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2010.10월호)<신작시>정이랑 시-'어느 날, 문득' 외1편
어느 날, 문득
정 이 랑
눈을 떠 보니 선인장 하나가
말라비틀어져 죽어 있었다, 왜일까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도대체 왜?
사람의 곁에서 훌쩍 떠나버린 것일까
무슨 잘못을 내가 저지른 것일까
누구에게 물어 봐야 하는 걸까
며칠 째 답답한 가슴만 움켜잡고 있다
아프면 병원으로 가듯 꽃집을 찾아갔다
“햇볕과 놀게 하셨나요? 물은 주셨습니까?”
이제야 알았다, 나의 무식함 때문임을
나는, 나도 모르게 가해자로 살아왔던 것이다
나에게로 온 이후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던 것
선인장에게 물은 주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꿋꿋하게 나만 지금껏 잘 살아온 것이다
아아, 이를 어쩌나!
그래, 또 누군가에게 잘못하면서 살아오지 않았을까
가시 없는 말이 그대에게는 비수일 수도 있었겠지
아아, 참 미안하다 그대여!
한동안 선인장 앞에서 성호를 긋고
두 손 가지런히 모아 눈을 감아본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은 어디쯤?
-친구 부인의 빈소를 찾아
정 이 랑
향불 피워놓고
지금 내가 울고 있는 것은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딸아이 두고
이승에서 떠나간 엄마 때문은 아니다
그의 동창들은 한 자리에 모여
식어버린 밥 한 덩이 국에 말아먹고
담배 한 개비 꺼내 저마다 입에 문다
내일이면
산으로 가야 하는 그 여인은 웃고 있다
죽어서도 저렇게 따뜻한 웃음
남겨 줄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야할 때
어디쯤에 잠시 머물러 안녕을 고할까
딸아이도 생글생글 웃고 있다
그 사이 엄마와 이별하는 방법을
남 몰래 익혀둔 것인지도 모른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은 어디쯤일까
여기 앉아 있는 빈소일까
하관을 끝마친 무덤 앞일까
상주의 가족들은 잠들고
포커와 화투판으로
그의 동창들이 새벽을 지키고 있다
<약력>
▲1969년 경북 의성 출생.
▲1997년「꽃씨를 뿌리며」외 4편으로 『문학사상』신인발굴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1998년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500만원 수혜시인으로 선정됨.
▲2005년 첫시집,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흔들고(시안 '황금알')』발간.
▲2010년 현재, 대구시인학교 <사림시>및 <시원> 동인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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