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팔달산 산행 에세이
'2019(己亥)년이 저물어가는 12월!
금년도 마지막 산행은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팔달산을 중심으로 한 둘레길 트레킹과 화성행궁을 관람하는 일정으로 되어있다. 50년 전 졸업한 후 매달 한번 있는 산행은 몸과 마음을 싱그럽게 해주는 참 좋은 행사다. 날씨도 좀 풀려서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언제보아도 우리나라 강산은 참으로 아름답다. 어디를 가더라도 향수에 젖게 된다.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버리려고 안개서린 창문을 연신 닦아가며 조국 강산을 구경하면서 북으로 갔다. 요즈음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내 나라에 대한 안 해도 될 염려스러움이다.
산대장인 KGP 전 회장이 오늘 산행에 대한 안내를 했다. 덧붙여서 서울에 있는 KTH 전 회장이 오늘 산행에 참석하려 했는데 사정상 올 수 없다고 하면서 대신 금일봉(金一封)을 부쳐주면서 미안하다는 격려 전화가 왔다고 한다. 우리는 박수로 화답했다. 아침부터 산행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K 전 회장은 산행에 대한 일정에 대해서 언급하다보니 자연 정조대왕으로 이어지고 다시 어수선한 지금의 시국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언급을 안할 수가 없어 몇 마디 이야기하더니“말하면 뭐 합니까“ 하고 닫아버린다. 그 때 며칠 전 아침 신문에서 본 K교수님의 칼럼이 생각났다. 이 나라 최고의 석학(碩學)자다. 아직도 많은 저서를 출간하고 신문에 글을 쓰며 방송 연수원 기업체 등에서 연간 130회 정도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책과 신문을 주로 보고 있는데 내용은 철학 교육 종교 사회 등 인생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노교수님도 무척 안타까운 심정인지 며칠 전엔 시국에 대한 견해를 신문에 피력해 놓은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한번 요약해보고자 한다.
⌜ …“ 정의만 믿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윤리와 인간애의 존귀성을 배제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만에 빠져 정의를 내걸고 행복의 질서까지 파괴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은혜를 갚는 것은 선이고 원수를 갚는 것은 의무라는 관념 때문에 편 가르기를 일삼는다. 있어서는 안 되는 분열과 적개심을 만들기도 한다. 끼리끼리 작당하면 망국의 역사까지 만든다는 것이다. “눈은 눈으로 , 이는 이로 갚으라”는 코란의 교훈 때문에, 두 민족은 2000년에 걸친 분쟁과 적대관념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탄식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와 정치계의 현실은 어떤가. 모든 사회와 공동체에는 상식이 통해야 한다. 전 정부가 남겨준 것 중에 좋은 점은 계승하면서 개선해 나가야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최선의 길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 정부의 업적을 위해 지난 정부의 업적을 훼손시키려한다. 정권이 바뀔 때는 더 심해진다. 적폐 청산 같은 개념으로 과거의 업적까지 파괴해버리고 또 다른 적폐를 만든다. 뒤따르는 시련과 고통은 국민이 감수해야 한다. 법을 바꾸면 된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법 때문에 선한 질서가 무너지면 그 병폐는 국민들의 생활 질서까지 파괴할 수 있다. 국제문제도 그렇다. 한․일 과거사 문제는 건설적인 미래 창출로 해결해야한다. 우리정부와 아베 정권은 과거 100년 때문에 미래를 파괴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주변에 보좌하는 사람들도 공동 책임을 져야한다. 불은 당사자들이 질러놓고 진화는 국민에게 맡기는 식이다. 정권을 위해 100년의 역사를 이용하는 불행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국민은 무엇 때문에 친일파 명단을 만들어 발표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의 애국적인 업적은 묻어두고 국가적 반역자로 심판할 특권은 누가 주었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대법원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친일파로 판결한 일도 그렇다. 후일에 사법부 후배들과 역사학자들이 어떤 비판을 내릴지 걱정이다. 그런 판결을 대법원이 할 수 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노(老)교수님의 백세 일기를 회상하면서 고속도로 주변의 산과 들을 바라보니 속이 시원하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신나게 놀러 다니는 사람들이 고속도로 만든 사람을 욕하면서 역사를 부정한다. 사실은 나도 평소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깊은 지식을 갖추지 못해 이처럼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가 없다. 그래서 공감이 되고 더욱 깊은 감회에 젖게 된다. 몇 줄의 글에서 종교, 법과정치,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 등 해박하고 심오한 그 사고력으로 현실을 직시하며 표현한 글은 마치 하느님이나 성자가 하시는 말처럼 느껴진다. 안개가 사라지듯 답답한 내 마음도 사라졌다.
