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인간혁명 30권 제3장 雄飛(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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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신이치는 첫 방문지인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하와이회관의 모든 행사에 참석하고 일본에서 온 하와이친선교류사절단과 남미친선교류사절단 멤버들을 격려했다.
10월 2일에는 하와이회관에서 열린 ‘세계평화의 날’ 기념근행회에 참석했다.
‘세계평화의 날’은 20년 전인 1960년 이날, 신이치가 첫 해외방문을 떠난 데서 학회가 설정한 기념일이다.
이 평화여정의 제일보를 새긴 곳이 하와이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태평양전쟁이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참혹한 역사를 새긴 땅에서 세계평화의 커다란 조류를 일으키자고 마음속 깊이 정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 하와이에서 연 좌담회에 모인 인원은 3, 40명에 지나지 않았다. 참석자는 대부분 인생의 비애에 젖어 있었다.
미군 병사와 결혼해 하와이로 건너왔지만 경제고나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는 부인도 있었다.
신이치는 진지하게 신심에 힘쓰면 행복해지지 않을 리 없다고 단언하고 한 사람 한사람이 숙명을 전환하고 ‘자타 함께’ 행복을 구축하기 위해 지용(地涌)의 사명을 짊어지고 이 자리에 모였다고 힘껏 외쳤다.
눈앞에 고뇌하는 ‘한 사람’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소생시키는 일이 바로 생명존엄의 사회를 실현하는 확실한 제일보이자 평화건설의 원점이다.
신이치는 참석자들의 마음에 확신이라는 태양이 불타 빛나는 것을 느꼈다. 멤버들은 희망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광선유포의 사명에 눈떠 일어섰다.
이 첫 해외방문으로 북남미를 돌며 미국 총지부를 비롯해 브라질, 로스앤젤레스에 지부 두 곳, 하와이 등 17개 지구를 결성했다.
이후 20년, 지용보살의 진열은 세계 약 90개국 지역으로 넓혀졌다. 신이치는 ‘세계평화의 날’ 기념근행회에서 앞으로 20년 뒤인 2000년을 향해 민중이 견고한 평화의 스크럼을 짜서 인류를, 세계를 잇자고 서원하고 깊이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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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치는 이번 하와이 방문에서 조지아 아리요시 주지사와 회담했을 뿐 아니라 하와이총회에 참석하는 등 평화교류와 멤버 격려를 위해 있는 힘껏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 D.C를 돌아 10월 10일 시카고에 도착했다.
신이치는 ‘가는 곳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멤버를 만나고 온 힘을 다해 격려하자’고 굳게 결의했다.
각지에서 열리는 미국 광포 20주년 기념총회에 참석한 뒤 회관을 방문해 협의회 등에도 참석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가정방문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총회에 모인 벗 3500명과 환담했다. 제1차 미국방문 때 발걸음을 옮긴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 ‘텔레그라프 언덕’에도 가서 대표 멤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미국 광포의 새로운 출발을 서원했다.
또 워싱턴 D.C에서 연 기념총회 때는 참석자 4000명을 격려했다. 이튿날 최고협의회 때는 법화경에 등장하는 ‘대왕선(大王膳)’에 관해 말하고 이렇게 지도했다.
“대왕선은 법화경의 위대함을 산해진미로 가득한 ‘임금님의 수라상’에 비유했습니다. 불행에 울던 우리가 어본존을 만나고 신심에 힘써 무량한 공덕을 얻은 소원만족의 위대한 경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놓여 있어도 서로 미워하는 식선(食膳, 밥상)은 수라선, 비열하고 탐욕에 찬 마음의 식선은 ‘아귀선’, 남을 위험에 빠뜨리는 음모를 꾸미는 식선은 결국 ‘지옥선’입니다.
청정한 마음으로 세계광포와 모든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우리의 식선입니다. 폭넓게 말하자면 나날의 활동이나 회의도 가장 풍요롭고 존귀한 ‘대왕선’에 통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또 법화경에는 ‘인화(人華)’라는 말이 있습니다. 묘법(妙法)의 빛을 받아 광선유포를 위해 매진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상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꽃은 환희로 빛나고 공덕이 피어나 사람들에게 행복의 향기를 발산해 충실한 인생이 만발하는 때를 맞습니다. ‘나는 인화다’라는 자긍심을 갖고 나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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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에 이어 방문한 시카고에서는 12일, 시내에 있는 마다이나음악당에 멤버 5000명이 환희차게 모여 시카고문화제 그리고 기념총회를 열었다.
