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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숙종실록 39권, 숙종 30년 1월 10일 경술 1번째기사 1704년
庚戌/引見大臣、備局諸臣。 上曰: "今年, 卽甲申也。 大明以是歲三月亡。 歷覽前史,
경신, 인견한 대신, 비국 대신에, 상이 왈 하길, 금년, 즉 갑신이고, 대명이 이해 3월에
망햇다고, 지나 본 앞의 (역)사에서,
亡國何限, 而獨於崇禎皇帝革世處, 有嗚咽不忍讀者矣。 我邦自立國初, 受皇朝恩,
망국에 어찌 한이며, 능히 홀로 따른 숭정황제의 혁세(나라의 왕조가 바뀜) 곳곳에,
가진 오열(목이 메어 욺)하고 불인(차마 하기가 어려움)하며 읽는 자라고,
우리나라가 스스로 세운 나라고 처음으로, 받은 황조의 은혜라고,
錫號朝鮮, 視同內服, 列聖相承, 至誠事大。 壬辰之變, 宣廟遠狩龍灣, 至欲內附,
주고 부르길 조선이라고, 보고 같이 한 내복(내용), 열성(대대의 임금)이 서로 이어 왓고,
지성이 사대며, 임진의 변이고, 선묘(묘호)가 멀리 쫓겨난 용만에서, 이르며 바라길
내부(다른 나라에 붙음)하여,
神宗皇帝竭天下之力, 東出兵救之, 得以再造邦家。 吾東方昆蟲、草木, 何莫非皇靈所被也。
신종 황제가 다한 천하의 힘으로, 동쪽으로 출병해 구햇고, 얻어 가지며 다시 만든
방가(나라)며, 우리 동방의 곤충(벌거지)이나, 초목이, 어짜든 없는기 아니며
황(제)의 靈을 소위 입엇다고,
丁丑之事, 有不忍言。 其時斥和三臣, 以死爭之, 節義炳然, 綱常不墜。 到今年紀愈久,
정축(년) 의 일도, 가진 불인(아니 참다) 한 말에, 그 때 척화(화의를 물리침)한 3신이,
가지고 죽기로 다투엇다고, 절의(절개)하고 병연(빛이 비쳐 밝은 모양)하며,
강상(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 아니 떨어 졋고, 이른 금년
기유(연월순으로 간략하게 적은 기록)가 오래 되엿고,
世道愈下, 復讎雪恥, 固非朝夕所可期, 而至於疏章間慷慨之言, 亦未有聞, 已至于(寢)
세도(세상의 도의)가 점점 내려가나, 복수로 설치(부끄러움을 씻음)하지만, 단단한기
아니고 조석에 소위 가기(기약할 수 있음)하고, 그러해 이르고 따른 소장(상소하는 글)의
사이에 강개(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정의심이 복받치어 슬퍼하고 한탄함)한 말이나,
또 아니라고 잇어 들은 기. 이미 이르니 행햇다고,
遠(寢) 忘之域, 予嘗慨然。 今逢周甲, 一倍感愴矣。" 領議政申琓曰: "聖敎及此,
멀리(침) 잊어 버린 지경이고, 내가 일찌기 슬퍼하고 그러햇다고, 이제 만난
주갑(만60세)에, 오로지 점점 감창(감모하는 마음이 움직여 슬픔 또는 느껴 워서 슬픔)
한다고, 영의정 신종 왈왈, 성교(책봉할 때 내리던 제왕의 교명)가 끼치니 이에,
群下孰不感激? 壬辰再造之恩, 實萬世不可忘也。 丁丑以後, 君臣上下, 皆以句踐之心爲心,
군하 누구라도 아니라고 감격을, 임진에 다시 만든 은(혜)에, 실로 만세 불가며
까묵는 기, 정축(년) 이후, 군신 상하가, 다 하니 구천의 마음이며 위한 마음이니,
句踐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월나라의 임금 오왕 부차에게 패하여 회계산에서 항복
그 후 명신인 범 여와 와신상담하기 20년 마침내 부차를 죽여 회계의 치욕을
씻어 패자가 됨
國小力弱, 雖不能一灑深恥, 痛恨之心, 無時可已, 而至於今日, 則人心恬嬉,
나라가 작고 힘이 약해, 오로지 불능이고 한번이라도 끊이지 않으니 심히
부끄럽다고, 통한의 매미가, 없엇고 때가 가(능)한기 이미, 해서 이른 금일,
바로 인심이 염희(맡은 직무를 게을리 함)라,
非但世無慷慨之人, 竝與大義都忘之矣。 不獨我國如此, 中國亦然。 曾聞漢人,
아니라고 다만 세상에 없는 기
강개(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정의심이 복받치어 슬퍼하고 한탄함)한 사람이고,
나란히 같이하며 대의를 대부분 잊엇다고, 아니라고 홀로 아국하고 같은 기 이에,
중국도 또 그러하다고, 일찌기 들은 한인이,
見東國衣冠制度, 撫玩咨嗟, 或至下淚。 及臣赴燕, 漢人皆已剃頭, 見使行全無欽艶之意,
본 동국의 의관 제도에, 어루만지고 구경하며 묻고 탄식햇다, 혹은 이르길 아래로 눈물이,
