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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취향
김선재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안나를 사랑했다.
물론 가끔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그녀를 사랑했고 또 간혹 주중에 하루를 건너뛰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나에게는 달력에 인쇄된 날짜의 색깔을 바꿀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휴나 주 5일 근무를 충실히 따르는 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힘이 없었다. 천장 구석에 집을 짓는 거미만큼도 관여할 수 없는 나의 일상은 씁쓸했으나 평화로웠다. 안나는 그런 나를 사랑했다. 나와 안나가 우리가 될 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세상은 쓸쓸하고 행복했다.
월요일 아침, 나는 안나에게로 가는 중이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들었던 가방을 왼손에 옮겨 들었다. 손에 든 가방에는 지난주 금요일 저녁처럼 여덟 권의 책과 수십 장의 리플릿이 들어 있었다. 읽은 단어의 개수만큼 무게가 사라진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각각의 책은 언제나 고유한 중량을 잃지 않았다. 나는 그 변함없는 무게처럼 안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가방의 무게만큼 안나를 사랑하는 셈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좋거나 나쁘거나. 재미있거나 재미없거나. 맛이 있거나 말거나 한결같이. 맛있다는 말을 떠올리자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맛있다,는 말이 좋아지는 참이었다. 안나는, 맛있었다.
맛있어.
안나는 나의 몸 위에서 맛있다고 말했다. 침대 위에 맨몸으로 드러누워 듣는 그 말은 이상했다. 지구의 반대편 어딘가에서 금환식이 일어나던 날이었다. 식당에서 혼자 김치찌개를 먹으며 보았던 뉴스가 떠올랐다. 평생에 다시 보기 어려운 광경이라고 했다. 나는 두 팔꿈치로 바닥을 딛고 상체를 일으켜 안나를 보았다. 화면에 비친 태양은 달그림자에 가려 속이 빈 원 모양이었다. 화면 속의 그곳은 낮이었지만 밤처럼 어두웠고 안나를 처음 안던 그 밤은 낮처럼 환했다. 안나는 무게 없는 꿈 같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궤도를 돌다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었다. 그건 비현실적이었고 당첨 가능성 없는 응모권 같은 거였다.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집중하고 열광했다. 뉴스는 계속되었지만 금환식은 불과 5분 만에 끝났다. 열광은 알 수 없는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뭔가 속은 기분이었다. 사건 사고도 많았다.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가 실족한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했다. 맛있다는 말은 앉자마자 끝나버린 술자리처럼 나를 맥 빠지게 했다. 지붕에서 미끄러진 금발의 남자는 후회한다고 말했다. 후회가 몰려왔다.
무슨 말이야?
나는 물었다. 자신의 몸 위에 있는 안나는 나가 아는 여자가 아닐지도 몰랐다. 나는 자신의 진심이 침대 밑에 깊숙이 숨겨놓은 싸구려 잡지로 전락해버린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몸을 떨던 안나가 움직임을 멈췄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안나의 몸이 땀으로 반짝거렸다.
뭐가 잘못됐어?
안나가 나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왔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바닥에 대고 있는 팔꿈치가 아파왔다. 매수에 비해 턱없이 빈약한 이야기로 끝나버릴 거라는 예감과 실망으로 나는 숨이 가빠졌다. 물론 그렇게 끝나버리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었다. 왜 나는 자신이 그때 불멸의 책 한 대목을 떠올렸는지 알지 못했다. 토대가 상부를 구축한다는 거였다. 대학 때 선배들을 따라 어두운 방에서 학습하고 토론하던 두껍고 어려운, 그러나 결국 자신에게 한 문장으로 남은 책이었다. 수없이 많은 단어와 묘사는 모두 한 문장을 위해 존재했다. 안나의 긴 머리카락이 나의 볼과 어깨를 간질였다. 자극이 다시 나를 자극했다. 이곳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곳이므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나는 어쩌면 맛있다는 말이 나쁜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안나는 더욱더 몸을 밀착시켰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녀의 유두가 나의 가슴에 닿았다. 붓이 닿은 캔버스가 그렇듯 몸이 다시 기대감으로 긴장하며 숨죽이기 시작했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팔꿈치 힘이 풀렸다. 안나의 몸에서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다. 표현은 숨기거나 남기지 않는 편이 나았다. 맛있다는 말은 안나가 쓰는 표현 방법 중 하나였다. 안나는 나가 사랑하는 여자가 분명했다.
나는 안나의 유두가 점점이 몸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점점점점점점. 어디선가 고양이가 울고, 폭주하는 오토바이가 멀리서 달밤을 가로질렀다. 모든 악기는 결국 독자적인 소리로 울었다. 나는 태양과 겹쳐진 달과 이곳의 거리를 생각했다. 안나와 자신의 몸이 겹쳐지면 어떤 소리를 낼까. 아직 중요한 문장은 쓰이지 않았다. 나는 안나의 머리채를 잡고 몸을 끌어올렸다. 각각 분리되었던 문장들은 접속사도 없이 한 문장으로 이어졌다. 그 문장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화음을 만들 거였다. 금환식이 있던 날 밤, 나와 안나는 고유한 악기로 울며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다.
