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하여 더욱 귀한 인연
루나틱님 덕분으로 알게 된 숨은 명곡
A kind of magic 그리고
In the lap of the Gods
검색해보니
전자는 석달 전쯤
Jtbc 뉴스룸의 엔딩곡으로 나왔다 하는데
그날 주요 뉴스가 무엇이었기에
우리 손석희님 혹은 그 관계자들이
그 곡을 선정했을까 잠시 궁금
하지만 말그대로 아주 잠시만 궁금했을 뿐
요즘의 난 이래뵈도 시간이 모자란 사람
45년을 살다간 그의 세계는
너무도 깊고 넓어
지금만 하더라도 그보다 5년을 더 산 나를
숨차게 해
끝없이 듣고 싶고
해석하고 싶고
또 찧고 까불고 싶게 해
생전에 아부지가 그러셨지
82년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프로야구에 빠져
어느 정도였냐 하면
TV 화면 아랫단에
우천으로 경기가 순연되었단 자막이 지나가면
그 자리에 앉아 엉엉 우는
그런 나란 딸년을
심히 우려하시어
그 말씀 없던 분이 작정하고 말씀하셨지
바로 Sports, Screen, Sex라는 3S 정책에 대하여
피묻은 손으로 정권을 탈취한
찢어죽여도 모자랄 그 전두환이
국민들의 관심을 딴데로 돌리고자 취한
소위 우민화 정책
그 일환으로 출범시킨 프로야구
바로 거기에 다름 아닌 내 딸이 놀아난다 싶으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그때 아부지 안색이 정말 벌겋게 된 걸
나는 똑똑히 보았지
하지만 분명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의 그 숨막히던 6년을
버티게 해준 건
바로 이만수의 걸쭉한 홈런과
구대성의 시크한 강속구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부지는 그 후로 이불 아래서 가끔 어머니를 들볶으셨을 뿐
내겐 더 이상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기억
그래도 어쨌든
난 대학을 갔고
빠짐없이 투표를 했고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와 마찬가지의 선택을 했고
결과를 보며 희비도 함께 나누었고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 열사를 잃고 한없이 울었으며
부끄러움에 아주 가끔 최루탄을 맞았고
서준식 선생님의 강연과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조카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시국 얘기가 빠진 적 없이
그렇고 그렇게 지냄
지난 주 목요일
절친한 여고 때 친구 여덟 명과의 만남을 약속해 두고
당일 아침 발길을 돌려버림
그리고 또 덕천 메가박스에 보랩을 보러 감
어머니 혈압약을 급히 타러 가야한다는 핑계를
친구들 대부분은 곧이 믿지 않음
특히 경희는 작금의 내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단톡방 말고 개인톡으로도 우려를 표함
물론 영화 관람 후 혈압약을 타온 건 사실
나밖에 그걸 타올 사람은 없으니
문제는 그날이냐 그 다음날이냐
사실 보랩 이외의 화제로 대화에 임할 자신이 없어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만나
내게 현대사와 시국에 관한
숨은 얘기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던 착하고 박식한
조카 지웅이의 전화도 두번이나 피함
이로써 삼십 여년을 뛰어넘어 다시 떠오르는
아버지의 그때 그 말씀
옳거니, 이번엔 그 3S중 스크린!
그동안은 그래도
말아톤,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 왕의남자,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다큐 노무현입니다, 두 도시 이야기 등등
극장에서 네다섯 번을 반복 관람한 목록을 보나
때를 놓쳐 뒤늦게 IPtv로 수십 번을 만난
마더, 건축학개론, 광해 왕이 된 남자, 고지전 등으로 점철된 편력을 보나
얼마전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을 벌써 보고도 남았어야 하지만
도저히 볼 수가 없어
아무래도 봐지지가 않아
특히 거긴 유아인이 나옴에도
이런 나를 더 큰 죄책감으로 물들이는 말들
"그동안 좌빨선동영화에 지쳐 사람들이 보랩에 열광한다."
