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음 포털 기사를 보는데 두 가지 기사가 눈에 들어 왔다. 그 기사들은 서윤복선생의 별세와 시리아 알레포 출신의 15세 소년이 겪은 시리아 감옥의 참상에 대한 것이었다.
먼저, 서윤복선생의 별세.
그는 1947년 4월 19일 보스톤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 하였다. 그의 우승 소감은 “한국의 완전 독립을 염원하는 동포들에게 이 승리를 선물로 바친다”였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기도 전인 당시 시민들과 미군정청 직원들의 모금을 통해 어렵게 여비를 마련해 출전했다. 군용기와 여객기를 갈아타며 5일 만에 어렵게 현지에 도착했다.
엄격한 스승이었던 고 손기정(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 당시 그의 감독이었다. 손기정의 신발을 빌려 신고 출전한 그는 레이스 도중 개가 달려들어 넘어졌으면서도 2시간 25분 39초의 당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보스턴 마라톤은 1897년 시작한 세계 최고(最古)의 대회다. 그는 이 대회 최초의 동양인 우승자였다. 당시 그의 기록은 2시간25분39초. 세계 최고기록이었다.
동남아와 일본 등을 거치는 화물선을 얻어 타고 출항 18일 만에 인천항에 도착한 그는 큰 환영을 받았다.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모금을 통해 환영회를 열었고 민족지도자 김구 선생은 ‘족패천하(足覇天下·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라는 휘호를 써줬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늘어선 인파 속에 ‘뚜껑 없는 차’를 타고 환영을 받았다.
그는 보스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농부들을 만났을 때였다고 했다. 오랫동안 남의집살이를 하며 나라 없는 백성이라고 무시받았던 그들이 그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그때 잡았던 그 농민들 손의 감촉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렇듯 뜨거운 민족애는 그를 한평생 달리게 한 원동력이었다.( 다음 기사 발췌)
다름은 알레포 15세 소년의 이야기
그는 시리아 알레포 출신의 17세 청년이 2년 전 ‘인간 도살장’이라 불리는 다마스쿠스 북부 사이드나야 군사감옥 등에 10개월 동안 갇혀 있었다. 이 청년은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익명으로 ‘시리아 감옥 수감기’를 적어 보냈다. 수감 당시 15세였던 소년이 직접 겪은 참상을 1인칭 시점에서 정리했다.
난 알레포에서 태어났어. 열세 살 때인 2013년 내전이 격화되면서 점점 심해지는 통폭탄 공격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탈출했지. 레바논에 정착했지만 1년도 안 돼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교를 떠나 일을 해야 했어. 하지만 체류 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그마저도 못 하고 다시 시리아로 쫓겨났어.
2015년 1월쯤이었을 거야. 집으로 가려고 다마스쿠스를 지나가다 공안요원들에게 체포됐지. 내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다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거든. 반군 점령지인 알레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명을 씌워 잡아넣은 거지.
아사드 정권은 당시 열다섯 살이던 나를 불법 체포해 고문하고 굶기며 육체적·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겨줬어. 58일 동안 매일 고문과 신문을 당한 끝에 가짜 자백서에 서명해야 했어. 신문하는 사람이 써준 종이에는 하지도 않은 일을 내가 자백하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어. 행방을 알 수 없는 내 친형제가 반군에 투신했다는 내용도 있었지.
나는 4개월 반 동안 너무 굶고 매일 두드려 맞아서 사람처럼 보이질 않았어. 그리고 다른 감옥으로 이감됐지. 거기는 더 끔찍했어. 신체 곳곳에 전기고문을 당했고 천장에 매달려 학대받았어. ‘윈드 카펫’이라는 고문도 당했어. 내가 바닥에 깔린 널빤지 위에 엎드리면 팔을 위로, 다리를 아래로 묶고는 널빤지 앞부분을 치켜들어서 머리와 뒤꿈치가 맞닿게 하는 고문이야. 척추가 활처럼 휘어지는데 아주 고통스럽지. 이런 식의 고문이 3개월 동안 이어졌어.
