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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묶어 읽는 시
‘밥 한번 먹자’
유 진 (시인)
‘밥 한번 먹자’는 헤어질 때나 전화통화가 끝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딱히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이 아닌 이상 ‘안녕’을 대신으로 별 뜻 없이 습관처럼 주고받는 인사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빈말인 줄 알면서도 공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왜일까?
밥 한번 같이 먹자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다.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그립다, 보고 싶다, 아쉽다, 다시 만나고 싶다는 등의 감정을 전달하는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고, 그 말 속에는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 가깝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순수한 애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온정(溫情)의 대명사였던 밥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넘쳐나는 먹거리와 달라진 밥 문화, 밥상머리 예절도 사라졌고 숭늉 대신 믹스커피가 자리 잡았다. 밥벌이의 목적이 소유와 축척으로 변질되면서 부당한 방식과 불의가 생기고 밥을 벌기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자본이 발달하면서 잊어버리거나 잃은 것이 너무나 많다.
아무리 시절이 변해도 밥 먹었냐는 인사가 안부이고 염려였던 그 옛날처럼 밥의 의미는 언제나 소박하고 따뜻한 사랑이며 넘치는 인정(人情)이었으면 좋겠다.
시인들에게 밥은 무엇이며, 어떤 모양, 어떤 의미로 나타날까? '
그들의 주식은 곡식이 아니라 과일이다
날씨가 따스해서
일 년 내내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
주인도 없는 과목들이 들과 산에 널려 있고
개울에 이르면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있으니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농부도 어부도 따로 없다
그런데도
게으른 자는
영지(靈芝)로 단환(丹丸)을 빚어
한 알로 한 달을 때우기도 한다
ㅡ 임보「밥」전문
까마득한 어느 시절에는 농부도 어부도 따로 없고 주인도 따로 없는 곳, 들과 산에 과목들이 널려 있고 개울에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있어서 언제나 자유롭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을까?
생활이 윤택해지고 먹거리는 넘쳐나는데 행복지수가 낮은 것으로 통계되고 있다고 한다.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들이 오히려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이 낮은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끼니의 개념이었던 밥의 형태가 달라지고, 밥벌이의 목적이 변질되었다. 화폐가 절대가치의 척도가 되면서부터 경계가 확고해진 것이다. 밥벌이와 결부되어 일어나는 모든 불화는 자본의 부산물이 아니던가.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지금 내면화된 자본의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인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비의(秘意)의 채근이다.
부모 삼년상을 다 치르고 난 다음해부터
형제들 소식이 멀다가
한 사람이 병 깊다는 전갈이 왔다
더운 여름날 내내 저마다 땡볕을 피해
남의 원두막 지키기도 하고
강에서 멱을 감기도 하고
소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 자기도 하다가
해질 무렵에 슬금슬금 두레밥상에 모여들던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왔는지
저마다 처자식만 챙기다가
형제들 중 먼저 떠나려는 분 있어
밥 한 끼 같이 먹었다
왔던 순서대로 가는 순서가 정해지지 않는다고 위로하고
잘살고 못살고는 지 할 탓 아니라고 자위하고
핏줄에 갈래가 많아서 엉뚱한 후손이 나온다고 염려하고
이미 할아버지가 된 형들은 손자들 버릇을 자랑하고
아직 아버지의 동생들은 자녀들 나이를 걱정했다
식사를 끝내고도 일어서지 않는 까닭을
형제들은 알고 있지만
냉방 잘된 뷔페에서 너나들이가 끝없었다
누구는 부모님 덕분에 장가 잘 들었다고
누구는 부모님 성화에 높은 공부했다고
누구는 부모님 봉양하느라 고생했다고
ㅡ하종오「밥 한 끼 같이」전문