아직 날은 완전히 밝지 않았다. 웅덩이 속은 찌푸린 하늘을 반영하듯 어두웠다. 날씨 탓이기도 했지만 나가 다른 월요일보다 일찍 서두른 탓이기도 했다. 지난 주말은 여러모로 나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안네는 나가 못 박는 모습조차 못마땅하게 여겼다. 장인의 칠순 잔치 때 찍은 가족사진을 걸기 위해서였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책 장수 사위를 마뜩찮게 여기는 처갓집 식구들을 매일 확인해야 하는 일이 반가울 리 없었다. 그러나 나는 힘이 없었다. 싫거나 좋거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거실 중앙에 두꺼운 시멘트 못을 박는 일은 평화를 위해 무조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어쩔 수 없이 거실 중앙 벽을 처갓집 식구들에게 양보하면서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 다짐했다. 단단한 시멘트 벽에서 못은 박힐 듯 말듯 자꾸 부러졌다.
도대체 제대로 하는 일이 뭐야?
안네가 말했다. 손에는 큰 액자를 든 채였다. 나는 목수가 아니라 책을 파는 사람이었다. 몇 번 실패한다고 그다지 나무랄 일은 아니었다. 나는 입을 앙다물고 망치로 못을 내리쳤다. 다섯 개를 부러뜨리고서야 못은 간신히 벽에 박혔다. 나는 잠시 부러진 못을 정수리에 박아 넣는 상상을 했다. 단지 상상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별 가책은 없었다.
못을 박고 난 후에는 액자의 균형을 잡는 일이 다시 문제가 됐다. 액자를 들고 의자 위에 서서 나는 안네가 시키는 대로 좌우, 혹은 상하로 액자를 움직였다. 그러나 좀처럼 액자는 똑바로 걸리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기울어진 것 같았다. 균형은 꿈꾸는 자들의 언어였다. 세상은 비뚤어지고 더럽고 지루했다.
세상이 기울었으니 액자가 기우는 건 당연한 거야.
나의 말에 안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시 써? 파는 일이나 잘하시지.
나가 알기에 시는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안네에게 그건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현실을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힘이 있었다. 그건 안네가 맡은 역할이었다. 시는 시인이 쓰고 나는 책이나 팔고 나와 살지 않는 안나는 나를 사랑했고 나와 사는 안네는 나를 지상에 단단히 묶었다. 다들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이토록 한결같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망치를 들고 서서 안네가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번이나 액자를 고쳐 거는 것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의 처갓집 식구들은 끝내 균형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빗물 고인 웅덩이 속에서 능소화 꽃들이 떠다녔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퉁퉁 불어버린 라면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퉁퉁 분 라면이 라면이면서 라면이 아니듯, 꽃받침과 분리된 능소화는 꽃이지만 이미 꽃이 아니었다. 안나의 집 주변은 떨어진 나무 이파리와 꽃들로 어수선했다. 시간을 확인했다. 6시 50분이었다. 월요 조회는 10시 반부터였다. 집 주변을 쓸어주고 싶었지만 못 본 척했다. 일부러 이웃의 주목을 끌 필요는 없었다. 가방 안쪽에 숨어 있는 지퍼를 열고 열쇠를 꺼냈다. 열쇠는 구멍 안에서 두어 차례 헛돌았다. 잠긴 문을 여는 일은 나에게 언제나 힘들었다. 다시 열쇠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문이 마지못해 열렸다. 현관문의 경첩은 다른 날보다 한층 더 삐걱거렸다. 나는 숨듯이 안나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구두 소리가 현관에서 작게 울렸다. 희미한 군내가 끼쳤다. 날씨 탓이었다. 시작부터 느슨하고 뻑뻑했다. 모든 것이 날씨 탓이었다.
발밑에서 나무 바닥이 찍찍 울었다. 집 안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아직 안나는 깨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오래전에 가죽 냄새가 가신 소파를 지나 창가로 다가갔다. 두꺼운 블라인드 사이로 어둑한 아침이 새어들었다. 안나는 햇볕을 싫어했다. 블라인드를 고쳐 내리고 형광등을 켰다. 실내의 식물들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콩나물처럼 핼쑥했다. 아무래도 나무가 되기는 틀린 듯 싶었다. 사실 나무는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 집에 볕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안나는 포기하지 않고 철마다 커다란 고무 통에 나무를 심었다. 어떤 경우에도 나무는 나무라고 우겼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나무 곁에 놓아둔 조명 기구가 자연광과 같을 리 없었다. 현상적으로 조명도 빛의 일종이었지만 그건 그저 빛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빛은 단연 살리는 능력보다 죽이는 능력이 더 뛰어났다. 나는 기형적으로 웃자란 줄기들이 타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고무 통 안에 감춰진 뿌리는 썩고 있을 거였다. 많은 나무들이 나와 안나의 눈앞에서 죽어갔다. 문장에만 구성 요소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식물에게 햇빛과 바람과 물은 똑같이 중요했고 그중 안나가 그것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물뿐이었다.
그래도 사랑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니야?
안나는 그렇게 주장했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식물을 키우는 데 사랑은 없어도 상관없었다. 사랑 없이도 꽃들은 피고 나무는 자랐다. 나는 잡초들의 예를 들어 안나의 생각을 바꾸려 했다. 그러나 안나는 고집을 굽히지 않고 번번이 열대식물과 야생화와 과실목을 죽였다. 과습으로 죽은 나무 다음에는 말라 죽는 나무가 생겼고 그다음에는 실내의 습도를 높여 곰팡이를 번식시켰다. 안나는 한동안 우울해했으나 곧 다시 새 묘목을 들여 새 재배법을 궁리했다. 어쩔 수 없이 최후가 뻔한 묘목들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나가 생각하기에 사랑은 삶과 죽음에 관여하는 감정이 아니었지만 안나는 만병통치약처럼 사랑을 맹신했다.
