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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게 하는 잔
이사야 51:17~23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진노와 심판의 쓴 잔을 마시고 괴로워하며 비틀거리며 자빠진 자기 백성들을 위로해주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미 이 본문 말씀 앞 단락인 이사야 51:12~16 말씀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징계로 학대를 받고 포로된 상태에서 괴로워하며 두려워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권면한 바 있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 말씀 역시 같은 맥락에서 고난의 깊은 나락에 떨어진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일어나도록 용기를 주시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위로와 용기를 얻고 동시에 경고의 날카로운 나팔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한 절 한 절씩 살펴보면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들려주신 하나님의 위로와 경고의 메시지를 잘 깨닫고 마음에 새길 수 있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예루살렘은 하나님 백성들의 어머니와 같은 성입니다. 주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불려지는 교회의 자녀들로 비유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곧 구약 교회를 대표하는 예루살렘 성에게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시게 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잔이란 성경에서 자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시편 75:8 말씀에서 이르기를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5:15,16 말씀에도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비친 듯이 행동을 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냈기 때문이니라 하시기로”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술잔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분노와 심판을 담은 잔을 자기 백성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마시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그 잔을 남김없이 다 마시고 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성으로 비유된 여인은 심히 비틀걸음을 치면서 휘청휘청거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비틀거리게 하는 술잔을 건네 마시게 하면 방향 감각을 잃습니다. 균형 감각을 잃습니다.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립니다. 나라도 그러하고 교회도 그러하고 개인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망하게 하려고 하여 술잔을 부어주시면 균형 감각을 잃습니다. 인생의 방향감각을 잃습니다. 뻔히 앞길이 보이는 것인데, 속는 길, 망하는 길, 실패의 길로 달려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해줘도 귀에 안들어옵니다. 금방 일확천금을 얻을 것 같고, 금방 성공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비틀거리게 하는 잔을 주셨기 때문에 꼼짝없이 그렇게 비틀거리고 자빠지고 속게 되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위기를 만나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방 나라 애굽을 더 의지하고 경고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핍박하고 조롱하더니 결국은 그렇게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그렇게 비틀거리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만만해지고 허망한 욕심과 자만에 빠지고 자기 절제가 안되고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마음에 조급증이 생겨 앞뒤 재지 못하고 성급하게 무엇인가 달려가게 될 때에 퍼뜩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내가 비틀거리게 하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신 것 아닌가 하고 각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멈춰 서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하나님 앞에서 머물러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나를 향하여 멈추라고, 조심하라고, 책망하며 경고한 사람의 말을 조용히 곱씹어보면서 시간의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얼마나 근거 없이 제대로 검증없이 행하였고 망하는 길로 갈 뻔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식은 땀이 날 것입니다. 조용히 차분히 하나님 앞에서 머물러서 다시금 균형을 찾고 정신을 차리고 주님과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네가 양육한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네가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가 없도다”
예루살렘 성으로 예표된 구약 교회는 자식들을 잃어버렸습니다. 빼앗겼습니다. 아들들이 앗수르에 끌려갔고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자식이 없이 홀로 된 신세가 되었습니다.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중인데 자기를 붙들어줄 자녀가 없습니다. 이것이 구약 교회인 예루살렘이 당한 처참한 형편 중에 하나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정성스럽게 기르고 양육하는 목적은 그들로 훌륭하게 성장하고 힘을 얻고 부모가 위기에 처할 때에 돕고 지키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자부심이요 기쁨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 여인은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는데 붙들어주고 부축해주는 자녀가 곁에 없습니다. 부모가 술꾼이어서 그의 자식들이 든든하고 부모를 부축해주고 잘 건사하면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저녁이면 아버님을 동네에서 모시러 가는 일이 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저희 형님들이 그 일을 많이 했음을 커서야 알았습니다. 한번은 형제들이 모여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큰 형님 장로님과 둘째 형님이 옛날에 십리나 떨어진 읍내에 가셨던 아버님이 밤에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두 형님이 읍내에까지 가서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고 합니다. 밤 늦게 아버님을 모시고 오는 길은 십리 길인데, 아버님이 그 밤중에 그 울퉁불퉁한 들판 길에서 술에 취하셔서 넘어질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둘째 형님은 곁에 있다가 아버지가 고꾸라지면 자기가 아버지가 안 다치도록 그 땅 바닥에 미리 엎드릴 기회를 노리면서 함께 오곤 했다고 한 말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저는 형님들 정도까지는 모시러 간 적은 없고 우리 동네 반대편 주막에서 술 드시거나 화투 치고 술에 취한 아버지를 곁에서 모시고 오면서 함께 휘청거리면서 걸어오곤 했습니다. 여하튼 아버님은 그런 아들들 있었으니 다행입니다. 