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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던 날
지은이: 어주자 (본명 조정래)
김 사장이 충무로 인쇄 공장에서 퇴근하여 정릉 아파트로 돌아온 시간은 저녁 9시가 조금 넘어서다. 넓은 거실에는 TV 화면에 줄기세포 연구 대학교수 얼굴이 비치고... 대학 4년 큰딸 아이와 대학 2년 아들이 어느 넘이 사기꾼인가? 하고 격론을 벌이느라고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 넣는 아버지에게는 당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아니했다.
"엄마는?..."
윗도리를 벗으면서 김 사장이 아이들을 보고 말하자, 아들이
“엄마, 연말 동창회 모임에 갔어요.”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퐁퐁거렸다. 그러고는 화들짝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어디 가냐?”
“친구들이 대학로에서 한잔하자고 문자가 왔어요.”
그러자 큰딸이 대뜸 동생을 보고 빽 소리를 질렀다.
“너 내 카드로 술값 치루면 알아서 해!"
“알았어... 다음 달 안으로 누나에게 빌린 돈은 갚고 카드도 돌려줄꺼야 씨...”
딸에게 라면 하나 끓여 달라고 하고는, 김 사장이 식탁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우편물이 어지러웠다. 그중 하나를 들었다.
'귀하도 남한강변 아름다운 별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지금 전화 주시길...'
아름다운 강변에 유럽풍 별장 사진이 박힌 전단지다. 김 사장이 죽기 전에 그런 별장 주인공이 될 일이 없다. 그 다음 우편물을 들었다. 아파트 관리비다. 지난달보다 12만원이 더 올라간 요금이다. 겨울철 난방비가 가산된 것 같았다. 그 다음 우편물을 들었다.
'귀하의 차량을 국고로 차압...'
이미 석 달 넘게 미루어진 교통위반 벌금 쪽지다. 한 손으로 딸이 끓여준 라면을 먹으면서 그 다음 우편물을 들었다.
의료보험 독촉장이다. 3만원 인상된 금액이다.
"시펄넘들... 인터넷 때문에 종이 인쇄 일도 없는 마당에 뭐든지 일방적으로 올려."
김 사장도 몰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김 사장은 의료보험 독촉장 종이를 힘없이 거실 바닥에 날렸다. 그 다음 우편물을 들었다. 아들 새 학기 공납금 통지서다. 2백 하고도...헉. 그 다음 봉투를 들었다. 자동차 세금 쪽지다.
"아이고... 씨펄, 내일 아침 편지함을 작살을 내든지!..."
엄동설한에 국가경제 전선 지키는 김 사장에게 정부로부터 순정 편지는 오지 아니하고, 웬 넘의 돈 달라는 쪽지들은 그리도 많은가?
김 사장은 갑자기 먹던 라면을 두고... 문득 어제 저녁 아내와 한바탕 말싸움을 벌인 것을 생각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자고나면 돈 타령하던 아내가 드디어 누구처럼 노래방 도우미라도 나가야겠다고 탄식을 하자, 김 사장이 피식 웃으면서,
“당신 나이 아지매는 노래방 도우미로도 안 써준다.”하며, 싸움을 피하려고 했지만 아내는 마치 길가는 타인처럼
“당신한테 시집오면 이 세상 오만 것 다 사주고 호강시켜 준다 캐 놓고 시집와서 마음 편히 돈 써본 적이 없다"며 칭얼칭얼거렸다.
사실 김 사장은 충무로 인쇄 골목에서 한때는 잘 나가는 사장이었다. 그런데 그넘의 IT문화인가 뭔가 하고, IMF 폭탄이 충무로 인쇄골목에 직격탄으로 날아와 한마디로 인쇄골목이 풍지박산이 되었다. 인쇄 일도 이젠 전부 컴퓨터로 하고, 그 흔한 인쇄물이 사라지고 책은 이미 다 죽었다. 한마디로 종이인쇄 문화는 이제 구시대 문화로 접어들었다. 그러니 자연 은행돈을 빌리게 되고... 설상가상 큰형님에게 보증서 준 것이 또 문제되어 일주일이 멀다하고 은행에서 독촉이 오는 신세다.
