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시기 한 그릇
박 가 경
살면서 가족들한테 내가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일까? 기쁜 일이 있을 때 같이 축하해 주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같이 슬퍼해 주었을 때 사랑을 받는다고 느껴질까? 물론 공감을 받는 것은 내가 사랑 받는다는 느낌을 주지만, 나는 몸과 마음이 아파 보살핌을 받을 때 사랑을 많이 느낀다.
어릴 때 한번 감기에 걸리면 기침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목이 근질거리면서 한번 시동이 걸리면 멈출 줄 모르는 기침 때문에 학교 수업에도 방해가 되었다. 컹컹거리며 울리는 기침 소리 때문에 친구들에게 ‘할배 기침’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밤에 잘 때 기침이 더 심해지면 어머니가 자고 있는 나를 깨워 따뜻한 꿀물을 타 주셨다. 달큼함이 마른 목을 축여주며 위로 넘어가면서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꿀물로 진정된 기침으로 다시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내가 감기 때문에 입맛이 없을 때, 어머니가 “갱시기 끓여 줄까?”라고 묻는 것이 가장 좋았다. 멸치육수에 콩나물, 김치, 라면 사리, 고구마, 찬밥을 넣고 끓여 주셨다. 주황빛을 띤 국물과 상큼한 김치 냄새가 미각과 후각을 자극했고, 심한 기침으로 말라버린 입안은 이미 침이 고여 있었다. 하얀 연기를 풀풀 뿜는 국물을 숟가락에 떠서 ‘후룩’하고 입을 O자로 만들어 조심히 들이켰다. 시원하고 짭조름한 신맛이 입안에 퍼졌다. 미각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으며 열심히 숟가락을 움직였다. 이마와 인중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온몸이 뜨거운 국물에 데워졌다가 시원해졌다. 감기가 갱시기 한 그릇으로 싹 나은 느낌이 들었다. 참치죽, 야채죽이 아닌 갱시기가 나에게는 가장 좋은 약이었다.
혼자 자취했을 때, 감기에 걸려 어머니께 전화를 하면 “갱시기 끓여 먹고 땀을 푹 내고 한숨 자. 밤에 기침 자주 나오면 꿀물이나 생강차 타서 마시고.” 걱정이 묻은 어머니의 말이 전화기 너머로 들린다. 전화를 끊고 홀린 듯 부엌 앞에 서서 갱시기를 끓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멸치육수를 사용해서 맛이 더 깊고 풍성했지만, 홀로 아파 골골거리는 상황에서 멸치육수 대신 맹물을 사용했다. 어머니가 해주신 갱시기보다는 맛이 부족했지만, 어머니가 간호해 주신 어릴 적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며 맛있게 먹었다. 그때 그 사랑이 갱시기을 통해 전해져 마음이 따듯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타난 지 3년, 이때까지 아무 일 없이 지나왔는데, 이번에는 피해 가지 못했다. 어머니가 목이 싸하게 아프다고 하셨고 열이 38도를 넘었다.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하니 양성이 나왔다. 순간 이기적이게도 내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코로나를 옮아서 내 일정을 망치게 될까 봐 불안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병원에 다녀와서 열 때문에 방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보자 내 생각만 한 나를 꾸짖었다.
집에 밥도 없고 목이 아프다는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어머니에게 “갱시기 끓여 드릴까요?”라고 묻자 좋다고 하셨다. 국물이 시원하라고 콩나물을 많이 넣어 끓였다. 갱시기 한 그릇을 상에 올려 방에 들여보냈다. 격리 중이라서 드시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방 너머로 숟가락과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와 후룩후룩 국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려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아플 때 어머니가 갱시기를 끓여 주고 싶었듯이 나도 어머니가 아프실 때 끓여주고 싶은 것이 갱시기이었다. 이 죽을 먹고 빨리 아픈 것을 낫게 해달라는 바람을 담고 만든 것이다. 어머니도 같은 마음으로 나에게 이 죽을 끓여 주셨을 것을 생각하니, 갱시기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많이 담긴 음식인 것 같다.
평소에 사랑한다는 말에 인색하신 어머니는 자식이 아플 때 죽 한 그릇에 당신의 사랑을 담아 전하는 것이 아닐까. 그 베푼 사랑이 닮은 형태로 다시 장성한 자식으로부터 부모님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