나는 죽어가는 어린 편백나무와 자귀나무에서 등을 돌리고 안나의 방 가까이로 다가갔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지난주의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그 방에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안나가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 그 방문을 열고 안나의 맨살을 쓰다듬으며 잠을 깨우겠지. 나는 이 세계는 그런대로 완벽하다고 희미하게 웃었다. 방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현관문과 마찬가지로 방문도 뻑뻑했다. 오랫동안 습기를 머금었다 뿜었다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 자신이 안나와 가까워지는 데 걸린 시간과 과정을 떠올렸다. 전개가 느리고 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와 믿음이 필요했다. 그런 책일수록 여운은 오래 남았다. 나에게 안나는 그런 책 같은 존재였다. 한결같이, 천천히, 곱씹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조급해졌다. 안나를 깨워야 했다. 방문을 힘껏 밀었다.
안나, 안나, 이제 그만……
가슴이 내려앉았다. 안나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든 도망자가 된 기분이었다.
……일어날 시간이야.
빈 침대를 내려다보며 나는 맥없이 중얼거렸다. 침대에는 안나가 누웠던 흔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말을 끝내면 어디선가 안나가 나타날 것 같았다. 말이 잘리는 건 불확실과 외면의 전조였다. 물론 나는 말을 줄이는 상황에 익숙한 편이었다. 문은 이쪽과 저쪽을 나누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가릴 것이 많을수록, 숨기고 싶은 비밀이 늘어날수록 문은 튼튼한 쪽으로 진화했다. 나가 문 앞에서 서적 외판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 사모님과 학생과 사장님과 선생님들은 나를 문 안에서 책 장수로 요약했다. 서적 외판원이나 책 장수나 문을 열어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은 문이 열리더라도 사모님, 학생, 사장님, 선생님 들은 나의 말을 기다리는 일에 인색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1분 미만이었다. 나는 말을 빨리 하는 법을 익혔다. 그에 비례해 나의 말들은 불확실하고 불성실해졌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입안에 남은 불확실하고 불성실한 말들이 나의 몸 안에 지방층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조금씩 목이 두꺼워지고 허리둘레가 늘어났다. 어쩌면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비밀과 음모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고작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나는 닫힌 문 앞에서 돌아섰다.
어디로 갔을까. 침대 밑에도, 의자 밑에도 안나는 없었다. 방 안에 가구라고는 달랑 침대와 의자 하나뿐이었다. 우스운 짓이었지만 방문 뒤까지 살폈다. 그러나 안나는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없었다. 나는 아무 흔적 없는 침대를 바라보았다. 안나의 부재가 믿어지지 않았다. 뜻밖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뜻밖이었다. 안나의 부재는 나가 이 집에 드나든 지난 1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나가 아는 그녀는 산책이나 장보기 따위의 사소한 외출도 삼가는 사람이었다. 몸에 빛이 닿으면 아프다고 했다. 딱 한 번 밤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믐 즈음이었다. 동네는 먼 산에서 흘러온 아카시아 향기로 출렁거렸다. 꽃향기에 취한 사람들이 스스로 문을 열었다. 나가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문들이었다. 나는 일말의 배신감에 말이 없었고 안나는 고개를 숙이고 걷기만 했다. 나는 도어 렌즈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들을 생각했다. 눈과 눈이 마주친 적은 드물었고 문도 따라 열리지 않았다. 나에게 눈과 문은 동의어였다.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았다. 안나가 멈춰 서서 나를 보며 말했다.
돌아갈래. 별맛이 없어.
안나는 삶에 부수적으로 필요한 많은 일들을 생략하고 간소화했다. 그녀의 세계는 대체로 맛있다,와 맛없다,로 정리되었다. 간결했다. 나가 바라던 삶이었다. 그 삶은 개미만큼 능률적이고 먼지처럼 사소했으며 그림자처럼 소박했다. 나도 안나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랬다. 그런데 안나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불안과 걱정으로 우울해졌다. 언젠가 돌아가기 위해 옷을 입는 나를 보며 안나가 그랬던 것처럼.
햇볕을 쬐지 못해서일까.
안나는 한 번도 돌아가는 나를 잡은 적이 없었지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안나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싫어했으므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나는 돌아가야 했다. 안나는 곧 나의 등을 떠밀었다.
그만 가, 어쩔 수 없을 테니까.
나는 다만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변함없이 안나를 사랑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오늘은 안나가 없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안네는 정신 차리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사랑이 삶을 지배하던 시간에서 삶이 사랑을 지배하는 시간으로 뒤바뀌던 순간이었다. 몇 주 동안 한 질의 책도 팔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따져봐야 했다. 오후 내내 공원에 앉아 책을 읽었다. 누군가가 놓친 풍선들이 은사시나무 꼭대기에 걸려 팔랑거리는 오후였다. 백과사전은 그 무게만큼 재밌고 유익했다. 나는 자신이 싸구려 가짜 물건을 파는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건 큰 수확이었다. 하루를 소비했지만 어차피 파나 안 파나 살 사람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안네가 그런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랐다.
