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이인호 교수가 장황하게 이데일리에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위헌이라는 글을 올렸다. 오늘 보니 진보성향을 가진 김선수 전 대법관이 헌법재판소법 개정만으로는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인호 교수는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이원화되어 있는데 대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대법원의 최종적인 사법권을 침해한다고 한다.
헌법 제101조 제1항은 법원이 사법권을 가지고 동조 제2항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므로로 최종적인 사법권은 대법원이 가진다. 헌법 제111조는 헌법재판소가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 탄핵심판권, 위헌정당해산심판권, 권한쟁의심판권,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 심판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사법권의 이원화라고 한다. 일반사법권은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가지고 헌법재판권은 헌법재판소가 가진다.
이인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당(더불어민주당)은 대법관 증원법(안)과 함께 대법원의 재판을 헌법재판소가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 시도를 동시에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행 헌법이 상정하고 있는 사법부 구조, 즉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병렬적 관계를 변경하여 헌법재판소를 대법원의 상위기관으로 두는, 그리하여 대법원의 ‘최고법원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는 법률로써 헌법을 개정하는 위험한 시도 이다. 현행 헌법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위상을 상하 관계가 아니라 병렬적 관계로 두고 있다. 이 점은 그 연혁적 배경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상급법원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한다고 하여 헌법재판소가 상위 입법기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탄핵하였다고 하여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상위 행정기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법원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을 삼아 헌법재판소가 취소한다고 하여 헌법재판소가 상급기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분립 관점에서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은 다른 국가기관에 의하여 통제되어야 한다. 국회의 입법권은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 심판을 통해 통제되고 있다. 행정권은 법원의 행정재판권과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심판을 통해 통제되고 있다. 사법권만 다른 국가기관에 의해 통제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면 헌법재판권은 어는 기관이 통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3인, 국회선출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으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어 구성단계에서 다른 국가기관에 의해 통제받도록 하고 있다. 사법권 행사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되었는지 문제는 헌법재판권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사법권 행사가 기본권 침해시 헌법소원심판을 통해 취소하는 것은 사법의 이원화정신에 반하지 않는다.
국가권력의 구조의 변화가 타당한지는 기본권 보장 정신에 더 부합한지를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대법원 재판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 역사는 너무 많다. 1959년 조봉암 씨 사형, 1980년 김대중 사형선고등 대법원의 사법권에 의해 기본권이 유린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975년 민청학련 8명 사형선고를 두고 1975년 국제법학자회는 1975년 4월 8일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였다. 국제사면위원회도 “사형수 8명에게 공공연히 씌운 증거는 의심스럽다”고 발표하였다. 수많은 긴급조치를 적용한 유죄판결을 내린 장본인이 대법원이다.
대법원도 나중에 이를 인정하고 민청학련 사건, 긴급조치 사건 모두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이 나왔고 국가배상판결도 다수 내놓았다.
그렇다면 사법권 행사로 헌법상 권리인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음은 대법원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상위기관이냐 대법원이 상위기관이냐는 유치한 논쟁이다.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을 통해 통제하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정신에 더 부합되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다. 사법권 행사로 기본권을 침해했으면 헌법소원을 통해 취소하는 것은 너무나도 헌법정신에 부합된다.
대법원 재판을 헌법소원을 삼으려면 헌법을 개정해야하는가? 아니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에서 제외하고 있다.
일단 전술한 바와 같이 대법원 재판을 헌법소원을 삼는 것은 헌법 전체 체계에 부합된다.
또한 헌법 제111조 제5호의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서 법률에 유보한 것인지 무엇인지에 대해 학설은 절차위임설과 실체위임설로 나뉜다. 절차위임설는 헌법소원 심판의 절차만 위임한 것이므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에서 제외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이 오히려 헌법 제111조 제5호에 위반된다고 한다. 실체위임설에 따르면 공권력 행사 중 어떤 권력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할 것인지는 입법자에 위임했다고 한다. 따라서 사법권을 헌법소원 심판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는 입법형성의 영역이라고 한다. 따라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에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으로 충분하다. 보수적인 헌법학자인 허영교수와 정종섭 교수도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에 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고 견해를 가지고 있고 헌법학계에서도 큰 이견이 없다. 이런 배경하에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에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사법시험과 공무원 시험에서 옳지 않은 문제로 수차례 출제되어 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을 모두 장악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인호 교수의 주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행정권, 입법권을 민주당과 이재명에게 부여한 것은 국민의 선거로 연유한 것이고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무슨 권력분립에 반하는가? 오히려 통제받지 않았던 대법원의 사법권이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된다면 권력분립 정신에 부합된다. 모든 권력은 마땅히 통제되어야 하고 사법권도 예외가 아니다.