수원 화성에 도착해서 정조 대왕이 유숙했던 화성행궁을 돌아보았다. 군주국가에서 많은 일반 국민들은 희망을 바라보며 일하고 노력할 어떤 길이 없었다. 나라 주인은 백성인데 관리들은 임금을 핑계 삼아 자신들을 위해서 백성들을 괴롭혔다. 그게 누적이 되다보니 민란이 일어났다. 정조대왕 이후의 순조 현종 철종 고종 순종의 왕들은 관리들 말을 잘 들어서 결국은 나라가 무너졌다. 순조즉위1801년부터~1910년까지 불과 110년만이고 지금부터 불과 110년 전 역사다. 부모와 자식 간의 2~3세대 만에 나라를 망하게 했다. 그 중 대표적인 왕은 고종이고 관리는 이완용을 비롯한 대신들이다. 일본으로부터 돈 받고 나라를 팔아먹고 백성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행궁을 돌아보면서 정조 대왕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글과 사진 유품 등에서 성군이 쌓아놓은 행적을 보면서다. 관리들의 말을 듣느냐? 백성들을 위하는데 역점을 두고 나라를 다스리느냐? 정조대왕은 백성들을 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관리들을 잘 활용했다. 암행어사 박문수처럼 선왕(영조)의 좋은 점은 본받아 다산 정약용 같은 훌륭한 실학자를 암행어사로 임명해서 지방 관료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했다. 세종대왕처럼 성군(聖君)이 되었다. 주요 업적으로는 *첩(妾)의 자식도 관직에 진출하도록 했고. *1778년에는 노비제도를 폐지시켰으며 *시장경제를 활성화 하고. *나라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임금(賃金)을 주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나라 일을 할 때 백성들이 임금 없이 의무적으로 일을 했다. 군주는 신하들보다 아는 것이 더 많다. 여러 부문에 대한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군주가 중심을 잃으면 간신들이 많아지고 나라는 망하며 그 짐은 국민들이 떠맡게 된다. 조선시대 때는 임금을 군주라 했고 지금은 원수라 한다. 수원화성행궁 앞마당에 500년생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에서 빌면 소원 성취가 이뤄진다고 한다. 500년생이니 250년 전 정조대왕도 나라와 백성위해 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많이 빌었다고 생각한다.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되풀이 되면서 나라가 바뀌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100년도 못가서 망한 나라는 많이 있다. 지금 우리도 2편으로 갈라져서 점점 더 싸움이 격렬해지고 있다. 흥망(興亡)조선에서 성(盛)한 대한민국이 쇠(衰)로 가지 않도록 나도 빌어 보았다.
♣ 변화變化(成守琛 성수침 : 1493~1564년)
朝日微茫翳復明 아침 해가 흐릿하여 어둡다가 다시 밝아지더니
臥看天末片雲生 하늘 끝 저 멀리서 구름조각을 만드는구나.
須臾遍合翻成雨 어느새 갑자기 먹구름이 모여들어 큰 비를 이루더니
萬壑崩湍共一聲 온 골짝 요란하게 큰 비를 뿌려댄다.
중종때 성수침(1493~1564년)이 변화(變化)라는 날씨에 비유해서 지은 시다. 기묘사화(1519년)당시 조광조 등 많은 대신들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줄줄이 귀양 가서 피해를 당한 것을 보고 지은 것이다. 인간세상 풍파도 이렇듯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묘사화를 일으켰던 주인공(윤임 등)들은 1545년 소윤(윤원형 등)이 일으킨 을사사화에서 모조리 숙청되었다 . 역사는 되풀이 된다(History repeats itself). 인간만사 塞翁之馬다.
◘ '2019년도 한해를 보내면서…(2019년 11월 月中日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남긴 명제다.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100세 일기를 쓰고 있는 전 연세대 김형석 교수 인생이라는 이름의 기차에 나온 인간적 삶에서 사랑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 하고 있다. 앞서 70년대 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영원과 사랑의 대화’에서도 사랑의 위력에 대해 잘 나타나 있지만. 예수의 사랑 석가의 자비 공자의 인애 모두가 사랑을 근간(根幹)으로 한 것인데, 예수의 사랑이 워낙 그 범위가 넓고 농도가 짙은 탓일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사랑이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만물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책을 통해서 느끼게 되고 산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50여 년 전 늦가을 이맘 때 즈음이다. 논산 제2훈련소에서 야외 훈련을 힘들게 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중대장이 훈련병 150여명을 앉혀놓고 느닷없이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이냐? 고 질문을 했다. 몇 명이 미움이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계속해서 다시 되물어 본다. 몇 명이 더 “미움 아닙니까? 미움”하면서 당연한 정답인 듯 대답을 한다. 또 묻기에? 내가 대답했다.“무관심입니다.”중대장은 좀 머뭇거리다가 나를 보고 “ 어디서 들었느냐?”고 묻는다. 나는 “어떤 책에서 본 것 같다”고했다. 논산 훈련소 생활에서는 고향도 애인도 사랑도 잊고 훈련에만 열중해야 한다는 것을 그 중대장은 알고 은연중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 무관심? 생각하니 20여 년 전 마음수련 연수를 받은 기억이 떠오른다. 2주 동안 인성교육(마음수련)에 대한 합숙 교육이 있었다. 연수생들은 전국에서 모인 200여명의 교사들이다. 하루 주요일정은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 등 모든 것을 꺼내서 지워버리는 일이다. 강의를 시간당 10여분정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마음을 수련하는 체험학습이다. 아침 9시부터 저녁9시까지 부처처럼 앉아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있었던 일 들과 사연들을 모두 다 버리는 것이다. 모두 다 버리면 최종 주임강사로부터 마지막 시험을 봐야 한다. 나는 3일 5일 6일 3번이나 시험을 봤지만 불합격했다. 6일 째 되는 날 최종 깨달았다. 하늘의 해와 달 별 그리고 은하수까지 우주전체를 버리는 것이다. 결국 죽은 경험을 한 후에라야 깨닫게 된다. 60평생 사는 동안 쌓아둔 사연들은 산더미 같은데 2주 동안에 어찌 다 버릴 수 있겠나? 버리고 있는 이 순간도 버려야 하니 살아서 생각이 있는 한 참 어렵다. 주임강사를 비롯해서 3명의 강사는 지금까지 수많은 연수생들이 거쳐 갔지만 선생님 같은 분 없었다고 하면서 놀라운 상상력을 지닌 분이라고 칭송을 한다. 내가 최초이자 최종적으로 합격을 했다고 말했다. 이튿날 주임교관은 직접 두시간정도 버리는 것에 대해 실습을 했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잘못한 것에 대한 후회 등을 예를 들어 이야기를 시작하니 처음에는 한 두 명이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이내 곧 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 내어 울었다. 온 강당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때 깨달아서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부터 욕심 버리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벌어들인 일부는 사회에 기부하고 봉사하는데 최선을 다해야지 등등. 실천에도 옮겼다. 그해 북간도를 여행하며 윤동주의 고향 용정에 갔다 온 후 3년에 걸쳐 용정중학교에 장학금도 부쳤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지난날로 돌아갔다. 작심삼일이다. 예수 석가 공자는 커녕 몇 천 년 뒤 그 제자도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다. 인생은 결국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모든 존재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화엄경의 중심사상인 유심론(唯心論)을 근간으로 해서 마음수련이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참 뜻 깊은 연수를 경험했다.