"지금이 그때보다 더한 국가 부도 상황인데 뭐하러 그런 걸 영화로 또 확인하냐. 그 시간에 보랩이나 한번 더 봐라."
2009년 5월
내가, 우리가 혹시 이러다
노무현 대통령을 잃었나
내가, 우리가 이러는 동안
끔찍하게도 박근혜, 이명박이
해방 공간의 친일파들처럼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석방 되는 건 아닌가
만에 하나 이러다
털끝 만큼이나마 아물어가던 세월호 어머니들의 가슴에
다시 더큰 못이 박히는 건 아닌가
두렵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문득
더욱
두렵다
무덤 속 아부지가
마지막이라며
한번만 더 말씀하시겠단다
힘들어도 영원히 도망치진 말라고
그 누구의 품에서든 울고 쉬어도 좋다고
하지만 다시 일어나라고
그래야 내 딸이라고
넌 그렇게 태어났다고
이제 두려움을 떨치고
선포한다, 달링!
프레디는 노무현이다
아니, 적어도 그 누구보다 노무현에 가깝다
그는 아웃사이더요
영원한 마이너다
인종, 종교에다 성정체성까지
참 가지가지다
그럼에도 그는
지겨울 법도 한 부적응자들을 맘에 담아
노래를 짓고 또 불렀다
파티에 누구를 초대할까 묻는 폴에게
그가 뭐라 답했던가
바로 people
별종 나무를 흔들어 떨어지는 사람들 모두
난쟁이, 거인, 곡예사, 또 무슨 줄루(?) 부족 등등
내 사랑 노무현은 어땠나
찢어지게 가난했고 또 법조인을 꿈꿨으면서도
감히 빨갱이 딸과 결혼
그것도 연좌제가 시퍼렇게 살아있던 그 엄혹한 시절에
그런 걸 문제삼지 않으면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저 친일파의 후손들이
대선 후보로 나온 그를 역시나 닦달
지금도 귀에 쟁쟁한
그때 그의 목소리
너무도 카랑카랑 당당했던
"이런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이만큼 섹시한 남자가 어디 있나
피아노 치는 프레디를 제외하곤
만약 하느님께서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저 둘 중 하나를 고르라 하신다면
그러니까 단 한순간만
권양숙이 되어
노무현에게 저 말을 듣든지
아님 메리가 되어
프레디의 'love of my life'를 피아노 연주와 함께 듣든지
둘다 되면 안될까요?
내년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한꺼번에
이쯤에서 심장이 떨려
더 이상은 못쓰겠다
첫댓글 😊
선생님, 비록 댓글이나마 길어질 듯하여 동트기 전 아예 컴퓨터방으로 왔습니다. 댓글엔 글자수 제한이 있다는 깨달음에 잠시 멈칫하다가 위와 같은 제 글을 무모히 이곳에 올리는 용기를 또 발휘만 한다면 매사에 못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으로 일단 시작하려 합니다. 하지만 때론 하고픈 말이 하고픈 말을 가로막는 이런 경우도 있나 봅니다. 가슴 속에 선생님을 향한 무수한 말들이 떠오르는데 쉽게 정돈이 되지 않습니다. 마치 작금의 제 가방 속, 서랍 속과 같이, 어쩌면 대체로의 제 심리 상태와 같이. 지난 3년 반 동안 인서의 성장을 통해, 또 가끔 올려주신 카페의 주옥같은 글들을 통해 선생님께 한없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단 한
번, 감사의 인사도 올리지 못한 채 또 느닷없는 이별을 맞았습니다. 특히 올해 초, 어떤 댓글에서 언급하신 ‘비전향 장기수’ 그리고 ‘신념’이란 단어가 가슴에 박혀 한동안을 선생님과 술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배되어 살았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언제부턴가 참빛 분들과의 만남이 어렵고 두려웠습니다. 무엇보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인서를 향한 제 불안이 커지고 어미로서의 자책감이 더 불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심할 땐 차라리 이런 엄마라면 없는 게 인서한테 더 좋지 않겠나 하는 절망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밥이라도 챙겨주고 가끔 절실한 기도라도 올리려면 내가 살아있어야 하지 않겠나, 더구나 노구의