부모 삼년상을 다 치르고 난 다음해부터 제각기 사는 일에 바빠 멀어진 형제들, 피를 나눈 형제도 친척도 일이 있어야만 밥 한 끼 먹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아침저녁으로 옹기종기 둘러앉던 두레밥상은 이제 기억에만 남아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지금은 가고 싶은 곳 어디에든 다 갈 수 있는 세상이다. 해외여행도 소풍처럼 가벼워진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늘 결핍은 넘쳐난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다시 일인가족시대라고 한다. 냉방 잘된 뷔페에서 서로 너니 나니 하면서 허물없이 먹는 밥 한 끼에 감사가 그득하다. 먼저 떠나려는 분이 있어 모이긴 했지만 형제들이 모처럼 같이 먹는 밥 한 끼, 식사를 끝내고도 쉽게 일어서지 않는 까닭을 서로가 알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 오는 길이 서늘합니다
며칠 동안 그 길에서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한 마음과 한 마음 사이를 무사히 지나기가 어렵다고
몸에게 말해주는
신(神) 하나가 그렇게 서늘한 기운으로 지나갑니다
신열로 오르내리는 세상이
어쩌면 몸속에 남은 마지막 힘인 듯 제게 느껴집니다
계속 그 길 따라 걸어가면
집들이 서릿발 꼿꼿한 창문을 달고
겨울은 그렇게 얼어가겠지만
창문 너머 저기 저 부엌의
밥솥 안에서는
둥근 맨얼굴들이 송글송글 땀을 흘리고 있을 테지요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한고비 넘긴 몸이
밥솥 안의 끈기처럼 밥의 힘을 믿는 사람과 함께
더 둥글게
또 한세상을 지나갈 것입니다
ㅡ이사라「밥의 힘」전문
행복이란 단지 삶의 방식에 불과하지만 또한 행복이 삶의 목표이며 삶의 원천이다. 행복은 사건처럼 어느 날 불쑥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서릿발 꼿꼿한 창문을 달고 집들이 얼어가는 겨울에도 둥근 맨얼굴들이 밥솥 안에서 송글송글 땀을 흘리고 있을 부엌, 밥 힘으로 산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부엌은 얼마나 따듯하고 행복한 곳인가. 밥이 보약이다. 밥 잘 먹는 입에 복이 든다. 개도 밥 먹을 때는 건들지 마라. 등등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이에 가장 다정한 인사가 ‘밥 먹었냐?’이다. 신열이 오르내리는 세상, 지친 피곤을 끌고 들어서는 집,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와 밥 냄새에 금세 환한 꽃이 피게 하는 부엌, 근사하고 썰렁한 부엌이 아니라, 밥솥 안의 끈기처럼 밥의 힘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의 따스한 온기가 삶의 원천이고, 행복의 원천이 아니겠는가. 김장독을 묻는 아버지와 갓 버무린 배추를 쭉 찢어 한입씩 맛보이던 어머니, 아웅다웅 다정하던 형제가 그리워지게 한다.
삼각김밥에 귀를 대면
불끈 일어나고 싶은 욕망들이 숨어있다
지상의 창 없는 작은 방 한 칸
약봉지 같은 생애들
불 꺼진 방의 무거운 발자국
찌그러진 커피 한 잔
낙엽처럼 버려지는 로또복권
고속도로를 달리고 싶은 굳은살들이
김밥처럼 뭉쳐있다
쫓기는 운동화 짓밟는 구둣발들
흙탕물에 휩쓸려 가는 자음과 모음들
개수대에 빠트린 울음처럼 건져
햇빛에 말리고 싶은 날
나는 24시 편의점에 간다
ㅡ마선숙 「삼각김밥」전문
환승되지 않는 지하철 정기권으로 아침이면 마을버스를 타지 못하고 역까지 뛰어야 하는 청년들이 있고, 6000원이 없어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김밥을 먹는 현실이 있다. 청년 인구는 줄지만 취업 압박은 잔존한다.
쫓기는 운동화 짓밟는 구둣발들 / 흙탕물에 휩쓸려 가는
자음과 모음들
삼각김밥처럼 슬립하고 뾰족하다. 왠지 억울하고, 왠지 불투명한 미래가 불안하다. 그래서 차라리 불끈 일어나고 싶은 욕망들을 인정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허름한 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 먹다보면
그래도 사는 게 뜨끈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장 난 시계와 삐걱거리는 의자와
비스듬히 걸린 액자가 다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뜨거운 국밥 한 숟갈 목젖을 데워오면
시린 사랑의 기억마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도 쓸쓸함도 다 엄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자리 모여앉아 제각각의 모습으로 국밥을 먹는 사람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낯이 익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주 한 잔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구겨진 날들이 따뜻하게 펴지고 있다
ㅡ박승우「국밥집에서」전문
허름하다는 건 오래되어 낡은 데가 있거나 값이 좀 싼 듯해서 표준에 미치지 못할 때 쓰는 표현이다. 허름한 곳에서는 불필요한 격식이나 체면, 허례허식을 다 내려놓을 수 있다. 욕심과 겉치레를 벗어버리는 것만큼 속편한 일이 또 있을까?