세일즈라는 건 말이야……
나는 습관대로 발뒤꿈치부터 양말을 벗어냈다.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려.
안네가 양말을 낚아채며 말을 잘랐다. 나는 안네를 바라보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뽑아 먹던 자판기 커피 맛이 생각났다. 나는 안네가 양말을 빨래 통에 던져 넣고 쿵쿵거리며 부엌으로 걸어가서 냉장고 문을 거칠게 여닫고 가스불을 켜고 식탁에 수저를 내던지듯 놓는 걸 바라보았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시고 쓰고 더러웠던 그 맛이 되살아났다.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땀이 났다. 점점점점.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미처 꺼내지 못한 말들이 침과 함께 입안에서 불기 시작했다. 목덜미를 타고 땀이 흘렀다. 끓어 넘친 양념으로 지저분한 뚝배기가 식탁 위에서 천천히 식었다.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문장들이 침에 녹아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술 먹었어?
안네가 나의 모습을 보며 질색했다. 나는 계속 안네를 바라보기만 했다. 입 밖으로 흘러나와 턱 끝에 맺혀 있던 말들이 앞섶으로 떨어졌다. 지익지익, 면 가닥처럼 길게 이어졌다. 안네는 아연한 표정으로 나에게 휴지를 던졌다. 지겹다고 혼잣말을 했다. 정말 더럽고 지겹다고 입속으로 반복해서 말하는 걸, 나는 안네의 입 모양으로 읽었다. 나도 더럽게 덥고 더럽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 공간 안에 모인 둘이 하는 혼잣말은 혼잣말이 아니었지만 서로 못 들은 척했다. 평화는 여러 종류의 폭력과 비참을 견뎌야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다. 안네는 견딜 수 없다는 듯 방문을 요란하게 닫았다.
나는 거실에 혼자 앉아 나뭇가지에 걸린 풍선을 생각했다. 날 수 있었으나 나무에 걸렸고 가지에서 비와 바람과 새에 의해 쪼그라들거나 터져 끝내 사라질 거였다. 정신을 차리거나 말거나, 그건 풍선의 잘못이 아니라 풍속과 지형 탓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턱에서 앞섶으로 흘러내리는 침을 후루룩 빨아 삼켰다. 정말 정신없이 덥고 더러운 밤이었다. 그러나 내일은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똑같은 하루가 시작될 거였다.
방, 방을 나와 나는 탕이 없는 욕탕의 문을 열었다. 물기 한 방울 없는 욕탕에서 희미하게 곰팡이 냄새가 났다. 세면기 아래쪽 구석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날, 날씨 탓이었다. 나,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비누 하나, 치약 하나, 양치 컵 안에 담긴 칫솔 한 개를 바라보며 자신이 생각을 더듬고 있음을 깨달았다. 현기증이 일었다. 나는 문틀에 머리를 기댔다. 오래전 고쳐진 줄 알았던 버릇이 다시 욕탕의 곰팡이처럼 슬며시 나타난 것이다. 왜, 왜 갑자기. 나는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고쳐 맸다. 별, 별일 아니었다. 별별 일이 다 있었지만 모두 돌이켜보면 별, 별일이 아니었다. 나는 불안해지지 않으려 애썼다. 양치 컵에 담긴 치, 칫솔의 솔을 검지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안나와 나, 나와 안나가 같이 쓰는 칫솔이었다. 굳이 하나, 아니 두 개의 칫솔을 쓸 필요가 없었다. 함께 있는 동안 안나와 나, 나, 나는 하나였다. 눈을 감았다. 우리는 하나, 아니 둘, 하나에 또 하나, 결국 하, 하나였다. 나는 입을 다물고 낮게 목청을 떨었다. 불안하고 초조할 때마다 혹은 화가 날 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목청을 떨었다. 숨을 참기 어려울 때까지, 숨을 쉬고 싶어 못, 못, 못 견딜 때까지, 입을 떼어 못에 걸고 싶을 때까지 온 몸을 쥐어짜 하나의 소리에 몰두했다. 나, 나는 안, 안네, 아니 안나, 안나를 사랑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매일, 나, 나는 안나를 읽었고 안나는 나의 말에 귀 기울였다. 나는 잠에서 깨듯 반짝 눈을 떴다. 안나의 책이 떠올랐다. 나가 안나에게 처음 읽어준 책이었다.
이 책을 읽어줘요.
안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월이었는데 눈발이 흩날렸다. 아무리 찾아도 현관에는 초인종이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장갑을 낀 채로 문을 두드렸다. 가죽 장갑이 철문에 쩍쩍 달라붙었다. 온몸이 시렸다. 발을 굴렀다.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다.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벌컥 문이 열렸다. 안에서 두꺼운 목도리를 칭칭 동여맨 여자가 빼꼼히 나를 바라보았다.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만 그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여자는 망설였다. 나는 그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 또한 이해받고 싶었다. 문이 조금 더 열렸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습관대로 집 안을 훑었다.
