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다는 옷장을 잘 뜯으면 나무판 몇 장 쓰겠다 싶어 일터로 가져왔다.
서랍에 붙은 오동 나무판하고 옆과 뒤에 두른 얇은 합판은 다시 쓰겠으나, 나머진 톱밥을 풀로 꽉 눌러 붙인 엠 디 에프 MDF(Medium-Density Fiberboard) 판이다. 이것은 내가 쓰지도 않고 버리기도 마땅찮다.
게다가 뜯는 것도 일이라, 버리려던 나무 옷장을 쓰고 뜯기 쉽게 18년째 쓰고 있는 내가 종이로 만든 옷장을 뜯기로 했다.
좁은 일터에서 옷장 하나 빼고 넣는 게 이삿짐 옮기는 듯하다.
18년 묵은 먼지도 털고 자리를 바꾸니, 어느 곳은 사라지고 새 자리가 나온다.
17년 넘게 쓴 종이 옷장을 기억에 남기려고 사진을 찍는데, 아직 멀쩡하고 튼튼해서 뜯어 없애기 아깝다.
며칠을 두고 보다, 가운데에 판을 대고 두 칸으로 만들어 위 칸은 그림 전시장으로 아래는 문을 달아 이런저런 재료를 안 보이게 넣기로 했다.
한 겹, 한 겹 종이를 붙여 칸도 나누고 문도 달고 그림걸이는 네모꼴로 도드라지게 붙여 만들고 전등을 달아 끝.
오래 옷을 간직하던 옷장이 이제 그림을 품는다.
추울 땐 따뜻한 옷을 내어주고, 때맞춰 내 몸에 맞는 옷을 내주던 옷장이 그림을 내어 준다.
내 작은 일터 안에 더 작은 전시장이 생겼다.
아름다움을 품어 내주길 바라며 이름을 붙인다. 그림장!
우리가 사는 땅 삼 면이 바다로 둘러싸였듯, 그림장은 삼 면에 그림을 걸 수 있다(안팎으로 걸면 합이 육 면이다).
‘삼 면’
'삼 면이 바다.'란 말이 떠오른다.
걸어 나갈 수 없는 나라, 나머지 한 면인 육지도 삼 팔 철책선에 막혀 오갈 수 없다.
그림장도 뚫린 면에는 그림을 걸 수 없다.
그러나 그림장 뚫린 면은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이다.
숨통, 내통, 소통, 통하여 하나를 이루는 문, 좀 띄워(부풀려) 말하면 통일이겠다.
그림장이 작아 천 판 canvas 그림은 10호 크기까지 걸 수 있겠다.
앞으로 그림장에 맞춰 크기가 작은 그림을 가끔 그려야겠다.
전시 기간, 여는 때는 따로 없다.
내가 밖에 나가 놀지 않고 일터에 있을 때면 언제나 들어와 볼 수 있다.
지난해 봄에 만들어 연 전시장인데, 이제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