더불어 신이 다다른 연(경), 한인이 다 이미 체두(바싹 깎은 머리)를, 보고 사가 행하나
전무라고 공경하고 선망하는 뜻이,
反有嘲笑之色。 蓋人情久則易忘, 後生多不識前事故也。" 上曰: "彼國染俗, 固無足怪,
꺼꾸로 잇엇다고 조소(조롱하여 비웃는 웃음)로 색깔을, 대다수 인정은 오래되면 바로
쉽게 잊는다고, 후생은 많이 불식이라 전의 사고니, 상이 왈왈왈, 저 나라 물든 (세)속은,
갸들 나라는 없다고 족하며 괴이하다고,
而我人於客使來往時, 夾道觀光, 視同華使, 其無含冤忍痛底意可知。 世道至此, 良可寒心。
이어서 아인이 따라서 객사의 래왕때에, 협도(좁은 길)에서 관광햇고, 보니 같앗다고
화사(중국의 사신)와, 그기 없엇다고 머금은 원통함에 참은 이픔의
저의(속으로 작정한 뜻)를 가지(알 수 있음)하고, 세도가 이르니 이에,
양가(매우 훌륭하다)하고 한심하다고,
使之不忘之道, 何以則可也?" 琓曰: "我國兵力單弱, 復讎雪恥, 雖未可易言,
사가 불망의 도(리)라면, 어찌해 그런기 바로 가하야고, 신이 왈왈, 아국의 병력은
단약(외롭고 약함)하며, 복수하고 설치(부끄러움을 씻음)함은, 그렇지만 아니라고
가히 쉽게 말하는 기,
而古有抱氷握火, 生聚敎訓, 積年而後成功者, 句踐是也。 聖上, 苟存此心, 念念不忘,
해서 옛적 잇엇다고 안은 얼음이고 쥔 불로, 백성을 모아 가르쳣다고, 적년(여러 해)하고
이어 뒤 성공자를, 구천이라고, 성상은 ,진실로 잇야고 이마음이, 념념 불망하라고,
句踐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월나라의 임금 오왕 부차에게 패하여 회계산에서 항복
그 후 명신인 범 여와 와신상담하기 20년 마침내 부차를 죽여 회계의 치욕을
씻어 패자가 됨
得人善任, 相時而後動, 則豈無可成之幾耶? 惟願以奮勵聖志爲根本焉。" 左議政李畬曰:
득한 사람에서 선임하여, 서로 때에 뒤에 움직이니, 바로 어찌 없다고 가히 성공의
기회가, 생각에 원하니 분려(마음과 기운을 가다듬어 힘씀)하고 성지로 하라고 근본이니,
좌의정 이여가 왈왈,
"昔我孝宗大王, 興一二同德之臣, 奮發大志, 欲伸大義於天下, 而中途薨殂, 大勳未集,
옛적 우리 효종대왕은, 일어켯다고 1-2를 같이해 덕으로 신하를, 분발햇고 큰 뜻을,
바라고 편 대의로 천하를, 하나 중도에 훙조(죽음)하여, 대훈을 아니 이루엇다고,
志士仁人, 足以隕涕於千古。 蓋丙、丁以後, 彼爲方興之國, 雖以孝廟雄略, 亦未易輕擧矣。
지사 인(=仁者 마음이 어진 사람)인이, 족히(충분히) 운체(누물을 흘리다)햇다고
천고에, 덮엇다고 병(축), 정(축)이후, 갸들이 한 사방에서 일어킨 나라고, 비록 그러하나
효묘의 웅략이나, 또 아니라고 쉽고 가벼이 일어나는 기,
今則天下事, 稍異於前, 庶有可爲。 復讎雪恥, 亦係乎時勢之難易, 何可自畫? 夫以小事大,
언자 바로 천하의 일이고, 점차 다르다고 전과는, 여러 가지가 잇어 가하다고 하는 기,
복수하고 설치하고, 또 매여 잇다고 시세의 難易에, 어찌 가하야고 스스로의 계획이,
부(역)은 작은 일이나 크다고,
古喆王之所不免, 而莫不內爲自强之圖, 以保其國, 不但以皮幣、珠玉, 恃以爲安也。
옛적 철왕도 소위 아니 면햇다고, 그리고 없고 아니니 안에서는 하라고 자강을 도모해,
그리고 보호하라고 그 나라를, 아니라고 다만 피폐와, 주옥으로, 모시고 해주니 편안
햇야고,
顧以國勢言之, 復讎非可論, 雖欲自保, 亦恐未易。 臣每中夜思之, 寢食何甘?
바란다고 나라의 세를 말하면, 복수는 아니라고 가히 논하는 기, 비록 바라나 스스로
보(호)하고, 또 두렵지만 아니라고 쉬운기, 신도 매양 한밤중에 생각햇다고,
뒤비자고 처먹고 하는기 달갑야고,
殿下苟能惕然奮發, 先立大志, 以爲興衰撥亂之本, 則如繕兵固圉之計, 特一施措間事耳。
전하는 진실로 능하니 척연(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모양)히 분발하고, 먼저 세우라고
큰 뜻을, 그리고 해서 일어 키라고 약해지면
발란(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하여 잘 다스림)이 본이니, 바로 같이해 다스린 병사로
단디하라고 국경의 계(획)을, 특히 1번에 시(행)한 조(치)의 사이 일이라 들엇다고,
根本旣立, 何事不成? 判尹閔鎭厚曰: ""孝廟朝任用之臣, 如先正臣宋時烈, 際會昭融, "
근본이 이미 서니, 어떤 일이라도 아니 이루야고, 판윤 민진후 왈왈, 효묘조에 임용한
신이고, 같이한 선정신 송시열은, 그 즈음 모인 소융?
