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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출애굽기 3 : 7-8
제목: 고난 후의 영광
일시: 2009. 8. 23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하나님의 구속과 축복의 계획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가나안으로 이끌어진 사건일 것이다. 많은 신학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죄로부터의 구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애굽은 세상이요 죄의 노예로 있는 상태이며 사망의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가나안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통치가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으로 상징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계획은 놀라운 계획이다. 애굽의 종 되었던 이스라엘백성을 구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내시겠다는 계획이다. 종의 신분이었던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계획하신 것이다. 주님의 계획은 폐기 처분해야 할 우리를 다시 고쳐 쓰시기로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시기 보다는 복주시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입히시고 먹이시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당신 백성 삼으셨기에 우리를 보호하시고 끝까지 책임지신다.
오늘 본문의 7절은 고난이다. 8절은 영광이다. 하지만 7절과 8절 사이는 하루 아침에 옮겨진 것이 아니다. 40년이 걸렸다. 광야생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데, 40년의 세월을 필요로 하셨다. 왜 그 세월이 필요했을까? 그 세월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백성을 위한 시기이다. 이스라엘백성에게는 가나안 땅을 위한 축복의 그릇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은 준비되어 있지만, 그 계획에 적합한 우리의 그릇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준비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아니한 것이다.
II. 그릇 만드는 방법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데 통과해야 할 의례가 있다.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이다. 그 광야의 길은 고난이고 역경이다. 통과해야할 시련의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은 가나안에 합당한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축복하시기로 하시면서 그 축복에 합당한 그릇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얻게 되는 축복은 광야를 건너고 난 다음에 주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벗어 나올 때 소풍 나오듯이 편안히 나오지 않았다.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다. 바로는 장자의 죽음이라는 마지막 10번째 재앙 후에 마지못해 이스라엘을 보내었지만, 본전이 생각이 났는지 군대를 동원하여 뒤를 따른다. 한편 이스라엘은 마침 비하히롯 곁 해변에 장막을 치고 몰려 있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쫓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백성을 모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이다. 다시는 과거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홍해를 통해 확실한 점을 찍게 한 것이다.
예)나로호가 언제 발사되느냐 마느냐를 이야기하고 있다. 러시아기술진이 전혀 우리 한국 사람을 배제하고 있다고 한다. 무슨 기술 때문인가? 결국 위성의 기술은 그 무거운 몸체를 들어올려 궤도에 진입시키는 기술이다. 인공위성은 지구궤도 올라가서 정지해 있으면서 지구를 돌기 위해서는 3만 6천 km 상공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지궤도에 올려놓는 인공위성은 보통 3단식으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 연료이다. 나로호의 경우는 총 140톤정도의 무게인데, 추진체의 중량이 130통이다. 나로호 발사를 위해서 드는 돈이 5000억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왜 그리 많은 연료가 필요하고 돈이 필요한가? 문제는 바로 대기권 때문이다. 대기권의 힘 때문에 그렇게 많은 연료가 들게 되는 것이다. 홍해를 건너는 것은 바로의 대기권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이후에 이스라엘백성들은 뭐든지 호락호락하게 얻은 것이 없다. 이스라엘이 홍해의 위기에서 구원을 얻고 수르 광야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사흘 동안 마실 물을 얻지 못했다. 마라에 이르렀는데, 그 물은 쓴 물이어서 먹을 수 없었다. 그때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부르짖고 하나님의 지시로 한 나뭇가지를 그 물에 넣으니 쓴게 없어져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정을 진행하며 엘림에 이르러 물샘 12과 종려나무 70주를 만나게 된다.
엘림을 떠나 계속 진행하여 시내 산에 이르기 전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은 배고픔으로 모세를 원망한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16:3) 그때 하나님께서는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시게 된다. 아침에는 만나를 주시고 저녁식사로는 메추라기를 주어 고기를 먹게 하셨다.
왜 꼭 광야를 거쳐야 했는가? 광야의 여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위해 가나안이라는 화려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배경그림 작업인 것이다. 축복하신다고 하고 자유케 하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이렇게 고생스럽게 하는가라고 불평할 수 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왜 그림을 안 그리시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주님은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그저 작업만 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좀 답답하게 여겨질 수 있다. 주님 언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보입니까? 여전히 적막하고 황량하며 전갈과 도적 때만 보입니다. 벌써 몇 년의 세월이 지난 것입니까 라고 불평하기도 한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러했다. 그 불평은 우리의 불평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님이 못들은 척 계속 우리를 광야로 이끄신다 하더라도 알아야 할 사실은 본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배경색을 넣고 계시다는 것이다. 마침내 때가 되면 주님은 그림을 그리신다. 이때 사용되는 색과 라인이 명확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광야생활은 가나안을 그리기 위해 필수코스였다. 운동을 열심히 한 후에 다음의 영광이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한 후에 그 결실이 있다. 우리의 여정은 순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고난의 과정이 있는가? 다음 단계를 위한 즉, 축복의 자리를 위한 준비단계임을 알라. 대전제가 되는 것이다.
김진홍목사님이 간증을 하고 설교를 할 때 경상도사투리에 힘없이 설교를 한다. 그럼에도 청계천빈민가들 이야기가 나오고 감옥이야기가 나오고 하면 쭉 빨려 들어간다. 칼잠을 자고 살인자들과 함께 있고... 그러면 나는 저러한 경험이 없네 라고 안타까워한다.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드는 공정과정에 있는 것이다.