✿ 내가 그동안 밤새워 읽은 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기회가 생긴다. 깊은 감명을 받아 몰아의 경지로 빠져 들어간 경우다. 세계적인 명작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무협지 애정소설 같은 것은 주인공들이 위주가 되어 흥미위주로 엮어 놓았지만, 세계적인 명작들은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사람 모든 삶의 영역(철학 사회 종교 등)에 대한 이야기를 깊은 식견으로 묘사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큰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킨다. 자신도 모르게 몰아의 경지로 빠져들게 된다. 보통사람들도 때로는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신이 되는 경우를 알 수 있게 한다. 평범한 인간들의 삶 평범한 진리를 존중하면서 내 것으로 하고 자신을 가꾸며 승화시켜가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읽고 감명을 받은 세계적인 명작의 공통된 점이라고 생각한다. 괴에테의 파우스트. 젊은 벨텔의 슬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룻소의 참회록.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및 안나카레니나. 토스토옙스키작作죄와 벌 카라마초프가의 형제들이다. 국내는 김형석 교수 작作으로 영원과 사랑의 대화도 있다. 책을 지은 저자들은 한 결 같이 모두가 신神의 경지에 도달한 초인적인 상상력을 지닌 분들이라 여겨진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상상력과 사고력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으며 우주보다도 더 광활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대해서('2019. 10월).
한국전쟁당시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 치하에서 다시국군과 미군이 수복한 서울에서 그리고 또다시 중공군 치하에서 다락방과 지하방 헛간에서 1.4후퇴로 피난길에서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살얼음 걸어가듯 살아가던 분이 있었다. 혼자도 아슬아슬한데 가족들과 이웃들을 책임지면서 서너 달씩 숨어살았다. 말할 수 없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고난을 겪었다.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의 갈림길에서 순간의 판단과 선택 그것이 생사(生死)를 갈랐던 전쟁시대였다. 한국전쟁 당시 몸소 겪었던 상황을 일기로 남긴 前서울법대 김성칠교수의 역사앞에서 에서 나온 명언이다. 나도 전쟁 전에 태어나서 전쟁 중 피난도 가고 전쟁이 끝난 후 그 흔적 속에서 초•중학교를 다녔지만 어려서 알지 못했던 6.25전쟁에 대한 실상을 이 일기에서 자세히 알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전쟁 후 처했던 가난과 후유증을 직접 겪어 보고 살았던 것처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모 조부모 세대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새삼 알 수 있다. 잊어버린 6.25전쟁을 다시 상기하면서 삶에 큰 교훈과 위안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때가 있다. 어찌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 옛 성인의 글을 떠올리면서 도움도 받는다. 좌우명으로 하고 있다. 평소 살아가면서 난처하거나 어려운 지경에 놓일 때는 좌우명의 도움을 받아 결정을 해준다. 나 역시 몇 가지가 있는데 근래 이 일체유심조를 다시 추가하게 되었다.