이미 6개월 전에 충무로 인쇄 공장 문을 닫고 노동시장에 기웃거리는 정 사장 말을 빌리면, 당체 새벽 인력시장에도 50이 넘은 남정네는 일단 3-40대 노동인력에 밀려서 2-3일 나가서 기다려도 공치기가 일쑤라 한다. 김 사장은 공장 문을 닫고 아파트 공사장이라도 나가고 싶어도 당체 자신이 없다.
이런 자신을 이해하기는커녕 아내는 한 달 생활비로 늘 불만이다. 말이 자가용시대에 잘 먹고 잘사는 시대라지만, 아내는 이미 몸무게가 60kg을 넘어서 지난달 다이어트 비용만 50만원이 넘게 들어간 모양이다. 신혼 때는 알뜰했지만 한때 수입이 좋아지고, TV방송들이 생각도 없이 아침 설거지 끝난 주부들 앞에서 젊은 남자 스포츠 강사들 근육통을 세워 놓고 오만 포즈를 다 취하고... 시골 시어머니들은 콩밭에 왼종일 엎드려 일하는데 도시 며느리들은 너도 나도 주부들이 스포츠 센타로 가서 옷을 벗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지만 당체 몸무게가 내려 갈 리는 없었다.
운동을 하면 뭐하나... 동호인들과 어울려 푸짐하게 잘 먹고 잘 마시고 집에 와서는 잠만 자니 자동으로 대한민국 모든 주부들이 비만전쟁을 치루는 사이, 어께에 무거운 각종 독촉장을 너덜거리게 걸치고 사는 가장들은 초죽음이 되는 시절이다.
허긴 언젠가 소래포구에 김 사장이 가보니 대낮부터 푸짐한 바다요리에 낮술 들고 얼굴이 벌게진 사람들은 90% 이상 여성들이었다. 점심시간에 인현시장에 3천5백 원짜리 된장국을 먹을까... 4천 원짜리 고깃살이 조금 들어간 선지국밥을 먹을까... 처자식을 위하여 오백 원 차이로 갈등하면서 먹는 남편들이 대낮부터 싱싱한 회를 먹는 아내들과 밤에 한판 붙으면 누가 이길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슨넘의 여자들이 모임이 그리도 많은지... 일주일이 멀다하고 무슨무슨 모임... 이라면서, 이젠 남한강이다 춘천까지 나돌았다. 요즈음 40대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모임은 띠 모임이란다. 고향도 묻지 마세요, 학교도 묻지 마세요, 그냥 동갑이면 고향친구처럼 야쟈 트고 같이 어울려 찐하게 노는 동호인 모임이란다.
지난 수십 년간 실물경제가 몇 년째 바닥을 치고 나도, 당체 정치하는 넘들은 이 땅의 50대 탈출구를 걱정하거나 이야기 하는 넘은 없고, 매일 돈 잘 버는 기업만 때려잡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기업을 잡아 족쳐야 정치 쪽으로 뇌물이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라는 분들도 있지만 좌우지간 이 땅의 50대 남자는 한마디로 죽을 맛이다.
먹던 라면을 밀치고 어제 마시다가 만 소주병 종이 병마개를 뽑고 아예 맥주잔 가득히 소주를 부어서는 TV 앞에 앉으니, 카메라맨들이 우르르 웬 사람을 따라가고 밀치고 엎치고 야단들이다. 뭐이여?... 자세히 보니 지난해 불문곡직하고 무조건 줄기세포 연구 박사에게 700억의 지원금이 나갔다고 아나운서가 말한다. 700억... 소리에 눈이 번쩍하여 화면을 보니 요 며칠 자주 등장하던 줄기세포인지 이파리 세포인지 하는 교수가 다시 화면 전체에 크로즈업되었다.
