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이문구)
민근호 언어마을
● 줄거리
<관촌수필>은 1972년부터 1977년 사이에 쓴 여덟 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이 여덟 편의 작품은 전체가 어떤 기승전결의 구조로 짜여 있는 것은 아니다. 제목 '수필'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그때그때 화자의 기억이 흐르는 곳을 따라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삶이 회상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1-5편 : 작가의 고향을 배경으로 하는 유년 시절의 추억을 그림
① 일락서산(日落西山)
② 화무십일 (花無十日)
③ 행운유수(行雲流水)
④ 녹수청산(綠水靑山)
⑤ 공산토월(空山吐月)
6편 : 어린 시절의 고향 친구를 만난 이야기
⑥ 관산추정(冠山秋情)
7-8편 : 커서 고향을 돌아보며 체험한 내용
⑦ 여요주서(麗謠註書)
⑧ 월곡후야(月谷後夜)
< 관촌수필>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성격은 다음과 같다.
할아버지 (작가의 조부 이긍식 옹, 1951년 작고)
고색창연한 조선인이었던 할아버지, 오직 그분 한 분만이 진실로 육친이요 조상의 얼이란 느낌을 지워 버릴 수 없는 거였고, 또 앞으로도 길래 그럴 것같이 여겨진다는 것이다.
사자(使者)를 맞아 마지막 숨을 거두며 남긴 유언은 '부디 족보만은 잘 간수해야 하느니라' 단 한마디 뿐이었다.
사당은 커다란 장지문을 가운데로 하여 널찍한 방이 둘이었다. 안방은 엿단지를 비롯한 온갖 군입거리들이 들어찬 벽장을 뒤로 하고, 정좌한 할아버지의 은둔처였다. 그 방에는 때를 기다리지 않고 검버섯 속에 고색이 찌들어가는 시대의 고아 이조옹(李朝翁)들의 집산장으로서 난세 성토장 겸 소일터였으며, 웃방은 아버지의 응접실이었다. 노인들이 풍기는 특유한 체취로 하여 여간 사람이 아니고서는 코도 들이밀 수 없으리라고, 어머니는 빨래를 할 적마다 웃으며 말했다.
대복 어머니 (할아버지댁에 드나들며 허드렛일을 하던 이웃집 여자)
나는 여태껏 그 대복 어매처럼 수다스럽고 간사스러우며 걀근걀근 남 비위 잘 맞추고 아첨 잘하는 여자를 본 일이 없는 줄로 안다. 그녀는 별쭝맞게도 눈치가 빨라 무슨 일에건 사내 볼 쥐어지르게 빤드름했고 귀뚜라미 알 듯 잘도 씨월거리곤 했는데, 남 좋은 일에는 개미허리로 웃어 주고, 이웃의 안된 일엔 눈물도 싸게 먼저 울어댔으며, 욕을 하려들면 안팎 동네 구정물은 혼자 다 마신 듯이 걸고 상스러웠다. 키도 나지리한 졸토뱅이로서 입 싸고 발 재고 손 바르며, 남의 말 잘 엎지르고 자기 입으로 못 쓸어담던 만큼은 내 앞엔 입대껏 다시 없을 만한 여자였다.
신현석 (6.25 때 좌익의 끄트머리에 붙었다가 옥고를 치르고 나온 관촌 부락의 석공.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내)
형무소에 들앉아 있는 동안 처자 다음으로 그립고 잡아보고 싶어 못 견딘 것이 낫, 호미, 쇠스랑이며 밤마다 귓전에 들려온 것이 도리깨 소리 탈곡기 소리였다고 실토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집 농사에만 부지런을 피운 것이 아니었다. 이웃 동네 크고 작은 일에도 부러 빠진 적이 없었다. 추렴이나 비럭질로 마을의 곳집을 고친다거나 봇둑 보수가 있게 되면 으레 석공이 앞장서 나서야만 버르거지고 뒤틀림이 없었다. 특히 동네에서 죽은 어린애 관은 거의 석공 혼자서 지고 올라가 매장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들으나마나한 공치사 몇 마디 외엔 아무런 보수도 없던 일들... 수술하다 목숨 거둔 피투성이 이웃 송장도 혼자 업어 나르고, 술 취해 장바닥에 자빠진 사람은 도맡아 구완해 주기를 일삼고 있었다.
누가 그를 그런 사람이도록 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형무소에서 그토록 몸서리나테 참아애 했던 그의 소망, 그렇다 그 일을 그는 원이 없을 만큼 해냈던 것이다.
옹점이 (할아버지댁 부엌일을 도맡아 했던 16세 소녀)
그녀는 입이 걸고 성질도 사나왔지만 늘 시원시원하고 엉뚱한 데가 있었으며 의뭉스럽기도 따를 자가 없었다. 남다른 눈썰미로 한번 보면 못내는 시늉이 없었고 손속 또한 유별났으니 애써 가르친 바가 없어도 음식 맛깔과 바느질 솜씨는 어머니도 나무랄 수 없음을 진작에 선언한 정도였다. 할아버지가 나무라다 말 정도로 그녀는 무슨 노래든지 푸짐하게 불러대었고 목청도 다시 없이 좋았다.
제2편 화무십일(花無十日)
피난민 일가에 대한 '나'의 어머니의 따뜻한 인간애를 다룸으로써, 우리 사회에 뿌리 박고 있는 전통적 삶의 인간미를 감동적으로 느끼게 한다.
● <관촌수필> 내용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연작 소설, 사실주의 소설
* 배경 : 시간 - 1970년대
공간 - 충청도 보령 관촌 마을과 서울 연희동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전쟁과 가난 속에서 한 가족이 겪는 고난과 인생무상
● 등장인물
* 나 : 윤 영감네를 회고하는 관찰자적 인물
* 어머니 : 양반 집안의 며느리로, 궁핍한 가운데서도 피난민을 돕는 따뜻한 인정미의 소유자
* 윤영감 : 피난길에 '나'의 집에서 머슴으로 일하는 노인
* 솔이 엄마 : 윤영감의 며느리. 서울 사내와 야반도주한다
* 윤학로 : 윤영감의 외아들. 의처증이 심한 그는 결국 아내가 도망 가자 자살한다
● <관촌수필> 이해하기
<화무십일>은 '나'의 어머니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어머니는 전쟁을 겪는 동안 집안이 풍지박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갈 데 없이 어려운 윤영감 일가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통에 환갑상을 받지 못하게 된 윤영감에게 환갑상을 차려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순박하고 인정스러운 전통적 인간상을 그려볼 수 있다. 한편 이 인간상에다 따뜻함을 불어넣음으로써 생동감을 더해 주는 요소는 충청도 지방의 토속적인 사투리이다. 작가는 사라져 가는 사투리와 속담 등을 풍부하게 찾아씀으로써 훈훈한 농촌의 정취를 되살려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주제가 인정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목인 <화무십일-열흘 붉은 꽃이 없다>이 '한번 번성하면 반드시 쇠퇴할 날이 있음'을 이르듯이, 윤영감 일가의 몰락을 통해 짙게 드러나는 인생의 허무감이 참주제에 해당한다.
근대화의 파행성을 비판하는 다른 연작들과 비교할 때 이 작품은 농촌 사회의 공동체 정신과 농민들의 순박함을 부각시킴으로써 인간 또한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겸허하게 삶의 질서에 따르는 것이 당연함을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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