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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9장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매일 자기를 부인하며 살아가는 제자의 삶
(찬송 360장)
2022-12-14, 수
맥락과 의미
누가복음은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1-9장은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로 세상에 오셔서 갈릴리에서 일하십니다. 9-19장은 예루살렘에서 죽으시고 승천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십니다. 9-24장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끝내십니다. 9장 51절부터 예루살렘을 향해서 제자들과 함께 여행을 시작하십니다. 여행은 19장까지 계속됩니다.
이 이야기는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교회도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을 향해서 여행합니다. 예수님처럼 이 땅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여 천국으로 나갑니다. 9-19장은 성도들의 인생길에 대한 비유적 설명이기도 합니다.
1. 제자들의 사명(1-17절)
2.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 십자가 고난과 제자도를 가르치심(18-27절)
3. 변화산 상의 영광스런 변화(28-36절)
4. 귀신들린 간질 환자를 고침 (37-42절)
5.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예고와 제자들의 교만(43-49절)
6.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과 제자도 (51-62절)
1. 제자들의 사명(1-17절)
1) 열 두 제자를 보내심(1-9절)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신 것은 6장에서 이야기했습니다(6:12-17). 이제는 그들에게 인턴으로 일을 시키십니다.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내십니다. 귀신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먹고 살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목사에게 직접 적용됩니다. 생계 문제는 주님께 맡기고 복음만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부활 승천하여 하늘에 계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는 성령님을 통해서 그 말씀과 함께 일하십니다.
분봉왕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예수님 태어날 때 왕이었던 헤롯 대왕의 아들입니다.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입니다. B.C 4년에서 A.D 30여년까지 통치한 왕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고 기적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요한이 다시 부활했다, 엘리야가 다시 부활했다.” 등등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헤롯 자신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래서 이런 권능이 예수 안에서 나타난다.”(마태 14:2)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중에 빌라도에 의해 사형받기 전에 헤롯에게 보내집니다.
8-9절은, 요한이 사실은 구약에 예언된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라는 간접적으로 증언합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던 그 “엘리야와 같은 그 선지자”입니다(말라기 4:5). 세례 요한은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오신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세례 요한이 하던 복음 전파를 사도들이 계속 이어 갑니다.
2) 오병이어의 기적(10-17절)
예수님께서 말씀을 다 가르치시고 난 다음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십니다. 5개의 떡(전병)과 2마리의 고기(어)로 남자만 5천명을 먹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의 주도 하에 제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기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떡을 가지사 하늘을 향해 감사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주어서 무리 앞에 “놓게 하셨습니다”(16절). “놓게 하셨다”는 율법의 말씀을 “고한다”(출 19:6), “(규례를) 세운다”(출 21:1) 그리고 (율법을) 선포한다”(신 4;44)에 쓰였습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성막에 하나님 말씀을 표시하는 떡을 두셨습니다. 아들 하나님이 이제 살아 있는 떡이 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주셨던 그리스도는 몸을 가진 사람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굶주린 백성을 떡으로 먹여 주십니다. 성도를 육체적으로 먹이시는 것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을 먹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참된 생명, 영생을 누리는 것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떡과 생선은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을 나타내는 비유(정확히 말해서 환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백성을 먹여 주셨습니다. 떡과 생선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무리 앞에 놓게 했습니다. 떡과 말씀을 주시는 것은 예수님이 하시지만, 사람들 앞에 차려 주는 식탁 봉사는 제자들이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복음 말씀으로 교회를 먹일 것입니다. 앞으로 할 일을 비유적으로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서 목사가 말씀을 선포할 때 주께서 성도들을 먹여 주십니다. 가정에서 말씀을 읽을 때 먹여 주십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참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십니다. 성령님이 이 말씀을 사용하여 우리와 그리스도를 연합시켜 주십니다.
2.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 십자가 고난과 제자도를 가르치심(18-27절)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른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경계하사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하지 말라.” (21절)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때 자신에 대한 오해가 번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메시야=그리스도 되심은 십자가를 통해서라는 것을 가르치기 원하셨습니다.