블라인드는 창을 가렸고 촉수 낮은 등 하나가 실내를 밝혔다. 안네가 그랬듯 사람들은 자신의 내력을 거실에 진열하고 싶어 했다. 행복 지수와 각종 기념사진의 개수는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거실 벽에는 달력이나 시계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자가 기념할 일이 별로 없는 미혼일 거라 추측했다. 영업 매뉴얼대로 재빨리 가방 속에 든 여러 분야의 책 중 여행과 요리에 관한 책과 리플릿을 꺼냈다. 마음이 급했다. 가능한 한 짧은 시간에 많은 말을 해야 했다. 여자는 여전히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고 바짝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집주인을 기다리는 이웃처럼. 대합실에서 완행열차를 기다리는 여행객처럼. 나는 그것이 경계심 탓이라고 생각했다. 경계심은 경계를 지키게 하는 힘을 가졌다. 애초부터 별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직업이 바뀌지 않는 한, 노력은 해야 했다. 여자를 다시 보았다.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할까. 사모님은 아니었고 사장님도 아니었다. 학생이나 선생님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여자는 딱히 뭐라 꼬집어 불리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입을 열 때마다 흰 입김이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추운 집이었다.
여자는 전자렌지를 사용해 만들 수 있는 백 가지 요리나 유명인이 뽑은 여행지에 관한 에세이 형식의 시리즈물에 별반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말하기에 바쁜 나를 뜨악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소개한 책들이 업계에서 성공하지 못한 시리즈라는 사실을 눈치챈 걸까. 나는 말을 하면서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문학 시리즈를 소개했어야 맞는 건지도 몰랐다. 아니면 미용 관련 서적이어야 했을까. 땀이 나기 시작했다. 힌두교인 앞에서 소를 잡는 듯한 느낌이었다. 힌두교인의 눈앞에서 소꼬리를 자르고 우족을 나눈 다음 부위별로 몸통을 가른다면 상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맙소사. 나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이미 설득은 고사하고 전달력마저 상실한 상태라는 걸 느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조각난 말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나가 더욱 당황하게 된 건 자신의 본심이 있는 그대로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그, 그러니까 어, 어, 어쩌면 이, 이, 일은 나, 아니 저, 저의 적성에 마, 마, 맞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죠. 저, 저, 저저도 잘 아, 아, 암, 압니다. 소, 소솔직히 고, 고, 고객님에게는 어떤 채, 책을 궈궈권해야 할지 모, 모, 모르겠어요. 화장술이 구, 구, 궁궁금하실까요. 재태, 제테, 아니 재테크 관련 서, 서, 서적은 믿지 마마세요. 하하하한심 한 이리, 일이죠. 나, 나, 나날이 왜 이럴까요. 말, 말, 말발로 먹고살아야 하는 말, 말, 말더듬이라니. 누, 누, 누눈물, 아니 눈이 게, 개, 계속 내릴까요. 그러나 그으래에도 사, 사, 사기, 사기꾼은 아니랍니다.
한번 더듬기 시작한 말은 걷잡을 수 없었다. 나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쏟아지는 말처럼 땀도 그치지 않았다. 머리 밑에서 목덜미로 줄줄 흘렀다. 셔츠 깃이 축축했다.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여자는 그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차라리 비웃어주기라도 했으면 싶었다.
말을 한다고 말이 다 통하는 건 아니었지만 말은 세일즈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얼마나 더 많은 말을 해야 이 일이 익숙해질까. 피곤했다. 나와 여자가 개미나 파리가 아닌 이상 서로를 알 방법은 없었다. 오가다 마주친 곤충처럼 더듬이로 상대를 알아보고 말없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일상은 좀더 간결하고 간략했을 거였다. 더듬이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랐다. 눈이 밤늦도록 내릴까, 모르지, 여기서 집은 멀까, 멀겠지, 눈 오는 날도 비행기는 뜰까, 모르지, 이 여자는 누굴까,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허둥지둥 탁자 위의 책과 리플릿을 챙기면서 나는 소음 같은 생각들에 사로잡혔다. 그토록 들키지 않기를 바랐지만 나는 한낱 말더듬이 책 장수일 뿐이었다. 눈앞의 여자가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부끄러움과 자학으로 며칠만 지내고 나면 다시 괜찮아질 거였다. 나는 가방과 장갑을 쥐고 일어섰다. 그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이걸 읽어봐요.
여자가 자신의 큼지막한 카디건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천천히 이걸 읽어요.
나는 여자가 내민 것을 바라보았다. 책이었다. 아니 책이라고 하기에는 제본이 조잡했으며 책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종이의 양이 많아 보였다. 자신은 책을 파는 사람이지 책을 읽어주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입을 열면 또 말도 안 되는 말들이 쏟아질 터였다.
여자는 목도리를 풀었다. 민얼굴이 드러났다. 동정이나 경멸의 기색은 없었다. 창밖에서 바람이 거리를 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작고 얇았다. 나는 현관문 쪽을 돌아보았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다시 바람을 맞으며 대책없이 거리를 쏘다녀야 했다. 멀리서 뭔가가 넘어지고 부서져 굴러갔다. 집 안은 조용하고 서늘했다. 더듬이가 생겼으면 싶었다. 그러나 당분간 인류에게서 더듬이의 흔적이 발견되는 일은 없을 거였다. 나가야 했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후회할 거였다. 후회해도 괜찮을 거 같았다. 나는 다시 주저앉았다. 여자가 내민 책을 받아들었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게 없는 부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쩌다 보니 그럭저럭 어느새 부피만 늘어났다. 눈이 내렸고 눈물이 났지만 울기에 너무 추웠다. 나는 눈을 비비고 책장을 넘겼다. 손으로 쓴 책, 생전 처음 보는 책이었다. 제목도 없는 책, 일기, 관찰 일지였다. 아니, 그 어떤 것으로 불러도 상관없고 그 어느 것으로도 부를 수 없는 책이었다.
