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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하느님의 구원
1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2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카 3,1-6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흔히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서로 대조되는 인물로 소개합니다만, 사실 세례자 요한만큼 예수님과 공감할 수 있는 분도 드물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마지막 예언자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선구자였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두고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과 자신을 구분하려고 요한은 자기를 ‘광야의 소리’로 겸손하게 밝혔고, 설령 자기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도 고백하였습니다. 사실 회개도 겸손에서 출발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하여, 이스라엘에게 요한이 촉구했던 회개가 무의미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오심을 준비하고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렇게 준비한 그 길로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해마다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는 우리가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주님의 오심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치우는 때입니다.
하느님께 궁극적인 희망을 두지 못하여 우리가 깊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면, 또는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믿으면서 하느님 앞에서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마치 그분의 도우심이 전혀 필요 없는 것처럼 거만을 떨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스스로 가로막고 있는 셈이 되겠지요.
세례자 요한의 권고대로, 오늘 주님께서 오시는 길목에서 걸림돌 하나쯤은 치우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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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믿음을 간직하십시오.」
바다로 나간 작은 배가 강풍을 만났습니다. 꽤 긴 시간을 강풍에 이리저리 표류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바람이 잦아들고 바다도 고요해진 것 같은데, 문제는 거친 풍랑에 배가 부서지고 엔진과 무전장비까지 고장 나서 꼼짝 못하고 구하러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배에 물도 떨어져서 점점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 멀리에 배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배를 향해 손짓하고 소리쳤습니다. 드디어 배가 도착했고, 사람들은 제일 먼저 물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바닷물을 마실 수가 없어서 그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셨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지요.
이 말에 도움을 주러 온 사람이 말합니다.
“여기는 강이라서 물을 마셔도 되었는데요?”
배가 폭풍으로 인해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을 몰랐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로 밑에 있는 마실 수 있는 물을 보고도 마시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글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강은 강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구분이 되지만, 실제로 강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곳도 많다고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일도 생길 수가 있나 봅니다.
아무튼 이 글을 보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스스로 단정을 지어서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히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발견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찾을 수가 없겠지요.
얼마 전에 어떤 영화를 봤는데, 한 꼬마아이가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지역의 신부님이 자신의 앞에서 물건을 움직여 보라고 하지요. 아이는 온 힘을 기울여서 물건을 움직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물건은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아이는 실망하면서 고개를 숙이는데, 갑자기 신부님께서 그 물건을 들어서 옮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자, 움직였네.”
아이는 “신부님이 움직인 거잖아요.”라고 말합니다. 이에 신부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 네가 날 움직여서 병을 움직이게 한 거야. 네가 병이 움직이길 간절히 바랐기에 내가 병을 움직인 거란다. 이런 식으로 믿음을 통해 움직인단다.”
믿음으로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괜히 스스로 단정 지어서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지 마세요.
*****<어떠한 상황에서나 좋은 면을 보려고 한다면 당신의 삶이 갑자기 감사로 가득함을 알게 될 것이다. 감사는 영혼마저 풍요롭게 한다(해롤드 커쉬너). >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카 3,1-6)
「荒れ野で叫ぶ者の声がする。
『主の道を整え、
その道筋をまっすぐにせよ。
谷はすべて埋められ、
山と丘はみな低くされる。
曲がった道はまっすぐに、
でこぼこの道は平らになり、
人は皆、神の救いを仰ぎ見る。』」
(ルカ3・1-6)
“Prepare the way of the Lord,
make straight his paths.
Every valley shall be filled
and every mountain and hill shall be made low.
The winding roads shall be made straight,
and the rough ways made smooth,
and all flesh shall see the salvation of God.”
(Lk 3:1-6)
待降節第2主日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カンヤエソ ウェチヌン イエ ソリ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ノヒヌン チュニメ キル マヨンハヨラ。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クブネ キル コッケ ネオラ。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카 3,1-6)
「荒れ野で叫ぶ者の声がする。
아레노데 사케부 모노노 코에가 스루
『主の道を整え、
슈노 미치오 토토노에
その道筋をまっすぐにせよ。
소노 미치스지오 맛스구니 세요
谷はすべて埋められ、
타니와 스베테 우메라레
山と丘はみな低くされる。
야마토 오카와 미나 히쿠쿠 사레루
曲がった道はまっすぐに、
마갓타 미치와 맛스구니
でこぼこの道は平らになり、
데코보코노 미치와 타이라니 나리
人は皆、神の救いを仰ぎ見る。』」
히토와 미나 카미노 스쿠이오 아오기미루
(ルカ3・1-6)
“Prepare the way of the Lord,
make straight his paths.
