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 가쿠노다테2 - 무사들의 마을 가쿠노다테에 도착해 거리를 걸어서 구경하다!
10월 29일 아키타현 동북부 뉴토(乳頭)산 자락 '뉴토온천향' 에서 구로유 온천 黒湯温泉 등
5개 온천을 구경하고 내려와 버스를 타고 센보쿠시 다자와코역 田沢湖駅 에 내려서
다시 신칸센 기차를 타고는 30분 만에 무사들의 옛 마을 가쿠노다테 (角館) 에 도착합니다.
사무라이 들의 마을 가쿠노다테 (角館) 은 1620년 아시나 ( 蘆名) 가문이 세운 성곽으로 도호쿠
의 작은 교토로 불리는데... 다마치 부케야시키 도리와 우치마치 부케야시키 도리로
나뉘며 300년전 교토에서 옮긴 400그루 벚나무로 4월 하순에 벚꽃 축제 가 열린다고 합니다.
수양 벚꽃 은 교토에서 머나먼 여기 아키타현의 가쿠노다테 마을로 시집 온 부인의 향수병 을 달래기
위해 심었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향수병 은 무서운 질병이니... 고종의 딸 덕혜옹주 는
쓰시마(대마도) 번주 소 다케유키 백작과 결혼하는데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 결혼에 비유 될러나?
덕혜 옹주 는 13세에 일본으로 강제 유학 을 떠나 19세에 소 다케유키 와 정략 결혼을 해 딸 까지 낳았으나
정신질환 으로 병원에 입원을 합니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문화의 차이 를 극복하지 못하는등 향수병
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인데 게다가 딸은 실종 되니 정신병 이 심해지자 1955년에는 이혼까지 당합니다.
덕혜옹주 는 1962년 귀국해서는 창덕궁 에서 지내다가 1989년에 죽었는데 일본 문화학원 복식
박물관의 오누마 스나오 이사장이 "옹주가 입었던 한복" 을 도쿄 한국문화원 에 기증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옛 무사들의 저택을 부케야시키 武家屋敦(무가옥돈) 라고 부르는데.... 대개는
목조 기와집 으로 대나무 못 을 썼으며 집 주위에는 황토로 된 흙담 을 두른게 특징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약한 오래된 농가 주택 민슈쿠 로 찾아가야 하는데 택시를 타면 간단
하고.... 그 외 하네고 버스나 인력거(15분 2천엔) 를 탈수도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거리구경을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배낭을 메고 걸어가기로 합니다.
역에서 5~6분 가량을 걸으면 도로는 왼쪽으로 휘게 되니 길 따라 5분쯤 더 걸으면
우체국 을 지나 네거리 가 나오고 여기서 아래쪽(왼쪽)은 다마치 부케야시키
도리이고 오른쪽(위쪽) 은 우치마치 부케야시키 도리 內町武家屋敷通り 입니다.
나카마치 中町(중정) 길을 걷다가 먼저 보이는 이시구로 저택 (石黑家) 은 1809년
분카 6년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저택으로 단아한 멋을 풍기는 정원으로
유명하며 촛불그림자를 투영하는 채광창이 유명하다는데 입장료는 300엔 입니다.
아오야나기 저택 (靑柳家)은 문을 들어서면 말을 묶어두던 돌이 남아있고 안쪽에는 아오야나기 가문
의 비밀창고 등 소박물관들이 있으며 천장에 화재예방 물결무늬 가 있고 입장료는 500엔 입니다.
그 위쪽에 가쿠노다테 마을전승관 角館町傳承館 은 산벚나무 껍질로 만든 카바자이쿠와 단풍나무를 쪼개
엮은 바구니인 이타야자이쿠 제작 모습을 볼수 있으며 마을전시물도 보이는데 입장료는 300엔입니다.
여기 왼쪽 골목은 고비토마치 小人町(소인정) 라고 하는데 학문을 장려 했던 무가 저택 으로
1860년대에 지은 집에서 이타이세공을 실연한다는 마츠모토 저택이 있다고 하며
또 사타케(佐竹) 역사문화 박물관 에 원래는 오노자키 저택으로 현재는 공민관 이 자리합니다.
그리고 마스가타 라고 적의 침입에 대비해 마을이 훤히 보이지 않도록 열쇠형으로 구부러지게
만든 도로를 지나면 이와하시 저택 (岩橋家)이니 에도시대 말기에 지어 증개축을 하지
않아 중급 무사 주택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정원에 수령 300년의 벚나무가 볼만합니다.