춥고 배고플 때 고장 난 시계와 액자가 비스듬히 걸려 있는 허름한 국밥집에서의 뜨거운 국밥 한 그릇이 사람을 얼마나 따뜻하게 만드는지 먹어본 사람은 안다. 욕심과 갈등, 겉치레 따위를 벗어버리고 혼자 먹는 밥이지만 함께 먹는 밥처럼 정겨운 밥이다. 구겨진 날들이 펴지는 따듯한 밥이다.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ㅡ함민복「만찬晩餐」전문
나누는 밥은 나누는 정이다. 혼자 사는 외로움을 아는 마음이 강을 건너왔다. 사랑의 강일 수도 있고, 미움의 강일 수도 있고, 분노와 광란의 강일 수도 있고, 슬픔과 절망의 강일 수도 있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강을 건너 온 것은 사랑의 마음이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마음한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보다 더 경건하고, 행복한 만찬은 없을 것이다.
외갓집은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숟가락부터 우선 쥐어주고 본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없을 때도, 집을 찾아온 이는 누구나
밥부터 먼저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게
고집 센 외할머니의 신조다
외할머니는 그래서 대문을 잠글 때 아직도 숟가락을 쓰는가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고 마실을 가는가
들은 바는 없지만, 그 지엄하신 신조대로라면
변변찮은 살림살이에도 집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그릇의 따순 공기밥이어야 한다
그것도 꾹꾹 눌러 퍼담은 고봉밥이어야 한다
빈털터리가 되어 십년 만에 찾은 외갓집
상보처럼 덮여 있는 양철대문 앞에 서니
시장기부터 먼저 몰려온다 나도
먼 길 오시느라 얼마나 출출하겠는가
마실 간 주인 대신 집이
쥐어주는 숟가락을 들고 문을 딴다
ㅡ 손택수 「외할머니의 숟가락」 전문
외갓집은 누구에게나 따뜻한 밥 한 그릇 같다. 그것도 꾹꾹 눌러 퍼 담은 고봉밥 같은 곳이다.
외할머니의 인심이 숟가락하나로 누구에게나 열려있기 때문일까? 변변찮은 살림살이일지라도 집을 찾아오는 이에게는 언제나 밥부터 먹이고 보는 것이다. 문고리에 걸려 있는 숟가락, 빈집을 지키는 외할머니의 숟가락은 출출한 시장기뿐만이 아니라 외롭고 허한 마음의 시장기를 다독거리는 것이다.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1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우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ㅡ문정희「찬밥」전문
혼자일 때 몸이 아프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어머니다. 전자레인지에 1분만 돌려도 따끈해질 밥을 굳이 찬밥을 그대로 먹는 것은 귀찮아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절실하게 그립기 때문이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당신은 가족들이 남긴 반찬과 찬밥을 먹고도 가장 따스한 사랑을 뿜던 어머니다. 세상에 어머니만큼 아무런 조건 없이 무한대로 따뜻하게 품어줄 사랑이 또 있을까?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에서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파고다공원 뒤편 순대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ㅡ황지우「거룩한 식사」전문
가난하고 고달픈 삶일수록 ‘먹는 일’은 거룩한 일이다. 밥은 돈이고 눈물이고 정이여서 말하지 않아도 애잔함이 눈물겹다. 세상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가득한 눈에는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는 덩치 큰 남자와 순대국밥을 떠먹는 노인이나 혼자 가난한 밥을 먹어야 하는 소외된 처지의 사람이다. 소외된 자들의 쓸쓸한 식사 앞에서 눈물겹지 않을 수 있을까? 먹는 일이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거룩하고 거룩한 일이다.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ㅡ함민복「긍정적인 밥」전문
긍정적인 생각과 행복감은 같은 비례, 같은 군단이다. 박한 인세와 원고료를 두고 가난한 시인은 생각한다. 시 한편의 원고료는 쌀이 두 말, 시집 한권에 국밥이 한 그릇, 인세를 교환하면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이나 된다. 땡볕 속에서 땀 흘리는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 두말의 가치, 한 그릇의 국밥의 가치, 굵은 소금 한 됫박만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가. 도리어 자신의 시를 반성해보는 것이다.