Every valley shall be filled
and every mountain and hill shall be made low.
The winding roads shall be made straight,
and the rough ways made smooth,
and all flesh shall see the salvation of God.”
(Lk 3:1-6)
Second Sunday of Advent
Lk 3:1-6
In the fifteenth year of the reign of Tiberius Caesar,
when Pontius Pilate was governor of Judea,
and Herod was tetrarch of Galilee,
and his brother Philip tetrarch of the region
of Ituraea and Trachonitis,
and Lysanias was tetrarch of Abilene,
during the high priesthood of Annas and Caiaphas,
the word of God came to John the son of Zechariah in the desert.
John went throughout the whole region of the Jordan,
proclaiming a baptism of repentance for the forgiveness of sins,
as it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words of the prophet Isaiah:
A voice of one crying out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of the Lord,
make straight his paths.
Every valley shall be filled
and every mountain and hill shall be made low.
The winding roads shall be made straight,
and the rough ways made smooth,
and all flesh shall see the salvation of God.”
2024-12-08「人は皆、神の救いを仰ぎ見る。」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待降節第2主日です。
王である主・イエス・キリストと尊いロザリオの元后天に上げられた元后(きさき)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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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人は皆、神の救いを仰ぎ見る。>
3・1皇帝ティベリウスの治世の第十五年、ポンティオ・ピラトがユダヤの総督、ヘロデがガリラヤの領主、その兄弟フィリポがイトラヤとトラコン地方の領主、リサニアがアビレネの領主、2アンナスとカイアファとが大祭司であったとき、神の言葉が荒れ野でザカリアの子ヨハネに降った。3そこで、ヨハネはヨルダン川沿いの地方一帯に行って、罪の赦しを得させるために悔い改めの洗礼を宣べ伝えた。4これは、預言者イザヤの書に書いてあるとおりである。
「荒れ野で叫ぶ者の声がする。
『主の道を整え、
その道筋をまっすぐにせよ。
5谷はすべて埋められ、
山と丘はみな低くされる。
曲がった道はまっすぐに、
でこぼこの道は平らになり、
6人は皆、神の救いを仰ぎ見る。』」(ルカ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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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レジオ会のヤン・スンクク神父様の黙想文「より清らかな精神を持って目覚めるために、荒れ野の体験は必須です!」
もうすでに待降節の第2主日となりました。今日の福音の言葉の冒頭には、当時の世界で幅を利かせていた人々の名前が並べられています。ティベリウス皇帝、ローマ皇帝の代理としてユダヤに派遣されていたポンティオ・ピラト総督、ガリラヤの領主ヘロデ、彼の弟フィリポス、大祭司アンナスとカイアファ・・・
非常に立派な人たちと考えられますが、一人一人を詳しく見ていくと、誰もが不足していて弱い存在でした。しかし、彼らは当時の世界と宗教の主流勢力として、高い地位に座り、世間や教会を自在に操っていた権力者たちでした。
しかし、神の御言葉は高い地位に座って世界を牛耳っていた名士や権力者たちのものでありません。考えれば考えるほど、神は本当に不思議な方です。神が持っている本質的な傾向、つまり特性の中で際立っているものの一つが、下向きの性格です。果てしなく下へ下へと降りていきます。
したがって、神の御言葉は当時最も低い場所で低い姿で生きていた洗礼者ヨハネに下されました。彼は驚くべきことに、生き物が見当たらない荒れ果てた荒れ野で生活していました。常に目覚めているために、常に清らかな精神を維持し、いつも神に感覚を合わせるために荒れ野に留まっていました。
荒れ野は実際に無慈悲な場所です。極限の体験をするには完璧な場所です。食べ物、飲み物、楽しみは何もありません。ただ激しい砂嵐、果てしない乾燥と無味乾燥、世間との完全な断絶と孤独だけが存在する...すべてが欠如した場所でした。
洗礼者ヨハネは、まさにその荒れ野で果てしなく自分を鍛え続け、イエス様が現れるのをひたすら待っていました。
今日私たちにも荒れ野が必要です。すべてが整った状態で日々贅沢な生活をしながら、満ちた腹を叩いていると、主の御言葉とは無関係な生活を送ることになりがちです。
より清らかな精神を持って目覚めるためには、荒れ野の体験が必要不可欠です。主の御声をより明確に聞くためには、ある程度の欠如が必要です。
残された待降節の時期、より明確に神の御声を聞くために、私たちも喜んで荒れ野に入っ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その荒れ野がどこにあるのかよく見定める必要があ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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待降節の間、きちんと自分の生活を振り替えてみることができ、わたしたちの荒れ野を見つけ、主を迎える道を整え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