이와하시 저택 岩橋家(암교가)은 에도시대 말기에 지어 증개축을 하지않아 중급 무사주택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데....... 정원에 수령 300년의 벚나무 가 볼만하며 집은 무료 인 탓인지 방문
이며 창문 까지 활짝 열려진 채로 개방 되어 있는데... 관리인은 평소에는 여기 상주하지는 않는듯 하네요?
가와라다 저택 (河原田家)은 옛날에 본 곳인데 검게 칠한 판자로 된 담장이 긴 저택인데, 엿보기 창 등 바쿠후
시대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창고는 무기 등 무사저택 자료관으로 개방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300엔 입니다.
검은 담장 중간에 밖으로 뚫린 작은 "엿보기 창" 은 외부 출입이 어려웠던 여자들이 집 밖을 엿보던 용도
로 만들었다는데... 바쿠후 시대의 건축양식을 보여줍니다. 대문은 무사와 하인이 출입하는 문 이
서로 다르며 무사의 방은 짝수의다다미 (가로 180cm, 세로 90cm 2장이 1평) 가 놓인 정사각형 입니다.
무사 저택의 미닫이 문을 바라보니 문득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에 나오는 문정영
의 시 “남평문씨본리세거지” 가 떠오릅니다. "한옥의 창문을 공부하다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다“ 라는 말의 봉창 을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에서 소개 받았다."
"내다보는 것이 窓(창)" 이라면 "여는 것이 門(문)" 이다.분합문, 미닫이문, 미서기문
에는 바라지창, 광창등 크고 작은 창 들이 있다. 그 "창" 으로 조상들은 능소화
를 내다 보았을 것이나...... "문" 을 열고 좀처럼 길가 까지는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봉창" 은 내다보는 창 이 아니라 "빛과 공기" 가 드나드는 문 이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의 봉창 은 사랑채
의 창문 위에 달려있다. 종이로 발라놓은 "봉창은 햇볕으로 열 수" 있으나 사람이 두드리면
열리지 않는다. 누가 봉창을 두드렸을까. 들어갈수 없는 문을 두드려 난감해진 조상은 도대체 누구 였을까?
돌과 묵은 이끼가 있는 "연못에도 봉창" 이 있다. 문 을 열고 연못 까지 걸어간 조상은
거기서 한울 같은 잉어를 만나 "물 위에 봉창" 을 만들었으리라.... "구름 문"
하나를 연못 에 풀어 놓았으리라. 동본(同本) 이나 나는 대구 달성 에 가본 적은 없다.
황인숙씨는 덧붙이기를 “아버지 우리 조상 중에는 벼슬한 사람이 없어요?“ 밥먹다 말고 중학교 1학년생 맏딸
의 "자다가도 봉창 두드리는" 물음에 아버지는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우물쭈물 하다가.... “왜, 있지.
황희정승 이라고”, “아 그 유명한...” 내 얼굴도 언니처럼 환해졌으니... 황희 정승의 본관은 장수, 우리는 평해!
고려말에 붓뚜겅에 목화씨 를 숨겨 왔다는 사람이 문익점 선생으로 대구 달성 고택이 “남평문씨본리
세거지” 이다. 황희 본관 장수는 전라도인데 남평 또한 나주니 전라도 라... 고향이 근처라고 보았나?
오다노 저택 (小田野家)은 우치마치 입구에 있는 집으로 1900년 화재 이후 재건했지만
야쿠이몬이나 방의 구조는 에도시대 그대로 라고 하며 입장료는 무료라고 합니다.
히요케 광장 내거리에서 반대로 아래쪽(왼쪽)으로 내려가면 도로를
건너 다마치 부케야시키도리 (田町武家屋敷通り) 가 나옵니다.
에도 시대에 아키타를 다스린 사타케(佐竹) 혈족인 이마미야(今宮) 가문의 무사 저택 이 몰려있던
구역으로, 바쿠후(幕府) 시대에는 80여채의 집이 있었다지만 현재는 불과 6채가 남아 있습니다.
안도가문 (安藤家)은 옛모습을 간직한채 가업인 장류의 제조판매를 이어오고 있다고 하며 그 옆에
니시노미야 저택 (西宮家)은 소장품과 전시실 및 창고를 개방하고 있다는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