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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 강해
머 릿 말
하나님께서 엘리멜렉에게 주셨던 영광의 복음은 비록 그가 버리고 모압 지방으로 내려가서 거기서 죽었고 그 아버지로 인하여 두 아들 마저 모압에서 죽게 되었지만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를 통하여 룻에게 증거 되어 한번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결단코 헛되이 돌아가지 아니하는 사실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때 그 때에 증거 하는 종들로 이 믿음 가지고 힘차게 증거 할 수가 있습니다.
(사55:8-11)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 요 지 ]
룻기서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오늘 이 때에 하시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먼저 룻기서의 요지를 말씀 드리려고 하는데 룻기서는 룻이라는 여자가 자기 손으로 자기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이방에서 태어난 룻을 첫째 부활의 영광까지 이끌어 주시는 역사를 나타내 주셔서 그 때로부터 계속 되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역사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로 인하여 룻을 인도 하셨고, 다니엘로 인하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시는 역사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노아와 아브라함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사람의 열심과 충성을 앞세우는 자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마23:29)
사람들이 처음에 창세기를 증거 할 때에는 노아가 이렇게 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했다 노아와 아브라함의 열심과 충성을 하나님의 은혜보다 앞세우고 다음에 다시 증거 할 때에는 노아와 아브라함으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5: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새롭게 지어져 가는 것이지 내가 새로워 질 수는 결단코 없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그 당시에는 아브라함의 후손 된 유대인들에게만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으므로 그들만 하나님의 선민으로써 구원받은 것으로 잘못 알고 그 당시에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다 불택자 곧 지옥 갈 자들인 것으로 보고 있었던 것도 우리들은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안에서도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죽은 우리 조상들은 다 지옥 간 것으로 보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모압 여인 룻을 불러서 베들레헴 땅으로 인도하시고 마침내 첫째 부활의 영광에까지 이끌어 주시는 역사를 볼 때에 모압 여인 된 룻이 비록 율법 없는 이방인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들을 불러 첫째 부활의 영광에까지 이끌어 주시는 역사로 인하여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본 구원 영의 구원은 이방인과 선민에게 구별 없었다는 사실을 여기서 또 나타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행10:45) 이 말씀은 오순절 이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그 때까지도 할례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할례 없는 이방인들은 불택자 인줄로 지옥 갈 자들인 줄로 잘못 알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도 예수를 믿으면 자기가 예수 믿는 생활로 인해서 구원받은 줄로 알고 심지어는 예정론을 말하는 장로 교회까지도 교회에 한번도 안 나오고 있는 자들은 불택자인 것으로 지옥 갈 사람인 것으로 잘못 보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는 것도 우리들은 보아야 할 것입니다.
룻기서 1장 강해
1절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삿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계셨고, 그러면 사사를 세우실 때가 있으면 안 세울 때도 있습니다.
사사 시대라 말씀하시지만 계속해서 사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사를 세워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 사사와 함께 있어서 치리 하실 때도 있었고 사사를 끊어 주셨다가 또 다시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세우신 사사와 함께 하셔서 말씀하시고 권능으로 치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에 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시고 말씀하시고 치리하고 계시는 그 때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게 하셨는데 사사로 치리 하게 하시는 그 때에 왜 그 땅에 흉년이 들게 하셨느냐, 그 사사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십니다.
