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안양지부(An Yang Korean Writers Association) | [추모] 고 김대규 시인의 8주기를 추모합니다 - Daum 카페
추모 글:
문향(文鄕) 김대규 시인을 기리며
다가올 연말즈즘, 삼덕공원 문향문학관 개관을 기다리며
한 시민의 마음으로 선생님을 다시 추억합니다.
안양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문향(文鄕) 김대규 시인.
안양이 낳았고, 안양을 사랑했으며, 평생 안양을 떠나지 않고 시와 문학으로 고향을 지켜온 분입니다.
문향’이라는 아호에는 문학의 고향이자 삶의 고향인 안양을 사랑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삶을 돌아보면 한 사람의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살아온 안양이라는 도시의 숨결과 역사를 만나는 듯합니다.
1942년 안양 양지동에서 태어나신 선생님은 첫 시집 『영의 유형』을 시작으로 『흙의 사상』, 『흙의 시법』 등을 펴내며
‘흙의 시인’으로 불렸습니다.
스승 조병화 시인과 함께한 『시인의 편지』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사랑의 팡세』 등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리셨지만, 선생님은 더 화려한 자리와 더 큰 명성을 좇아 고향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에게 문학은 출세를 위한 사다리가 아니었습니다.
문학은 고향을 사랑하는 일이었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었으며,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도시를 기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문학은 책장 속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안양문인협회와 안양문화원, 안양예총을 비롯한 지역 문화예술의 성장 과정에는 선생님의 땀과 열정이 스며 있습니다.
수많은 후배 문인들의 손을 잡아 주었고, 이름 없는 지역의 문학인들을 격려했으며,
안양이라는 도시에도 문학의 뿌리가 깊게 내릴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안양의 거리와 공원, 기념비와 학교 곳곳에도 선생님의 문장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안양시청 시민헌장비, 안양5동 현충탑의 진혼시,
평촌 자유공원의 독립유공자 기념탑과 6·25 참전공적비 헌시,
석수동 만안각기, 안양예술공원의 안양정기,
안양시민의 노래와 안양시 로고송,
그리고 여러 학교의 교가와 새안양회, 기업의 사가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시는 종이 위에만 쓰인 글자가 아니었습니다.
시가 도시가 되었고,
시가 노래가 되었으며,
시가 역사가 되었고,
마침내 안양 사람들의 기억이 되었습니다.
저에게도 선생님은 단순히 이름으로만 기억되는 시인이 아닙니다.
늦은 나이에 안양문화원 활동과 여러 지역 문화행사를 통해 선생님의 문학정신을 가까이했으며
짝사랑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의 외가인
옛 안산 수암면 장하리 배씨 종가의 배준석 시인과 선생님이 나누었던 문학적 인연,
안양문화원 김영규 이사님과의 인연,
그리고 안양박물관 행사에서 다시 마주했던 우리 지역의 오래된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부림마을 남평문씨 종중의 유물과 기록, 우리 집안 동은교회(부림교회)의 뿌리와
문학선 할아버님의 초막집에서 시작된 초기 교회의 이야기,
과천문화원 이정달 원장님과 함께 이어졌던 여러 인연까지…
.
그동안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작은 이야기들이 서로 이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저는 깨닫곤 했습니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인연,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기록, 그리고 누군가 잊지 않고 간직한 기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평촌 자유공원의 6·25 참전공적비 앞에 설 때면 저는 나라를 위해 전쟁터를 지켰던 아버님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비문 속에서 다시 문향 김대규 시인을 만납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 이름 없이 살아간 이웃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마음,
그리고 자신을 품어준 고향을 끝까지 사랑했던 마음이 선생님의 문장마다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안양예술공원을 걸을 때도 그렇습니다.
계곡물이 흐르고 관악산과 삼성산 자락에서 바람이 내려오고, 오래된 나무 그늘 아래로
시민들이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선생님이 남긴 ‘안양정기’를 만나면, 마치 선생님께서
지금도 우리 곁에서 조용히 안양의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듯합니다.
