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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료바구니(기독) 원문보기 글쓴이: jung8h
슥 3: 9 세운 돌 - 슥 3: 10 초대 하리라. (1)
5.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 ( 3: 9 - 10 )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메시아께서는 또한 일곱 눈이 있는 한 돌로 표현되셨다. 그 일곱 눈은 그의 전지하심을 나타낸다.
“내가 새길 것을 새긴다”는 말씀은 메시아께서 속죄사역을 위해 고난 받으실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주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요 1: 29).
메시아의 대속 사역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세상의 모든 택자들의 죄악들이 하루에 제거되었다. 그것은 다니엘 9: 24에 “죄악이 영속(永贖)된다”는 예언과 같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듯이 평안과 즐거움의 날이 올 것이다. 신약 성도들은 그런 복을 누리기 시작했다.
슥 3: 9 세운 돌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
이 돌은 일차적으로 성전 건축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으로 필요한 기초석이나 모퉁잇돌을 의미한다.
* 스 3: 9-11 – 9 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11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 시 118: 22-23 –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 마 21: 42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 행 4: 11 -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이는 문맥상 스룹바벨을 의미하나 메시야를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Bullinger).
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이와 함께 일곱 눈의 모습은 보다 완전한 메시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로 여호와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모습이다.
* 슥 4: 10 -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 계 5: 6 -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하나님의 무한한 지성과 전지성을 상징한다.
* 사 11: 2 -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 골 2: 3, 9 -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 계 5: 6 -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이는 성전 재건 사업이라는 역사적인 현실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 즉, 영원한 대제사장이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죄악의 요구를 단번에 만족시키시는 사역을 가리킨다.
* 히 7: 27 -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 히 10: 10 -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
여호수아에게 주어지는 역할을 상징한다.
(2)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일곱 눈'은 '일곱 샘', '일곱 면'으로 땅의 죄악을 하루 사이에 제하여 버리는 역할을 담당하는 돌이다.
이 돌은 제사장의 대속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으로 장차 도래할 메시아를 상징한다.
* 계 5: 6 -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2]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 새길 것.
이 돌은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귀를 새겨 넣은 아론 제사장의 머리관에 붙인 금판과 같은 값진 보석으로 볼 수 있다.
이 글은 제사장의 상징적 문구라는 점에서 돌에 새긴 내용과 상응된다.
* 출 28: 36-38 – 36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37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38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2) 제거할 것.
하루 사이에 이 땅의 죄악을 제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상징한다.
* 롬 6: 10 -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 히 7: 27 -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 히 9: 12, 28 -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슥 3: 10 초대 하리라.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
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메시아 시대가 도래하는 날로 평화의 시대요, 안정된 시대이며, 번영의 시대를 말한다.
2]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1) 포도나무.
쾌락과 기쁨을 상징한다.
* 요 15: 1-5 –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2) 무화과나무.
두 가지의 축복을 상징한다.
* 왕상 4: 25 -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 왕하 20: 7 -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 미 4: 4 -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는 것은 영적으로 큰 은혜를 받은 상태를 말한다. (K. L. Baker).
메시야 시대가 오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평화가 이루어져서 하나님과 백성의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성도들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
* 롬 5: 1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혹 믿음으로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우리로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자
* 고후 5: 18-19 -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메시야의 오심으로 인해 평강을 얻게 된 하나님의 백성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을 하며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
* 계 20: 4-6 –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사도 요한은 몇 가지를 보고 증언하였다.
그는 보좌를 보았다.
이 보좌는 재판하는 권세를 상징한다. 거기 앉은 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원문에는 그들은 그것들 위에 앉아 있었다고 되어 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과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고 증언했다.
4. 보좌에 앉은 자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1)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
본서에서는 '보좌들'에 대해서 많이 언급한다.
사탄의 보좌(계 2: 13)와 짐승의 보좌(계 13: 2. 16: 10)를 제외한 나머지 보좌는 하늘에 있는 것으로 하늘에서 통치함을 암시한다.
보좌에 앉은 자에 대한 언급들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과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표를 받지도 않은 자들'이 동일한 부류를 지칭한다. (Mounce, Morris).
이들은 그 근거로계 13: 15을 제시한다.
* 계 13: 15 -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과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표를 받지도 않은 자들'은 두 부류로서 예수에게 신실하게 충성한 무리들 전체를 가리킨다. (Ladd, Johnson, Beasley-Murray, Barclay).
왜냐하면 이들은 죽기까지 충성한 자들로서 계 2, 3장에서 언급된 이기는 자들과 같기 때문이다.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그들은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인해서 죽임과 온갖 고난을 겪었다.
'영혼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카스'(*)는 계 6: 9에서 언급된 제단 아래서 신원하는 순교자들에게도 사용된 것으로 순교자들이 비록 육체적으로는 목 베임을 당해 죽었으나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소유한 자들임을 의미한다.
본인은 보좌에 앉은 자들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죽임을 당해 하늘로 부활한 순교자들이며, 첫째 부활 자들로 본다.
이들은 죽임을 당할 때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죽었지만 구체적인 것은 짐승의 우상에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음으로 적그리스도의 사망의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 같은 행위의 근거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들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녹명된 자들이다.
(1) 보좌들을 보니
하늘 보좌를 말한다.
(2) 거기 앉은 자들이
하늘 보좌에 앉아 있는 무리들을 의미한다.
* 계 4: 2-4 –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을 보았다. 그것은 순교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물론 그들도 심판의 권세를 받고 보좌들에 앉은 자들 중에 포함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았던 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순교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진실한 성도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다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보좌에 앉아 있는 자들이라고 본다.
적그리스도들의 활동은 초대교회와 중세교회를 거쳐 신약교회의 역사상 항상 있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는 더욱 절정적으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들의 세력에 복종하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들도 교회 역사상 항상 있었고 마지막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3) 심판하는 권세
본문은 계 5: 9-10의 반복으로 단 7장을 반영한다.
* 계 5: 9-10 –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다니엘서에서는 옛적부터 계신 자가 성도들을 위하여 신원할 뿐만 아니라 때가 되어 나라를 성도들에게 주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 단 7: 18, 22, 27 – 18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 계 6: 10 -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