前代無比。 其謨猷密勿, 蓋莫非復讎雪恥之計, 而常有忍痛含冤, 迫不得已之意, 存於其中。
전대에는 없엇다고 견줄데가, 그 모유(꾀)로 빈틈없이, 덮고 없어도 아니라고 복수하는
설치의 계(략)이, 그래서 언제나 잇엇다고 참은 아픔을 머금은 원통함을, 박하나 부득히
이미 뜻을, 가지니 따라서 그 가운데에,
自時烈之沒, 誰復以此等說話, 聞於黈纊之下哉? 孝廟奮發大計者, 非徒言語而已, 其實政、
스스로 시열이 몰하니, 누가 다시 그러야고 차등(이들)의 설화를, 듣고 간
주광(면류관의 양쪽으로 귀에 닿을 정도로 늘이어 달아맨 누른 솜 방울) 아래에서,
효묘가 분발한 대계자고, 아니라고 무리의 언어가 이미, 그 실정은,
實效, 在今可徵。 殿下居孝廟之位, 纉孝廟之業, 所以繼志述事者, 正在於復雪,
살효며, 잇다고 지금 가능하다고 밝히는 기, 전하가 거한 효묘의 자리, 계승한 효묘의 업,
소위 그리고 이은 뜻의 일을 서술한 자라고, 바로 잇엇다고 복수의 설취를,
而世道日下, 國勢日弱, 大計之成, 已無可言, 而反有朝夕澟澟之憂, 念及于此, 寧不慨然?
그리고 세도 일하(천하)며, 국세가 날로 약해지고, 대계 지성을, 이미 없다고 가히 말을,
그러니 꺼꾸로 잇다고 조석으로 름름(섬섬=찬 기운)하며 근심이, 생각이 끼치니 이에,
편안한 기 아니라고 슬프고 그러하니,
繼自今, 益自奮勵, 一以孝廟爲法焉。" 大司成兪得一曰: "昨歲聖上, 送餞客使, 臨幸關廟,
이어 스스로 지금, 더해 스스로 떨치며 힘쓰고, 하나로서 효묘를 위한 법으로, 대사성
유득일이 왈왈, 지난해 성상이, 송전(보내다)한 객사에, 임행(임금이 그곳에 거동함)한
관묘?,
客使 다른 나라에서 온 사신 정조나 동지에 백관이 조하할 때에 반열에 참여하는 일본
유구의 사신들과 모든 야인의 관원(들
且因安市城事, 感慨下敎。 今日聖敎, 又復及此, 忠臣、義士, 想必奮袂而掩涕矣。
또 인하니 안시성의 일을, 감개(매우 감격하여 마음속 깊이 느끼어 탄식함)한 하교에,
금일 성교(책봉할 때 내리던 제왕의 교명)하니, 또 다시 끼쳣다고 이에, 충신, 의사는,
생각하며 필히 분발하고 소매로 이어 가리고 눈물을 흘린다고,
天地之大, 固非小人之腹所可測度, 而伏聞天語懇惻, 於戲不忘之意, 藹然於辭表。
천지는 크니, 우기는 기 아니라고 소인이 다시 소위 가히 측도(따지어서 헤아림)하는 기,
그래서 엎드려 들엇다고 천어의 간측(간절하고 지성스러움)을, 어희(아 하는 감탄사)
불망의 뜻이라고, 애연[(온화하다)부지런하고 그러하니]하고 따라 사표라고,
淵哀所存, 願一下詢于諸臣。 或有難愼之端, 則群下當違覆, 苟其不然, 亦宜將順之不暇。
깊은 슬픔이 소위 잇어, 원해서 한번 하문햇다고 여러 신에,
혹 가진 난신(어렵게 여기고 조심함)의 끝이니, 바로 군하가 마땅히
위복(일이 의심스러운 곳을 캐어 밝힘)하고, 진실로 그기 아니라고 그러하니, 또 마땅히
장순(받아들여 순종함)하여야 하나 아니라고 겨를(틈)이,
君臣如父子, 一堂都兪之間, 公說道理, 何所不可, 而反有待於臣等一二言耶?" 上始曰:
군신은 같다고 부자와, 일당(한 회당)에서 대부분 답을 한 사이에, 공(적)으로 말하는
도리는, 어찌 소위 불가라고, 그러니 반(대)로 가지고 기다리며 그래서 신 등의 한 두
말이라고, 상이 비로서 왈왈왈,
"諸臣陳戒, 予當體念, 而且以予意言之, 我國之得有今日, 莫非神皇之力, 而深仁厚澤,
여러신이
진계(신하가 임금에게 이변에 대하여 경계하고 두려워하라는 뜻으로 상소를 올리는 것)
하니, 난 마땅히 체념한다고, 그리고 또 하니 나의 뜻을 말한다고, 아국이 얻어 가진
금일, 없는 기 아니라고 신종의 힘이, 그리고 깊다고 어질고 두텁운 (은)택이며,
無地酬報, 予心感慨, 尤切於是年矣。 楊鎬、邢玠, 以東征帥臣, 亦有祠宇,
없엇더고 땅이 수보(보답)할, 내마음이
감계(매우 감격하여 마음속 깊이 느끼어 탄식함)하다고, 더욱 (간)절하다고 이해에는,
양호, 형개는, 그리고 동정의 사 신이고, 또 사우(신주를 두기 위해 따로 지은 집)를,
