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
kks
2026. 8. 10. 21:35
밭에 묻힌 보물, 감사의 열매로 피어나다
사람의 삶에는 저마다 가슴 깊이 묻어둔 밭이 하나씩 있습니다. 어떤 이의 밭에는 화려한 상장이 묻혀 있고, 어떤 이의 밭에는 이루지 못한 꿈이 묻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동갑내기 친구, 블란다 자매님의 밭에는 모진 세월의 가시밭길과 차마 말로 다할 수 없는 눈물, 그러나 그 모든 어둠을 뚫고 끝내 피어난 감사의 보물이 묻혀 있었습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서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전라남도 구례 곡성의 산골 마을, 넷째 아들을 바랐던 집안에서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서른둘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야 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핏덩이 동생마저 품에서 떠나보내고, 어린 소녀는 홀로 동생들을 챙기며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도맡았습니다.
가부장적인 시대의 냉대와 매일 밤 이어지던 아버지의 술주정. 열네 살 어린 소녀가 짊어지기엔 세상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결국 소녀는 살기 위해 집을 나와 광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리고 힘없는 소녀에게 다정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애기를 보고 살림을 맡아 한 세월이 5년, 하지만 손에 쥐어진 품삯은 단 한 푼도 없었습니다. 억울함과 서러움에 눈물을 쏟아내며 목소리를 높여 겨우 받아낸 27만 원. 그 작고 소중한 돈은 훗날 한 여인이 세상을 향해 건넬 거대한 사랑의 첫 씨앗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의 남의집살이와 지독한 우울증, 절박함에 손을 내밀었으나 냉정하게 돌아선 아버지의 거절 앞에 소녀는 가슴에 칼을 품기도 했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 아프고 참담했던 계절을 이겨내고, 자매님은 가정을 이루며 차츰 삶의 터전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삶은 또 한 번 그녀에게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안겼습니다. 사랑하는 첫 딸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가슴에 묻어야 했던 것입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자매님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슬픔 속에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딸이 세상을 떠나며 남겨준 보상금과 보험금을 허투루 쓰지 않고 가계의 작은 기반으로 삼으며, 딸이 부모의 가난을 안타까워해 남겨주고 간 ‘소중한 선물’이라 여기며 평생 고마움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베트남 전쟁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하늘나라로 먼저 간 남편이 남겨준 유족 연금 역시, 그녀에게는 매일매일이 감사할 이유였습니다.
몇 년 전부터 자매님은 나에게 조용히 상담을 해오곤 했습니다.
"막달레나, 내가 세상에서 받은 이 큰 은혜와 고마움을 세상에 다시 나누고 가야 하지 않을까?"
그녀에게 남은 전 재산은 남편과 함께 살던 조그만 아파트 한 채였습니다. 딸 둘은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기부 소식에 상처를 받을까 저으기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혜를 모아 딸들에게 먼저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서 진심을 전달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처음에 딸들은 뜻밖의 이야기에 조금 황당해하기도 했지만, 이내 엄마가 걸어온 모진 세월의 궤적과 그 깊은 뜻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엄마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자매님은 사후에 자신이 가진 아파트의 절반을 법적으로 ‘한마음운동본부’에 기부하기로 모든 공증과 절차를 마쳤습니다. 딸을 잃은 슬픔을 세상을 향한 숭고한 사랑으로 환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일 복음에서 '밭에 묻힌 보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가슴을 울리던 날, 또 하나의 작은 기적이 소금창고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 소금창고의 이웃들이 치과 치료비 407만 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내가 카톡방에 올린 감사와 소식의 글을 읽은 블란다 자매님에게서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왜 나한테는 진작 말을 안 했어? 나도 힘을 보태야지."
그 길로 자매님은 은행에서 현금 200만 원을 찾아 소금창고로 달려왔습니다. 돈이 넉넉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아픔을 알기에, 그리고 하느님과 세상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나 크고 감사해서, 그 고마운 마음을 한시라도 빨리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지나온 20년의 세월을 돌아보았습니다. 지리산 자락 한옥에서 따뜻한 약초 물에 발을 담그고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던 그날의 온도가 오늘 소금창고 안에 그대로 피어났습니다.
어릴 적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울던 열네 살 소녀는, 이제 자신의 밭에 묻혀 있던 보물을 꺼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거룩한 '사랑의 빛'이 되었습니다.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어이 갚을 줄 아는 이 보물 같은 여인. 블란다 자매님과 함께 걸어갈 앞으로의 시간들이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나기를 마음 모아 빕니다.
첫댓글 블란다님 선행, 사회환원 여정은 저의 삶의 귀감이 됩니다. 감사의 기도, 하늘에 먼저 오른 최마르티노 형님과 딸 마리아를 위해 바칩니다.
하늘에서 부녀도 기뻐할 것입니다. 아내와 엄마의 선행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