여기서도 죽지 않고 버티니까 인간 도살장이라 불리는 사이드나야 군사감옥으로 옮겨졌어. 감옥 옆에 화형장을 마련해 두고 매일같이 시신을 불태운다고 미국이 위성사진을 찍어 폭로하기도 했던 곳이야. 그곳에서 나는 진정한 지옥을 경험했어. 매일 아침 같은 방의 누군가가 죽어 나가는 장면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어. 오직 밤에 눈 감고 잠드는 때에야 비로소 내가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사이드나야 감옥에선 간수가 수감자끼리 서로 성폭행하도록 시키고 이 장면을 보는 걸 즐겨. 간수가 수감자를 성폭행하기도 하지. 어떤 간수는 수감자들에게 친구나 가족을 직접 죽이라고 강요해. 거절하면 고문이나 처형을 당하지. 수감자들이 집단으로 교수형을 당했고, 간수가 수감자 목을 발로 짓눌러 죽이기도 했어. 중간에 병원이라는 곳에 다녀왔는데, 시신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3m²짜리 방에 음식을 일절 주지 않고 이틀 동안 가둬뒀어.
나는 체포된 지 10개월 만인 2015년 11월에야 자유의 몸이 됐어(청년은 석방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끝내 무고함이 밝혀졌거나,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하자 풀어준 것으로 추정된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시리아를 탈출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은 전혀 없어. 몸은 자유지만 마음은 여전히 수감 상태야. 동료 수감자들이 고문에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여전히 귀에 생생해. 시리아 감옥에는 여전히 20만 명 넘는 사람이 갇혀 있어. 내 이야기는 수십만 시리아 사람들의 흔한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야.(다음기사 동아일보기자 조동주 특파원 기사 발췌)
알레포 15세 소년과 서윤복. 한 사람은 국가 기관의 폭력에 희생된 이야기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명예를 국가의 영예로 돌린 이야기이다. 서윤복과 알레포 소년의 위치와 입장이 서로 바꿔져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서윤복의 지적 능력과 체력,정신력이라면 알레포 소년의 감옥 생활을 능히 이겨낼 수 있었을까? 알레포 소년의 정신력과 체력,살고자 하는 욕망이라면 보스톤 마라톤에서 능히 일등을 할 수 있었을까? 서윤복이 시리아 감옥에서 살아나 마라톤을 하고 국제 대회에서 일등을 하고 나는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뛰었노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을까? 알레포 소년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여 일등을 하고 시리아 감옥을 경험했을 때 국가의 명예와 존엄을 긍정하고 있었을까?
결국 서윤복과 알레포 소년에게 국가는 무엇이었을까? 또한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개인에게 국가는 거대한 산이여서 나를 포용하기도 하고 배제하기도 한다. 또한 국가와 국가의 대결에서 개인의 국제적 연대와 친선은 인위적으로 파괴된다.
국가는 시스템이여서 그 시스템에 편입된 개인은 자신이 국가라 생각하고 국가에서 배제된 개인을 쉽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자신의 행동이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영웅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가의 힘을 이용하여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국가의 힘에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으려고 하며,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개인의 성향에 따라 국가와 운명을 다 하거나 국가를 배신하고 보트 피플이 되기도 한다. 아니면 그 영토에 세워지는 다른 국가를 또 다시 자신의 국가라고 하고 믿거나.
난 서윤복의 양심은 그를 도와준 동포- 미국에 이민간 한인 농부의 눈빛과 손아귀 힘을 보라-에 있다고 본다. 그에게 그에게 애정과 지원을 보내준 동포가 국가다. 거기까지 우리가 해방전후 마라토너를 살았던 고인의 삶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 이후는 과장이거나 본의가 아닐 것이라고 믿어 본다.
알레포 소년에게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그냥 폭력 집단 광기 집단일 뿐이다. 그런 속에서는 살아내야 한다. 역사의 기억을 이런 식으로 밝혀낸 것에 경의를 표한다. 이후 제대로된 국가를 만들 때, 반드시 그 폭력 집단은 응징되어야 하고 죄과를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국가는 국가주의로 빠질 때 국가가 아니다. 공동체로서 우리 삶을 정의롭고 의미가 있게 만들 때 국가가 되는 것이다. 왜? 그런 국가와 나라야만이 보다 많은 우리가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서윤복의 국가가 동포들의 눈빛에 있었고, 알레포 소년의 국가가 진정한 국가의 모습이 아님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