읽어주세요.
여자가 고쳐 앉으며 말했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요.
세상에 하나뿐인 책, 아니, 일기, 아니 관찰 일지를 나는 읽기 시작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여자는 꼼짝하지 하지 않고 나의 말에 귀 기울였다.
나는 어느새 파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었고 돌아가야 했지만 돌아갈 곳을 잊었다. 소리 내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낯선 경험이었다. 각각의 단어는 개별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목소리들이 나를 이끌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골랐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소리의 여운을 곱씹었다. 또 한편으로는 치맛자락을 팔랑거리는 여자의 뒤를 따르듯 애를 태우며 문장을 쫓았다.
그 책은 딱히 장르를 나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주어 없는 풍경 묘사가 길게 이어졌고 그 묘사에 대한 묘사가 수많은 갈림길을 만들었다. 각각의 길 끝에는 집들이 있고 그 길 끝에 위치한 집들의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이 또 제각기 다른 풍경을 만들고 그 풍경은 다시 묘사로, 묘사의 묘사로 이어졌다. 하나의 장면이 묘사에 의해 많은 풍경과 이야기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생전 처음 듣는 지명과 식물명과 이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읽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여자는 듣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책에 의하면 묘사는 세상의 모든 것이면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이야기 형식이었다. 나는 왠지 막막하고 두려운 기분에 사로잡혔다. 사정 후에 찾아오는 감정과 비슷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슬펐다. 입술을 깨물며 다음 장의 여백을 바라보았다. 흰 종이 위에서 검은 글자의 잔상들이 벌레처럼 기어 다녔다. 나는 책을 덮었다. 그 벌레들이 손을 타고 올라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각자 적당한 위치에서 살갗을 파고 들어가 집을 짓고 알을 깔 거였다. 온몸이 따끔거리며 근질거렸다. 나는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고객님이 쓰신 건가요?
나가 물었고 여자가 방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빛이 사라진 자리는 그 조도만큼 어두웠다. 저녁이었다. 백 년을 산 것처럼 피로하고 고요해졌다. 가야 할 시간이었다. 현관문 앞까지 따라 나온 여자에게 이름을 물었다.
내 이름은 안나.
여자가 말했다. 나가 사랑하는 안나와의 처음은 그랬다. 폭설이 내린 3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 책은 안나의 베개 밑에 감춰져 있었다. 나는 안도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 책은 안나의 신체 기관과 비슷했다. 안나는 곧 돌아올 거였다. 쓸개나 심장 따위를 베개 밑에 숨겨두고 집을 나갈 사람은 없으니까. 블라인드를 들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 날은 완전히 밝았다. 아침이었다. 우산을 든 사람들이 물웅덩이를 피해 오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길 건너편의 마트에서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안나를 그렸다. 한 손에 두부나 우유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손차양을 한 채 길을 건너 나에게로 오리라. 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여기는 안나가 사는 집이고 나는 그녀를 기다렸다. 안나는 곧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고 나의 품으로 뛰어들 거였다.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최선을 다해 안나를 사랑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안나를 생각하며 월요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안나를 만날 수 없는 주말은 대부분 자신의 목덜미에 대고 체취를 맡는 안나를 떠올리며 표정 없는 안네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시청했고 밤이 되면 그녀의 몸속에 사정했다. 나에게는 휴일을 거부할 힘이 없었다. 연휴나 주 5일 근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받아들이는 이유도 그와 비슷했다. 힘이 없다는 것은 쓸쓸하고 견디기 어려웠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견디는 것이 가장의 운명이었다. 그리고 안나는 그런 나를 이해하고 사랑했다.
나는 집 안을 서성거렸다. 시간을 확인했다. 9시가 조금 넘었다. 여전히 안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새삼스레 눈앞에 없는 안나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건 진실일지도 몰랐다. 우리가 나와 안나로 분리되는 순간, 그러니까 나가 안나의 집을 나서는 순간 매번 이야기는 끝나고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니까.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 집은 시간 밖에 존재하는 구멍이었다. 안나가 사는 곳이었지만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은 집처럼 칙칙하고 어두웠다. 나무들은 날마다 조금씩 죽었고 서랍들은 비었으며 부엌에도 최소한의 식기와 양념 통 몇 개를 제외하면 살림살이랄 게 없었다. 안나가 있을 때는 간략하고 소박해 보이던 실내가 지금은 축축하고 낡은 것으로 바뀌었다. 그곳에서 자신은 실낱처럼 겨우 살아 있는 나무와 함께 부재중인 주인을 기다리는 거였다. 비현실적인 공간과 상황이었다. 꿈속에서 꾸는 꿈처럼 아득했다. 안나는 전생에 나를 지나간 인연처럼 멀었다. 물론 나와 안나는 그런 사정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이였다. 우리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되는 순간은 매번 찾아왔지만, 나가 생각하기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딱 한 번 안나는 그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정에 따라 변하는 사랑은 사정을 가장한 다른 사정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러나 비록 지켜야 할 규칙과 질서를 거스를 힘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진심을 다하는 나로서는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는 안나에게 섭섭하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가 안나를 사랑하는 건 진심이었다. 나는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사정이 사랑과는 상관없음을 안나가 이해하리라 믿었다. 진심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더 이상 포기할 수 있는 사정은 없었다. 또한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도 안나밖에 없었다. 나가 생각하기에 그건 사랑이 아니고는 불가능했다.
