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면 등장하는 유력 정치인의 선영에 관한 이야기는 현상에 따른 결과를 관찰하는 풍수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궁금증이다. 정치인들 또한 겉으로는 풍수를 무시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간절하게 풍수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가까운 예로 전두환 대통령은 이전 통치자들의 계속되는 수난은 청와대 현관이 서향이기 때문에 기가 쉽게 빠진다고 생각해 청와대 현관을 남향으로 바꾼다. 뒤를 이은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의 현관을 바꾸는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해 아예 청와대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이회창 총재, 김종필 총재 등은 선거 직전에 집을 옮기고 묘를 이장함으로서 대권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였다.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여소야대의 정국을 보이며 끝이 났다. 선거 한 달 전부터 벌어진 잡권 여당의 진흙탕 공천파동에 대한 준엄한 심판일 것이다. 이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사퇴 카드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어쩔 수 없는 속물적 궁금증에 김무성 의원의 선영을 둘러보았다. 사실은 국회의원 선거 전에 살펴본 것이지만, 민감한 내용이기 때문에 글의 발표를 미루게 되었다.
새누리당 당 대표 김무성 국회의원의 선영은 2군데로 나누어져 있다. 고조부모와 증조부모, 조부의 묘는 경남 함양에 있고, 조모(경주김씨)와 부친 김용주(1905~1985) 묘는 우이동 북한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김무성 의원의 할머니 경주김씨가 1963년 서울 효자동에서 93세로 돌아가시자 아들 김용주는 이곳에 선영을 마련했다. 그리고 후일 모친 묘소 우측에 자신이 영면하게 된다. 전해지는 말로는 1963년 당시 80세 중반의 朴仲九라는 풍수가 이곳에 선영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중구 풍수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1967년부터 활발하게 활동하던 장용득 선생과 어떠한 식으로든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파묘 터를 선호하는 등 산에 대한 인식이 매우 흡사한 면면을 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곳 우이동 선영 역시 곳곳에 파묘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어느 집안의 묘 터로 이용해 왔던 곳을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
각설하고 조모와 부친 묘는 한줄기 용맥에서 분파되어 이웃에 자리하고 있다. 북한산 자락이어서 바위가 많은 험산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선입견에 지나지 않았다. 용맥은 상하좌우 꿈틀거림이 역동적이며 맵시가 있다. 그리고 나지막한 안산이 묘 앞을 감아줌으로서 계곡물이 흐르는 산 끝에 안정적인 자리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풍수에서 요구하는 혈을 맺는 조건에 부족함이 없는 땅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당시 이곳에 묘를 정해준 박중구라는 풍수인은 상당한 안목의 풍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묘 중에서도 특히 경주김씨 묘의 용맥이 상하로 기복변화를 하며 기세가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저 멀리 수많은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양지바른 남향으로 자리를 만들었는데, 그 품새가 마치 만인을 호령하는 것처럼 당당한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을 풍수에서는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이라고 한다.
두 묘소의 용맥은 아래 그림 A에서 분파되는데, 正龍이 경주김씨 묘로 이어지고 傍龍이 김용주 묘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김용주 묘는 방룡임에도 불구하고 산 끝에서 크게 덩어리를 이루었다. 따라서 두 묘는 마치 용인에 있는 이석형·정몽주 묘역과 흡사한 雙乳穴의 형태를 하고 있다. 물론 정혈은 경주김씨 묘소지만, 김용주 묘소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이곳은 아마 근세 유명 정치인들의 선영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입지를 점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입지조건이 훌륭한 곳이다.
그런데 근자에 들어서 묘역의 환경이 바뀌었다. 먼저 우이령 산길이 확장되면서 조모의 묘소 좌측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러자 후손들 입장에서는 묘소의 좌측이 허한 것을 우려해 높은 활개를 조성해 비보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최근에 묘소의 전방 100m 지점에 느닷없이 7층 높이의 콘도가 들어섰는데, 남향의 전망 좋던 묘역은 갑자기 앞이 답답하게 가로막힌 꼴이 되고 말았다. 이는 마치 조선을 병탄한 일제가 경복궁 근정전 앞에 높다랗게 조선총독부를 지어 조선왕실을 억누르려 했던 사례와 비슷한 경우다. 당연히 그 좋던 풍광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대한 건물의 콘도는 작업이 중단되어 현재는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2010년 공사 시작 ~ 2012년 공사 중단)
한편 예로부터 우환은 연속되어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그 건물이 건축되고 얼마 뒤부터는 건물과 김용주 묘소 사이의 숲에 있는 참나무들이 시들음병에 걸려 고사되고 있다. 산림청에서 부랴부랴 방재작업을 하고 있으나, 이미 주변까지 넓게 확산되는 추세다.
풍수는 터를 비롯한 주변의 상황변화를 보고 앞날에 대한 예측을 하는데, 경험 많은 풍수는 바로 이러한 징조(omen)와 전조증상을 보고 길흉화복 추리와 추길피흉의 지혜를 모색한다. 묘의 봉분이 무너지고 잔디가 살지 못하며, 주변에 불안정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 묘의 후손에게 불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짐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똑 같은 일일지라도 일반 민초들에게는 사소한 손해로 넘어갈 수 있지만,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평범한 묘라면 쉽게 넘어갈 수 있지만, 이곳과 같은 자리는 상대적으로 충격도 클 수밖에 없다.
비근한 예로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공교롭게도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예산읍 산성리 선영 바로 뒤편에서 산을 절개하여 아파트를 짓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당시 선거는 누구나 이회창 후보의 낙승을 예상할 정도로 압도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회창 후보의 충격적인 패배였다. 또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의 선영 뒤편 산이 골프장 조성으로 크게 파헤쳐지는 일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그 부분을 심히 우려했는데, 결과는 역시 문재인 후보의 참패로 끝났다.
문재인 후보의 양산 선영(뒤쪽 산이 골프장 공사 중이었다)
다시 우이동으로 돌아와 마무리를 해 보겠다. 거듭 말하지만 김무성 의원의 우이동 선영은 근자에 정치인들 선영 중에서 보기 드물게 풍수적 조건이 뛰어난 곳이다. 길고 역동적인 용세를 타고 내려와 정확한 혈처를 이룬 것은 우이동 산의 꽃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 힘은 김무성 의원이 6선을 하고 집권당의 당 대표까지 할 수 있는 추동력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주변 상황이 바뀌면서 풍수환경 또한 크게 바뀌고 말았다. 묘역의 좌측은 도로로 잘리고 전면은 꽉 막히고 말았으며, 숲의 나무까지 고사하는 등 불리한 환경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변화가 예전의 사례와 결과가 같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정치가 생물이듯 주변이 정비되고 개선된다면 상황은 또 바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상에 따른 결과를 관찰하는 전문 풍수인의 입장에서 보면 비슷한 현상에서 유사한 결과가 도출되는 또 하나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는데, 좀 더 지켜볼 따름이다.
참고로 이곳 묘역은 개방이 안 되는 곳이다. 필자는 우여곡절 끝에 산을 살필 수 있었기에 이 글을 남길 수 있었다. 필자의 글을 보고 공연히 헛걸음 하지 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