20년 전, 신이치가 시카고를 처음 방문했을 때 멤버는 열명 남짓에 불과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 문화제에서 유난히 신이치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연은 ‘사치에 페리’와 그 자녀들이 출연한 식순이었다.
‘사치에’는 열네살 때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었다. 1952년 미군인 남편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폭력을 휘두르는 알코올 의존증인 남편과 경제고, 자녀들의 비행, 언어의 벽, 편견과 차별이었다. 자녀 일곱명을 기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했다.
사치에 가족이 사는 지역은 ‘인종 간 대립’이나 분쟁이 잦아 남편에게서 호신용 총을 받아 갖고 다녔다. 괴로움에 허덕이고 공포에 떨어야 하는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일본계 부인에게서 불법이야기를 듣고 신심을 시작했다. 1965년이었다.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격려에 마음이 불타올랐다. 무엇보다 숙명을 전환하고 싶었다. 제목을 부르자 용기가 솟았다.
그리고 교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에게는 지용보살(地涌菩薩)로서 미국 사람들에게 묘법을 알려주고 ‘자타 함께’ 행복을 실현할 사명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인생을 사는 진정한 의의를 알았을 때 생명은 소생한다.
서투른 영어를 사용해 홍교하러 다녔다. 노도와 같은 숙명이 사치에를 덮쳤다. 병에 걸려 괴로워하는 막내딸은 수술을 반복했다. 남편의 알코올 의존증과 경제고도 이어졌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질 수 없다’며 신심을 근본으로 감연히 일어서는 자신으로 바뀌었다. 자녀들도 모두 신심에 힘쓰며 가계를 돕기 위해 밴드를 결성해 프로로서 활약하게 되었다. 숙명과 싸우면서도 희망과 환희를 실감하는 나날이었다.
사치에가 이 체험을 문화제에서 발표했다. 한 사람 한사람이 소생한 체험이 있어야만 보편의 법리가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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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문화제에서 ‘사치에 페리’는 신이치에게 보내는 편지 형태로 자신의 체험을 발표했다.
“친애하는 야마모토 선생님! 신심을 시작했을 때, 자신감도 용기도 꿈도 없이 오로지 생활고에 허덕이는 나날이었습니다. 신심으로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저는 열심히 홍교에 힘썼습니다.”
지난 세월 가족의 모습이 슬라이드에 비쳤다.
사치에는 감동에 북받쳐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선생님! 저는 지금 일가화락을 이루고 이렇게 행복해졌습니다. 아이들도 훌륭히 성장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언젠가 선생님에게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입니다!”
무대조명이 일곱명의 자녀들을 비추자 노래와 연주를 시작했다. 자녀들이 경쾌한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했다.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반짝였다. 그 노랫소리는 희망찬 내일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그 곡조는 환희의 음률이었다.
신이치는 가족의 승리드라마를 보여준 무대를 더욱더 큰 박수로 상찬했다.
세계평화는 ‘한 사람’의 인간혁명과 숙명전환에서 시작한다. 평화의 실상은 가족의 화목과 행복에 있다.
신이치는 출연자들에게 잇달아 시 등을 읊어 보냈다.
그리고 사치에 가족을 대표해 장남에게 ‘어머니의 곡 / 긍지에 빛나라 / 왕자(王者)인 아들’이라는 시를 써서 선물했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미국 사회와 광포의 현장에서 리더로 성장한다.
예를 들어 병약하던 막내딸 아유미는 경제고 속에서도 대학에 진학해 교육계에 종사하며 대학원 공부를 마친 뒤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교육자, 기업이나 단체의 리더, 유엔직원 등의 인재육성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에 종사한다. 또 미국 SGI 부인부장으로서 활약한다.
