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 성서연구 - 제21강 열왕기하 남북왕조의 형성과 멸망
(37) 위기를 극복하는 기도 열왕기하 19장 14-28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마귀는 꼼짝없이 결박되고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물러가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어제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지면, 마귀는 이제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에 마귀는 그 응답을 기다리지 못하게 더욱 위협하고 더욱 회유합니다. 그 응답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망하게 그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를 흔드는 것입니다. 그때입니다. 마귀가 더 들고 뛰는 것을 보면서, 그 때 주신 응답이 응답이 아니었나봐. 하나님을 의심하고 그 응답 붙들기를 포기합니다. 그러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마귀가 날뛸수록 어떻게 해야된다구요? 너도 이제 끝이 가까우니 발악을 하는구나. 너도 무섭고 견딜 수 없어하는구나. 하나님의 손에 있는 내가 이기는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나를 죽이고자 하는 니가 이기는지 한 번 해보자. 나는 끝까지 믿음에 서련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을 제외해 놓고 다른 해결 방법을 찾느라 허둥지둥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먼저, 더욱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간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응답이 주어지고 동시에 마귀가 더욱 날뛰기 시작할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역사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주인공이 되셔야 합니다.
시편 50편 15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오늘 히스기야가 어떻게 하는지, 하나님의 응답과 산헤립의 강력한 위협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본문을 통해서 확인하시지요. 본문 14-15절입니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어떻게 했다구요? 편지를 받고 고스란히 그것을 들고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갑니다. 내가 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서 보여드리며 그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듣는 말, 우리가 보는 것,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우리 안에서 세세하게 느끼시는 것입니다. 다 아십니다. 그 분께 도움을 구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공부와 성취를 이룬 사람이라 하더라도, 내 안에 계신 성령님보다 내 마음, 내 생각, 내 감정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해결하실 수 있는 존재 역시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 생명이 그 호흡에 그 코에 달려 있는 인간이, 똑같이 물한방울 피한방울을 만들 수가 없는 유한한 인간이 무슨 도움이요, 무슨 힘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요 도움이요 산성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1-4)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대부분은 위기가 닥치면, 다른 나라들과 동맹을 맺거나 조속히 조공을 바치곤 했지,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걸었던 정직한 길, 그 길은 바꾸어 말하면 늘 하나님께 여쭙고 늘 하나님을 의지한 길입니다. 다른 것 아닌 바로 그것 하나가 오늘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신 이유입니다.
오늘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올라갑니다. 자기가 받은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두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함께 한번 읽어볼까요? 15-19절입니다.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왕하19:15-19)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라는 것은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면 어떻게 해주신다고 했는지, 예레미야 33장 2-3절 이렇게 기록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33:2-3) 아멘!
만약 기도해도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우상에게 드리는 기도는 응답이 없기에 헛된 것입니다. 그저 내 할만큼 했다는 자기 만족일 뿐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은 히스기야의 말처럼, 산헤립 앞에서 다 죽고 멸망당했던 것입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쓰고 결국 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간구도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으시거나 외면하실까 봐 두려워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면하여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죄가 너무 커서 죄송하다구요? 그래서 더욱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하실 분이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확인하시지요? 이사야 1장 18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여러분, 기도해야 해결됩니다. 기도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해야 응답이 현실이 됩니다. 기도해야 세상 다른 신들과 하나님이 다른 분임을 알게 됩니다. 기도해야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기도 자리를 회복합시다. 응답이 주어졌을 때 마귀에게지지 않도록 더욱 기도의 자리를 빼앗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해 주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시듯, 기도 외에 이런 류가 나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은혜는 기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도 없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은혜라는 것은 애시당초 존재하질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요? 혹시 하나님 앞에 무릎꿇은 히스기야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조롱하는 앗수르 왕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분 늘 조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이 이 상황에서 뭘 어쩌실 수 있겠어. 그 능력을 부인하고 불신하는 자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조롱했던 앗수르 왕은 죽고 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 죽이라고 되어 있는 까닭이지요?
레위기 24장 15-16절이 이렇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그리고 신명기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신명기 5:11)
보십시오. 이사야의 말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만 듣고 계신 것이 아니라, 앗수르의 조롱과 교만한 말도 이미 다 듣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조롱했으니 그의 교만을 징계하시기 위해 이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유다와 하나님을 비웃었던 앗수르가 도리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작은 성공들로 우쭐해서 교만해지고, 오만해지고, 나보다 못나 보이고 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홀대하고 조롱하지 않으시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18:10)
유다를 우습게 여겼던, 하나님을 조롱했던 산헤립의 결국을 여러분은 다음 수요일에 함께 확인해 보실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여주실 하나님 앞에 위로를 얻으심과 동시에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의 교만의 문제도 함께 해결하실 수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앗수르가 예루살렘 정복의 문턱에서 되돌아가야했듯이 그렇게 산헤립이 죽고 말았듯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세상적인 방법을 찾는 이들은 끝내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눈앞에 손만 뻗으면 내 것이 될 것 같은 것을 누리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는 기도하는 교회 찬송하는 교회를 표어로 삼았습니다. 목사님이 장로님이 더 기도하고 찬송하라고 떠넘겨두시면 안됩니다. 내가 기도해야 기도하는 교회가 됩니다. 내가 찬송해야 찬송하는 교회가 됩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교회요, 성전입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나라요, 백성이요, 제사장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줄 아는 겸손한 자들이 됩시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하며 도우심을 바라는 백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람에게 말고, 하나님께 말입니다. 얼굴을 흉하게 하고 금식하는 티를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사람에게 불쌍하고 어려운 척 마시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말씀드리시길 축복합니다.
말씀을 의지해 축복합니다. 오늘도 악인에게서, 사방을 에워싼 문제들 속에서 우리를 구해주시고, 좋은 것을 허락해주시는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 평생에, 그리고 우리 모든 자녀손들이 만나고 누리는 복된 “기도의 사람”들이 다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의 강함과 약함은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잘살고 못살고도 역시 별 의미가 없습니다.
權不十年(권불십년)이요,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입니다.
하나님께 무릎 꿇을 줄 아는 자는 승리할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멸망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더욱 무릎의 사람, 기도의 사람, 그래서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강하게 하시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