22절에서 예수님 자신의 사명을 말하십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22절)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십자가에 죽으 심으로써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속죄제로 자신을 드리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써 죄 용서받고 하나님의 아들딸 되도록 하십니다. “~해야 하리라”는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성도를 구원하시겠다고 정하신 작정, 예정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가르치신 다음에, 제자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23절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것이 우리의 길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죄악을 날마다 회개하고 버리면서 예수님을 따릅니다.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24절) 우리의 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롭게 주신 생명을 받아 누리는 길입니다. 그 생명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죄악된 자신을 회개하면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서 자기를 부인하고 연단됩니다. 우리 참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리스도 생명이 우리가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 땅에 생명이 있더라도 “온 천하를 얻는다 할지라도 자기 목숨을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25절) 바울은 빌립보서 3:7,8에서 비슷한 말을 합니다. “내게 유익하던 것을 이제 다 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 나에게 해로 여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께서 주신 모든 좋은 것들을 그 자체로만 즐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 의해서 죄 용서받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목적에 사용합니다. 그것이 제자로 살아가는 데 방해될 때는 해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만 따라갑니다.
그러할 때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으로 올 때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장 21절에서 “내가 가진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날 때 그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 땅 가운데 소망을 두지 말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둡시다. 이 땅의 모든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누리는 과정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변화산 상의 영광스런 변화(28-36절)
예수님과 제자들의 고난을 말씀하신 다음에 3명의 제자들만 데리고 산에 올라 가십니다.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 후에 얻으실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받은 후 누릴 영광이기도 합니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구약 성경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의 약속의 말씀을 대표하는 두 사람입니다. 제자들은 졸다가 깨어서 그 영광을 보고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초막을 짓자고 합니다(33절). 모세가 시내산에 성막을 지었던 것처럼 자기도 성막을 지어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초막을 짓겠습니다. 여기 같이 있읍시다.”
그때 구름이 제자들을 덮고 그들은 구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했던 체험을 제자들도 합니다. 모세가 구름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말씀을 듣고 백성에게 전했습니다. 제자들도 같은 체험을 합니다(34절, 출 24:18).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35절). 하늘의 소리는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시편 2:7)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자를 보라”(이사야 42:1).
“너희는 오직 저의 말을 들으라.”(35절) 신명기 18:15에서 모세가 앞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시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큰 예언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나님 자신이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모세가 했던 그 역할을 더 완전하게 이루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제자들도 모세의 역할을 더 완전하게 이룰 것입니다. 예언자가 한 예언을 예수님과 제자들이 완전히 이룹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한 말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신다.”(31절)는 것입니다. 별세는 죽는 것을 말합니다. 이 단어는 ‘엑소더스’ 입니다. ‘출애굽기’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의 고난을 통해서 죄와 비참의 이 땅을 떠나 천국으로 가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바로 나아갑니다. 짐승의 피와 살로 제사를 드리던 성막도 성전도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제물이요, 성전이요,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복음 외에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우리는 구원받습니다. 성전 대신이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위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기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4. 귀신들린 간질 환자를 고침 (37-42절)
이제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영광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죄와 고통의 땅으로 내려오십니다. 귀신들려 간질병 있는 소년을 고쳐 주십니다.
5.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예고와 제자들의 교만(43-49절)
1) 십자가의 죽음 예고(43-45절)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신 예수님은 또 다시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을 말씀하십니다(44절).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이야기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2) 높음을 다투는 제자들(46-48절)
그 와중에도 제자들 중에 “누가 높으냐?” 논쟁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예루살렘에서 죽으러 간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제자들의 관심은 자기들이 영광을 누리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나와 나를 보내신 이 하나님을 영접한다. 너희 중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다.”
성도가 가는 길은 세상적 영광의 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십자가를 통한 영광입니다. 십자가 없이 승리의 관이 없습니다(No cross, no crown).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 각자가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섬기는 나라입니다(빌 2:3). 이 섬김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영광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높은 자리를 가지려 하는 사람은 사실은 항상 불행합니다.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보면 열등감에 빠집니다. 시기합니다. 더 좋지 않은 사람을 보면 우월감에 빠집니다. 그들을 무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는 이미 천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서로 섬기는 사람이 됩시다. 섬김의 고난이 영광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3)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 추방하는 어떤 사람(49-50절)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면서도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그들을 금지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앞으로 제자들이 사역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말씀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에 구금되어 있을 때 그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빌 1:18)라고 말했습니다.
함께 그리스도를 고백하지만 우리와 한 그룹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우리와 약간 다른 교회 전통들(감리교, 침례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형제로서 환영해야 합니다.
6.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과 제자도 (51-62절)
1) 예루살렘을 향해 바로 나가심(51-56절)
이제 51절부터 누가복음의 후반부가 시작됩니다.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즉,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실 예루살렘을 통해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하늘의 영광을 향하여 나아가시는데 예루살렘 고난을 통해서 나아가십니다.
