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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달린 산양떼가 아프리카 초원을 질주한다. 이름은 스프링복(springbok)이다.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씩 수천 킬로미터를 횡단해온 무리는 휴식을 모르는 듯 계속해서 달린다. 흩어져 있던 스프링복들이 대열에 합류해 수십만 마리에 이르고, 모래폭풍이 걷히면 그들이 지나간 땅에 들이받혀 찢겨진 시체가 널려있다. 무엇도 그들을 쫒지 않기에 탈주(脫走)가 아니다. 목적지가 없으니 차라리 광주(狂走)다. 이윽고 그들은 대양(大洋)에 다다랐다. 스프링복 무리는 절벽을 코앞에 두고도 멈추지 않는다. 한 마리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무리는 실타래처럼 엉켜 한 마리도 빠짐없이 대서양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결국 스프링복 떼의 여정은 ‘집단자살’로 끝난다. 네발짐승의 주검이 해안을 따라 끝없이 널린다. 사체(死體)의 바다다.
처음엔 단지 풀이 먹고 싶었다. 앞선 무리가 지나간 땅엔 남은 풀이 없었기에 뒤의 무리는 좀 빨리 달렸다. 그러자 이번엔 원래 앞서 있던 무리가 좀 더 속력을 냈다. 이렇게 시작된 질주는 경쟁만을 남겼다. 풀을 먹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렸다. 달리기위해 달렸다.
만일 앞선 무리가 풀을 남겼더라면, 달리던 무리가 풀이 부족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면, 그들의 끝은‘집단 자살’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에겐 대안이 없었다. 그래서 지속하지 못했다. 집단이 지속하려면 대안이 필요하다.
<「자살에 관한 모든 것-마르탱 모네스티에 지음, 새움」에 실린 동물들의 집단자살에 대한 사실을 토대로 상상력을 동원해 대안의 관점에서 재구성·묘사했다.>
(가는 길 풍경)
서울에서 출발해 지하철로 한 시간, 버스로 삼십분을 이동해 수원 외곽에 위치한 칠보산 입구 중 한곳에 도착했다. 논밭과 들이 시골풍경을 연상케 했다. 산을 향해 이십분을 더 걸어 들어가자 ‘수원칠보산자유학교’라고 쓰인 조그만 나무간판이 보였다. 간판 뒤로 조그마한 운동장과 학교건물이 보인다. 얼마 후 이층에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남자를 발견했다. 인터뷰하기로 한 ‘수원칠보산자유학교’ 대표교사 나무꾼(본명 함형길)이다.
(간판과 학교)
나무꾼이 이끄는 대로 들어가자 넓은 창으로 산과 들이 보이는 방에 도착했다. 인터뷰를 응해준 데 감사의 말을 재차 전한 뒤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 내내 산들바람이 드나들었다. 몰래 날아든 몇몇 곤충이 책상에 앉았다가 날아가기도 했다.
제 1부 - 수원칠보산자유학교
Q: ‘수원칠보산자유학교’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수원칠보산자유학교’는 수원 칠보산자락에 위치한 미인가 초등과정 대안학교입니다. 현재 학생은 71명, 교사는 10명입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는데, 그 동안 외부의 지원 없이 교사와 학부모가 힘을 모아 견뎌왔습니다. 녹녹치 않은 세월이었지만 시작할 때부터 많은 분들이 일궈온 노력이 잘 이어져왔기에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Q: 미인가(未認可)라는 부분을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A: 미인가 교육기관이란 교육부로부터 학력인정을 받지 못하는 곳을 말합니다. 우리 학교는 교육부에서 인정하는 교육기관이 아니고 다만 대안학교 및 기타시설로 분류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가를 받으려면 교육부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죠. 교육부가 정한 교육이수내용을 이수한 뒤 시험을 통해 학력성취를 보여야 합니다. 그 외의 시설 등에 대한 기준도 있습니다.
인가를 받으면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교육부 아래 놓이게 됨으로써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철학을 온전히 유지하기 어렵게 됩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대안교육이 추구하는 ‘자유로운 배움’을 제도권이 정한 교육지침 안에서는 행하기 어렵습니다. 또 교육당국으로부터 통제와 관리를 받아야 하는 만큼 자율성을 해칠 우려도 있습니다. 인가 대안학교라고 해서 일반학교와 같아지는 건 아니지만요. 미인가 학교이기에 교육비가 일반학교에 비해 높지만 장학제도를 마련하는 등 문턱을 낮추려 노력 중입니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다양한 교육주체들에게 행정적인지원을 하면서도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줍니다. 우리사회도 각자의 교육을 추구하는 다양한 배움터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Q: ‘수원칠보산자유학교’의 교육철학이 궁금합니다.