而尙無爲神皇建廟事。 先正臣宋時烈, 曾有是議, 欲以斥和三臣, 從享廟庭, 語在
그리고 언제나 없엇다고 한기 신황의 건묘의 일이, 선정신 송시열이, 일찍이 가지고 이에
의논하고, 바라고 그리햇다고 척화 3신을, 따라서 제를 올린 묘정에서, 말이 잇엇다고,
《三學士傳》矣。 此事何如? 畬曰: ""此議之行於搢紳間蓋久, 而不惟拘於形勢, 儀章、"
《3학사 전》의, 이일은 어찌 같으야고, 이여 왈왈, 이에 의논하고 행해 따른
진신(벼슬아치의 통틀어 일컬음)들 사이에는 모두 오래전이라고, 그래서 아니라고
생각을 가지고 따른 형세가, 의장,
品式, 實多難處之端。 宋時烈, 本有此意, 不曾上請者, 似必有以也。 時烈,
품식, 실지로 많아 난처하다고 생각에는, 송시열의, 본래 가진 이뜻은, 아니라고 일찍이
올려 청한자가, 비슷하다고 필히 가지니, 시열이,
嘗以崇禎皇帝御筆, 鐫於所居華陽洞石壁, 作煥章菴, 末年以古人一間茅屋祭昭王之義,
일찍이 그러햇다고 숭정황제의 어필로, 새겻고 따라서 소위 거한 화양동 석벽에, 만든
환장암을, 말년에는 옛사람이 1간의 묘옥(초가집)에서 제를 소왕의 뜻으로,
欲立廟, 以紙榜祀萬曆、崇禎兩皇帝, 未就而沒。 參判臣權尙夏, 與章甫,
바라고 세운 묘에서, 햇다고 지방(종이에 지방문을 써서 만든 신주)으로 제를 만력에,
숭정 양황제, 아니 나아갓고 몰햇다, 참판 신 권상하하고, 같이한 장보(유생)가,
合謀營一屋於時烈舊居之傍, 倣禮經殿屋之制云。 未審此事, 亦已徹聞否?" 上曰:
합하고 모의해 경영한 1옥이고 시열이 옛 거한 곁에, 본 뜨니 예경 전옥의
제(도)라 운햇다, 미심(확실하지 못한 일에 대하여 늘 마음이 놓이지 아니함)이라 사실이,
또 이미 통해 들은기 아니라고, 상이 왈왈왈,
予不及知也。 鎭厚曰: "臣詳其前後事實, 請陳之。臣仲父故相臣鼎重,
나는 아니라고 끼쳐 아는 기, 진후 왈왈, 신이 상세한 그 전후 사실을,
청햇다 말하려고, 신의 중부(둘째 아버지)고 상신 정중이,
使燕得崇禎皇帝御筆 ‘非禮不動’ 四字, 歸示時烈, 時烈劚華陽絶壁而刻之, 仍作小菴,
사로 연(경)애서 얻은 숭정화제 어필인, 비례부동이란, 4글자, 돌아와서 보인 시열,
시열이 깍은 화양의 절벽에서 새겻다, 인하여 만든 작은 암(자),
故相臣金壽恒, 賦長篇以述其事。 時烈臨歿, 書示尙夏曰: ‘吾欲立廟祀兩皇帝,
고 상신 김수황이, 문체 장편(제한이 없는 고시체의 한 가지)으로 서술한 그 사(실),
시열이 임해 몰하니, 글로 보이며 상하가 왈왈, 내가 바라고 세우고 제를 양황제에,
而事未及就, 齋志而死。 君須與金、閔兩家子孫, 相議爲此’ 云,
그래서 일이 아니 끼치고 나아가니, 제계의 뜻이라고 그러다가 죽엇다고,
군은 모름지기 같이한 김, 민 양가의 자손이니, 서로 의논해 하라고 이를 운햇다,
而書中有茅屋祭昭王之語矣。 尙夏承其遺意, 與傍近士子同志者, 營建五架屋於華陽,
그리고 글중에 잇는 묘옥에서 제를 소왕의 말이라고, 상하가 이어 그 남긴 뜻을,
더불어 곁의 부근에 사의 새끼가 동지의 자니, 영건(건물을 지음)한 5 가옥을 화양에,
將以行祭於兩皇帝, 而位版則尤有所不敢用, 紙榜以祭, 祭畢焚之。 玆事事體, 極其重大,
장차 따라 행햇다 제를 양 황제에, 그리고 위판은 바로 더욱 잇엇지만 소위 아니라고
감히 쓴기, 지방으로 제를, 제를 필하고 불태웟다, 이일은 사체(사태)가,
심히 그기 중대하다고,
未有朝命之前, 不無僭猥之懼, 且恐不逞之徒, 或欲因此而嫁禍士林。 曾與鄭澔相議,
아니라고 가진기 朝命 이전에, 아니고 없엇다고 참외(참람하고 외람됨)나 두려움이,
또 두려우며
불령(원한이나 불평불만을 품고 국가의 구속에서 벗어나 제 마음대로 행동함)의 무리가,
혹 바란다고 인하고 이러니
그래서 가화(화를 남에게 넘겨 씌움 재앙을 남에게 전가시킴)한다고 사림(유림)에,
일찍이 같이한 정호와 서로 의논하며,
欲望微達於筵席, 而澔不敢明陳云矣。 蓋茅屋祭昭王, 有同去思之義, 與此微有不同者。
욕망이 작게 트이니 간 연석이고, 그리고 호가 아니라고 감히 명진(명백하게 진달)을
운 하나, 어찌 모옥에서 제를 소왕이고, 가진 동지인 생각의 뜻이지만, 같이하고 이에
