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마리우스파"에 속했고, 술라가 죽은 직후에 무력으로 민중파 정권을 수립하려 한 레피두스와 손잡고 싸우다가, 그 반란을 진압하러 간 폼페이우스에게 붙잡혀 처형당했다. 이때 마르쿠스의 나이는 8세. 그후 아들의 훈육을 혼자 떠맡게 된 어머니 세르빌리아는 가정교사도 그리스인을 초빙하고 아들의 유학에도 충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현모양처였지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인물은 사춘기로 막 접어든 아들이 아니라 그 무렵부터 공공연한 애인 사이가 된 카이사르였다. 미망인은 재혼하는 것이 보통인 로마에서는 재혼하지 않는게 오히려 화제가 되었지만, 세르빌리아는 재혼도 하지 않고 카이사르에게 일편단심을 바쳤다. 카이사르는 정략결혼을 거듭했을 뿐 아니라 많은 애인의 존재를 숨기지도 않았지만, 그런 카이사르를 그녀는 계속 사랑했다.
브루투스는 청년시절의 전반기를 학업에 바쳤다. 유학지도 아테네, 페르가몬, 로도스섬 등 당시의 최고학부를 망라하고 있다. 같은 계급에 속하는 로마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정치와 군사였던 반면, 청년 브루투스의 관심은 오직 철학에만 쏠려 있었다. 그때문인지 군무 경험이 전혀 없다.
36세가 된 브루투스는 어머니의 반대를 뿌리치고 삼촌인 카토에게 동조하여 폼페이우스 진영에 가담했다. 폼페이우스는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지만, 그런 사사로운 감정보다 공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믿고, 원로원 체제 고수를 내세운 폼페이우스군에게 몸을 던진 것이다.
그리고 파르살로스 회전이 일어났다. 이때 브루투스는 포로로 잡혔지만, 세르빌리아의 부탁을 받은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죽이면 안된다고 명령해둔 덕택에 목숨을 건졌고 또 석방되었다.
그후 브루투스는 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였는지, 아프리카로 달아나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던 카토와 행동을 같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도 죽고, 이집트 내분도 해결되었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로 소아시아도 평정된 뒤, 로마로 개선한 카이사르에게 세르빌리아는 또다시 외아들의 장래를 맡겼다. 카이사르는 평생 애인의 부탁을 뿌리칠 사내가 아니었다.
국가 공직을 하나도 경험하지 않은 브루투스가 전직 법무관이라는 직위를 받고 북이탈리아 속주 총독에 부임한 것은 기원전 46년, 그의 나이 39세때였다. 그렇게 친했던 삼촌 카토가 북아프리카에서 카이사르와 싸우고 있는데도 브루투스는 얌전히 임지에 머물러 있었다.
브루투스는 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뒤, 이제까지 함께 살던 아내와 이혼하고 아프리카에서 자결한 카토의 딸 포르키아와 재혼했다. 무엇때문인지는 알수 없다. 어쩌면 삼촌에 대한 그 나름의 속죄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포르키아는 카이사르에 대한 반대로 일생을 불태운 카토의 딸일뿐 아니라, 카이사르와 동료가 될 때마다 계속 당하기만 한 비불루스의 미망인이기도 했다. 포르키아의 가슴 속에 카이사르에 대한 증오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카이사르 암살도 처음부터 그가 주모자였던 것은 아니다. 매제인 카시우스가 진짜 주모자다. 브루투스는 주모자로 떠받들렸을 뿐이다. 하지만 브루투스가 주모자가 되었기 때문에 음모에 가담하기로 결심한 사람도 많았으니까, 우두머리에 어울리는 무언가는 갖고 있었을 것이다.
생전의 카이사르느 브루투스를 이렇게 평가했다. 브루투스의 연설을 들은 뒤의 감사이었다고 한다.
"그 젊은이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첫댓글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아마도 어머니인 세르빌리아와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 같네요. "가문의 비극"이라고 할까?
독대를 하면 너무나 끈질겨서 지쳐서 승복하게 하는이가 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