✿ 좌우명은 살아가면서 힘들거나 일을 할 때 옆에 두고 가르침을 받거나 용기를 북돋우는데 중요한 양념이다. 마음의 양식(糧食)이다. “낙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모르겠는데? 바로 네 마음속에 있단다.…”밀턴의 실낙원에 나오는 대화의 한 장면이다. 일상생활을 할 때 대개는 아무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다. 바람이 부는 데로 물결이 치는 데로 그냥 무덤덤하게 지낸다. 그런 생활은 편할지는 몰라도 발전이 없다. 일을 해도 보람을 못 느낀다.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 그 여하에 따라 일에 대한 효율이나 만족감 가치관은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된다. 같은 일 같은 생활을 해도 어떤 이는 천당에서 살고 어떤 이는 지옥에서 산다. 생각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을 남이 시켜서하면 행복을 모른다. 신념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다짐을 하면서 일을 할 때는 얻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이다. 뿌듯한 만족감이나 보람도 느끼는 등 행복에 젖으면서 일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업적도 남긴다. “이왕 공부 할 때는 즐기면서하자 꿈과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열심히 하자.”학생들이 공부하면서 활용하는 좌우명인데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마 전 올해 수능 만점을 받은 K고교 S군은 좌우명이 “No pain No gain”(고생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이라고 한다. 학생들에게는 참 좋은 좌우명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학창 시절부터 좌우명이 있었지만 신념이 약했다. 머리맡에 써놓고 결의를 다져도 실천을 하는데 있어서는 큰 효력이 없었다. 마음에 깊이 새기지 못했고 작심삼일이 되었다. 나이나 직업에 따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좌우명 몇 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철들은? 지금은 내게 어울리는 몇 가지 좌우명을 가지고 삶과 접목(接木)을 시키면서 살아간다. 큰 도움과 위안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톨스토이의“ 부지런함은 최선(最善)의 선(善)이요 게으름은 최악(最惡)의 악(惡)이다.”이 금언은 농사일하는데 가장 많이 써먹고 있다. “나는 생각 한다 고로 존재한다.”데카르트의 이 금언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좋지 않았거나,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나도 모르게 다시 떠올랐을 경우 빨리 잊게 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써먹고 있다. 다른 생각(옛 성인들이 남긴 시를 떠오르게 한다든지 등등)으로 바꾸는데 효험이 있다. 올해 새로 한 가지 추가한 좌우명이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마음이 만들의 낸 일들은 후회한들 소용없고 깊이 생각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행복을 가지게 되며 심신을 건강하게 해 주고 있다.
✿ 지난 20세기(1900년~1999년) 100년 동안의 역사를 회상해 보면…
오늘을 살아가면서 어떤 계기가 생기면 과거를 회상해 볼 때가 종종 있다.
지금 시국이 내 뜻과 맞지 않다고 생각을 하게 되니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세대와 자식세대 전날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 이 3대에 걸쳐서 나라와 민족이 걸어온 운명을 한번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의 역사를 상기해보면서다. 벌초와 묘사에서, 75년 전 남북으로 갈라진 나라가 천 년 전 후삼국시대로 되돌아가는 뜻한 국운을 보면서, 그리고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젊은 세대들의 모습에서 느껴본 내 생각이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 역사 중 지난 20세기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대였다. 1900년부터 50년까지는 나라를 잃은 뼈아픈 역사를 겪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해방은 되었지만 조선은 남과 북으로 두 동강이 났다. 곧 이어 설상가상 일어난 동족상전의 6.25남북전쟁과 그 후유증은 단군 이래 가장 큰 비극이었다. 20년 기간(期間)이었다. 반만년 역사 중 시련과 고통에 시달리며 허덕이던 가장 불행했던 시대였다. 그 시대는 조부모와 부모세대들이 주역이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30년은 부모세대와 우리들 세대다. 가난과 고통을 이겨내고 부강한 나라로 만든 2세대들이다. 위대한 지도자(박정희대통령을 비롯해서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회장 등)도 있었다. 모든 국민들이 똘똘 뭉쳐서 가정과 나라를 지키고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지와 결의가 있었다. 희망과 용기가 자산이 되어 열심히 일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중동에서 독일에서 세계 어디든 험지를 꺼리지 않았다. 국가와 민족과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어느 곳이든 물불 가리지 않고 도전해서 죽도록 일을 했다. 피와 땀으로 그렇게 보상받은 자산으로 부(富)와 번영을 누리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20세기 100년의 이 시대는 우리세대 부모세대 조부모세대에 걸친 3대가 그 주역들인 것이다. 3대에 걸친 그런 세대는 세계 최빈국에서 허덕이다 지금은 단군 이래 최대의 번영과 부를 누린 주인공들이다. 몇 백 년 전부터 3대가 한집에서 먹고살며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지내오던 마지막 세대가 되게 한 자랑스러운 조부모 부모 우리들의 3세대들이다. 정조대왕 이후 100년 동안 무기력했던 조선이 결국 망한 후,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고 피땀 흘려 노력해서 세계 11위 국가로 오르게 한 대한민국 70년 역사 동안의 3세대 주역 중 우리도 끼어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 지금은 조국이 참 걱정스럽다는 많이 한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하기까지는 3대가 겪어온 과정이 있었다. 좌절과 절망에서 시련과 괴로움을 이겨내고 피와 땀으로 보상받은 과정이다. 세계10위 선진국까지 이르렀건만 지금은 잔뜩 긴장이 되고 있지 않은가? 20세기 이 시대 100년 동안의 기구한 역사는 우리들 인생이 끝날 때는 또 어떻게 될지 긴장이 된다. 식민지도 이겨내고 전쟁을 치루면서도 나라를 지키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었는데! 싸우면서 일하면서 자식들도 정성껏 키워냈는데! 정의와 민주를 위해 데모도 하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조상이 물려준 문화도 잘 지켜왔는데. 잠시 나라는 잃었지만 그 정신만은 잃지 않고 꿋꿋이 정성껏 지켜오지 않았던가!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참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온 세대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버팀목이 되었던 민족의 정신적인 정서가 서서히 시들어지면서 올바른 삶의 가치관이 훼손되어가고 있다. 자식들 세대들에 대한 걱정스러움이 염려가 되어 한 번 생각을 해 본다. 그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풍조에 쉽게 물들여지고 과거 부모세대들이 가졌던 강건한 정신력과 검소하고 알뜰한 경제적 가치관들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고생하며 일궈놓은 조부모세대와 부모세대들에 비해 의지와 용기가 꺾여 있고 기백도 없어 보인다.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망쇠성흥(亡衰成興)한 대한민국 나이가 75년이 되었다. 우리 나이처럼 70대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하겠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 아니었던가! 우리 속담에서도 부자(富者)는 3대를 못 간다고 했다. 옛 성인 들도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으니 이 시절 근심을 안 할 수 없다.
