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네 / 장민정
다은 역 앞 민속 떡집 은이네 딸 아홉은
다복솔 같아서 은이 은수 은정이 은하 은숙이 볼 적마다 헷갈려
켜켜이 얹은 떡시루 수북이 김 내는 대목장에는
큰딸 부른다고 입에 열린 아홉 딸 이름 줄줄이 쏟아낸다
개망초 우북한 폐농의 밭이다
아들 못난 병신년 빗감도 마라
속 뒤집는 시엄씨
어디 보자 두고 보자
용을 쓰는 은이 어멈
한 해 걸러
떡가래처럼 딸딸딸딸 이어진다
기차 아홉 칸 치익 폭폭 폭폭폭 폭폭
보리밭에 깜부기 피고
참깨밭에 흑임자 섞이더구먼
징글맞은 삼시랑
시엄씨는
휑하니 작은집에 가신다
은이네는 작은 고을에서 떡집을 했다.
옛날 금송아지 없는 집 없고 양반 아닌 집 없다던가?
해도 천석꾼 집안 막둥이 며느리인 시어머님은 전쟁통에 집안이 모두 거덜이 난 후에도 부잣집 마님 행세를 하고 계셨다. 오죽하면 떡집을 냈을까? 그것마저 며느리 탓하시며 상것이 들어와 집안 꼴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아들 하나 못 낳는 며느리라니!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나 그나마 참아주시더니 연년생으로 거푸 딸 셋을 낳자 대로하셔서 ‘대를 끊어 놓을 작정’이냐며 대놓고 구박하기 시작했다.
집안 망할 계집이라나, 쫓겨나기도 여러 번,
그때 은이네는 어떻게든 아들 하나 꼭 낳을 작정이었다. 아들만 하나 낳아 놓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깟 시집살이는 저절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
한창 가족계획인가 산아제한인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 시책이 파다한 시절이었다.
그녀는 일구월심 빌고 또 빌고, 아들 하나 얻겠다고 할 짓 안 할 짓 다 해보았지만 2년 터울로 낳고 또 낳고 아홉째 출산으로 단산하기까지 원망스럽게도 줄줄이 딸만 낳았다.
딸만 아홉이라!
”세상에, 무슨 삼시랑이 그려!“”아들 하나 점지해 주지 않는 담!“
”아들 못 낳은 병신 년“
달고 사는 시어머니 앞에서 기 한 번 피지 못했던 은이네
딸 아홉 키우느라 무던히 고생하더니 그래도 아롱이다롱이 딸 덕에 노후는 좀 안락했던가?
향년 91세,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부음을 듣고 엊그제 장례식장에 갔다.
호상이다.
시어머니 말씀대로라면 아들 하나 없으니 대가 끊긴 자리,
초라하고 고적해야 할 자리여야 할 것인데 많은 사람이 북적거린다.
검은 상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여느 장례식보다 훨씬 많다.
딸 아홉과 사위와 외손녀 손자들, 헤아릴 수가 없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대목장을 준비할 때 딸들 이름을 연거푸 부르던 은이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들 못 낳아 구박이 자심했던 세대의 딸 부자 은이어멈
영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