어머니와 아픈 언니도 나만 바라보고 사는데 싶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며칠 전 허접한 글로 이번에 떠나심을 작정한 선생님과 몇몇 친구들에게 가지 말라, 뒷북을 치며 소매를 붙들긴 했습니다만 각자 이유는 달라도 저 못지않은 고뇌와 갈등 속에 내린 결정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이 섭섭합니다. 특히 이광욱 선생님께서 포착하신 이번 일일찻집에 관한 사진들을 보다가 주문 받는 인서를 한없이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계신 선민 어머니의 모습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난 어미라도 단 한 번 저런 눈으로 아이를 감싼 적이 없는데 싶었고, 덩달아 저까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많이들 지쳐
있고, 하여 누군가의 따듯한 말 한마디, 사려 깊은 눈빛 하나를 갈구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선민 어머니께 대신 말씀 좀 전해주십시오. 조금만 더 이곳 참빛에서 우리 아몽 선생님과 더불어 그 깊고 선한 기운을 뿜어주심 안 되겠느냐고. 만약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제가 사운드 빵빵한 센텀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싱어롱으로다 보여드리고 술도 한 잔 사겠다고. 또 눈물이 납니다. 이제 아침상을 차리고 인서를 깨워야할 시간이네요. 못다 드린 말씀이 생각나면 다시 찾겠습니다.
올리신 글 몇번 읽었습니다. 읽고 나서는 가보지 않던 과거도 가보게 되고, 애써 막아내던 기억들도 선명해지는 방법 까지 알게 되어서 겁나기도 하고요. 가행께서 올린 기도 때문에 카페를 방문하다 ,인서엄마의 글을 읽고 누군가가 댓글을 달면 나도 달아야지 하며 더 자주 들락 거렸습니다. 엄지손가락 두개로는 양이 안찰것 같아 시간 만들어서 댓글 달아야 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댓글이 이 아침에 갑자기 5개가 달리는걸 반갑게 확인 했습니다.
해서 댓글을 보는 순간 ,지나쳐온 길을 다급히 확인 하고 유턴하기 위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것 같았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죠, 리태 어머니도 또 리태도.^^ 리태란 이름을 쓰고 맘속으로 부르니 장연지 선생님도 생각나고 다영, 다은, 그리고 연호도 그립네요. 초등에 내려오실 때마다 인서를 비롯해 젖비린내 폴폴 나던 1학년들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시던 연지샘이 눈앞에 선합니다. 내년이면 그때 그 아이들이 벌써 6학년이라니 가끔은 믿어지지가 않아요. 김태국 선생님이라고 한의사 선생님이 종종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이들은 크게 마련이고 사람은 살게 마련이라고. 힘들어 죽니 어쩌니 해도 때되면 입으로 밥이 들어가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맘이 달라진다고. 그런데 혹시 영화는 보셨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 영화를 보고 후유증이 넘 커서 다른 사람들 반응을 애타게 살폈어요. 나랑 비슷한 사람이 많으면 거기 묻혀 안심을 하게요. 다행히 기대만큼 많긴 했지만 다들 온라인상의 낯선이들일 뿐 제 주변인은 아니었어요. 윗글 속에 나오는 경희란 친구도 저랑 세 번을 같이 보며 감동은 하고 ost 구입은 했으나 딱 거기까지였어요. 그 애는 내일 벡스코에 신랑이랑 조용필 콘서트를 보러 간다죠. 저도 두달쯤 전인가 조용필 팬클럽 회원인 초등 동창이 공짜표를 줘서 창원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창밖의 여자, 킬리만자로의 표범, 못찾겠다 꾀꼬리, 어제 오늘 그리고, 여행을 떠나요, 바운스 등등을 목이 터져라 따라부르다