A: 자유와 생명입니다. 두 가지에 대한 제 이해의 폭이 해마다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기에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생명은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하나는 자연을 본받는 것입니다. 자연안의 모든 것이 더불어 살아가듯 나 혼자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자는 것입니다.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남들과 잘 어울려 지내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다른 하나는 생명을 소중히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다른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땅에 기어가는 작은 개미 한 마리의 생명도 소중히 하도록 교육하려 합니다.
자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김구선생님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그는“자유란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아름답게 보고 있는 꽃을 내 것으로 삼는 자유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나의 꽃을 기꺼이 내놓는 자유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학교는 자유를 교육철학으로 삼으면서도 많은 규칙이 존재합니다. 나 혼자만을 위한 자유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기에 서로의 자유를 지켜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방종으로 흐를 것입니다.
Q: 자유와 생명은 밀접하게 연결되는 듯합니다. A: 맞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하려면 공동체를 소중히 해야겠지요. 공동체를 소중히 한다는 것은 공동체 안의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이때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자유와 나 혼자만을 위한 자유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을 위해선 참된 의미의 자유가 필요하고, 그 자유를 위해선 생명(공동체)이 필요합니다.
<인터뷰 후 읽은「대안교육과 대안학교-이종태지음, 민들레」에 따르면 자유와 생명은 대안교육에서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갖는다. 자유는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데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다양한 교육을 모색한다. 미국의 “Free school”이 대표모델이다. 생명은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한 새로운 대안체계를 상징한다. 생태주의가 대표적인 예이며 이는 대안교육의 주요한 철학적 기초가 된다.>
Q: (교사로서)교육을 하시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A: 가치와 공감입니다. 교육이란 아직 세상에 나가지 않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바람직한 배움을 주는 것인데, 기술과 단적인 지식에 한정되어선 안 됩니다. 실용적인 기술과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을 갖기 어렵습니다. 가치를 교육함으로써 공동체 전체와 미래를 생각하는 시각을 기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꿈을 꿀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그 꿈이 어떤 직업을 지향하든지 행복할 수 있고 응원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 합니다.
공감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교육자는 기술과 지식을 알려주기에 앞서 아이에게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든 소용이 없습니다.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교감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하다보면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서로 마음이 동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처럼 공감은 진정한 교육을 가능케 하는 토대입니다.
Q: 공감은 바로 이해가 되지만 가치는 조금 더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A: 가치는 소중한 것이고 소중히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는‘빈그릇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함으로써 음식의 소중함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또‘평화의 징’이 있는데 누군가 조그만 생명이라도 해칠 경우 이 징을 쳐서 모두가 모이도록 합니다. 다 같이 모여서 이를테면 개미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작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려 합니다.
가치를 교육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소중함을 모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사랑, 우정과 같은 가치들을 목록화해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함께 생각하기를 통해 스스로 깨우치도록 합니다. 쉽게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다시금 되돌아봄으로써 소중한 가치들을 체화하고 실현하게 됩니다.
Q: 대안학교가 많은데요, 수원칠보산자유학교의 특징이나 자랑거리가 궁금합니다. A: 무엇보다도 ‘칠보산’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학교는 굉장히 큰 산이자 숲이자 정원을 갖고 있는 셈이죠. 칠보산이 학교를 둘러싸고 있기에 맑은 공기는 물론이거니와 산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교육할 수 있습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와 달리) 녹색의 기운, 숲의 숨을 느끼며 지낼 수 있기에 교사와 학생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폭이 넓어집니다. 또 논과 밭이 있는 등 시골 같은 환경으로부터 자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일 년에 두 번 여행을 가는 것도 자랑거리입니다. 1학기 때는 교사와 학생 80명이 다 같이 여행을 떠납니다. 다 같이 일정을 정하고 식단을 짜며 함께 만들어가는 여행입니다. 여행준비와 여행을 통해 아이들은 자율성을 경험할 수 있고 가족과 잠시간 떨어져 있으며 독립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가족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겠지요. 버스를 대절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뿐 아니라 1학년 학생들도 자기 몸보다 더 큰 짐을 메고 가기에 자립심을 키우는 계기가 됩니다.
교사회와 학부모회도 큰 자랑거리입니다. 초창기 교사 두 분이 아직 학교에 계시는데, 학교를 세울 때부터 함께한 분들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됩니다. 대안학교의 경우 교사회가 흔들리면 학교 전체가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교사들을 존중해주고 지지를 보내기에 신뢰를 바탕으로 학교를 굳건히 운영해나갈 수 있습니다.
Q: 교사회와 학부모회 간의 신뢰가 흥미롭습니다. 조금 더 설명 듣고 싶습니다. A: 대안학교는 정부차원에서 행정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대안교육에 뜻이 있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모여 학교를 만든 것입니다. 학교와 교육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힘을 모아 꾸려온 것이지요. 서로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만큼 갈등과 다툼의 여지도 있지요.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를 믿어왔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은 행동입니다. 10년간의 행동이 모여 믿음과 존중의 문화가 싹트고 자라온 거죠.