작으나마 가진 부동자라,
今以海外藩邦, 廟享中朝天子, 其於禮律, 極多難處, 而若士民之私自寓誠者, 不必禁止,
지금에 해외 번방에서, 묘향할 중국의 천자라, 그기 따른 예도와 법칙은, 극히 많아
난처하고, 그리고 만약 士民이 사적으로 스스로 바치는 정성인 자는, 아니라고
필히 금지하는 기,
自朝家示以勿罪之意, 則士民可以安心行祀也。" 上命諸臣, 各陳所見。 琓曰: "頃年儒生,
스스로 조의 가에 보이며 아니라고 죄의 뜻이, 바로 사민이 가히 한 안심을 행한 제라고,
상이 명햇다 제신에, 각 말하라고 소견을, 완 왈왈, 지난해 유생이,
有以此事上疏者。 金鎭龜爲禮判, 將欲回啓, 而有所持難, 私議于臣。 臣以爲:
잇엇고 그래서 이일을 상소한 자라고, 김진규가 예판으로, 장차 바라길
회계(임금의 물음에 대하여 신하들이 대답함)를, 그래서 가지고 소지한 어려움을,
사적으로 의논하려 온신이고, 신이 그래서 햇다고,
‘漢時皇帝廟, 多在郡國。 蒼梧有舜廟, 會稽有禹廟, 此外歷代帝王廟之在郡邑者,
한 때 황제의 메똥이고, 많이 잇다고 고을이나 나라에, 창오에 잇는 순의 메똥,
회계에 잇는 우의 메똥, 이 외에 역대 제왕의 메똥이 잇다고 고을이나 읍인 곳에,
不可勝計。 此豈能盡用八佾之舞, 太牢之享? 不過寓後世追慕之誠, 而但當此之時,
불가라고 승계[꼭 이길 만한 좋은 꾀 또는 가망(可望)]가. 이 어찌 능하야고 다 쓰는 기
8일[무악(舞樂)의 이름. 팔일무어정(八佾舞於庭)의 첫 두 글자를 딴 것으로
예악의 이야기를 모은 편명(篇名)이라는 의미]을 춤추며,
태뢰([=대뢰 나라 제사에 소를 통째로 제물로 바치던 일 처음에는 소 양 돼지를 아울러
바치는 것을 대뢰하고 하였으나 뒤에는 소만 바치게 되었음]로 제사를,
불가라고 맡기는 기 후세에 추모하고 정성을 하는 기, 그러니 또 마땅하다고 이 때니,
形格勢拘, 恐有日後之慮。’ 臣意本自如此矣。" 畬曰: "今若自朝家立廟,
형(식)이나 격(식)이 형세에 구(애)가, 두렵다고 잇는 날 후에 생각이, 신의 의미인
본은 스스로 같다고 이에, 여 왈왈, 지금 만약 스스로 조의 가에 세운 메똥에,
則當以天子禮享之, 禮貌加尊於本國宗廟。 其間禮節, 甚多難處。 今顧爲皇朝報恩之道,
바로 당연한 천자의 예인 제라, 예모(예절을 지키는 것)를 더하고 높히고 따른
본국의 종의 메똥이며, 그 사이 예절에, 심히 많다고 난처함이, 이제 바라니 하라고
황조의 보은에 도(리)를,
惟當修內攘外, 以明尊周之義, 以成先王之志。 事業之大, 無過於此。 雖不能然,
생각에 마땅히 익히고 안에서 물리치라고 밖을, 그리고 이룬 선왕의 뜻이니,
사업은 크고, 없엇다고 지난날 이보다, 비록 블능이라도 그러하니,
固國安民, 有以自立, 此其實也。 至於立廟, 豈不爲稀闊之盛擧, 而是則文也。
평온한 나라 편안한 민이니, 가지고 그러고 스스로 세웟다고, 이기 실지라고, 이르고
따라 세운 메똥, 어찌 아니 하야고 매우 넓고 성하게 일어키니,
그래서 이에 바로 문(현상?) 이라고,
臣願殿下加意於實功。 至若士民之自以其誠薦獻者, 雖不備禮, 不至爲嫌。 華陽廟宇新成,
신이 바라니 전하는 더하라고 뜻을 따라서 실지 공을, 이르며 만약 사민이 스스로 그러면
그 성의로 천거라하하라고 헌한 자를, 비록 아니라도 (준)비한 예가, 아니라고 이른 기
해서 미운 기, 화양에 메똥을 새로 이루어,
春秋粢盛, 出於章甫, 若以奴婢、田土, 參酌顧助, 則亦可以表聖上今日之心矣。" 鎭厚曰:
봄 가을 자성(나라의 큰 제사에 쓰는 기장과 피)은, 나온다고 장보(유생의 딴 이름)에서,
만약 따른다면, 전토를, 참작해 고조(생각하여 주고 도와 줌)하고, 바로 또 가히 따라
표한 성상의 금일의 마음이라고, 진후 왈왈,
"此雖別建一屋, 而不設位版, 則恐不可以立廟稱之, 若劃給民田, 則事體爲未安矣。
이에 비록 따로 세운 1옥에서, 이어 아니 설치한 위판(위패)이니, 바로 두렵고
불가하다고 세운 묘를 칭하기 가, 만약 획급(주어야 할 것을 그어줌)한 민전에,
바로 사체(일의 이치와 당사자의 체면)를 위해 미안하다고,