✿ 후세들이 걱정스럽다. 자식세대들은 국가관 애국심 민족애(民族愛) 등 우리 고유문화에 대한 관심도 희박하다. 고생하지 않고 공부만 했던 것이 원인일까?! 도전정신과 용기 등 삶에 대한 의지와 기백이 없어 보인다. 군대정신 새마을 정신이랄까 그런 정신적인 의지도 찾아보기가 드물다. 예를 들면 “그 때는 굶었다”고하면 “라면도 없었어요?”하는 등. 바로 전 부모들 세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생애사(生涯史)도 모른다. 만사 냉소적인 빛으로 보면서 세상을 비웃고 자신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무슨 일에서든지 도전 정신이 없다. 무기력하고 만사를 태평스럽게 본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풍조가 있지만 좋은 경향이 아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언론들과 스마트폰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저 포플리즘 공짜에 더 기대고 3포니 N포니 하면서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헬 조선 이라고 하면서 조국을 비하(卑下)하는 등 자조적인 눈빛으로만 본다. 노력해 보려고 하는 의지가 엿보이지 않고 매사 남 탓만 늘어놓는다. 나라와 미래를 생각하면 참으로 걱정스럽다. 그 정신 자세에서 마치 조선이 망해가던 마지막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비록 학교는 다니지 못했지만 나라위해 뼈 빠지게 일하면서 자식들 잘 키우고 가정과 민족의 얼을 지켜온 조부모 부모들 세대들에게 부끄러울 줄 아는 마음만이라도 지니고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마음을 읽을 수가 없다. 고생했던 부모들이 자식만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던 부모마음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사람은 곤경에 처해봐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고 노력을 한다. 노력 속에서 지혜와 용기를 찾으려고 애를 쓴다. 새로운 힘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머리도 돌릴 줄 안다. 행복하고 참되게 살아가는 길은 결과야 어떻든 간에 내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그 과정에서의 충실함에 있다. 부모나 국가나 도와 줄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企待)를 걸고 있는 모습에서 세대 간 차이를 엿볼 수 있다. 국가 정책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20대를 위한 취업자리 좀 많이 만들어서 취업 하도록 하고 결혼도해서 가정도 꾸리며 자식도 낳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주는데 역점을 두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깔려있음이다.물론 자식들 세대는 선대 세대들의 좋은 점 이어받아 첨단지식 창조하면서 세계 11위 경제대국을 일으키는데 큰 역군이 되고 있는 일부분도 있지만. 씩씩한 패기와 용기 그리고 젊음이라는 그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눈빛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이 겨레를 지켜나갈 등불이 될 것이다. 그런 눈빛은 이팔청춘 시절 때 받은 교육이 확실하게 내 것이 되면서 평생을 간다. 청춘시절에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 나라를 튼튼하게 지키고 발전시켜가는 원동력은 애국(愛國) 애족(愛族)이다. 나라사랑 겨레 사랑은 체험에 의해서 싹이 트게 된다고 생각한다. 애국애족은 학교에서도 많은 교육을 받고 있지만, 가정에서부터 출발이 되고 농사처럼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군대시절 3년 동안의 생활을 통해서 얻은 몸과 마음의 신체적 정신적 단련이 지금까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6시 기상을 하면 바로 체조와 팔굽혀펴기를 한다. 5분여동안 제자리 뛰기도 하는데 마음속으로는 군가도 부르면서한다. 국경일 날에는 빠지지 않고 반드시 국기를 게양한다. 조용히 나부끼는 태극기에서 옛 날의 역사가 떠오르고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힘이 솟아오른다. 어릴 적 하루 운동회를 위해 몇 달 연습하면서 불렀던 휘날리는 태극기와 무찌르자 오랑케는 지금도 부르고 있다. 운동장을 뛰면 그냥 뛰는 것 보다 군가를 부르면서 뛰면 훨씬 좋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태극기엔 처음 창조할 때부터 수많은 한과 슬픔과 영광이 서려있는 100년의 역사가 담겨있다. 가슴에도 장롱 안에도 깊은 사연이 쌓여있다. 집 학교 회사 등 곳곳에서 휘날린다. 한과 영광 기쁨 슬픔 등 각자의 모든 마음을 받아 하늘 향해 펄럭이고 있다. 태극기를 생각하는 마음의 정서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라를 위한다는 그 마음만은 한결같다. 나는 나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하는데 보다 더 큰 의미를 두면서 국기를 게양한다. 어쩌다 국경일 날 국기를 달지 않고 집을 나서서 큰 아파트에 불과 서너 집에만 국기를 달아놓은 모습을 보면 그 또한 안쓰럽다. 그 반대로 국기를 게양한 서너 집을 보게 되면 나와 같은 동조자도 있구나 생각하게 되니 하루 종일 마음이 흐뭇하고 행복하다.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저 큰 고급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아마도 돈은 많을는지는 몰라도 마음의 부(富)까지는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반세기 전부터 몸에 간직해 두면서 배우고 가르치고 나라에 충성하던 군대정신과 학교생활의 애국애족이 노후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고 있다. 그 중에 태극기가 중시이 되어 있다.