그 뒤로 사흘동안 몸살이 났어요. 나이 먹은 죄로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또 나이 먹은 덕에 여운은 단출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마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기라도 하려는듯 끈적끈적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공감어린 소통과 사무친 글쓰기에 목을 매게 되어 거의 1년 만에 제 블로그도 찾고 또 이곳 참빛 카페에도 몽유병 환자처럼 흘러 들었습니다. 그랬기에 님의 '애써 막아내던 기억들도 선명해지는 방법을 알게 되어 겁이 난다' 하신 말씀이 샘물처럼 반가웠습니다. 꼭 프레디가 아니어도 '기억'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젠 유턴하여 확인하신 것들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길 기다리며 조금 눈을 붙이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것은 설레는 일이에요. 하지만 이 느낌을 길게 가져 가지 못해요.그래서 더 자주자주 떠오르는 것들이 많은건지 모르겠습니다. 실은 지난 일요일이 되어서야 영화를 보았습니다. 보고 싶었지만 안봐야 한다고 생각했었지요. ㅋ 이건 흡사 퀸의 노래가 좋아서 듣고 싶었던 중등 시절의 치기 같은것 같습니다. 그땐 '파이프라인' 이라는 연주곡 기타를 좀 치는 친구와 몇몇 친구들 사이에선 퀸은 진정한 락앤롤이 아니었으니까요. 글을 읽고 나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영화를 연출한 사람이 혹여 퀸의 모습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보다 인트로의 라이브 전주 만으로도 베이스의 울림은 가슴을 울리고 그 울림은 친구몰래 신청했던 음악다방 스피커의 울림과 맞닿고. 다 듣고 나온 나는 서면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ㅋ 또 잠시 ,그 버스를 탔으니, 애써 지우려던 기억에 쉽게 정차 합니다. 지금의 나는 왜 부끄러운지? 가만 보니 늘 부끄러웠던 한 아이는 화장대에 앉아 어미의 화장품을 이리저리 바르며 신기해 합니다, 그 좋아하던 시간은 느닷없는 큰 부끄러움으로 변해버리고 늘 부끄러운 기억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고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묻어둔 긴 시간이 기억에는 머무르지 않았지만 지금의 내가 된 것이겠지요?
인서언니, 저 준호엄마예요. 덕분에 영화를 봤어요. 어제밤에 혼자서요. 고맙습니다^^
음악은 언니의 ‘베스트 프렌드’였어요. 어릴 때부터, 전 학교에 가고 없고 tv도 나오지 않는 무료한 낮 시간이면 라디오를 벗 삼아 지내던 언니였는데 그걸 듣다 귀에 꽂히는 노래가 있으면 그 가수와 제목을 기억해두곤 제게 음반을 사오라 부탁했었죠. 신기했던 건 조용필, 전영록, 이치현과 벗님들, 임재범, 015B, 솔리드, 신승훈, 이승환, 신해철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음악에 있어선 언니의 유일한 통역사였던 제가 완전히 문외한이었던 팝송 분야, 특히 락이나 헤비메탈 쪽 요구를 제가 어떻게 알아듣고 용케도 음반을 구해올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그때 퀸뿐만 아니라 익스트림, 핑크 플로이드, 메탈리카, 스틸하트, 건즈
앤 로지즈 등등이 내뿜는 강렬한 사운드가 종일 온 집안을 강타하곤 했는데 거실에서 신문을 보시거나 붓글씨를 쓰시던 아버지 이마가 절로 찌푸려지셨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저 역시 아버지 표현에 따르자면 ‘중 염불하는 소리’ 혹은 ‘이 앓는 소리’류였던 임지훈(사랑의 썰물), 노고지리(찻잔), 산울림(너의 의미), 김광석(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 주로 취해있던 터라 상기의 언니 애청곡들이 ‘낯설고 시끄러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요. 다만 퀸의 노래는 그런 협소하고 편향된 제 귀에조차 단번에 쏙쏙 박히는 몇몇 곡들이 있어 CD를 바꾸어 재생하거나 할 때 앨범 재킷을 유심히 살펴본 적은 있었어요. 아마도 리태