“이 도시를 잊지 말게.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게.
그리고 안양을 사랑하게.”
그런 마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문향 김대규 시인은 단순히 한 시대를 살다 간 한 사람의 시인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안양의 기억이었고,
안양의 역사였으며,
안양의 문학이었고,
안양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양의 향기, 바로 ‘안향(安鄕)’이었습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오래된 집이 허물어집니다,
골목이 사라지고,
산과 들의 모습이 달라지고,
우리가 걷던 길 위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섭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언젠가는 우리도 역시 이 도시의 기억 속 한 사람이 되어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기록해야 합니다.
건물은 허물어져도 기록은 남고,
사람은 떠나도 이야기는 남으며,
육신은 세월 속으로 사라져도
그 사람이 남긴 정신은 다음 세대의 가슴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덕공원에 들어설 문향문학관은 단순한 한 시인의 기념관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육필 원고와 시집, 사진과 유품을 유리 진열장 안에 보관하는 데서 머물러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곳은 안양의 잊혀가는 문학과 역사를 다시 불러내는 곳, 선배 문인과 후배 문인이 만나고,
어린 학생들이 안양의 문학을 배우며,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의 고향을 새롭게 발견하는 살아 있는 문학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문향문학관을 통해 한동안 희미해졌던 안양의 문학정신이 다시 살아나기를 소망합니다.
삼덕공원 나무 아래에서 시를 읽고,
젊은 시인이 자신의 첫 작품을 발표하고,
아이들이 김대규 시인의 시를 낭송하고,
원로 문인들이 옛 안양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민들이 저마다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향문학관은 과거를 추억하는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안양 문학이 태어나는 산실이 될 것입니다.
한 시인의 죽음을 기억하는 곳에서
또 다른 시인이 태어나고,
한 세대의 문학을 보존하는 곳에서
다음 세대의 문학이 시작된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추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추모의 끝은 슬픔이 아니라 계승이어야 합니다.
기억의 끝은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어야 합니다.
문향 김대규 선생님께서 평생 뿌려놓으신 문학의 씨앗이
이제 삼덕공원에서 다시 싹트기를 바랍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낙엽이 지고,
겨울이면 눈이 내리는 그 공원에서
사계절 내내 시가 읽히고 문학이 이야기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어린 학생 하나가 문향문학관을 찾아
김대규 시인의 시 한 편을 읽고 돌아가 자신도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는다면,
선생님의 문학은 그 아이의 가슴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문학의 부활이며,
문향 김대규 시인께 안양이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추모라고 믿습니다.
문향 김대규 시인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던 안양은 오늘도 변함없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관악산과 삼성산은 여전히 안양을 품고 있고, 안양천은 흐르고 있으며, 안양예술공원의 계곡에는 다시 물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시민들의 기억 속에는 선생님께서 남긴 문장이 흐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걸으셨던 길을 이제 우리가 걷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지키셨던 안양의 문학을 이제 후대가 이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삼덕공원 문향문학관에 다시 밝혀질 작은 문학의 등불이
안양의 골목과 학교와 가정으로 번져가기를 소망합니다.
한 사람의 시인은 떠났지만
그가 사랑한 고향은 남았습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멈추었지만
그가 남긴 시는 아직 안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믿습니다.
문향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가 남아 있고,
기억하는 시민이 있는 한,
문향 김대규 시인은
영원히 안양과 함께 살아 있을 것입니다.
삼덕공원에서 다시 피어날 문학의 꽃을 기다리며,
안양 문학의 새로운 부활을 소망하며,
문향 김대규 시인 선생님의 영전에
깊은 존경과 감사, 그리고 그리움을 바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6년 8월 10일
글쓴이: 문화영
촬영 안양 문화영
-안양예술공원 고 김대규시인 답사 김영규농협조합장님과 -
- 참고: 좌측 이정달 과천문화원 원장 동은교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