(렘7:25)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가 볼 것은 사사가 살아 있을 때에는 사사로 인하여서 말씀하시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리하는 권세 안에 살고 있다가 그 사사가 죽으면 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삿2: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섬기던 그들이 되었습니다.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던 그들보다도 사사를 세워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더 악한 자가 되고 있는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워 그들 앞에 부지런히 말씀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마저 들으려 하지 아니하는 그들에게 말씀이 있으나 열매 없는 자기들의 생활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흉년을 주셨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눅15:14) 그 지방에 흉년이 들어 그 아들이 주려 죽게 되었을 때를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지요 그러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재산을 받아 가지고 있으면서도 허랑방탕 한 것이 무엇입니까?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말씀으로 한 생명 한 생명을 살리시는 역사에 쓰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무엇을 위하거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말할 때에는 생명이 되지 못하니까 또 하나님의 뜻대로 쓰지 못하고 자기를 위해 쓰고 있으니까 헛되이 쓰는 허랑방탕이 되고 말지요 그러니까 열매 없는 흉년을 그에게 보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흉년 들었을 때에 그 아들이 주려 죽게 되었고 주려 죽게 된 아들의 고통보다 그 고통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고통이 얼마나 더 컸겠느냐 그러면 그 땅에 흉년들게 해서 그들이 받는 고통보다 흉년을 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고통이 얼마나 더 컸겠느냐 그것을 우리들은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왕상17:1)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 850인이 미혹하여 열매 없는 자신들의 생활을 보게 하시기 위하여 엘리야로 기도하게 하시고 삼년 육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아니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때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시지 아니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으시기로 이미 작정하시고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운데 있는 그들을 보는 불타는 심령을 가진 엘리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셨느냐 그것을 우리는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왕상17:1) 엘리야가 기도해서 3년 6개월 동안 비오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다 그렇게 보면은 아합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왕상18:17) 아합이 엘리야를 만났을 때에 네가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주는 자라고 말했지요 엘리야는 뭐라고 합니까? 누가 이 일을 하게 하여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주는 자가 되었느냐 너와 네 아래 있는 이세벨에게 속한 거짓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열매 없는 죽은 자 가운데 있게 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고 그들을 보는 불타는 심령을 가진 나로 기도하게 하신 것이요 내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은 결단코 아니니라 순서를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암8:11)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 때에는 선지자가 없어서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그 기갈을 말씀하셨고,
(마24:7)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말씀했는데 왜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느냐 처처니까 한꺼번에 온 지방에 다 있는 것은 아니지요 여기는 물이 있는데 저기는 물이 없습니다.
또 여기도 물이 있는데 저기도 물이 없으니까 처처에 기근이 있다고 말씀했지요 그러나 이것이 계속 되면은 마침내 온 땅에 기근이 임할 것을 우리들은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지가 없어서 기근이 땅에 임하는 것보다도 사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므로 인하여 열매 없는 죽은 자 가운데 있는 그들을 보게 하시기 위해서 그 땅에 흉년들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심정을 우리들은 먼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야곱의 네째 아들인 유다 지파에게 주신 베들레헴 땅인 것입니다. (창49:9-10) 네째 아들인 유다 지파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게 하실 것을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미5:2) 베들레헴은 만주의 주여 만왕의 왕 예수께서 탄생하시므로 말미암아 가장 적다 일컬음을 받지 아니하리라 분명히 말씀했던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삼상16:1)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중에서 예선한 왕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다윗의 동네라 부르게 하셨던 곳이 베들레헴인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탄생한 예수를 베들레헴 사람이 제일 먼저 보게 되었지요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은혜의 땅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베들레헴은 우리에게 무엇을 나타내 주십니까?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가 신랑 예수를 먼저 보게 되느니라 신랑 예수를 먼저 보는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라야 베들레헴에 있는 자니라 이 말씀을 명심해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흉년이 들었다고 해서 모압으로 내려가서 우거하게 된 것은 그의 중심이 모압 사람과 같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기뻐하니까 한 번 흉년이 들었을 때에 도리어 모압 지방으로 내려가서 우거하는 자가 되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민22:19) 발람의 마음 가운데에 세상에 부귀와 영광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었으니까 모압왕 발락의 유혹에 넘어진 것입니다.