<인터뷰 후 학교 설립에 참여한 지인을 잠시 만났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달마다 몇 날씩 밤을 새며 토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교사와 학부모가 둘러앉아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치열하게 토의하던 기억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 열정과 수고가 켜켜이 쌓여온 학교에 방문했다고 생각하니 뭉클해졌다.>
Q: 수원칠보산자유학교만의 특별한 교육과정이나 활동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A: 앞서 언급한 ‘여행’도 특별한 교육과정이겠죠. 그 외의 여러 가지 교육 활동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안아주기’로 하루일과를 시작합니다. 인사말을 건네며 서로 안아줄 때 따뜻함을 느낍니다.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것도 특별할 수 있겠죠. 작물을 직접 기르는 경험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계절의 자연스러운 변화도 알게 됩니다. 노동과 땀의 가치도 배울 겁니다.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는 자치회의도 중요한 교육과정입니다. 학생과 교사가 각각 한 표씩 행사하며 학교의 다양한 일들을 직접 의결합니다. 의결을 통해 학교의 규정 등을 개선해나가는 과정은 학교가 아이들을 교육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학교를 만들어나가는 지점입니다.
저희도 초등과정의 대안학교로서 초등수준에서 필요한 것들을 교육합니다.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을 교육하지요. 획일적인 잣대를 놓고 여기에 도달하도록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각자의 수준에 맞춰 천천히 생각하며 배우도록 합니다. 경험과 활동을 통해 배우는 것도 많은데, ‘살림수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데 필요한 것들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이죠. 텃밭살림, 음식살림, 옷살림, 목공살림 등을 통해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을 갖습니다.
Q: 학교의 교육철학인 자유와 생명이 떠오릅니다. A: 학교의 교육철학을 세우는 것이 먼저고, 이를 구체적인 교육내용을 통해 구현하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의 다양한 활동은 학생들에게 자유와 생명을 가르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성실히 대답 중인 나무꾼)
<학교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듣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 반이나 흘렀다. 나무꾼은 내 질문에 진지하고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대화 중 뜨거워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대안교육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이 느껴졌다. 약간의 휴식 후 다시 책상에 마주앉아 대안교육에 대해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제 2부 - 대안교육
Q: 대안교육은 현실교육의 어떤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 교육에는 선발적(選拔的) 교육관과 발달적 교육관이 있습니다. 선발적 교육관은 특정 기준에 맞는 학생들을 선별하고 구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선발은 보통 시험성적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일제(一齊)고사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다보니 교육의 초점이 일제고사에서의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맞춰지게 되고 교실이 붕괴됩니다. 학생들은 경쟁에 치우치게 되고 교육의 본질을 챙기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대체로 여기에 속합니다.
결과주의의 입장에서 성적을 중시하는 선발적 교육관과 달리 발달적 교육관은 교육의 과정과 학생의 발달자체를 중시합니다. 획일화된 기준을 충족했느냐의 여부가 아닌 학생 개개인이 교육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는가에 무게를 싣습니다. 그러다보니 과정중심이 되고 경쟁보다는 협력을,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할 수 있게 됩니다. 소위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방식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대안학교는 선발적 교육관에 치우친 현실교육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대안학교는 국가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는 교육에 반대하고, 고유한 인격체로서 성장하도록 전인격적 교육을 표방합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연대하는 시민을 길러내고자 합니다.
<‘네이버캐스트’에서 대립되는 듯한 두 교육관을 검색해보니 핵심적인 차이는 한 줄 세우기의 가능성 여부에 있는 듯하다. 선발적 교육관은 높은 교육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지 소수라고 보는 반면, 발달적 교육관은 적절한 교수-학습 방법이 있다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Q: 비단 교육에 국한된 이야기로 들리지 않습니다. 시대적인 이야기로 들리는데요. A: 근대국가로 들어서면서 공교육이 시작했을 때, 학교는 노동하러간 부모들의 자식을 맡기기 위한 장소였고 학생은 국가발전을 위해 길러야할 자원이었습니다. 교육은 국가를 위한 수단이자 통제 도구였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국가중심의 산업화를 겪던 시절에는 일정부분 당위성이 있기도 했습니다.