✿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수련. 군대정신 학교생활 등이 움직여서 값지고 보람된 삶이 있었던 3가지 사례가 있다.
선인들이 책에서 남긴 생활의 지혜를 내 것으로 해서 응용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一切唯心造가 주로 영향을 끼친 3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 1.벌초하고 묘사지내면서 있었던 사연.
★ 2군데 편지 1장이 가져다 준 위력에 대한 뿌듯함.
★ 3.하루하루를 보람되게 살아가고자 노력을 해보는데 대한 사례이야기다.
★ 1.벌초와 묘사에 대한 내 생각은…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고 좋아하게 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어릴 적에 즐겁게 놀았던 미풍양속에 대한 추억의 그리움이 있어서 조국에 대한 애정이 아직까지 시들어지지 않고 있다. 좌우명 태극기 한시 등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양식(糧食)이 있어서 마음만은 언제나 이팔청춘이다. 지금을 살아가는데 큰 자산이 되고 있다. 얼마 전 벌초 묘사를 하고 난 후 회상 해 본 내 생각이다. 해마다 음력 시월이 되면 시제(時祭)의 행사로 묘사(墓祀)를 지낸다.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간직해 내려온 벌초 묘사는 선대가 물려 준 고귀한 미풍양속이다. 묘사에 앞서 추석이 되기 전에 벌초를 한다. 벌초 묘사를 이런 저런 사유로 기피하는 자식들 세대를 보면서 그리고 급변하게 사라져가는 민속고유의 미풍양속을 간직하고자하는 애달픈 마음에서 울어 나온 내 심정을 토로해 보고 싶다. 조상들 묘소 벌초는 이제 우리 세대들의 몫이다. 50대 미만도 많이 있지만 벌초나 묘사나 참여자가 드물다. 사유는 여러 가지라 탓 할 수가 없다. 우리 집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 혼자만이라도 다짐을 해 보았다. “나도 50년 전 어릴 때는 열심히 참여했지만 그 후 직업상 불참을 한 경우가 더 많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다시 열심히 참여하고 있으니 대대로 내려온 미풍양속의 좋은 점은 고이 간직하면서 지켜나가자. 그리고 나 같은 이 또 있을 터인 즉 나만이라도 지조를 지켜서 벌초묘사 정성을 다하자. 내일 당장 벌초하러가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이렇게 마음을 먹게 된 것도 마음이 만들어 낸 일(一切唯心造)이다. 묘소가 있는 산은 우리 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멧돼지도 나오는 등 혼자가기가 두렵지만 내겐 톱과 낫 호루라기와 휴대폰이 있다. 무엇보다 굳은 의지가 뒷받침이 된다. 어릴 적에 가보면서 겪었던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작용하는 그런 의지다. 서너 마을을 지나고 억새풀이 우거진 논두렁과 산 밑 밭을 지나 언덕을 넘어서 산을 올랐다. 50년 전부터 갔던 벌초 묘사 길이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논밭에 곡식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고 비닐로 덮여있다. 그 시절 마을은 두어 채 기와집에 대부분 초가집이었고 남녀노소 사람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양옥집에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들만 있다. 같은 마을 같은 길 같은 산으로 가는데 왜 이렇게 오랜 세월 흘러서 한 오백년 전처럼 되었는지 마음이 쓸쓸하고 우울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운이 솟아나기도 한다. 참 오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다. 50년 전 어린 시절 20년 동안 살았던 고향의 모습에서 지난 500년을 살다간 선조들을 본 것 같아 “난 지금 한 오백년을 살아가고 있구나!”하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마음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서 느낀 그리움이다.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태어나 25년까지는 조선시대처럼 살았었다. 호롱불 우물물 핫바지 부채 달구지 전기 수도가 없었다. 자전거만 달랑 근대식 교통이었다. 옛 날의 모든 삶을 그대로 이어받아 살았었던 중학생시절까지의 생활이었다. 가난한 농가에다 6.25전쟁의 후유증도 있어서 더욱 처참했던 삶이었는데 지나고나니 그리워진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서 더욱 깊은 향수에 젖게 된다. 그 시절에는 년 중 많은 민속행사가 있어서 허탈했던 삶에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었지. 따뜻한 민족의 정서도 남아있지 않은가! 설 보름 단오를 비롯해서 절기가 바뀔 때마다 민속놀이 행사를 거창하게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설 추석 묘사 정도만 남아있다. 한식이나 벌초 묘사는 아직까지 의식(儀式)을 하고 있다. 조상을 숭배(崇拜)하는 민족정신의 혼이 담긴 의식이기 때문이다…. ⌟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면서 산을 올랐다. 먼 옛날로 한번 돌아가 보는 계기로 삼아 체험도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면서다. 산 위에 올라가서 아득한 천지를 바라보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좋은 산을 두고 뭐 그리 멀리까지 등산할 필요가 있나? 50년 전까지 보름이 되면 높은 산 올라가서 달 불을 놓았는데 높고 낮은 수백 개 산봉우리마다 높이 솟아오르던 그 연기의 장엄함도 떠올리게 한다. 한동안 감회에 젖고 난 후 선대묘소에 벌초를 했다. 산행을 겸해서 벌초를 함께하니 정성이 더해진다. 전혀 일로 생각되지 않고 숭모와 도의를 다한다는 강한 정신이 뿌리를 내린다. 산행과 함께 1石 3鳥를 잡는 그런 기분이다. 조상이 계신 곳 3평의 무덤이 새삼 성스럽고 거룩하게 보인다. 벌초를 다하고 나서 잔을 놓고 술을 따른 후 절을 했다. 아득한 저 멀리 가야산과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천지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적셨다. 무한의 세월과 자연에서 유한한 인생의 초라함도 느껴본다.