제자들을 앞서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을 “사자”라고 합니다. “천사 (앙겔로스)”와 같은 말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천사들이 섬기듯이, 땅의 그리스도를 제자들이 천사처럼 섬깁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 주님이 곧 오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보다 앞서 가서 주님의 길을 준비합니다(52절).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주님의 길을 준비했습니다(1:17). 주님이 오신 다음에는 제자들이 주님의 길을 준비합니다.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내려갈 때 사마리아 근처를 지나갑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묻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명하여 내려와 멸하기를 원하십니까?”(55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촌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전에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자기를 잡으러 온 군인들을 죽인 일을 생각한 듯합니다(왕하 1:10, 12).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 능력으로 심판하실 때가 벌써 온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금 가시는 길은 사람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길입니다.
2) 순전한 마음으로 가야 할 제자의 길(57-62절)
사람들의 질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길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첫째, 제자의 길은 사치스런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입니다. 주무실 곳도 없이 복음 전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주 시급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장례하는 일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합니다. 과장법을 통해 시급성을 말합니다.
셋째, 제자의 길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완전히 헌신되어 나가야 할 길입니다. “먼저 가족을 작별하게 해 달라”고 하는 자에게 대답하십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60절)
위의 모든 대답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의 효과를 위해 과장하여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은 목사의 자세가 그래야 합니다. 모든 성도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길이 우리가 나갈 길입니다.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항상 “하나님 나라와 의”를 추구합시다.
우리는 일상적인 일도 단정하게 잘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복음대로 사는 그 목표 속에서 이 모든 일을 합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이 길로부터 벗어나지 맙시다. 우리도 고난을 통해서 영광에 나아갑니다. 주님을 의지하여서 주님의 길을 그대로 걸어갑시다.
믿고 복종할 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는 메시야-그리스도이십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고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 세상의 작은 이익들에 매이지 맙시다. 주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할 때는 반드시 고난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이 길은 고난을 통해 하늘 영광에 들어가신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우리는 미래에 누릴 하나님 나라를 지금 맛봅니다. 그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 오직 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의 승리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할 때,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확신합니까? 내 삶의 우선순위는 일상의 필요와 유익에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추구하십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6절, 떡을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심”(파라-띠테미)=말씀을 둠(출 19:6, 21:1, 신 4:44)
예수 그리스도는 떡을 가지사 하늘을 향해 감사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주어서 무리 앞에 “놓게 하셨습니다”(파라-띠테미”16절). “시내산에서 율법의 말씀을 “고한다”(출 19:6) “(규례를) 세운다”(출 21:1), “(율법을) 선포한다”(신 4:44)에 쓰였습니다.
성도를 육체적으로 먹이시는 것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을 먹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참된 생명, 영생을 누리는 것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떡과 생선은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을 나타내는 비유(정확히 말해서 환유)입니다.
<참고> 25절, 목숨을 얻는다(케르다이노), 빼앗긴다(제미오오)=빌 3:7,9
아무리 이 땅에 생명이 있더라도 “온 천하를 얻는다 할지라도 자기 목숨을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25절)
“얻는다(케르다이노), 빼앗긴다(제미오오)”를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7,8에서 인용하면서 그의 제자의 길에 대해 간증합니다. “내게 유익하던 것을(케르도스) 이제 다 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 나에게 해(제미아)로 여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께서 주신 생명이나 좋은 것을 절대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명이나 어떤 좋은 것도 우리가 제자로 살아가는 데 방해될 때는, 해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만 따라갑니다.
<참고> 세례 요한과 제자들- 주님의 길을 준비(에토이마조)
예수님의 제자들과 세례요한은 둘 다 사자(앙겔로스: 천사에 대해서도 쓰는 말)와 비슷한 일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분의 사자들(앙겔로스)을 앞서 (프로 프로소푸) 보내시며(아포스텔로) 그분을 위해 준비하기(에토이마조) 위해 제자들이 마을로 들어갑니다(에이스-에르코마이).”(9:52)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세례 요한도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앙겔로스)를 네 앞에(프로 프로소푸) 보내노니(아포스텔로)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6:27) 주님의 천사(앙겔로스, 1:11)가 세례 요한의 아버지에게 한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에 앞서 가서(프로-에르코마이)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에토이마조) 하리라.”(1:17) 세례 요한이 주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다는 것은 요한의 아버지도 찬양 가운데 말합니다(1:76). 성령님께서도 누가의 해설을 통해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3:4, 이사야 40:3)는 구약 예언을 요한이 이룬다고 증거합니다.
<참고> 예수님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 (출처: ESV 성경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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