때 피는 꽃일수록 향은 더 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선암사 홍매화의 완전한 개화 시기는 3월말쯤으로 예상됩니다.
이제 곧 홍매화의 그윽한 향이 이 절집에 가득할 것입니다.
나른한 봄 햇살을 잔뜩 머금은
선암사 경내를 느리게 걸으며 심신을 힐링하고
여수 봄바다를 향합니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여행기는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글,사진:윤선한
진정한 자유를 경험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파올로 코엘류
Bandari - Siderial Hour
첫댓글 산수유 꽃말은 봄맞이 ~~~
꽃샘 추위가 봄을 시샘 하기도전에
남쪽의 산수유는 이미 봄을 한껏
가지고 왔네요~~
아름다운 봄풍경에 마음껏 취해 봅니다
늘~~~
지기님의 산행기는 삶에 지친 마음을
힐링시켜 주는군요.^^
노오란색과 함께 오는 봄,
풍경과 글을 읽으며 봄맞이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