아빠께서 ‘퀸은 진정한 락앤롤이 아니’라 하신 것과 조금은 맥이 통하는 기억일 수 있겠다고 혼자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퀸의 원조 골수팬분들이 어째서 이 영화를 그토록 아쉬워하고 있는지는 뒤늦게 그들의 여러 공연 실황과 BBC의 다큐, 그리고 인터뷰 영상들을 찾아보며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날카로운 ‘첫사랑’으로 오랫동안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134분 동안이 그야말로 찰나처럼 느껴졌고 저와 함께 상영관을 가득 메운 수백 명의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누군가에게(그 누군가가 옆 사람인지, 아니면 프레디, 혹은 퀸인지 헷갈리게 하는) 누가 될까 죽이고 또 죽이는 분위기였습니다. 어
떤 사람이 SNS에 ‘내가 지금 뭘 본거지?’하는 10자평을 올려놨는데 공감이 수십 개가 붙었습니다. 경희란 친구는 첫 관람에서 엔딩곡이 다 끝나도록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더니 “너무 좋은데, 진짜 너무 좋은데, 그래도, 내 아들은 저렇게 안 살았으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다 했습니다. 그 대화가, 그 생각이 가끔은 너무 미안합니다, 역시 그 누군가에게. 어쨌든 영화 때문에, 프레디 덕분에 먼지 뽀얗게 앉은 디지털 피아노 앞에도 다시 앉고, 퀸 노래 가사로 영어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정작 연주하고픈 건 ‘보헤미안 랩소디’와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지윤이 엄마한테 꼭 한 번 부탁하고 싶습니다만)
이건만 아쉬운 대로 아버지의 애창곡 ‘고향 생각’을 쳤더니 어머니께서 좋아하십니다. 아버지께선 종종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사별을 미리 슬퍼하시며 어머니께 이런 노래를 불러드리기도 하셨답니다. ‘이 몸이 학이나 되어 나래 우에다 사랑을 싣고 천 리 만 리라도 이별 없는 곳에 내려 주오.’ 그러고 보면 저희 어머니도 메리만큼이나 행복한 여인인 것 같습니다. 또 글이 길어졌습니다. 어머니 화장품 몰래 바르셨다는 님 고백을 읽고, 혹시나 쑥스러워 하실 수도 있으니 얼른 답을 드려야지 했는데 그동안 소홀했던 만큼을 보충하느라 몰아서 언니한테 다녀오고 또 김장 준비까지 하느라 늦었습니다. 매번 소통에 응해주셔서 깊이 감사드
립니다.
아, 준호 엄마! 오랜만입니다. 너무 반갑고요.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뜬금없는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신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믿고 봐주시기까지 하셔서요. 영화 보시면서 혹시 우셨어요? 왠지 그러셨을 것 같아요. 전 요즘도 퀸 노래 듣고 거의 매일 울고 있습니다. 특히 Save me! 좋은 곡일수록 아껴 들어야 하는데 뒷일은 아랑곳 않고 완전 폭풍 리스닝 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속은 전에 없이 많이 후련하네요. 다른 가족들 속이야 어찌됐든. 그래도 일단은 제가 살고 봐야 가족도 있고 나라도 있고.^^ 설거지나 요리 등 집안일 할 때도 퀸 노래 들으며 하니까 하기 싫은 맘이 싹 사라지네요. 내일 김장할 때도 메들리로 틀어놓고
해야겠습니다. 어머니껜 저걸로 영어 공부하는 중이라 말씀드렸더니 괴로워도 참으시는 듯합니다. 제가 즐겨 듣는 메들리, 님 톡으로 보내드릴게요. 학수고대하던 ‘퀸 락 몬트리올’ 재개봉이 내년 초로 정해질 것 같다는 뉴스도 떠서 너무 기쁩니다. 그리고 프레디 덕분에 이렇게 님과 다시 소통할 수 있게 되어 더욱 행복하고요. 예은 서은 엄마 건강 회복하면 밥 한 번 먹읍시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