곧이어 총리인지 뭔지... 한동안 바닷가에 농사짓는다며 땅 투기했던 사람과 그 줄기세포 연구 박사하고 다정하게 얼굴이 크로즈업되고, 짜고 치는 고스톱에서 무슨 목돈 횡재를 했는지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흘렀다. 정권이 바뀌면 틀림없이 연구비 꼬불쳐 먹은 정치인 이름도 나올 것이 뻔한데 그저 국민은 줄기세포 하나면 대한민국이 잘 먹고 잘산다는 정치 사기꾼들 거들먹 허풍에 5천만이 로또처럼 들떠 있었다. 허긴 김 사장도 그 줄기세포 박사에 거는 기대가 컸다. 단 한 사람의 노력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놀고 먹어도 될 정도의 연구라고 오만 매스컴이 치켜세우니 인쇄골목에서 기계 세워 놓고 바둑만 뚜다가도 그 사람이 나오면 눈을 고정시키면서 희망을 걸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우째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딱한 사람들!..."
"야 이 자식들아, 나는 비록 의료보험도 제 때 못 내는 작은 인쇄소 사장이지만, 너희들처럼 국민 세금 더 뜯어먹으려고 지저분하게 돈 싸움박질은 안 한다, 이 써발넘들아!"
갑자기 버럭 고함을 질렀지만 아파트 안에는 김 사장 혼자뿐이다. 잘 이해가 안 되는 그넘의 줄기세포 이야기 끝에 수백 억 돈다발 이야기가 나오자 열이 올라서 벌컥벌컥 소주를 또 한잔 걸쳤다.
사람들아 사람들아, 이웃 쪽바리 나라는 그저 연구가는 연구실에 처박혀 연구만 하다가 어느 날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나서야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데... 우째 우리나라는 연구실 안에 있어야 할 박사 놈이 자꾸 TV에 나오고, 외국에 들락거리고, 정치 사기꾼들도 만나고...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면서 마이크 잡고 떠들 때부터 내 알아 봤지!...
이 추운 엄동설한에 좁은 골목길에 일생 김밥 팔아서 모은 돈을 허리 굽은 할머니가 대학 재단에 수십억 연구하라고 갖다 주면 그 돈으로 무슨 디지탈 방송 연구 한답시고 뻔질나게 외국만 쏘다니다가 결국 세운상가 고졸출신들에게 작품 의뢰하는 짓거리를 이미 보아 온 김 사장이니, 자연 혼 나간 사람처럼 혼자 거실에서 중얼중얼 하다가 또 소주 한잔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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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늦어서 딸도 나가고 아들도 나가고, 아내는 아직도 동창회 연말 모임에서 돌아올 줄 모른다. 그래... 너거들이 갈 곳 없는 이 땅의 50대 아빠 심사를 어찌 알꼬? TV 스위치를 확 꺼버리고는 먹다가 만 라면을 입에 안주로 처넣었지만 당체 자신이 오늘따라 무슨 혼이 나간 떠돌이 나그네처럼 서글퍼졌다.
갑자기 김 사장은 고함을 또 버럭 질렀다.
“지미 서숙 같은 세상 내일부터 태양이 꺼꾸로 솟아라! 내 그러면 이 헌사스런 도시를 떠나서 60년대로 돌아가리라!”
그래 그때처럼
아침 굶고
점심 거르고
저녁 못 먹었던 적이 있어도
이글이글 아궁이에 장작 군불지피고 마음 편히 살던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비록 허기짐은 있을지 모르지만
대학 등록금도 없고
아파트 관리비도 없고
의료보험 독촉장도 없고
국민건강보험 독촉장도 없고
자동차 환경 부담금도 없고
아내 다이어트 경비도 없고
아들, 딸, 아내의 핸드폰비도 없고
게이불 TV 수신요금도 없고
아파트 보일러 동파도 없고
사무실 관리비도 없고
은행보증 채무도 없고
납품대금 채무도 없고
전기세도 없고
수도세도 없고
카드 빚도 없고
마이너스 통장도 없고...
한마디로 걱정을 더덕더덕 달고 살아야 하는 이넘의 디지털 시대의 도시보다야 더 낳을 것 같았다. 소주를 다시 한잔 부어서 단숨에 마시니 목줄기가 쎄리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다. 술기가 오르니 생각도 갈팡질팡이다.
갑자기... 자가용 시대에 잘 산다 하지만, 자동차 하나에도 그넘의 돈 떼일 걱정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뭐라카노 이 서숙아! 니 갱상도 안동말로 조제 체울래? 부애를 체울래? 그럼 술 처마신 넘 넉두리 들어볼래? 자 똑똑히 들어봐!