물론 홍해와 같은 큰 문제를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는다. 배고프고 목마르게 해 달라고 청하지 않는다. 내게 질병이나 큰 문제가 있게 해 달라고 육체의 가시를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그것을 허락하실 때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축복을 주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이 광야길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겠다. 시련이 변장된 축복으로 삼겠다.
III. 광야의 의미가 무엇인가?
7절에서 8절로 옮겨가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냥 광야를 걷게 하신 것이 아니다. 그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8:2). 하나님의 의도가 있으신 것이다. 하나님이 그러한 공정과정을 두고 그 시기를 거치는 이유는 이스라엘로 겸손하게 하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건너야 할 것이 홍해가 아니고 아우토반이었으면 이스라엘백성은 감사함을 몰랐을 것이다. 마라의 쓴물을 거치지 않고 바로 엘림의 단물을 마셨다면 그 물의 가치를 몰랐을 것이다. 배고픔과 추위를 몰랐다면 만나와 메추라기의 축복을 망각했을 것이다. 광야라는 과정이 없이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 그 풍성한 축복을 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신8:12,13)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답은 신명기 8장 14절 이후에 나온다. “두렵건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또 두렵건데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명기 8: 14-)
광야는 이스라엘백성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하는 일이 없고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일 우리의 한계에 부딪혀 보지 않고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내가 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지인이 많아서 그렇다고 교만해할 수 있다. 내가 전략을 잘 짰고 탁월한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땀을 흘리고 역시 나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축복의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높일 것이다. 고난과 역경의 강물을 건너야 하는 이유는 겸손하여 나를 비우고 그곳에 하나님으로 채우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있는 시련은 나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로 영광을 돌려야 한다. 나의 그릇을 넓힌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내게 아무리 많은 것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로부터임을 고백하는 순간 썩은 부분이다. 주님을 위하여 하지 않고 나의 이름으로 한 것은 하나님의 저울에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아니하는 것이다.
예)비록 방위병이지만, 훈련을 받을 때가 1월이었다. 얼마나 추운지 추위로 인해서 고생을 했다. 2주차가 되었을 때, 조치원훈련소의 군인교회에서 나를 부르는 전갈이 왔다. 특별히 작은 시간을 내어서 올라갔는데, 거기에 대학원선배군목목사님이 계신 것 아닌가? 늘 탁구도 같이 치던 분인데... 대위의 계급장을 달고 말이다. 작대기 2개도 크게 보였는데, 완전히 군기가 들었다. 그런데 그분이 이리와요 하면서 통닭을 두 마리를 내어 놓았다. 그렇게 맛있게 정신없이 먹었던 적이 없다. 그것을 다 먹었다. 군대에서 처음에 신병교육을 하는 것은 사회의 때를 벗기고 군대의 계급사회의 정신을 넣기 위해서이다. 신병교육이 없으면 군인이 생기지를 않는다. 저는 무엇보다 그 어려울 때 통닭을 두 마리 사 오신 목사님을 기억한다. 그 동안 함께 식사도 하고 대접도 받고 했지만, 통닭을 먹은 것 중에 그렇게 맛있게 먹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 그 목사님을 잊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에게 그냥 엘림의 단물을 주지 않으신다. 그냥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지 않으신다. 그냥 가나안을 가슴에 퍽 안겨주지 않으신다.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신다.
광야의 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골탕먹이시려고 계획하신 것이 아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길을 여신다. 수많은 장애물이 있었던 광야의 여정이 재수 없게 주어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 이루어진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길을 여신다. 홍해를 여신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모든 장애물들을 헤쳐 나가신다. 목마름과 배고픔과 대적들과 질병들의 장애물을 이겨내신다. 홍해의 기적은 열리는 기적이다. 광야의 길도 여호와께서 열어놓으시는 것이다. 요단강도 그렇게 열어놓으신다.
예)경한형제의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은 길인 것이다.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은 열려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으로 설명되어진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 사는 사람들은 혹 닫혀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열어 가신다. 광야를 걷는 것 같아도 결국 그것이 가나안으로의 인도하심을 알게 된다.
IV.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홍해가 앞에 있어도 절망하지 말라. 마라의 쓴물을 맛보아도 엘림의 단물을 기대하라. 배고픔이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채워주신다. 내가 지금 경험하는 광야의 삶은 축복에로의 여정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라. 요단강을 열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라. 이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애굽에서 나오고 광야생활을 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광야의 이 삶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라. 광야의 고난을 통해서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라.
오늘은 특별히 침례식이 있었다. 물속에 들어가고 다시 나온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물속에 들어감은 죽음이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를 건넘과 같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죽음을 건넌 것이다. 우리는 먼저 죽어야 한다. 애굽에 대해 죽어야 한다. 세상에 대해 죽은 자여야 한다. 관계가 끊어져야 한다. 홍해를 통해서 관계가 끊어진 것이다.
그리고 물속에서 나온다. 그것은 생명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나온 것이다.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침례는 사망과 부활을 의미한다. 그 모든 것이 은혜이다. 그 핵심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것이다.
주님의 영광도 십자가를 거친 이후이다. 그러한 주님과 함께 있게 되면 주님의 고난에도 동참하고 주님의 영광에도 동참하게 될 것이다. 출애굽, 광야생활, 그리고 가나안 입성의 전 여정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머물러서 나아가야 한다. 주 안에서 주님과 더불어 고난도 받고 광야도 걷지만, 주님과 더불어 광야의 승리와 가나안의 축복을 경험하기를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