✿ 신神이나 조상이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마음이 대신 보면 된다. 마음이 결정해서 3평의 무덤에 오니 아름답고 기이한 천지의 신비로움과 함께 하게 되었다. 똑같은 일이라도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은 제각각 다르다.
앞으로 이 묘소 벌초는 내가 도맡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는 등. 이런저런 미련을 남기고 하산을 했다. 산골마을 한 집에서 새로 집을 짓고 있다. 별장인 듯 보였는데 궁금해서 집짓는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집 여기까지 짓는데 얼마나 들었는지요? 한 2억 넘게 들었겠군요?” 하니 젊은 분은“2억요? 여기까지 6천만 원 들었습니다. 내가 목수거든요. 자재는 다 사서하고 일은 내가 다 하지요”한다. 이래저래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이런이런 일 좀 부탁하면 되겠느냐?”고 하니 “좋지요! 믿어주세요!”한다. 벌초길 내려오니 한결 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오백년 전부터 조상이 물려준 이곳 벌초와 묘사는 내게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도록 해 주는구나! 이 모든 것은 조상이 베풀어준 은덕(恩德)이다. 조상의 영혼은 길이길이 후손들을 지켜주고 참되게 살아가는 신의암시를 깨우쳐주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앞으로 벌초묘사를 더욱 정성을 다해서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산을 내려오면서 옛 성인의 한시도 생각나서 읊어보았다. 요즈음은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옛 성인(聖人)이 지은 한시와 연관을 시켜보려는 습관이 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즐거운 한시로, 삶이 괴로울 때는 귀양살이 하면서 남긴 한시로 시름을 달래본다. 몇 줄의 글에서 평생을 살아간 옛 사람을 만나면서다. 언제 어디서나 자연과 인생을 상호 공존해서 살아갔던 그 삶을 알 수 있다. 옛 성인들이 남겨준 한시는 즐거울 때 지은 한시보다 괴롭고 한(恨)이 맺혀 서러울 때 지어서 남긴 시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다. 살아가면서 찾아드는 조그만 불편이나 괴로운 일들을 몇 줄의 한시로 모두 날려버리고 위안으로 삼았던 것이다. 가난하고 고달팠던 조상들의 삶은 지금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못살았던 옛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하며 마음을 달래면서 뜻있게 살아갔지만 모두가 잘사는 우리 시대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하다. 자살 율 세계 1위다. 옛 날이나 지금이나 자연은 변함이 없다. 옛 중국 선비 (소식1036~1101)가 지은 기러기 인생을 중얼거리면서 적막한 산골짝을 뒤로하고 산골 마을을 내려왔다.
♣ 기러기 인생(소식:1036~1101년 중국선비26세 때 지은 시)
• 人生到處知何似 : 정처 없는 우리 인생 무엇과 같을까
• 應似飛鴻踏雪泥 : 논밭에서 배회하는 저 기러기 같을까.
• 泥上偶然留指爪 : 어쩌다 잠시 내려와 발자국을 남기지만
• 鴻飛那復計東西 : 저 기러기 날아가면 행방을 어찌 알리.
• 老僧已死成新塔 : 노승은 이미 죽어 사리탑이 새로 서고
• 壞璧無由見舊題 : 절의 벽은 무너져서 글씨가 간곳없네.
• 往日崎嶇還記否 : 힘들었던 지난 날 아직 기억나는 가
• 路長人困蹇驢斯 : 먼 길에 사람은 지치고 나귀는 절면서 울며 갔었지!