자가용 시대 좋아하네. 곰곰히 생각하면 편리는 커녕 순 골치 덩어리야!
빨리 달리면 “속도위반”으로 딱지떼고,
서행하면 뒤에서 빵빵거리며 생 발광을 하고,
서 있으면 “주차위반”으로 딱지 떼고,
시동 안 걸리면 레카 차 불러야 하고,
안전벨트 안 해도 딱지 떼고,
선팅해도 딱지 떼고,
다리 하나 건너는 데도 1000원 달라 하고,
터널 입구 가로막아 놓고 지나갈 때마다 돈 달라 하고,
그넘의 국도에는 웬 카메라는 그리도 많은 거야!
고속도로처럼 훤하니 4차선 만들어 놓고 아이들 잠자는 새벽 한 시에도 학교 앞 차량 속도는 겨우 50k... 찰칵하고 돈 도장 찍어서 보내고.
오일 잊어 먹으면 엔진 붙어 버리고,
앞 차와 가벼운 접촉만 해도 머리 싸매고 죽는 시늉하면서 병원 가서 드러눕는 넘에게
오만 사정 해가면서 봐 달라고 해야 하고,
골목길에서 외제차 탄 놈 눈치 보면서 먼저 피해야 하고(김 사장 차는 티코다),
살금살금 무사고 운전 몇 년째 해도 보험은 돌려주는 돈은 없으면서 사고 한번 내고나면
보험금이 겁나게 올라가 버리고,
기름 값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자고나면 미친년 널 뛰듯이 올라가고...
뭣이여... 내가 시방 헛소리 하는 감?
그 꼴난 자동차 한 대 굴리는데 돈 뜯어가는 작당들이 어디 한 두건이래야 자가용을 굴리제!
어 춥고 취한다!
그래 맨 정신으로는 못 떠나니 소주 처마시고 술 취했을 때 이 도시를 떠나세.
에라지 이 숨 막히는 이 도시를 떠나세!
이보게 갈 곳이 있는가?
암 있지 있어.
그곳이 어디인고?...
바로 이곳이지!
소낙비에 둠벙이 보이고 앞산에는 까치가 우는 작평(鵲坪) 골로 가던지,
고려 충신이 아오라지 노래를 불렀던 두메산골 선평(仙坪) 으로 가던지,
일생을 청빈하게 무명의 선비로 살았던 솥절(小寺)골로 가던지,
영의정 자리 버리고 초가삼간 학당에 일생을 마쳤던 서미(墅嵋) 골 정 터로 가던지,
겨울이면 외다리 놓고 강 건너로 시집간 딸 기다리시던 홍 골로 들어가던지,
수년째 잡풀 우거진 손바닥만한 천수답이 버려져 있는 너리티 듬으로 가던지,
아우(왕건)에게 잡혀서 엉엉 울었던 울음산 더럭 바위 뒷골로 들어가던지,
밤새도록 펑펑 함박눈 덮어쓰던 화악산 촛대바위 골로 들어가던지,
늙은 총각이 건너편 묵밭을 처다 보고
니 팔자나 내 팔자나 미군 담요 깔-껬-나아 한숨짓던 육백마지기로 들어가던지,
돌아앉은 여자가 옥정(玉井)에 알몸으로 목욕하던 정살 뫼 약수터로 가던지,
물레방아 밤새도록 돌아가는데 우리 집에 저 먹퉁이는 코만 골고 잠자네 하던 대이리로 가던지,
중참 이고 갔더니 우리 영감 명 밭에서 내 치마 들추고 넘어지네 하던 대박골로 가던지.
석벽에 홍도화가 봄바람에 떨어져 어주자(漁舟者)와 놀아나던 육육봉(六六峯)으로 가던지,
흑황새가 헌사하던 도산(陶山)으로 가던지,
구름도 모르고 바람도 모르던 저부실 우망(憂忘)골로 가던지,
텅 빈 시골 버스 차장이
“고향 가요, 고향 가요!”
외치던 예천 지보 골로 가던지...
앞서가는 처자요 이 총각 마음에 들거던 어지간하면 몸을 한번 포개 보시더! 하던 개포, 풍양으로 가던지.