미국 광포 20주년, 동등하게 부처의 생명을 갖추었다는 점을 설한 니치렌불법(日蓮佛法)으로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이 결실을 맺어 수많은 행복의 인화가 꽃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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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문화제에 이어 기념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미국SGI 이사장이 ‘내년에 시카고에서 세계평화문화제를 열면 어떤가’라는 신이치의 제안을 발표하고 참석자들에게 의견을 묻자 커다란 찬동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총회에서 신이치는 교학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어디까지나 어본존 근본으로 불도수행에 힘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각자 아견(我見)에 집착하면 단결할 수 없다. 그러나 ‘어서’로 되돌아가면 마음을 하나로 할 수 있다. 바로 불법의 법리(法理)에 우리가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이 있다.
교학 연찬을 강조한 신이치는 시카고를 출발하는 13일 아침, 대표간부들에게 <어의구전>을 강의했다. 또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에도 간부들에게 <개목초>을 강의하고 불법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를 지도했다.
솔선수범의 행동이 바로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다.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신이치는 산타모니카시로 가서 세계문화센터에서 개최한 근행회와 SGI친선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17일 저녁, 세계 48개국 지역 대표 1만5000명이 모여 개최하는 제1회 SGI총회에 참석했다. 회합 장소인 로스앤젤레스시의 슈라인 오디토리엄은 아카데미상 등을 시상하는 유서 깊은 장엄한 건물이다.
유엔 사무총장, 미국 상하의원,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뉴욕주 등 주지사, 로스앤젤레스시나 디트로이트시 등 시장, 미네소타대학교 총장을 비롯해 각 대학 관계자들이 총회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총회에서 신이치는 1953년 7월, 은사 도다 조세이(戶田城聖)에게 받은 시 ‘봉황이 / 하늘을 날아오르는 / 모습으로 / 영원한 생명을 / 살아가라’를 소개하고 이 말대로 전 세계를 돌며 묘법광포를 위해 끝까지 온 힘을 다하고 싶다는 진심 어린 결의를 피력했다.
‘자, 이제부터다!’ 신이치의 눈은 희망찬 아침 햇살로 빛나는 신세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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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6월에 학회가 공갈사건으로 야마와키 도모마사를 고소하자 궁지에 몰린 야마와키는 주간지나 텔레비전을 이용해 학회에 대한 중상을 반복했다.
야마와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꾸며내 학회는 사회적으로 부정을 일삼는다는 말을 퍼뜨리는 한편, ‘정신회’가 신이치를 증인으로 신청하도록 요구하는 집회나 데모를 벌이고 국회의원에게 청원하도록 획책했다. 그것들을 실행하지만 결국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된다.
또 ‘정신회’ 승려들이 닛켄, 종무원과 벌이는 대립은 점점 더 골이 깊어져 결정적인 사태를 초래한다. 종문(宗門) 내에는 시끄러운 상황이 이어졌지만, 학회는 승속화합의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11월 18일, 소카대학교 중앙체육관에서 창가학회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행사를 성대히 거행했다. 여기에는 신이치의 당당한 모습이 보였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신이치가 인사했다.
“창가학회를 창립하신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선생님 그리고 학회의 기반을 구축해 오늘날과 같은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신 제2대 회장 도다 조세이 선생님에게 먼저 충심으로 감사의 말을 올립니다.
또 50년 동안 광포를 위한 고락의 산등성이를 함께 꿋꿋이 걸어주신 초창기 공로자를 비롯해 모든 회원 여러분에게 만감을 담아 감사의 말을 올리는 바입니다.
창가학회는 준엄한 신심이 있는 한, 광포를 위한 홍교를 용감히 실천하는 한 영원불멸합니다. 묘법을 근본으로 평화와 교육을 추진하는 데 온 힘을 쏟아온 학회의 위대한 민중운동은 제1막이 끝나고 드디어 이제 제2막을 열었습니다.
오늘부터 창립 100주년을 향해 세계평화와 문화 그리고 광포를 위해 새로운 마음으로 크게 전진하지 않겠습니까!”
사자후(師子吼)가 울려 퍼졌다. 성훈에는 “사자왕(師子王)은 백수(百獸)를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사자의 새끼도 또한 이와 같다.”(어서 1190쪽) 하고 씌어 있다. 모두 투혼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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