得一曰: ""大臣務實之言, 誠然, 而聖上建廟之議, 與文具有異, 固無不可。 然玆事體大, "
득일 왈왈, 대신은 힘쓰라는 실지 말이며, 정성이 그러하니, 성상은 세울 메똥의 의논을,
더불어 문구(일의 실속은 없이 겉만 그럴듯하게 꾸밈)를 가지나 다르다고, 고무(전혀?)
하여 불가라고, 그리하여 이 사채(일의 이치와 당사자의 체면)가 크디고,
儀文、度數, 節節妨礙。 且有煩於聽聞, 似難容易行之也。" 左副承旨崔重泰曰:
의문(의식의 표), 도수(거듭하는 횟수)가, 절절히 방애(막아 거리끼게 함)되고, 또 가진
번거로움이 청문에, 비슷하나 어렵다고 용이하게 행하는 기, 좌부승지 최충태 왈왈,
"茅屋祭昭王, 古有行者, 此則雖以匹夫匹婦, 尙容爲薦其誠, 而至若侯邦之立皇廟,
묘옥에서 제를 소왕에, 옛날 잇엇다고 행한 자가, 이에 바로 비록 한 필부가,
오히려 어찌 하야고 천거한 그 정성을, 그래서 이르렷고 만약 후방(제후 나라)
에서 세운 노오란 메똥에서,
事體至重。 必須審愼, 禮節無少格礙, 而後方可創始。 且人心、世道, 日益危惡, 我國機事,
사체가 이르고 중하니, 필수(꼭 필요로 함)하니 살피라고 신(중)히, 에절이 없고
조금이라도 격식에 (구)애 되면, 후방이 가하다고 창시(처음 시작)가, 또 사람 마음,
세도가, 날로 더해지며고 위태하고 나쁘다고, 아국의 기사(가장 기밀한 일)는,
象胥輩無不漏泄, 萬一有詰問之擧, 則實爲目前之急矣。 皇朝盛德深仁, 雖以婦孺、奴隷,
상서[역관(譯官)]무리가 없고 아니라도 누설이, 만에 하나라도 잇어 설문이 일어나면,
바로 실지 하게되니 목전에서 급함이, 황조의 성덕 깊은 인(애)로, 비록 지어미 젖먹이,
노예도,
尙皆感結, 眞所謂不刊在心者也。 苟殿下欲報天地之大德, 則恐無踰於勵志薪膽,
언제나 다 감응하고 맺는다고, 진(실)로 소위 이르나 아니라도 새기고 잇다고 마음에
자릴 잡으려, 진실로 전하가 바라고 보(답)하면 천지의 큰 덕이니, 바로 두려움이 없고
지나가고 힘쓴 본심은 (와신)상담이고,
刷恥雪冤也。 校理趙道彬曰: ""此不但禮節難便而已, 方今國儲匱竭, 民力殆盡, 興作之役, "
씻어내고 치설해도 원통하야고, 교리 조도빈 왈왈, 이기 아니라 다만 예절은
난편(편하지 못함)이라고 이미, 사방에서 이제 나라에서 쌓아 둔기
저궤(다하여 없어짐)고, 민의 힘이 거의 다하니, 흥작(새로 일으켜 지음)의 일이니,
豈不難哉?" 畬曰: "此事何可以煩費論也?" 上曰: "此非今日所可決定, 當博詢而處之。
어찌 아니라고 어려운기, 여 왈왈, 이 일이 어찌 가히 번거러이 쓴다고 논하야고,
상 왈왈왈, 이기 아니라 금일 소위 가한 결정이니, 당연히 널리 물어 보라고 곳곳에,
仍命大臣, 躬議于他大臣。 遣史官問于在外相臣及儒臣, 判府事徐文重議: 此事,
인하여 명한 대신, 몸소 의논하라고 다른 대신하고, 보낸 사관이 물엇다 재외
상신(相國)하고 유신에, 판부사 서문중이 의논해, 이일로,
議者以時勢爲慮。 彼若方內妥帖, 則未必因此生梗, 而或有疑我之心, 而問此擧,
議者는 시세(어떤 때의 형세)하며 생각한다고, 갸들이 만약 사방 안이
타첨(별 탈없이 일이 순조롭게 끝남)이고, 바로 필히 아니라고 인하여 이
생경(두 사람 사이에 화목하지 못한 일이 생김)이고, 혹 가지고 의심한 우리의 마음이고,
믈어 보면 이에 일어 난다고,
則不無生事之慮。 然此則不必論。 天子之廟, 至尊, 饗祀之典, 至嚴, 以廟則非其所,
바로 아니고 없다고 생사(일을 야기시키다=중국어)의 근심이, 그러하니 이에 바로 불필
이라고 논하는 기, 천자의 메똥은, 지존이고, 향사(제사)의 (법)전이니, 지엄하고,
그러한 메똥은 바로 아니라고 그곳이,
以饗則非其禮。 此爲無於禮之禮, 其不敢爲審矣。 且若立天子廟于國中,
그래서 향(제사)은 바로 아니라고 그 예가, 이에 하니 없엇고 따라서 예는 예라고,
그기 아니라고 감히 위해 살핀 그라고, 또 만약 세운 천자 메똥이 중국이면,
則事體當加隆於宗廟, 如處所、時享、樂章等儀文, 節節難便。 雖有東土百世難忘之德,
