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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한 새벽을 가르며 힘차게 달리는 배의 엔진소리-중후한 50대 초반의 선장, 그의 여동생과 딸, 배의 운항을 돕는 부선장, 기계실에 있는 20대 초반의 청년 두 명이 우리 탐험팀에 도움을 주며 열심들이다. 미리 아이스박스 속에 넉넉히 준비해 둔 부식, 과일과 맥주 등으로 선장의 여동생과 딸은 선미에서 재래식 숯불로 음식을 만들어 우리의 시중을 들며 간식을 챙겨 준다. 우리의 배는 선두 쪽에 출입문이 있고 그것에서부터 양쪽의 3개씩 걷었다, 올렸다 하는 모기장 있는 6개의 침대와 선두와 선미 중앙에 8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이 놓여 있고, 선미 오른쪽은 화장실 겸 세면실, 왼쪽으로 기름통, 선미 가운데 하단에 엔진이 부착되어 있다. 선미에는 불을 지필 수 있는 부엌과, 강물을 두레박으로 퍼 올려 식기 세척과 빨래, 샤워를 할 수 있다. 배가 정차하는 마을, 시 마다 군경에게 신고를 해야만 된다. 숙박지에선 선상까지 올라와 인원을 확인하기도 한다. 강폭이 수십 미터에서 수 킬로미터나 되는 넓은 강물 위에 해가 크게 떠오르는 장면은 못 보았지만 우기가 끝날 무렵의 그때의 하늘은 나름대로 아름다웠으며, 이국의 정취와 더불어 탁 트인 가슴에 와 닿는 상쾌한 기분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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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데 마을에서 인도계통의 아가씨
▼ 생활자기에 무늬를 넣고 있는 아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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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탐험은 미얀마 북부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약 1,200킬로미터의 길이를, 나라의 젖줄인 이 강가를 끼고 발전하고 있는 마을과 도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풍습과 모습들을 사진 촬영을 하며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데 있다. 배가 한 시간 여를 달려 처음 닿은 곳은 잘 생긴 코끼리라는 이름의 신칸 마을이었다. 자외선이 차단되고 피부를 곱게 해 준다는 다나까를 부녀가 있는 2층 집안에서 그 집의 딸이 우리팀 얼굴에 발라 주기도 하였다. 고마운 마음을 가슴에 안은 채 나틴 마을을 떠나 히티키윅 마을 앞에 정박한 다음날 새벽, 배는 또 출발하여 얼마를 갔는지… 인도계통과 미얀마인의 혈통이 뒤섞인 느낌의 아주 예쁘고 표정이 밝은 사람들이 사는 따가웅-이곳은 최초의 미얀마 수도였으나 지금은 규모가 작고 불교유적은 거의 없으며, 성곽이 낮은 담만 남아 있다.-에서 새벽길 수 십 명의 학승들이 일렬로 걸어오며 탁발하는 장면을 역광으로 촬영하였다. |
▼ 옹기를 사서 다른 도시로 팔러가는 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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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집집마다 생활자기를 우리네 식의 굴 가마가 아닌, 앞마당에 불을 지펴 큰 무덤처럼 만들어 그 속에 자기를 굽고 일하는 느웨닌 사람들… |
네에라는 곳에서 정박, 다음날 강가에 목재로 엮은 땜목들이 넓게 깔려있고 요새가 있는 민군에 도착하였다. 이어 미얀마 제2의 도시로써 경제가 활기를 띄고 있는 만달레이에 도착하여 에어콘이 있는 고급 식당에서 모처럼 외식을 하고, 인간 문화재-인형극 보유자의 불교적 소재인 인형극 관람을 하고, 트레조 호텔에서 우리는, 흙탕물이 섞인 이라와디의 물이 아닌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하고 곤히 잠 잘 수 있었다. 아침을 맞이하여, 미얀마의 현재 육로로써 이라와디를 건널 수 있는 6개의 긴 다리 중, 1929년 첫 번째로 만들어진 샤가잉 다리 아래를 지나 도착한 예네보 마을은 미얀마인들이 즐겨쓰는 옹기를, 만들고 운반하는 활기찬 옹기 골이다. 이곳은 흙이 좋아 서로 이곳을 차지하려고 1825년, 1852년, 1885년 3차에 걸쳐 강 사이를 두고 큰 내전이 일어났던 곳이다.
미얀마 여러 지역에서 흘러 이라와디로 흘러드는 물의 합류 지역 친두인을 지나 불탑의 도시 파간에 도착, 아난다 파야 사원 위에서 저녁 노을을 감상하고 야외무대가 있는 고급 식당에서 민속공연의 흥취를 생각하며 내일의 새로운 곳을 꿈꾼다. 다음날 파간에서 2시간을 달리니 강가에서 보았을 땐 작은 마을 같은데 제법 큰 도시인 챠욱에 도착, 북부에서의 느낌과는 차이가 있게 사람들이 많고 시장의 사람들이 활기에 넘쳐있다. 넓은 강을 전세 낸 듯 구름과 물, 간간히 보이는 조각배-선상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 팀이지만 한 낮의 빛은 강렬하기만 하고, 저녁이 되면 나의 몸을 귀찮게 하는 모기들, 자주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울컥해지기도 한다.
마그웨이 도착, 이곳 가까운 곳에 나마윅이란 곳에서 태어난 아웅산(1915~1947)장군의 동상이 있다. 강가에서 바라보이는 메툴론 사원은 밤이 새도록 어느때든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뇌이는 곳. 이곳은 도시에서 찌든 삶의 평온을 잠시나마 찾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한번 가서 기도하고픈 사원이다. |
▶늦은 밤 메툴론 사원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
▼ 아웅산 장군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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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해로 바뀐 다음 날 민타 마을과 1,3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 쉐냥빈에서는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정감을 표시해 준다. 인도에 온 듯한 미아데 도시, 영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챤수이 선생이 있는 파로, 여기서부터 약 30킬로미터를 더 가면 우리 일정의 종착역 삐에 큰 도시에 드디어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해수가 닿기 때문에 차량을 이용하여 수도 양곤을 향한다. 우리네 식으로 생각하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미얀마의 유일한 고속도로라는 곳 2차선을 달려…
본 탐험팀(번춘방, 이종만, 김상숙, 필자)의 이라와디 최북단에서 강 하류 끝까지 선박을 이용한 최초의 탐험이 무사히 마치도록 우리를 반겨주고, 행운의 손을 흔들어 준 그곳 여러 사람들과 묘셋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본 탐험팀에게 더욱 큰 감사와 자축의 축포를 터뜨린다.
최근 뉴스에 ‘아웅산 수지 여사가 북부 어느 도시 방문 중 군사 정권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 사이의 유혈 충돌로 인해 70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것이 멈추어진 듯한 미얀마에 그저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느끼며, 그래도 반짝거리는 눈망울의 미얀마인을 떠올리며 언젠가 다시 가고픈 생각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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