처음 안나의 몸 안에 사정하던 날, 나는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안나에게 털어놓았다. 언젠가부터 자신이 요의를 잘 참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자신이 방문한 건물의 뒤쪽, 어두운 구석에서 오줌을 누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는 것. 서명처럼 오줌발을 갈겼지만 절대로 그것이 화풀이나 복수가 아니었다는 것.
다만 그렇게라도 뭔가 몸 밖으로 내뱉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어.
나는 부끄러웠지만 솔직하게 말했다. 고민 끝에 방문한 비뇨기과 의사는 요도나 방광 모두 정상이라고 말했다.
남자에게 생기는 요도 질환은 잘 못 참는 쪽이 아니라 잘 나오지 않는 쪽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사는 책상 위 생식기 모형에서 요도와 방광 주변에 원을 그리며 말했다. 나는 안도했다. 그렇다고 아파트 벽이나 빌딩 뒤쪽 어두운 구석에 오줌을 갈기며 죄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들키는 것에 대한 공포가 클수록 오줌발은 씩씩했다. 안나는 나의 이런 고백에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나에게도 오줌을 눠줘.
다만 나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날 나는 안나의 다리에 두 번 오줌을 눴고 두 번 사정을 했다. 의사의 말대로 그건 병이 아니었다. 어두운 담벼락 아래서 가슴을 졸이며 오줌을 갈겨야 하는 상황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9시 반이었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시간에 맞춰 월요 조회에 참석하려면 지금 안나의 집을 나서야 했다. 가야 했지만 갈 수 없었다. 나는 시계 초침에 맞춰 탁자를 검지 손톱으로 두드렸다. 톡톡, 시간이 손가락 끝에서 흘러갔다. 지금 이 시간 안나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짐작 할 수 없었다. 불안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안나의 책을 펼쳤다. 누군가 자신을 일으켜 문밖으로 밀어내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그때였다. 현관 바깥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손에 책을 쥔 채로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나일 것이었다. 어딜 다녀왔냐고 물어봐야 하나. 많이 기다렸다고 말해야 하나. 아무 말도 없이 달려가서 안아줘야 하나. 나는 열쇠가 몇 번 헛돌다가 손잡이가 돌아가고 문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중간자의 앞모습과 뒷모습처럼 울었다 웃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안나,가 아니었다. 이 세상은 울 일도 웃을 일도 그리 많지 않은, 그저 놀라운 곳이었다. 꿈에도 본 적 없는 사람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낯선 사람은 신발을 벗으려다 나를 보고 움찔했다. 나는 안나의 책을 움켜쥐었다. 뒤따라 집 안으로 들어선 젊은 남녀도 나를 바라보았다.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애써 태연한 척했다.
아이쿠, 비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말을 꺼낸 것은 앞서 들어온 낯선 사람이었다. 적당히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중년의 남자는 반 양복 차림이었다. 나는 누구냐고 묻지 못했다. 입을 열 수 없었다. 여기는 안나가 사는 집이었다. 그리고 상대는 분명히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열쇠를 가진 사람이 나와 안나 이외에 또 있다는 것은 그들이 가족이나 친척이라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나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남자 친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책 장수? 집을 봐주러 온 이웃? 나는 등허리가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시 딸꾹질처럼 생각이 생각을 더듬기 시작했다.
집 좀 보러 왔습니다.
나가 말이 없자 상대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지난주 금요일 저녁을 떠올렸다. 안나는 보통 때와 똑같이 나가 읽어주는 책에 귀 기울였고 맛있다는 말을 다섯 번쯤 속삭인 후, 돌아가는 나를 배웅했다. 그리고 이 집은 분명히 안나가 사는 집이었다. 나는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지, 지금 주인은 잠시 외출 중입니다.
상대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집은 오랫동안 빈집이었다. 집주인은 외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주말에 이 집을 팔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열쇠는 가끔씩 집을 봐주러 오는 사람에게 받았구요.
의심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그가 말했다.
나는 공인중개사, 아니 복덕방 남자와 젊은 남녀가 자신을 흘끔거리며 집 안을 돌아다니는 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모면하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간단히 이 상황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창가의 나무들과 몇 권의 책들, 최소한의 살림살이들로 간결하고 소박하고 견고했던 이 세계가 박살나고 있는 느낌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들은 욕탕 문을 여닫고 부엌의 수도꼭지를 틀었다 잠그고 방들을 돌아다녔다. 너무 어두운 거 아니냐고 젊은 여자가 곁에 있는 남자에게 소곤거리자 그 말을 엿들은 복덕방 남자는 급히 블라인드를 걷었다. 장막에 가렸던 햇살이 파도처럼 실내로 들어왔다. 햇살 아래서 실내는 빛과 그림자로만 존재하는 흑백의 폐허가 되었다. 나는 그 폐허 안에서 잡초처럼 흔들렸다. 아름다움을 망치는 것은 추함이 아니라 빛과 희망이었다. 어디에도 안나의 흔적은 없었다. 안나는 돌아오지 않을 거였다. 그 사실을 나는 오늘 아침 이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이미 알고 있었다. 내내 입속에 담고 있던 말이 의식하기도 전에 튀어나왔다.
