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의 성경 풀이에 궁금해할 지인들이 별로 없겠지만, 이런 글을 쓰고 있다(여덟).
갈릴리 호수의 항해와 1세기 목선의 실상: 고고학적 거점과 생태적 변수를 중심으로
예수님과 12제자, 총 13명의 성인이 몸을 실은 나뭇배가 물결을 거슬러 약 15킬로미터에 달하는 호수를 건너가려 한다. 이 배는 노가 고작 2개 혹은 4개 정도 달린 2,000년 전 로마 시대의 투박한 고기잡이 목선이다. 당시에는 현대와 같은 전문적인 여객선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기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일상적인 생업의 터전이었던 어선에 몸을 싣고 호수를 건너곤 했다. 이러한 역사적 정황은 멘델 눈(Mendel Nun)의 조사와 이스라엘 유물청(IAA)의 발굴 보고서를 통해 더욱 명확해졌다. 갈릴리 호수 연안을 따라 마그달라, 가버나움, 거라사 등 최소 16개 이상의 고대 항구 유적이 확인되었으며, 이는 당시 호수가 매우 활발한 경제적 교류와 이동의 장이었음을 입증한다(Mendel Nun, The Sea of Galilee: Newly Discovered Harbours from the New Testament Period, 1989, p.18).
이러한 항해의 물리적 실체는 1986년 기노사르(Ginosar) 인근 진흙층에서 발견된 이른바 ‘예수의 배’라 불리는 1세기 목선을 통해 증명된다. IAA의 조사 결과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사용된 것으로 판정된 이 배는 길이 약 8.2m, 폭 약 2.3m의 소형 어선이다(Shelley Wachsmann, The Excavations of an Ancient Boat in the Sea of Galilee, Atiqot 19, 1990, p.15). 구조상 노를 최대 4개까지 장착할 수 있었던 이 배는 예수님과 12제자가 탑승하기에 적치된 어구들을 정리한다면 충분히 수용 가능한 규모였다. 이 배가 발견된 지점과 주변 항구들의 배치는 당시 어선들이 단순히 고기를 잡는 용도를 넘어, 마을과 마을을 잇는 유일한 공공 운송 수단이자 '호숫길(Waterway)'의 주역이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갈릴리 호수의 고대 항로들은 데카폴리스(Decapolis) 도시들과 갈릴리 주요 정착지를 잇는 해상 교통로였다. 특히 가버나움에서 출발하여 호수 동편의 엔게브와 수시타로 이어지는 노선은 당시 가장 전략적인 뱃길 중 하나였다. 가버나움은 세관이 있을 정도로 번창한 상업 요충지였으며, 이곳에서 배를 타고 남동쪽으로 직진하면 수시타(히포스) 산성 도시의 항구 역할을 수행했던 엔게브에 닿게 된다. 또한 호수 동편의 엔게브에서 서편의 기넷롯(그노사르, 게네사렛) 항구로 오가는 것 역시 매우 자연스럽고 빈번한 경로였다. 게네사렛 평원은 갈릴리에서 가장 비옥한 농작물 산지였기에, 생산된 물자를 동편 데카폴리스 도시들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최단거리 항로가 필수적이었다(Jack Finegan, The Archeology of the New Testament, 1992, p.102).
각 항구의 정박 시설 규모는 이러한 항로의 당위성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한다. 가버나움 항구는 약 800m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배치된 여러 개의 돌출형 방파제(Pier)를 갖추고 있었으며, 각 방파제는 약 20~30m 길이로 호수 안쪽을 향해 뻗어 있어 15인승 규모의 목선 수십 척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물류 터미널의 기능을 수행했다(Nun, 1989, p.24). 호수 동편의 엔게브 항구에서는 약 200m에 이르는 거대한 곡선형 방파제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강한 서풍으로부터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공학적 설계였다. 요셉푸스(Josephus)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갈릴리 호수에는 약 230척 이상의 선박이 활동했는데, 이는 가버나움과 엔게브, 게네사렛을 잇는 뱃길이 오늘날의 정기 노선처럼 매우 조밀하게 운영되었음을 시사한다(Josephus, The Jewish War, 2.635).
예수님과 제자들이 호수 서쪽에서 배를 몰기 시작한 시각은 성경 본문을 통해 대략적으로 추산할 수 있다. 마가복음 4장 35절은 사건의 시작을 "그 날 저물 때에"라고 명시하고 있다. 유대식 시간 개념에서 저물 때란 해가 지기 직전인 오후 늦은 시각을 의미하며, 이는 갈릴리 호수의 기상학적 특성과 맞물려 항해의 난이도를 급격히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갈릴리 호수는 해수면보다 약 210m 낮은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오후 늦게 골란 고원(Golan Heights)에서 호수면으로 하강하는 차가운 기류가 갑작스러운 카타바틱 풍(Katabatic wind)을 일으키곤 한다. 이러한 저녁의 돌풍은 저녁 무렵 출발한 배의 전진을 가로막아 실제 속도를 시속 2km 내외로 급격히 하락시킨다. 요한복음 6장 19절에서 제자들이 "십여 리쯤 노를 저었다"고 기록된 시점이 이미 밤중이었음을 감안할 때, 이들은 해 질 무렵 출발하여 수 시간 동안 거친 파도와 사투를 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노를 젓는 인원이 베드로와 같은 어부 출신 제자들 4명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보통의 조건에서 시속 4.2km를 유지하던 배는 성경에 묘사된 큰 광풍 상황을 만나면 속도가 시속 1.5km 이하로 떨어져 10시간 이상의 사투가 불가피해진다. 제자들이 "밤 사경", 즉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목적지에 가까워졌다는 기록은(마태복음 14:25), 저녁에 출발한 항해가 밤을 꼬박 새우는 극한의 노동이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결론적으로 2,000년 전 갈릴리 호수의 항해는 발굴된 고대 항구들과 성경의 기록이 증언하듯, 예수님과 12제자가 저녁 무렵의 급변하는 바람을 뚫고 자연의 거친 저항에 맞서 나아갔던 처절한 삶과 신앙의 현장이었음을 보여준다.
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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