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일 강론 : 성령의 약속(요한 14,15-21)>(5.14.일)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간청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1. 빠리 유학시절인 2005-2006년, 동료 신부님들의 부모님들이 차례차례로 갑작스럽게 서거하셨습니다. 그 당시 프랑스 유학신부님들이 줄잡아 20명 남짓이었습니다.
우리 교구 후배였던 K 신부님의 아버지는 아침 7시경 볼일을 보러 자전거 타고 나가셨는데, 마구 추월하며 달려오던 차가 아버지를 치어버리고 뺑소니쳤습니다. 부친은 공중에 붕 떴다가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즉사하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차를 잡고 보니, 운전자는 만취상태였고, 자초지종을 물으니 횡설수설했답니다. 분명히 새벽 늦게까지 술을 엄청 많이 마셨을 것입니다.
아무튼 K 신부님은 급하게 비행기표를 구해서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운전자는 사람을 죽여놓고도 찾아와서 사죄하기는커녕, 변호사를 선임해서 해결하려 하고 또 부인만 보내서 선처를 호소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태에 화가 난 신부님은 “아버지 죽인 놈은 안 나타나고, 왜 딴 사람들만 자꾸 나타나는가!”라면서 그 부인에게 호통쳤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고 운전자가 나타나서 백죄사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운전자는 구속당했고, 17년이 지난 지금쯤은 형량을 다 마치고, 자유롭게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K 신부님의 부친 외에도 다른 신부님들의 부모님들이 여러 병으로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유학 동료신부님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저는 걱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죽기 살기로 박사학위를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아도, 유학생활 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도 고아가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2021년 6월 28일(월)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2. 1999년에 리용에서 석사학위논문 쓸 때는 두 눈에 회색 줄이 그어질 정도로 논문에 집중했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거울을 쳐다보다가 두 눈에 이상한 줄이 있어서 지우려 했지만 아무리 해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컴퓨터로 논문 쓴다고 6개월 동안 계속 같은 줄을 쳐다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고생 덕분에 2년 4개월 만에 “소화 데레사 성녀”에 관한 논문으로 영성신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에 빠리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쓸 때 하루 3-4시간 자면서, 식사 3시간, 미사와 기도 2시간 외의 시간을 전부 책상에 앉아서 논문 쓰는 데 썼습니다. 남들이 3-4년간 해야 할 공부를 1년 안에 끝내는 엄청난 중노동이었습니다. 우울증도 생기고, 유체이탈 경험도 있었지만, 매일 16시간 이상 논문작업을 한 결과, 박사수료학위를 마치고 귀국해서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는 못해도 가끔씩 연락드리고 찾아뵈었습니다. 그리고 1년 두 번 휴가 중에서 한 번은 부모님과 여행했습니다. 금강산, 백두산, 중국 북경, 연길, 상해, 일본,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이태리, 프랑스, 스위스, 동유럽 등 많이 다녔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는 언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죽지 않으시고, 우리를 늘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우리는 절대 고아가 아닙니다.
4. 예전에 제가 포항에 살 때, 회 먹을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를 먹을 때마다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바닷물이 아주 짠데, 회를 먹을 때는 왜 짠맛이 없을까?”라는 궁금증이었습니다.
물고기가 짠 소금물 속에 오랫동안 살아있었지만, 회를 먹을 때 짠맛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은 물고기를 소금에 넣었다가 빼내면 그 물고기의 맛은 금방 짠 맛이 되고 맙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같은 소금물인데도 불구하고, 물고기가 살아있을 때와 죽었을 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살아있을 때 짠 물을 먹고 살아도, 하느님이 물고기에게 바닷물의 염분을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고기가 죽으면 바닷물을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죽은 물고기를 소금물에 넣으면 짠맛을 지닌 물고기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에게 그런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살며 참된 생명력을 갖고 있으면 각자 고유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 수 있지만, 하느님의 생명력이 없다면 현세적인 것들에 찌들어 살 수밖에 없고, 속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5.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물속이 아니라 물 밖에 있으면 금방 죽습니다. 갈치 같은 물고기는 성질이 급해서, 잡고 나서 수족관에 빨리 넣지 않으면 금방 죽어버립니다. 물고기처럼 우리는 하느님 은총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 물을 뛰쳐나가서 세속의 물에서 살아간다면 우리 몸과 영혼은 찌들어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는 보호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각박하고 험난한 이 세상에서 거룩하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이정표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지 않으면 죽은 물고기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서 힘차게 꿈틀대는 물고기처럼,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생생하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
첫댓글 위원장님 덕분에 멀리서도
교중미사 후기를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감동 적이며
행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