바로 사체(=사태 일이 되어 가는 형편)에는 마땅히 더해 높이라고 종묘에, 같은 처소,
시향, 악장 등의 의문(의식의 표)에, 절절이 난편(편하지 못함)이니, 비록 잇어도 동토
백세 난망(잊기 어렵거나 또는 잊지 못함)의 덕이니,
而至於立廟, 則終有所難行者矣。" 領府事尹趾完議: "神皇再造之恩, 我國臣庶,
해서 이르고 가서 세운 메똥, 바로 끝내 가지나 소위 어렵게 행한 자라, 령부사 윤지완이
의논해, 신 황이 다시 만든 은혜라고, 아국의 신으로 여러번,
百世不可忘者。 今於建廟之議, 大小人心, 亦必聳動。 但念廟而享之, 於禮爲僭。
백세 불가라고 망자가, 지금 가서 세울 메똥을 의논하고, 대소의 인심은, 또 필히
요동(몸을 솟구쳐 뛰듯 움직임)하니, 단지 생각에 메똥에 그래서 제(사)를,
가서 예를 하자고 주제넘게,
況儀文之窒礙, 固非一端, 一誤之後, 雖悔難追。 如許至重至大之事, 不可猝然議定。
하물며 의문(의식의 표)이 질애(막히고 거리끼다)하니, 굳은 기 아니라고 일단(한쪽 끝)이,
한번 그르친 뒤에는, 비록 뉘우쳐도 어렵다고 거슬리니, 같이 허하고 이르고 중하게 이른
큰일 이니, 불가라고 갑자기 그리 의논을 정(리)하니,
願熟講而處之。" 判府事尹趾善議, 亦以爲難行, 判府事崔錫鼎不對。 左贊成尹拯言:
원하니 익히고 외우라고 곳곳에서, 판부사 윤지선이 논하나, 또 한 해도 어렵게 행하니,
판부사 최석정은 아니 대햇다, 좌찬성 윤증의 말,
"神皇罔極之恩, 萬世難忘, 而今日朝宗之義, 無地可見。 聖念及此, 可泣神祇。
신 황의 망극한 은혜는, 만세 난망이고, 금일 조종이 옳지만, 없는 땅이라 가히 보는 기,
성념(임금의 생각을 일컫는 말)이 끼쳣다고 이에, 가히 눈물을 흘린다고 신지(귀신)도
至於建廟之議, 實是國家莫重祀典。 臣以賤分昧識, 不敢輒有容喙。 戶曹參判權尙夏議: "
이르니 세울라고 메똥을 의논하며, 실지 이국가의 막중한 사전(제사를 지내는 예전)이고,
신은 천분(미천한 신분)이고 어두운 식견이, 아니라고 감히 문득 용훼(입을 놀림)하는 기,
포조참판 권상하가 논하길,
"玆事實是天理民彝之不可已者。 聖敎之下, 凡在含生之類, 莫不感泣聳動,
이 사실로 이에 천리 민이(사람으로서 늘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가 불가라 이미 곳곳에,
성교를 내려, 대다수 잇다고 참고 살아 가는 여러 가지가, 없다고 불감하며 울고
용동(몸을 솟구쳐 뛰듯 움직임, 또는 움직이게 함)하는 기,
惟當將順之不暇, 孰敢有異議哉? 命更問于錫鼎及拯, 竟不對。 李畬又以私書, 問尙夏, "
생각은 당연히 장차 따르는 기 불가(겨를이 없다)라, 누가 감히 잇다고 이의(다른주장)를,
명해 다시 물어 보라고 석정하고 증에게, 마침내 아니라고 대한 기, 이여가 또 私書로,
물어 본 상하,
其答書曰: 聖上不忘前王, 特下建廟之議, 有以見睿志卓然, 高出百王。
그 답서 왈, 성상이 불망이라 앞의 왕을, 특별히 내린 세울 메똥을 의논하라고,
잇어 본 예지가 탁연(탁월한 모양)하여, 높이 나왓다고 백왕에서,
正可以激三韓忠義之氣, 玆事所關, 至重且大。 得此機會, 而終不能贊成,
바르니 가히 격햇다고 3한의 충의의 기로, 이 일로 소위 관(계)하여, 이르니 중하고
또 크나, 얻은 이 기회를, 끝내 불능이라 찬성이,
則我聖上尊周之義, 無以著明於天下後世, 而群下亦不得辭其責。 豈可以時之顧忌,
바로 우리 성상이 높이니 두루 옳다고, 없엇다고 저명(뚜렷이 밝음)이 천하 후세에,
군하 또 부득하다고 말로 그 책(임)을, 어찌 가히 때마다 돌아보고 꺼리야고,
事之嫌礙, 有所持難哉? 若以彼人致詰爲慮, 則我國受皇朝之恩, 天下之所共知。
일을 싫어하고 꺼리고, 잇다면 소위 가지니 어렵다고, 만약 피인(저 사람 외국사람)이
이르고 물어보고 하면 사실(寫實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다)하라고, 바로 아국이 받은
황조의 은혜를, 천하가 소위 같이 안다고,
到今追念舊事, 略擧報祀之典者, 出於心情、天理之所不已, 則彼亦人耳, 何必爲之呵禁哉?