공교육에 대한 이 입장을 견지해온 국가들이 여러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보아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교육을 국가중심에서 시민중심으로, 도구 및 수단에서 목적 그자체로, 결과중심에서 과정중심으로, 지식중심에서 전인격적으로 전환시키고자 한 것이죠. 한국의 경우 이 흐름과 한국사회의 변화에 비해 교육관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안교육과 대안학교」는 대안교육이 등장한 배경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지식기반사회의 도래로 획일적인 교육방식의 한계가 드러났다. 둘째는 산업사회가 추구한 물질적 풍요는 생태위기와 함께 정당성을 잃고 있다. 셋째는 근대적 개인주의 이념의 문제점이 부각됨에 따라 새로운 인간관이 필요해졌다. >
Q: 대안교육의 가능성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A: 대안교육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가능성입니다. 1980년대 말 즈음 자유로운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참교육이라는 말로 모였습니다. 이때를 대안교육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안교육이 쉽지 않은 난관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고 여기에 공감하고 뜻을 함께해온 가정과 교사들이 늘어왔다는 것 자체가 가능성입니다.
Q: 현실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A: 지금은 거의 폐지되었지만, 참여정부 때 생긴 혁신학교가 대안학교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에서도 대안교육과 같이 다양한 교육철학을 추구하는 다양한 학교를 인정하겠다는 것이죠. 이처럼 대안학교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현실의 주류 교육을 반성하고 성찰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대안교육은 공교육의 문제점을 환기합니다.
Q: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를 가능성이라 하신 이유를 알겠습니다.
A: 대안교육은 존재자체가 의미고 가능성입니다.
<뉴스를 검색해보니 인가 대안학교의 ‘아버지’격인 이우학교를 모델로 김상곤 전 교육감이 혁신학교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고 한다. ‘배움 공동체’를 중심으로 종래의 일방향적이고 획일적인 교육방식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이후 이명박 정권에 들어오면서 퇴색되어 지금은 사실상 그 면모를 잃고 있다.>
Q: 대안교육의 한계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A: 외부적 한계와 내부적 한계가 있습니다. 외부적 한계는 국가 차원의 행정적 경제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한국의 경우 행정적 지원은 통제를 수반하기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다른 한계로는 대안학교에 대한 외부적 편견이 있습니다. 대안학교를‘문제아’들이 가는 곳으로 보는 시각을 비롯해 여러 편견이 있습니다. 대안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결해가야 합니다.
내부적 한계는 대안교육, 공동체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다보니 의견이 충돌하기도 합니다. 대안학교는 운영에 있어 교사와 학부모들의 자율적인 참여가 필요하기에 서로 친밀해집니다. 그만큼 예민해지는 경우도 있고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위험도 있습니다.
Q: 대안은 ~에 대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도달불가능할지 모릅니다. 도달하면 그것은 또 다른 대안을 필요로 할 테니까요. A: 대안교육은 방향과 운동성입니다. 혹자는 대안교육 대신 새로운 이름을 써야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럼에도 대안교육, 대안학교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여기서의 대안이란 일시적인 대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머무는 대안이 아니라 항상 ‘현실 대안적’방향을 추구하며 변화해가는 것입니다. 그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다가가려는 운동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안교육은 호수가 아니라 강입니다. 방향을 갖고 흘러갑니다.
Q: 한국의 경우 대안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이 ‘주류사회’에 편입해 중산층으로 살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A: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면서도 방점이‘주류사회’에 있다면 아이들은 언젠가‘돌아와야 할 아이’입니다. 대안교육과 대안학교의 철학에 초점을 두고 그 시간과 과정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진학을 하기에 부족하다고 따로 수능준비반을 만드는 것은 학교의 철학에 어긋나기에 학생과 가정의 몫에 맡기고 있습니다. 대학진학여부와 진학시기 등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지요.
Q: 대안교육은 결국 사회구조 및 문화의 변화로 성취되는 것이란 의구심이 듭니다. A: 대안교육이 어려운 원인의 꼬리를 계속 물고가면 결국 해결할 수 없다는 체념이 들지 모릅니다. 해결하기엔 문제가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작은 것부터 해결해나가고 변화시켜 가야합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됩니다.
Q: 인터뷰기사를 읽을 독자들, 특히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두려움은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데서 오는 것일지도 몰라요. 또 인생의 계획을 미리 다 세워놓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내가 있는 곳과 나 자신이 바로 주류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일반적인 인생계획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자기만의 호흡과 리듬으로 삶을 꾸려나갔으면 좋겠어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요.
(뒤돌아보니 전보다 커진 학교)
대화를 마치고 나오니 도착했을 때의 선선한 공기는 사라지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두시, 네 시간의 긴 대화였다. 햇살을 피하려고 재빨리 산자락을 벗어나고자 발걸음을 재촉하다 문득 뒤돌아보니 학교가 보였다. 올 때 보았던 것 보다 훨씬 더 웅장했다. 대안을 향해 걸어온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착시 같지 않았다. 얼굴들은 은근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 중에는 나무꾼의 얼굴도 있었다. 나는 한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다시 내딛은 발걸음은 훨씬 느릿느릿했다. 땀은 송골송골 맺혔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알면서도 자꾸만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