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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석 장발이 1925년 79위 시복식 후 그린 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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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인 선교사 플뢰레가 펜으로 그린 김대건 신부 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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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채석 화백이 1971년 실제 모습과 가깝게 그린 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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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진 화백이 그린 김대건 신부 성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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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신학교 개교 160주년을 기념해 이콘연구소가 제작한 이콘. 예수님을 중심으로 좌측이 김대건 신부 우측이 최양업 신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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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석 장발 화백이 1920년 그린 최초의 김대건 신부 초상. |
키 176㎝에 근엄함을 더해주는 수염, 인자하면서도 굳건한 눈빛까지. 기다란 도포 자락 흩날리며 박해 시대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신자를 믿음으로 이끈 성 김대건 신부의 모습이다.
한국 교회에서 김대건 신부만큼 초상과 조각 작품이 많은 성인도 없다. 직접 마주한 적은 없어도 우리가 ‘김대건 신부’하면 쉽게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이유다.
그만큼 한국 교회 첫 사제로서 김대건 신부는 모두에게 신앙의 모범이다. 7월 5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맞아 한국 교회 미술사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 김대건 신부의 모습을 살펴봤다.
최초의 성 김대건 신부 초상화
김대건 신부 초상은 1920년대부터 미술가들에 의해 등장하기 시작한다.
최초의 초상화는 우석 장발(루도비코, 1901~2001) 화백이 그린 작품. 한국 서양화단의 개척자이자 성 미술의 선구자인 그는 당시 용산신학교 교장이었던 기낭(Guinand, 1872~1944) 신부 사제 수품 은경축을 기념해 김대건 신부 초상을 제작했다.
이때 성 앵베르 주교, 성 샤스탕 신부, 성 모방 신부 등 3위 초상을 함께 그렸는데, 현재 그의 작품이 어디에 소장돼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한자 복(福)과 길(吉)을 배경으로 둥글둥글한 김대건 신부의 인상이 이채롭다.
어떤 초상화가 최초인가?뒤이어 제작된 김대건 신부 초상은 1925년 프랑스인 선교사 플뢰레 (Fleuret)가 그린 김대건 신부 성화다. 당시 79위 시복식을 앞두고 그려진 플뢰레의 작품은 펜화다. 그러나 플뢰레의 작품이 최초의 김대건 신부 초상화라는 설도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발행하는 월간지 「교회와 역사」 제452호에 따르면, 방상근(석문 가롤로)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프랑스 선교사 플뢰레의 펜화 그림이 1896년 간행된 「조선과 프랑스 선교사들」이란 책에 실려 있는 것을 찾아냈다.
장발 화백의 그림보다 30여 년 앞서 프랑스 선교사가 그린 게 최초라는 것이다.
1925년 장발은 로마에서 거행된 시복식 참석 후 1928~1929년 사이 ‘복자 김대건 성화’를 새로 제작한다.
상본으로 만들어져 신자들에게 배포된 그림은 현재 절두산순교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김대건 신부의 인상이 한결 부드럽고 색채가 자연스러운 게 특징이다.
정채석·문학진 화백
실제 김대건 신부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모습을 그린 이는 동양화가 정채석(비오) 화백이다.
서울 혜화동 대신학교와 미리내성지, 절두산순교기념관에 보관돼 있던 김대건 신부 유해를 계측한 결과를 토대로 1971년 복자화를 제작했다. 정갈하게 입은 검은색 수단에 모관(비레뚬)을 쓴 모습은 굳건한 의지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1982년 서양화가 문학진(토마스 아퀴나스) 화백이 그린 ‘김대건 신부 성인화’는 한국 교회 공식 성인 영정 제1호로 지정된 성화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표준 영정제작위원회 의뢰를 받아 제작된 이 성인화는 김대건 신부의 영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상 빛을 상징하는 흰 도포에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 영대를 한 김대건 신부는 성경 위에 양손을 올려놓은 채 오른손에는 십자고상을 들고 있다.
엄혹했던 박해시대를 상징하는 어두운 배경을 타고 뒤로는 우뚝 솟은 산들이 눈에 띈다. 김대건 신부의 신앙이 산보다 높음을 암시해준다.
성 김대건 신부 현양
한국 교회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인 성 김대건 신부의 초상과 조각 작품은 서울 명동성당을 비롯해 솔뫼ㆍ절두산ㆍ새남터순교성지와 성당, 수도회 등 각지에 셀 수 없이 많다.
이와 더불어 한국 교회는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후속 사업으로 1997년부터 김대건 신부의 유해 등 해부학적 자료를 토대로 얼굴을 실제에 가깝게 복원해내기도 했다.
또 올해 서울 대신학교 개교 160주년을 맞아 최근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 이콘까지 제작되는 등 김대건 신부 현양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정훈 기자 (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