발람의 마음에 세상의 부귀 영광을 바라보는 기쁨보다 언제나 하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는 기쁨으로 충만하였더라면 발락의 유혹이 들어 갈 틈이 없었지요,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하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하나님께서 흉년들게 하신 것을 깨달았을 것인데 세상에 부귀 영광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므로 흉년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도리어 모압으로 내려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30:20) 돌이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모압으로 내려갔으니 환난을 떡으로 받지 못하고 돌로 받고 있습니다.(막5:5)
우리들도 오직 하늘 위엣 것만 바라보는 그 기쁨으로 충만하다면 세상에 유혹을 받을 까닭이 없고 환난에 넘어질 까닭도 없는 것입니다.
(창44:2)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어 주었는데 왜 그것으로 점을 친다고 하셨나요 은잔은 아래보다 위가 넓습니다. 잔을 한 번 떼구르르 굴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엎어지면 입이 땅에 닿았으니까 세상을 내려다보는 자요 바로 서면은 하늘 위엣 것을 바라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굴려 보면은 엎어지는 자가 많습니다. 왜요 위가 넓으니까 바로 서서 물을 담아 놓았다 가도 한 번 엎어지면 다 쏟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위엣 것만 바라보아야지 어느 한 구석이라도 세상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면 엎어지고 맙니다.
따라서 돌이켜 주시는 흉년과 환난을 주실 때에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압 땅으로 가는 사람과 같이 되는 것을 보아야 됩니다.
◈ 참 고 ◈
※ 데리고 가는 남편과 따라 가는 두 아들과 끌려가는 나오미
이 네 사람의 입장을 살펴서 내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가 찾아보아 올바른 자리에 서야 하겠습니다.
남편은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얻기 위하여 열심 하다가 흉년을 주시니까 흉년 주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풍족한 모압을 향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창13:11) 소돔과 고모라를 여호와의 동산 같이 보는 롯은 요단 들을 택하여 소돔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집을 크게 짓고 부요한 생활을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눈에는 자기들을 부요하게 하신 하나님을 져 버리는 애굽과 같이 보였느니라 우리들이 어떻게 보느냐 자기의 신앙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자기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 생활을 본 받는 그 두 아들들은 아버지가 가는 그 길을 기뻐서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눅14:26)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의 땅을 보는 특별히 베들레헴의 영광을 보는 그 아내는 남편과 두 아들과 모든 재산을 이끌고 모압으로 내려가고 있는 그들에게 억지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도 보아야지요,
그러나 한 가지 더 우리가 여기서 살펴 볼 것은 그들이 베들레헴에 있으면서도 하늘나라의 영광보다 세상을 더 기뻐하는 것을 보는 그 아내는 베들레헴에 있을 때에 계속해서 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하루 빨리 위엣 것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는 남편에게 권고하고 아들들을 가르쳐 왔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들에게 끌려가는 그 아내는 두 아들과 남편과 재산에 이끌려 가는 아내만 보고 있느냐? 내가 베들레헴에 같이 있으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권고하고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모압 땅으로 내려가고 있는 그들인데 그들만 내려보내면은 아주 모압 사람들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죽음의 땅으로 가는 그들을 따라 가면서 끝까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위해서 따라 가고 있느냐 각자 보는 눈과 신앙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거한다 말씀하고 있는데 우거하는 것은 본향을 떠나서 타향에 임시로 잠간 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지요,
(약4:13)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은 거기서 일년 동안 장사해서 이를 보고 다시 돌아 올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고향을 사모하고 돌아오려고 합니까? 육신이 태어난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은 베들레헴 땅이 얼마나 영광된 땅이라는 것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히11:15-16)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더 좋은 부활을 보여 주십니다.(히11:35)
나오미는 그들을 따라 가기는 따라 갔는데 끝까지 그들을 위해서 가르치며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돌이켜 주실 날을 바라보는 그 심정이 우거하는 자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도 우리들은 여기서 구별해 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약4:14-15)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말씀했지요,
주의 뜻을 먼저 살펴야지 내 뜻을 먼저 앞세워서 내가 일년 동안 가서 이를 보고 다시 돌아오리라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