나쁜 년.
그들이 집 안을 돌아본 시간은 불과 10분 남짓이었다. 나는 만 년을 죽어 산 화석처럼 그 시간을 견뎠다. 배신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복덕방 남자는 돌아가는 길에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나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집을 봐주던 사람에게 볼일이 있었습니다.
나의 추측이 맞다면 그건 거짓이 아니었다.
집주인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복덕방 남자는 입맛을 다셨다. 앞으로 이 집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으니 열쇠를 돌려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아무것도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나는 안나의 책을 손에 쥔 채 집 밖으로 나왔다. 그 집에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능소화는 웅덩이 속에 처박혀 짓이겨져 있었다. 갓 떨어져 아직 생생하던 새벽의 애틋함은 이미 사라졌다. 꽃받침에서 분리된 꽃은 이미 꽃이 아니었다. 흙 속에 뿌리 박은 줄기에 기대 연명하기를 거부하는 순간 조화보다 초라한 신세가 되는 것이 꽃의 운명이었다. 나는 어느 월요일 아침, 비에 떨어진 이파리들과 빗물을 밟으며 낯선 동네를 걸었다. 구두 속으로 물이 새어들었지만 별 느낌은 없었다. 날씨 탓이었다. 이 절기를 넘기면 그늘이 짙은 계절이 도착할 거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지 않았다. 오늘도 가고 싶은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갈 곳은 분명했다. 월요일이었고 아침이었다. 가방은 늘 그렇듯 무거웠다. 나는 가방을 옮겨 쥐고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처음 자전거를 타고 속도를 이기지 못해 찔레나무 넝쿨에 처박히던 그 어느 날처럼 온몸이 따갑고 아팠으나 참을 만했다. 사실 그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나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니 그녀가 아무 말 하지 않은 걸 나무랄 수는 없었다. 표현은 숨기거나 남기지 않는 편이었지만 서로에 관해서는 묻거나 말하지 않는 사이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예정된 평화와 책임과 의무를 저버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침 조회에 참석해야 했다. 버스는 곧 도착할 거였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나는 들고 나온 안나의 책을 펼쳤다. 더 이상 확인할 사실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습관처럼 띄엄띄엄 책장을 넘겼다.
그 책은, 아니 책이 아닌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그 무엇은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의 연속이었다. 각 문장들은 터무니없는 상투성으로 일관했고 한편으로는 지극히 은밀한 감상의 나열이었다. 멸종된 식물명과 이름 들이 나의 시야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문장을 이루는 각각의 글자는 자음과 모음이 만나는 순간 서툰 그림이 되었다가 담뱃재처럼 맥없이 부서졌다. 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으며 주인 없는 문장들은 비겁하고 무책임했다. 숲은 처음부터 없었고 사람도, 사랑도 불확실하고 불성실한 말에 불과했다. 결국 묘사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만들어낸 형식적 오류에 지나지 않았다. 사랑을 묘사하는 것은 어려웠다. 상상의 세계를 묘사하는 일은 항상 실패하기 마련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은 어디든지 있었다. 상황에 따라 열리기도 했고 열리지 않기도 했지만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기억할 것이 별로 없으니 떨쳐야 할 것도 그리 많지 않았다. 오늘 조회에서 해야 할 이번 주 보고에 몰두했다. 이번 주는 위성도시에 산재한 모델하우스를 집중 방문할 작정이었다. 이왕이면 표지가 화려한 전집류가 좋겠지. 언제나 토대가 상부를 구축하는 법이었다. 비록 상투적이기는 했지만 나는 자신의 토대가 선량하고 성실함에 있다고 믿었다. 모든 이야기들이 상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의 모든 토대는 적당히 상투적인 것에서 출발했다. 문제는 얼마나 감추고 시치미를 떼느냐에 있었다. 나는 배가 불러도 안 부른 척하는 것에 소질이 있었고 싫어도 좋은 척하는 데 선수였다.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정류장의 휴지통에 그녀의 노트를 버렸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정류장은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점이 바뀌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되풀이해서 읽는다고 결말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며칠 밤만 자고 나면 괜찮아지리라. 언젠가는 어디서라도 어떻게든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니까. 운 좋게 자리에 앉으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아침잠을 설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거였다.
사랑은 늘 진심이었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인생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사는 데 진심이나 비밀 따위는 별 상관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것이 이곳의 원칙이면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이야기 형식이었다. 한숨 자고 나면 버스는 여기로부터 먼 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었다. 나와 그녀는 우리가 될 수 없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나와 그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서로 사랑했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문학과사회』 91호 수록
김선재
서울 출생. 2006년 『실천문학』에 소설을, 2007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첫댓글 부지런한 휘짱님,,,감사합니다,,,^^
곧 보겠네요. 실은 많이 보고싶습니다~~^^
특이하네요. 잘읽었습니다,
메타픽션으로 읽었어요. 내사랑님, 궁급합니다. ~~^^
오랜만에 단숨에 읽어낸 끌리는 글이군요좋은글 감사합니다 소쿨
추석 잘 보내셨지요? 늘 생각합니다. ^^
추석 잘 보내셨지요? 늘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