이 작은 조선 땅도 잘 살펴보면 걱정 없이 선인(仙人)으로 일생을 마칠 그런 좋은 곳이 참으로 많다네! 김 사장이 혼자 꿈꾸며 소주를 두어 병 비우자 갑자기 깊은 착각이 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 이름 없는 산 속에서 우편함도 없이 홀로 텐트를 치고 장작불 피우면서 겨울을 지내는 50대 남자의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소주에 취하여 그런 달콤한 꿈으로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잠에 곯아떨어지자 빈 소주병이 옆으로 쓰러져서 거실 불빛을 가득히 병 모가지 안으로 담고 있었다.
꼬구린 허리 아래로 50대 주름진 얼굴이 쇠뭉치보다 더 무겁게 안간힘으로 목을 겨우 부여잡고 있었다. 몇 번 코를 드르럭거리면서 골더니 갑자기 김 사장이 잠결에 씨익 웃기 시작했다. 천공(天空)이 낮아지고 함박눈이 쏟아지면서 아이처럼 그는 씨익 웃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골에 홀로 텐트 하나 쳐 놓고는 만만히 너울거리며 내리는 백설한풍에도 결코 춥다하지 아니하고 그는 매일 행복한 연기를 하늘로 올리고 있었다.
각종 세금 독촉장 딱지도 오지 아니하고, 생활비 징징거리는 아내도 보이지 아니하고, 카드 돌려막기로 가슴 철렁하게 하던 아들도 보이지 아니하고, 김 사장이 서울을 버리고 깊은 산중으로 도망쳐서 텐트 하나 쳐 놓고 사는 이 해 마지막 날은 건너 산중 마을에서 컹컹거리는 개소리만 들렸다.
달이 중천에 떠 있더니 어느덧 새해 새벽이 밝아 오자 하늘에서는 함박눈만 펑펑 내렸다. 이 산중에서 내일 얼어 죽어도 限도 願도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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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지 글
그름아 구름아 하는 넘의 친구 아내가 집을 나갔다.
살던 아파트가 차압당하고 어께가 축 처진 그 친구와 함께 소주 몇 병 같이 마시고 나서 그는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다.
이 엄동설한에 우째 살고 있나... 버석 얼어붙은 홍천강 줄기를 따라서 오지 산골을 올라가니 저만치 친구넘이
골 입구에 떨어진 낙엽처럼 덜덜 떨고 서 있었다.
친구넘이 반년 넘게 살고있는 허름한 텐트 안에 들어가니, 친구넘이 바로 건너편에 95세 연세로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 집에 달려가 성성하게 얼어음이 낀 김치를 갖고 오고, 내가 서울서 갖고 간 생막걸리를 부어라 마셔라 둘이 들이키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도망간 마누라 이야기에는 분노하더니, 서울에 두고 온 아이들 이야기에는,
"나는 못난 애비일세..."
하더니 울컥 침침해진 그의 눈에 거렁거렁 눈물을 달았다. 나도 늙어가는가 친구 눈물을 보자 속도 상하고 그런 친구를 버리고 간 아내도 야속했지만 어찌할 순가! 그래서 위로의 말로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아
엄동설한 깊은 산골짜기라하지만
밤이면 달 뜨고
조선 솔 밭 사이로
별 빛도 떨어지고
불알 늘어지게 장작 난로에 불 지피고
오늘처럼 사락사락 함박눈이라도 내린다면
어쩜 이 세상에서 자네가 제일 행복한지 모르네...
보시게...
앞산이나
뒷산이나
밤에 뜨는 저 달이나
달 없는 날 더욱 은은하게 흐르는 미리내나
오늘처럼 내리는 함박눈이 자네 보고 돈 달라 하지 않잖는가?
그러니
이 산속에 텐트 치고 사는 자네 너무 불행하다고 말게나!
......................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 친구 텐트를 나서는데,
텐트 안에서는 눈물을 멈추려고 그러는지 친구넘이 자꾸 헛기침을 했다.
성북동 어주자.
저를 따라서 노숙산중을 즐기는 젊은 분입니다.
요즈음 寒宿하기 제철이라서 강원도 구성포 깊은 산골에 가서 며칠 죽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