이른 지금 추념한 옛일, 간략히 일어난 보시(은혜의 보답으로 신불에 드리는 제사)
(법)전의 무리, 나온 마음의 정, 천리는 소위 아니라고 이미, 바로 갸들 또한 사람이라
들엇다고, 어찌 필히 해야 하아고 가금(=喝道 큰 소리로 꾸짖어 길을 치움)을,
且聞渠嘗謂大明, 亡於流賊。 渠之入燕, 爲大明報仇, 至上先帝之諡云。 設有致詰之端,
또 들엇다고 渠(3者)에서 일찌기 이르길 대명이, 망햇다고 流賊에, 渠가 들어 온 연,
위한 대명의 보구(앙갚음)를, 이른 상이 선제에 시호를 운하고, 베풀며 잇어 이르고
꾸짓엇다 끝까지,
豈無可對之辭乎? 若以下國祀天子爲僭猥, 則杞、宋以諸侯, 祀夏、殷, 未聞有僭猥之譏,
어찌 없다고 가히 대한 일이야고, 만약 그래서 하국이 제사를 천자를 위해
참외(참람하고 외람됨)하면, 바로 기, 송의 제휴고, 제사한 하, 은은,
아니 듣고 잇엇다고 참외가 맛없다고 비웃어도,
此足爲明證。 若謂之杞、宋以夏、殷之後承祀, 則亦有辭焉。 君臣、父子, 其義一也。
이에 족하다고 위한 명증(명백하게 증거함)이니, 만약 이르길 기, 송이 하, 은의 후(손)이
이어서 한 제사라면, 바로 또 가진 말, 군신, 부자, 그기 옳고 하나라고,
今旣無子孫之祀, 則以舊臣而祀舊君, 亦何所不可哉? 若以禮貌之加, 尊宗廟爲嫌,
이제 이미 없어진 자손의 제(사)라, 바로 그래서 옛신 이라 졔를 지냇다고 예군에,
또 어찌 소위 불가하야고, 만약에 예모(예절을 지키는 것)를 더하고, 존해 종묘를 하니
싫어하면,
則神皇之祀, 先擧於上旬, 宗廟之祀, 退行於中旬, 固不害於爲尊屈之道。 至若佾舞之添數,
바로 신황의 제고, 먼저 거(행)한 상순, 종묘의 제에, 물러나 행한 중순이면, 단단하고
불해하니 따라서 한 尊하고 굽힌 도라고, 이른다고 만약
일무(사람을 여러 줄로 벌여 세워 놓고 추게 하는 춤)에 더한 수라고,
樂章之新撰, 惟在有司之裁稟, 亦何難處之有? 必以都城爲非便, 則江都是舊都, 地且僻左,
악장(나라의 제전 연례에 주악할 때 부른 가사)을 신찬(새로 책을 찬수함)하고,
또 어찌 난처함이 잇야고, 필히 따라 도성을 위해 아니라고 편한기, 바로 강도는 이에
옛 도라고, 땅 또한 궁벽(외따로 떨어져 구석지고 몹시 으슥함)한 좌(증거)라고,
若於此建廟, 可無礙逼之勢, 佾舞、樂章, 亦依濬源、慶基殿例, 不用無妨矣。
만약 그래서 이에 세운 메똥이, 가히 없다면 애핍(시름시름 중국어)한다고 세가,
일무(사람을 여러 줄로 벌여 세워 놓고 추게 하는 춤), 악장, 또 따른 준원(깊은 근원),
경기전의 예를, 아니 쓰도 무방하다고,
大臣以其書入奏, 上命徐待日後議定。
대신이 따라 그 글로 들어와 아뢰니, 상이 명하길 천천히 기다리라고 일후(뒷날)
의논해 정리해라 이놈아 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