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철학자 하면 가장 먼저 누가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공자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막상 동양 철학의 대표자인 공자에 대해 그리 자세히 아는 바가 없어 이번 기회를 통해 공자의 생애를 제대로 알아보고자 조사해보았다.
공자는 춘추 시대 말기에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태어났다. 공자는 3살 때 노나라의 대부인 아버지 숙량흘을 여의고 어머니 안징재 슬하에서 자랐다. 공자는 가난 때문에 위리(창고를 관리하는 관직), 승전(가축을 방목하는 관직) 등의 관직을 지냈으며 보잘 것 없는 벼슬이었지만 맡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일했다고 한다. 공자 자신도 “어려서 미천했기 때문에 비천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20대에 높은 학식을 인정받은 공자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교육방법으로 가르쳐 제자들이 날마다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후 공자는 관직에도 올라 정치에 뜻을 두었으나 그를 시기하는 이들의 미움을 받아 벼슬을 그만두고 14년간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녔다. 공자는 백성들이 잘 살 수 있고, 도덕과 예의를 통한 이상적인 지배가 이루어지는 나라에 대해 연구했다. 공자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것은 천하를 바꾸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넓은 천하에서 공자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끼는 제자인 안연과 자로가 죽고 아들마저 잃는 등 그의 말년은 무척 불행했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삶의 서러움과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랐고, 정치에 뜻을 두어 천하를 바꾸는 데 일조하고자 했으나 실패의 쓴 맛을 보아야만 했던 사람이 바로 공자이다.
공자에 대해 조사하며 무엇보다 내가 지금껏 해온 공부는 공자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학문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을 할 정도로 학문을 대단히 좋아했고, 배움에 일정한 스승이 없어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므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그동안 공부와 인격 수양을 게을리 해왔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자가 학문에만 정진하는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물론 학문을 성실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실천이라는 사실을 공자는 알고 있었다. 깨달음에 그치지 않고 평생에 걸쳐 이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다는 점에서 존경 받아 마땅한 위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공자는 평생 자신이 공부해온 것을 바탕으로 삶의 태도를 숙고하고 고찰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뜻을 천하에 펼치고자 노력한 인류의 정신적 스승이다. 그저 동양 철학사를 빛낸 위인으로만 생각해왔던 공자가 박복한 인생을 살았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또 슬펐다. 만일 그가 부귀영화가 약속된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평범한 귀공자로 살다 갈 운명이었다면 지금의 공자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뜻을 펼치고 다른 이들에게도 기꺼이 깨달음을 전파하여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문학 및 철학 정신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 잡은 공자. 그간 내게 뚜렷한 롤 모델은 없었으나 지금부터라도 공자의 정신을 본받아, 나 또한 나만의 사명으로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조심스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