냄비밥을 해 먹어 본 사람은 안다
쌀을 물에 즐겁게 불리는 일부터
냄비에서 밥물이 끓는 절정의 찰나를
긴장 놓치지 않고 기다릴 때까지
이건 물과 불과 시간을 아는 일이며
이건 마음을 아는 일이라는 것을
센 불로 끓이고 중불로 익히고 약한 불로 뜸들이며
냄비 속의 물이 넘쳐 불을 다치지 않게
불 위의 냄비가 뜨거워져 쌀을 다치지 않게
쌀과 불과 물이 평화롭게 하나 되어
사람이 먹는 한 그릇의 더운밥이 되는 일이란
이건 세상만사와의 집중이며
이건 우주와의 화해다, 라고
그래서 원터치 전기밥솥의 디지털 밥을 먹는 사람은
이 고슬고슬한 아날로그 밥맛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냄비밥 뜸 들기를 기다리며 나는 행복해진다
ㅡ정일근 「냄비밥을 하면서」 전문
뜸이 잘든 밥이 제대로 된 밥이다. 뜸이 잘든 사람이 사람답다. 밥을 짓는 일이란 쌀과 물과 불과 시간을 아는 일이며 마음을 아는 일이다. 원터치로 해결되는 디지털 쫒아가며 신속한 편리에 익숙해진 사람은 느리게 사는 아날로그의 여유로운 인생의 맛을 알지 못할 것이다.
한 그릇의 더운밥을 맛있게 뜸들이듯이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도 자신에게 알맞은 삶을 충실하게 살면서 성숙해 가는 것으로 뜸을 잘들이면 멋있고 맛있는 인생이 된다. 앞 만보고 성급하게 달리는 삶이 아니라 주어진 여건 속에서 당당하게 성실하게 여유롭게 살면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메시지다.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들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 것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ㅡ김경미「식사법」
살기 위해 먹고, 살기위해 마음을 가다듬는다. 몸의 양식이나 마음의 양식이나 갖가지 재료들을 어떻게 요리하고, 어떻게 먹고, 어떻게 다스리는 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어떤 경우에도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성실하게, 어떤 고통이나 좌절도 식후의 한 모금 물처럼 잘 넘겨야 한다.
맛있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어떤 그릇에 담고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먹어야 할까? 밥과 음식을 빌려 몸과 마음 다스리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밥’이 무엇인가? 밥벌이와 밥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의미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먹어야 산다. 살기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산다. 먹기 위해 노동하고, 힘을 얻기 위해 먹는다. 지속적으로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을 ‘밥’이라 지칭하기도 하지만 밥 한 그릇을 함께 먹으면서 진정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어찌 이기적인 계산을 하고, 어찌 전쟁을 할 수 있을까.
‘밥 한번 먹자’는 말, 서로의 마음을 나누자는 다정한 인사말,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이 아니라 그저 인사로 하는 빈말이라 할지라도 참 가슴 따듯해지는 말이다.
시로 밥을 짓는 시인들은 왜 밥보다 신의와 도리, 의로움이 더 소중한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밥을 벌기 위해 비인간적인 일에 동참하지 않고, 밥벌이 때문에 비굴한 무릎을 꿇지 않으며, 체질적으로 굴욕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힘들어도 절망하지 않고 부자를 시기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가난을 탓하거나 비참과 모멸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가난이 불편하더라도 불행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무리 시절이 변해도 시인들에게 밥의 의미는 언제나 소박하고 따뜻한 사랑이며. 넘치는 인정이며, 넉넉한 위로인 것이다.
ㅡ『우리詩』2018년7월호
첫댓글 내게 밥 한번 먹자고 해 놓고 부도내신 분들! 언제 밥 한번 먹어요.ㅎ
ㅎㅎㅎ괴산에서 밥 빚 다 받으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