부축할 자녀가 있는 술꾼 아버지는 그래도 좋은 형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곧 구약 교회는 그런 자녀들마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큰 화입니다. 큰 재앙입니다. 교회와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그 교회와 나라를 인도하며 붙잡고 세워갈 젊은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화입니다. 과연 우리나라의 교회나 우리나라의 각분야에서 후대를 이어갈 인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것은 큰 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국의 멸망도 나라는 기울어가는데 인재가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결국 기울어가는 나라를 지키지 못한 채 망하고 말았습니다. 요시야 왕이 죽고 난 후에 그의 아들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한결같이 불신앙자들이고 이기적이고 선지자들을 무시하고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우유부단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지켜 보면서도 선지자의 예언한 것이 현실속에서 점점 뚜렷이 이루어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 조치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예고된 파멸을 맞이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나라와 교회나 가정이나 개인이나 망하게 하실 때에 후대의 지도자들을 주지 않음으로써 심판하신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그들로 하여금 비틀거리는 술 잔을 주어 이상한 지도자를 택하게 함으로써 벌을 내립니다. 망하게 하는 지도자를 선택하게 하여서 결국 망하는 길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나라를 위하여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요셉과 같고 사무엘과 같고 다니엘과 같은 충성되고 진실한 지도자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 많이 합시다. 이번 총선도 그러한 지도자들이 당선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악한 자들이 세워지게 될 때에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화로 돌아올 수 있으니,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닥쳤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랴 누가 너를 위로하랴”
하나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와 심판은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지도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거친 외국의 침략으로 인하여 결국 나라가 황폐화되고 다 멸망하게 됨으로써 기근이 그 땅에 이르고 칼이 그 백성들을 다 치게 되는 화를 당한 것을 말해줍니다. 이 예언이 주어질 당시에 이미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그 일을 당하였으며, 남 유다 역시 150년 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군대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고 황무화되고 말았으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위하여 울어줄 자 없었고 위로할 자가 없었으니, 모든 집이 죽고 끌려갔고 모든 논밭과 집이 다 황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위로해줄 자 없고 고통 중에 있을 때 아무도 함께 슬퍼해줄 자 없는 것처럼 비참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도다”
실제로 유대 백성의 아들들은 훗날에 바벨론에 끌려가서 모든 사람들이 다니는 사거리 모퉁이에 쓰러져 누웠으니 마치 그들은 그물에 걸린 사슴처럼 지치고 힘이 없고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분노와 견책 곧 징계로 인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은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그렇습니다. 고난 중에 처하여 포도주가 아닐지라도 정신적으로 취하여 아무 힘도 없고 소망도 없이 쓰러진 자, 예루살렘과 그 자녀들 곧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말씀을 합니다. 자기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자기 말을 들으라고 하신 권면은 용기와 소망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17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을 향하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라고 권면한 바 있습니다. ‘깰지어다’라는 이 단어는 스스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곧추 서라는 것입니다. 비틀거리는 잔을 마셔서 정신을 못차리고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지만 이제 정신을 스스로 차리라고 권면합니다. 17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네가 이미 비틀걸음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다 마셔서 그 잔을 다 비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마실 진노의 술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 40:2 말씀에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다호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이미 받은 벌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포로 생활하면서 노예 생활하는 복역의 기간이 다 지났다는 것입니다. 이미 충분히 죄의 대가를 지불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정신을 스스로 차리로 용기를 내어 일어나라고 권면합니다. 그렇습니다. 죄로 인하여 비틀거리게 하는 술잔을 주어 마시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에게 이제는 그 술잔을 거두게 하십니다.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 주 여호와, 그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네가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 하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 지은 죄 값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진노의 술 잔을 주어 비틀거리게 하고 자녀들도 쓸만한 사람이 없도록 하고 온갖 화를 당하되 위로할 자, 함께 슬퍼할 자도 없이 외롭게 했지만, 이제 그 술잔을 거두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의 잔을 거두고 비틀거리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만 해도 충분하다고 더 이상 더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리도 때로 죄와 허물로 인하여 징계의 잔을 마시고 힘들고 낙심하고 흔들렸을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끝까지 우리를 징계하시고 파멸의 길로 이끌지 아니하시고 낙심하지 않고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나게 하시기를 기뻐하심을 믿으십시오. 진노의 잔 비틀거리게 하는 잔을 우리 손에서 거두신다는 이 복된 약속을 믿으십시오. 더 이상 절망하고 자학하며 주저 앉아 미래를 한탄하지 마십시오. 용서해주셨으니 우리도 자신의 죄를 붙들고 계속 죄책감의 깊은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지 말고, 이제는 담대하게 나와서 주님을 위하여 일하며 복음을 담대히 전하며 주님을 섬기는 일을 힘을 씁시다. 할렐루야.