✿ 2.효자문(孝子門) 이전을 위한 지원 자금이 필요한데…
문중에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온 효자문이 있다. 이런 저런 사유(현재의 환경 여건상 진출입을 할 수 없고 건물이 노후가 된 점 등)로 이건移建이 필요한 실정에 놓여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청 담당 부서와 문화재청 담당위원장 등으로부터 이건의 필요성과 이건 시 소요되는 자금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인허認許가 필요하다.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서 인허를 받아야 하고 또 자금도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관계자들로부터의 의견을 모두 모우기가 힘들다고 한다. 너 댓 번 회의도하고 현지 답방도해서 설명을 해도 결정을 내려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마지못해 종친인 주손(冑孫)으로부터 도움을 청해 왔다. 두 세군데 담당 책임자들에게 이해를 돕도록 이건에 필요한 사정을 편지로 적어 보내야 한다고 하면서 편지를 좀 써 달라는 부탁이다. 2군데 보내야하니 어떤 식으로든지 편지내용을 알아서 자필로 직접 좀 써주면 좋겠다는 부탁이다. 각각 자필로 2장씩 써서 전달을 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문화재 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관계자들과의 회의결과 이전과 함께 지원금도 승낙한다는 최종 연락이 왔다는 통보였다. 2년을 두고두고 노력해도 안 되더니 아재 편지 1장으로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고 하면서 역시 붓은 칼보다 강하다고 좋아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새벽에 손수 손으로 쓴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원본을 복사해둔 편지 내용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건 사정에 관한 간곡한 내용을 칠언절구七言絶句형식으로 엮어놓은 모습이다. 편지 한 장에 몇 억億짜리 이건 비를 성공시킨 셈이다. 옛 선비가 남긴 한시는 5백년이 흘러간 후에도 계속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
영원을 사는 길이 무엇인지 힌트를 준다.
✿ 3. 나이에 따라 요구되는 생활신조는? (2019년 9월)
청년기에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장년기에는 가치관과 신념이 필요하다. 노년기에는 삶의 지혜와 모범이 있어야 한다. 책에서 본 핵심 내용을 보고 한번 연관시켜 본 사례이야기다. 스스로 하는 일은 보람도 느끼고 칭찬도 얻게 되니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나이도 지긋하니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시켜서 부탁받아 하는 일도 별로 없지만, 미리 선수(先手)쳐서 기선을 잡는 것 그 또한 좋은 처세술임을 일찍부터 익혀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알아서 먼저 하자. 의구심이 나는 것은 한 번 더 물어봐서 확인을 하자. 경우에 따라서는 자존심도 버려야 내가 이기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어느 날 기관장이 의논을 하러왔다. 가을 행사에 국화 화분을 좀 놓아서 전시를 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될는지요? 라고 문의를 해 왔다. “아! 그러세요? 내가 한 번 해 볼까요?”하니 흔쾌히 도움을 요청한다.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이야기를 한다. 국화 심고 이틀만 지나면 시들어 죽는다. 모양이 안 좋다 는 등 등. 이야기를 하거나 말거나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어서 실행에 옮겼다. 땅에서 자란 국화를 9월에 화분에 옮겼다. 지금까지 건재하게 살고 있다. 그윽한 향기와 함께 아직까지 두 달 동안 계속해서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모두들 의아해하면서 모범을 보여준데 대해 감사해 마지않는다. 봄부터 화분에 심어서 가꾸면 물주는 것이라든지 등등 말도 못할 정도로 일손이 많이 간다. 노하우는 별 것 아니다. 봄부터 8월까지 화단에서 자란 건강하고 좋은 국화를 8월 중 화분에 옮겨 심는 것이다. 옮겨심기 2~3일 전에 뿌리와 줄기를 둘러치기를 한 후 옮기는 것이다. 화분에는 물과 양분의 지님이 좋은 질흙과 거름을 적당하게 배합해서 한다. 몇 십 년 전 있었던 다른 사례이야기다. 높은? 분이 온다고 하는데 현관에 화분 좋은 것 좀 놓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한다. 일단 대답부터 승낙해 놓고 궁리를 했다. 뒷산에 가서 소나무 가지를 베어 분재용 화분에 심어서 현관에 두었다. 그 높은? 분이 감탄을 하면서 “이거 나 줄 수 없느냐?”고 한다. 내가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고했다. 두어 달 전시해 놓고나니 잎이 서서히 말라진다. 화분을 치웠다. 그 분재는 뒷산에 가서 짧고 굵은 멋진 소나무 가지를 베어서 화분에 심은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실토를 했다. 그 경험을 살려서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인용해서 잘 써먹었다. 그런 전시효과를 배우게 된 스승은 정주영회장이다. 6.25 전쟁당시 미국 대통령이 부산 유엔군묘소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UN군 묘지를 파란잔디로 만들어야하는데 모두 어떻게 할 줄 몰라 걱정을 하는데 정주영회장이 하겠다고했다. 묘지 주변에 보리씨를 심었다. 멀리서 비행기로 본 묘지는 파란 잔디 같았다. 정주영회장의 사업에 대한 두뇌는 세상이 다 아는 천재다. 하루를 위해 한번을 위해 애쓰며 노력하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시벽(詩癖)(매요신:중국북송시대 대표적시인1002生~1060卒)
人間詩癖勝錢癖 : 인간의 시벽이 돈 욕심보다 더해서
搜索肝脾過幾春 : 애타게 시구 찾다 몇 봄이나 보냈던고.
囊橐無嫌貧似舊 : 주머니 빈 것 상관 않아 가난은 변함없고
風騷有喜句多新 : 시 읊어 새 시구 찾는 것만 기뻐했다네.
但將苦意摩層宙 : 단지 높은 하늘 만져보려 괴로워했을 뿐
莫計終窮涉暮津 : 곤궁 속에 저승갈일 따져보질 않았다네.
◆ 매요신은 시에 고질이 든 시인이었다. 관직에 있었으나 성리학적 이상의 영향을 받아 문학이 현 시대의 생활을 반영해서 비평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일상적인 사건과 보통 사람들 속에서 소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