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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존할 수 있을까 | ||||||||||||||||||||||||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을 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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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위염이라고 한다. 사랑니를 뽑았고 그러느라 한시간 동안 턱이 빠진 채로 있었고, 그래서 먹고픈 것도 못먹고 좋아하는 술도 못먹고, 그리고 구럼비 바위가 파괴되는 사진을 봤고.. 심지어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청탁받고 다시 이 영화를 생생하게 떠올렸다. 같이 사는 친구에게 <그을린 사랑>에 대한 원고를 써야한다고 하니 바로 얼굴을 찡그리며 그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을 수 있겠다고 한다.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복통이 명치 쪽으로 움직인다. 넌 못 알아볼거야. 아주 아름답거든.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어설프게 잠들었다가 깨서는 카타르의 도하에서 환승을 위해 내렸다. 공항 안에 기도실이 있다. 여기는 중동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쓴 여인네들이 화장품 진열장에서 이러저러한 화장품을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구경 중인 낯선 풍경. 베이루트행 비행기를 타려면 공항건물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했다. 그 버스에서 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말을 건다. 레바논의 트리폴리 출신인데 몇 년 전에 호주로 이민가서 살다가 휴가차 가족과 함께 가는 중이란다. 이름은 나왈이라고 했다. 이름을 듣고는 속으로 쿵!하고 뭔가 내려앉았다. 나왈은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다. ‘영어로 그을린 사랑의 원제가 뭐더라?’ 하는 사이 버스가 도착했고, 우리는 눈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부모로 보이는 나이든 남자분과 히잡을 쓴 여성분이 있었다. 나왈은 히잡을 쓰지 않았다. 물어볼 영어실력이 될 리가 없다. 다만 다시 한 번 영화를 떠올리며 작은 한숨을 내쉰다. 낯선 이방인을 반기고 외국어로 인사를 하며 재밌어하던 어머니의 고향 동네 아줌마들은 ‘나왈 마르완’의 이름과 사진을 보고는 표정이 변한다. 전쟁이나 내전이나 분쟁의 고통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말하기 힘들다. 나왈도 자신이 알게 된 진실 앞에 입을 다물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켜보는 사람들, 다른 세대의 사람들의 숙명인 거리가 오히려 진실을 보는 데는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자신들의 겪은 이야기 속에는 자신들의 평가가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 좌석은 오른쪽 창가자리였다. 높은 곳에서 땅을 구경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러면 뭔가 초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집착들이 내려놓아진다. 땅에서는 심각한 일들이 고도가 높아지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아무렇지도 않아진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에서부터는 도시와 길들 그리고 나머지는 사막이다. 아무 것도 없는 황토색의 땅. 길이 보이다가도 황토색으로 먼지를 뒤집어썼는지 지워진 부분도 보인다. 사막에서는 유일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책에서 읽은 말들을 떠올린다. 그러다가 푸른 빛이 돌기 시작하더니 바위로 된 지형이 바로 아래에 펼쳐진다. 가파르게 멀어지는 땅. 곳곳에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도시가 펼쳐진다. 베이루트다. 도하에서 만난 나왈이 알려준 대로 레바논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해오던 지역으로 고대 이집트 사원과 로마시대의 유적과 십자군 요새가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비블로스에 가보려고 했으나 중간에 포기했다. 시내 중심가에는 로마시대 목욕탕 유적지가 있다고 했다. 폭격을 맞은 자리를 치우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근처에는 시계탑을 중심으로 정부청사 같은 건물들과 이웃한 블록에는 명품 쇼핑몰들이 자리잡고 그 뒤편으로 공사 중인 건물들이 보였다. 그리고 곳곳에 총탄과 폭격의 흔적이 보였다. 폭격을 맞은 채로 쓰러져가는 빈 건물들도 있었다. 그리고 물가는 예상보다 더 비싸고 수도인 베이루트에선 더했다. 한참 개발 중인 명품 쇼핑몰과 폭격으로 방치된 건물들만 눈에 들어온 건 아니었다. 아랍어로 쓰인 성경,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히잡을 쓴 채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 도심 한가운데 있던 바리케이트와 총을 들고 지키고 선 군인, 그리고 총탄자국이 남아있던 교회의 모습이 레바논에 도착한 첫날 본 것이었다. 낯선 것 투성이었다. 회의장은 횡단보도가 없는 거리를 두 번 건너는 곳에 위치한 아주 비싼 호텔이었다. 회의 동안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쓰고 가끔 사진을 찍고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는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다. 통역에 대한 배려가 없는 회의였고, 같이 간 친구들은 하루하루 소식을 전하고 언론에 보낼 글을 쓰느라 바빴다. 이곳에 내가 왜 온 걸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답답해하며 읽을 수 있는 자료들을 조금씩 읽기도 했다. 그러다가 집속탄의 폭격 후 오염되어 제거작업이 진행 중인 나바티예 지역으로 갔을 때 받았던 동화책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어린이들에게 집속탄의 위험을 알리는 내용이었는데, 나의 조카에게 일상적으로 산과 들로 다닐 때 조심하라는 경고로 가득찬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 충격으로 말도 안되는 일상이 현실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기 위해, 그리고 희망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잔느가 홀로 어머니의 고향에 찾아가 어머니가 겪은 일들을 알아내고 어머니의 유언이 어떤 뜻인지 알아내었던 것처럼.
최근 썩 튼튼하진 않아도 나름 건강하고 병원갈 일이 없을 것 같은 몸에 이상이 생기고, 심지어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마음도 약해져서 몸의 통증에 쉽사리 휘둘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얻게 된 통찰은 고통 역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바라보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다른 것은 희망이었다. 분노의 끈을 끊겠다는 희망이었고 그것은 다짐이었다. 의사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이라며 무슨 일을 하냐며 물어봤다. 그래. 어쩌면 하려던 일을 제대로 안해서 받게 된 스트레스였을지도 모른다. 그 질문을 받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구럼비가 파괴되고 있는 사진이었다. 주변에서는 간혹 왜 사회의 아픈 곳에 유독 관심을 가지고 삶을 즐기지 않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질문당하는 당시에는 나에 대한 그들의 평가가 불편했으나 조금 지난 지금은 그들의 애정도 함께 보인다. 하지만 나는 나의 다짐을 어길 생각이 없다. 이 세상에 만연한 고통들은 어쩌면 내가 겪을 수도 있을만한 일들이다. 얼마나 참혹한지 예상을 뛰어넘는 비참함에 내가 버틸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다만 그런 순간이 왔을 때에도 믿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나의 고통을 기억해주고 이것을 중단하거나 없애려는 마음을 나누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끝끝내 갖고 싶은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것 역시 선택이다. 분노와 복수를 선택할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와 화해를 선택할 것인지. 증오보다 사랑이 크면 평화는 가능하다. 그리고 아마도 인류 역사상 불행한 길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생존하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그런 선택 때문일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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