사도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고 해서 계속 주저 않아 있으면 마귀만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위로의 말씀과 격려를 믿고 일어나 더 열심히 일하여 귀한 사역을 했고 사도 바울도 그러했으니, 우리도 주님의 용서와 사랑의 빚이 더 중하고 크다면 이제 일어나 더 열심히 일하여 그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감사함으로 갚아나가는 자가 됩시다.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잔을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가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에게 네가 네 허리를 땅과 같게, 길거리와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유다를 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몽둥이로 들어 썼던 바벨론이 유다를 극렬하게 침으로써 하나님께서 나중에 그 포악함을 인하여 바벨론을 철저히 심판하게 하셨던 역사적인 사실로써 그대로 그대로 성취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게 하던 잔을 우리의 손에서 거두어서 우리를 괴롭게 한 학대자의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비웃고 학대하고 우리를 천대하였던 자들입니다. 우리의 신실한 신앙을 인하여 비웃고 자기의 세상적인 잘남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시 우리를 우리의 죄 때문에 그들의 손에 넘겨 우리를 비천하게 했을지라도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괴롭게 할 것이요 낮추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잃지 말고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로 인하여 징계하고 책망할지라도 원수들에게하는 것처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주 넘어지고 일어나지 못할 것이나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실지라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어나십시오. 스스로 깨어나십시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다만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강하게 하고 자기를 의지하며 세상을 자기 힘으로 삼을 때 반드시 망하게 되고 낮춰지게 되고 결국 그 불신앙 때문에 비틀거리는 잔을 마실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진실한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힘을 주셔야 힘을 얻고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지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제쳐놓고 세상 힘을 추구했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힘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신앙에서 나옵니다. 우리 자신 속에 세상의 힘을 빼는 데서 참된 힘이 나옵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종교 권력을 의지하였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 헤롯당원들 다 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깨뜨리지 않고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십자가에 못박았고 육신적인 힘을 길러 로마 제국과 맞서 싸웠습니다. 주후 60년대에 반란을 일으켜서 로마와 맞섰다가 주후 70년에 망했습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주후 131년에 바 코흐바가 주도하는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서 로마와 맞서 싸웠습니다. 이번에는 거의 전멸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지 않았고 세상의 방법을 추구했습니다. 반면에 구약의 선지자들과 세례 요한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와 사도들의 교훈으로 이어지는 참된 진리를 따라 순종하였던 진실한 하나님의 교회는 그 모든 시련 속에서 살아남고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세상 세력을 교회로 끌어오려는 당시의 대제사장 무리와 종교 권력을 추구하였던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들이 적지않게 있습니다. 종교를 권력화하고 금력과 세상 권력과 야합하면서 세상적인 힘을 키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틀거리는 잔을 부르는 옛적 유대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 자기 부인의 길, 힘을 빼고 주님께 겸손함으로 의지하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자녀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길입니다. 주님의 진노의 잔, 비틀거리게 하는 잔을 받지 않도록 참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님 뒤를 따라가는 저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